요망하고 고얀 것들 (2021) 2023년 서적




2021년에 ‘눌와’ 출판사에서 ‘이후남’ 작가가 집필한 고전 요괴 소설. 부제는 ‘욕망을 따라 질주하는 고전소설 요괴 열전’이다.

내용은 조선 시대 때 전해져 내려오는 요괴가 등장하는 고전 소설을 모은 것이다.

본작은 다른 작가의 추천사와 책 소개를 보면 조선 시대의 고전 요괴 소설을 주로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조선 시대 배경의 요괴 소설은 서너 편 정도에 그치고.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가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정확히는, 연대 미상의 고전 소설들이 주를 이루고, 이 고전 소설들의 배경이 조선이 아니라, 중국 송나라, 명나라, 당나라 시대라서 필사본, 번역 판본을 바탕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책 겉 표지에 나오는 4마리의 요괴만 해도 전부 다 중국 요괴들이다.

그래서 사실 이걸 과연 한국 민속/전통문화의 범주로 봐야 할지 좀 의문이 들 지경이다.

한국 요괴 설화/전설로 잘 알려진 ‘꽁지닷발 주둥이 괴물’, ‘땅 속 도둑 귀신’, ‘소공주동귀’, ‘불가사리’, ‘깡철이’, ‘여우누이전’, ‘우렁각시’, ‘천년 묵은 지네’ 같은 건 오히려 전혀 언급이 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이게 조선 시대 요괴의 비중이 생각보다 적은 것과 별개로, 반대로 중국 요괴의 비중이 커서, 기존에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많아 전에 보지 못한 이야기를 볼 수 있는 것은 꽤 메리트 있는 일이다.

기존에 나온 중국 신화, 전설 등을 다루는 과정에서 중국의 요괴를 소개하는 사전, 도감류 책에 등장한 요괴들과도 겹치는 게 거의 없다.

그게 중국 신화/전설 도감, 사전류 책에서는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민담, 설화를 바탕으로 요괴를 소개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 고전 소설에 등장하는 요괴는 잘 다루지 않거니와, 요괴보다는 귀신, 도깨비(야차), 강시, 신선, 도사, 보살, 도술 등의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어서 그렇다.

한국에서 크라우드 펀딩을 받아 독립 출간한 동양 요괴 사전류 책이나, 그 카테고리에 속한 중국 요괴 사전/도감 등은 ‘퇴마록’으로 유명한 ‘들녘’ 출판사에서 나온 ‘판타지 라이브러리’ 시리즈의 ‘중국 환상 세계’와 ‘환상 동물 사전’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서 똑같은 내용을 책 제목만 바뀌어 계속 반복해서 보는 게 좀 지겨웠는데. 본작은 그 책들에서 소개되지 않은 요괴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꽤 볼만하다. (단적인 에로 주호민 작가의 중국 요괴 웹툰 ‘빙탕후루’에 등장하는 요괴 대다수는 ‘중국 환상 세계’에 수록된 요괴들이고. 요괴 디자인도 중국 환상 세계에 들어간 요괴 삽화를 베이스로 한 것이 많다. 예를 들어 일목오선생과 4흉 디자인)

중국 고전 소설에서 여우 요괴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데. 이걸 중국 환상 세계와 환상 동물 사전에서는 그저 ‘여우의 정(여우 요괴)’란 카테고리 하나로 설명할 뿐. 그 여우 요괴들이 고전 소설에서 어떻게 등장했는지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데. 본작에서는 어떤 소설에 등장해 어떤 일을 했는지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당연하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우 요괴의 이야기가 그 캐릭터 자체의 서사를 가지고 있기에 묘사 밀도가 더 높을 수 밖에 없다.

여우가 백년 묵고, 천년 묵으면 도력이 높은 여우가 된다. 여우 요괴는 사냥꾼을 두려워 한다. 이런 단순한 설명을 하는 것과, 여우 요괴가 인간에게 매달리고, 인간과 친분을 쌓고. 잘못된 길을 들어섰다가 잡혀 죽는 일도 있지만. 반대로 깨우침을 얻어 여우의 가죽을 벗고 도사가 되었다더라. 라는 이야기가 있는 건 하늘과 땅 차이가 있는 거다.

전체 요괴 이야기 중에 유독 ‘여우 요괴’와 관련된 이야기의 비중이 좀 높아서 요괴 소재의 바리에이션이 풍부하지 못한 게 좀 아쉬운 점이긴 하나, 용, 교룡, 구렁이, 동물 요괴들은 둘째치고서라도. 6개의 팔과 4개의 눈을 가진 거인으로 변신한 나무 요괴나, 황제를 자칭하며 황제의 관과 도포를 입은 해적 요괴, 물귀신 요괴, 여장부 요괴의 이야기는 진짜 국내에서 출간된 요괴 관련 서적 중에 그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게 여장부 요괴은 ‘올출비채’인데. 이야기 내용만 보면 ‘수호전’의 ‘인육만두’ 에피소드를 요괴물로 각색한 느낌이 살짝 들지만, 이야기 속 주체가 집안 남자 요괴들을 휘어잡은 여장부 식인 요괴라서 흥미진진했다.

중국 ‘포송령’의 ‘요재지이’에는 여자 야차가 인간과 결혼해 3명의 자식을 낳고.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인간 세계에서 무과에 급제해 장군이 되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워 성공한다는 에피소드도 나오는데. 여자 야차가 악역으로 등장해 빌런 포스를 풀풀 풍기면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건 보기 드문 것이었다.

내용 중간중간에 한 컷씩 들어가는 삽화 퀼리티도 상당히 괜찮다. 책 전체 내용 중에 삽화는 극히 일부분이라 분량 자체는 적긴 하지만, 그래도 텍스트만 봐서는 알 수 없는 요괴 묘사의 임팩트가 있고, 만화나 애니메이션, 웹툰풍의 그림체가 아니라 고전화풍으로 그려져서 고전 요괴 소설이란 책 컨셉과 딱 맞아 떨어진다.

본작의 아쉬운 점은 본문의 문체와 구성에 있다.

고전 요괴 소설을 소개하고 있지만, 각각의 고전 요괴 소설이 사실 요괴가 중심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 속 주인공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에 요괴가 나오는 에피소드를 언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원작 소설은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데 거기서 요괴가 나오는 것만 일부 떼어다가 소개하는 것이라. 원작 본문 내용을 온전히 다 옮긴 게 아니라 일부만 소개하면서 저자가 썰을 풀 듯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문제는 저자가 소설가나, 민속 학자 출신이 아니라 고전 소설 연구가이자 대학 강사이기 때문에, 이야기 썰을 풀 때 온전히 소설의 관점에서 푸는 게 아니라.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듯 풀어내며, 자기 주관을 넣어 해석한 부분이 많아서 그게 좀 독자 입장에서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됐다.

예를 들면 해당 소설 속 요괴의 심정을 헤아리거나, 요괴가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한 짓을 하면 어땠을까. 요괴는 인간으로 둔갑해서 사는데 인간의 사회성을 지니지 못했다. 인간은 선한 요괴를 돕고 악한 요괴는 퇴치당하는 게 요괴의 숙명이다. 등등. 꼭 저자의 주관적 해석을 집어 넣어 분석하고, 판단하고, 정의하면서, 이야기 자체의 맥을 뚝뚝 끊어먹으며. 역으로 독자에게 글을 읽고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작중 요괴가 불쌍한지, 안 불쌍한지는 오로지 글을 읽는 독자가 판단할 일이지. 저자가 이 요괴 좀 불쌍하지 않을까? 이러면서 글의 끝을 맺으면 되겠나.

강사 입장에서야 본인이 소설 이야기 썰 풀면서 소설 속 등장인물 심정 분석하고, 해석하는 게 재미있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고전 요괴 소설을 읽고 싶은 거지, 고전 요괴 소설의 연구 자료를 읽고, 강의를 듣고 싶은 게 아니란 말이다.

결론은 추천작. 저자가 고전 소설 연구가이자 대학 강사라서, 본문 내용을 소설로 온전히 풀어낸 게 아니고. 강의를 하는 듯한 서술과 주관적인 해석을 집어넣은 게 소설로서의 감상을 방해하는 문제가 있고. 조선 시대 고전 요괴 소설 모음을 표방하고 있지만 연대 미상의 소설에, 중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 한국 민속/한국 전통/한국 고전의 범주로 봐야 할지 의문이 들기는 하나, 기존에 국내에 소개된 중국 신화/전설을 다룬 사전/도감에서 소개된 중국 요괴와 겹치는 내용이 없어 신선하게 다가오고.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소설 속 요괴가 다수 등장해서 내용 자체는 알찬 편이고. 고전화풍으로 그려진 삽화 퀼리티도 높아서 글의 내용을 뒷받침해주며, 고전 요괴 소설을 전문으로 다룬 책 자체가 국내에서는 워낙 보기 드문 케이스라 장르적 유니크함도 갖추고 있어서 요괴물을 좋아하고. 또 요괴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 번쯤 볼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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