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에 ‘장화’ 작가 원작 소설을, ’주호민‘ 작가가 웹툰으로 그려서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해 2020년에 총 170화로 완결된 퇴마 판타지 웹툰.
내용은 중국 송나라 시대 때, ’귀안‘ 도사와 그의 제자 ’여연‘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팔귀‘ 퇴치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작의 장르는 퇴마 판타지 장르로 중국 송나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호민 작가의 대표작인 ’신과 함께(2010)‘과 한국형 판타지의 예시로 볼 수 있었던 걸 생각하면, 중국 판타지로 돌아온 게 꽤 이채롭고. 또 작품의 장르가 퇴마물이라서 기존의 주호민 작가 작품에서 볼 수 었었던 새로운 장르를 시도한 것이라서 신선한 구석도 있다.
하지만 이게 주호민 작가 작품의 장르적인 부분에서 신선한 거지, 소재나 캐릭터가 신선한 건 아니다.
중국 민속/설화 베이스의 괴기 판타지로서 스토리 초반부 느낌과 캐릭터 구성을 보면, ’다이지로 모로호시‘의 ’재괴지이‘와 유사해서. 재괴지이의 아류작 느낌이 강하게 든다.
다만, 재괴지이는 다이지로 모로호시의 괴기/다크 판타지의 테이스트가 매우 깊은 작품이라 다른 누군가 함부로 흉내낼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기에, 본작은 재괴지이 원작의 테이스트를 그대로 우려내진 못하고. 재괴지이와 비교하면 좀 순한 맛에 가깝게 나온다.
일단, 아류작 논쟁은 둘째치고. 한국 웹툰 중에 중국 배경의 퇴마물은 확실히 보기 드문 장르이고. 보통 한국에서 요괴 퇴치 만화하면 일본의 점프식 소년 만화 풍의 액션, 이능력 배틀로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라서 재괴지이풍의 다크 판타지는 확실히 유니크하다.
작화는 여전히 그리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주호민 작가의 작품 중에서는 고어 수위가 꽤 높은 편이고. 또 액션 비중이 커서 기존의 작품과 다른,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느낌을 주어서 그 부분은 좋게 볼만하다.
하지만 스토리 중반부 이후에는 요괴에 의해 벌어진 사건 중심에서, 단순히 도사가 도술 펑펑 쓰면서 요괴 때려잡는 퇴마행으로 노선을 완전히 변경하면서 초반부 다크 판타지의 유니크함이 완전 사라져 버린다.
액션물로 노선이 바뀌었는데, 앞서 말했듯 본작은 주호민 작가의 작품 중에 액션 비중이 높아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라, 본래 액션이 주력은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액션형 퇴마 판타지와 비교하면 작화, 연출이 떨어진다.
근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캐릭터 전반의 운용이 매우 나쁘다는 점이다.
정확히, 주인공 귀산에 대한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서, 귀안에게 스포라이트를 집중하면서 다른 캐릭터가 전부 다 쩌리가 댔다는 점이다.
본편 스토리에서 귀안은 팔귀를 물리치고 천선이 되면서 정의를 구현하는 목적을 이루고 보상까지 받아 주인공으로서의 업적을 완성한 캐릭터가 됐지만, 귀안의 동료들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본래 캐릭터 구성을 보면, 진 주인공이 되었어야할 귀안의 수제자 ‘운’은 배트맨과 로빈의 로빈처럼 귀안의 사이드 킥에만 머무를 뿐. 정신적으로 성장을 하거나, 진 주인공으로서의 능력을 각성한 것도 아니고 자괴감에 빠진 채 사랑하는 연인조차 잃고 귀안의 후계가 되어 도사 생활을 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업적을 이루지 못했다.
‘여연’은 처음부터 귀안과 함께 한 제자로 이쪽 역시 캐릭터 활용에 따라서 운과 같이 진 주인공이 될 수 있을 법 하지만.. 귀안의 퇴마행에 있어 사이드 킥조차 되지 못했고, 언제나 퇴마행이 시작될 쯤에는 ‘너는 위험하니 피해 있어라’라는 말과 함께 짐짝 취급을 받으며, ‘월’은 파티 합류 시기가 다소 늦었는데. 중간에 파티를 이탈했다가 재합류하는 사이의 텀이 길어서 레귤러 멤버로 보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록’은 운과 남녀 주인공으로서의 썸을 타지만, 극 전개상 록이 파티에서 장기간 이탈해 로맨스의 여지는 주었는데 그 전후 과정을 스킵하고 넘어가서 로맨스의 꽃을 제대로 피우지 못한 채, 비극으로 마무리해서 가슴에 전혀 와닿지 않는다.
요약하자면, 귀안을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은 오직 귀안의 퇴마행을 위한 빌드 업의 재료가 될 뿐. 귀안과 별개의 독립적인 캐릭터로서 각각의 종막을 맞이하지 못해서 캐릭터성이 떨어진다. 애네들은 귀안이 있기에 존재하고, 귀안이 없으면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헌데 귀안이 그렇게 주인공으로서 스포라이트를 독점한다고 해도. 매력적인 캐릭터냐고 묻는다면 또 그것도 아니다.
귀안에게는 동문의 라이벌 ‘백염’과 스승 ‘방적’ 등등. 직접적인 갈등을 맺는 캐릭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제대로 엮이지 못하고 겉돌고 있다. 오로지 요괴 퇴치에 올인해서 캐릭터 개인의 서사가 부실해진 것이다.
라이벌인 백염은 귀안의 퇴마행을 방해하고, 팔귀와 관련된 사건의 흑막으로 자주 나오지만. 팔귀 퇴마행은 어디까지나 팔귀를 퇴치하는 거지, 백염을 물리치는 게 아니며, 이야기 끄트머리에 가면 어디 두고보자라는 3류 악당 대사를 남기면서 도망쳐 다음 이야기에 또 튀어나오는 식으로 등장하다가, 막판에 가서 진짜 사건의 흑막이 등장할 때쯤에는 비중이 대폭 줄어들어 극 초반부의 떡밥 회수용 캐릭터로 전락하기 때문에, 이게 설정만 귀안의 라이벌이지 숙적의 ‘숙’자를 붙이기도 민망할 정도다.
‘방적’과의 갈등은 극 후반부에 나오는데. 극 전개상 귀안이 온전한 상태에서 방적과 갈등을 빚는 게 아니라서, 캐릭터 간의 갈등이 심화되기도 전에 눈 깜짝할 사이에 갈등이 종결되고. 방적의 최후도 작중에서 제대로 묘사되지 않아 중요한 내용을 죄다 스킵했다.
결과적으로 귀안은 요괴를 물리치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스승으로서 제자가 성장할 계기를 마련하거나, 제자가 활약할 기회를 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괴안이 직접 퇴마행에 나서서 다 때려잡으니 스승과 제자의 케미도 이루지 못한다.
본편 내용에서 언제나 위기는 귀안이 함정에 빠지거나 독에 당해서 움직이지 못할 때 찾아오고. 사건 해결은 귀안이 복귀해서 도술로 요괴들 때려 잡으면서 끝나니 아주 무슨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승전귀안이다.
본작은 스토리 전개가 빠른 게 장점으로 손에 꼽혔지만, 이게 중반부 이후로 넘어가면 속도가 빠른 대신 스토리의 디테일이 없어져 속도와 디테일을 등가 교환했기 때문에 양날의 검이 되어 버렸다.
스토리 전개가 빠른 만큼, 귀안이 매번 전에 사용하지 않았던 신 필살기급 도술을 선보여 요괴들을 때려 잡는데. 이게 아무런 언급도, 설명도 없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수준이라서 그런 기술이 있는데 왜 그동안 안 썼냐는 논란을 일으킬만 하다.
빠른 스토리 전개를 위해 디테일을 희생한 걸 반증하는데. 무슨 디아블로 같은 핵 앤 슬래쉬 게임 감각으로 진행되는 느낌이다.
플레이어 캐릭터가 레벨업을 하면 새로운 스킬을 익혀서, 신 스킬 펑펑 쓰면서 적들을 초전박살내는 진행 말이다.
그 때문에 팔귀들도, 후반부로 넘어갈수록 설정만 거창해지지, 신 필살기 나오기 무섭게 쳐맞고 퇴장하는 자코로 전락한다.
초반부에는 팔귀 하나하나가 한편의 에피소드의 주역으로서 단순히 요괴 퇴치 싸움만 나오는 게 아니라. 작중에 벌어진 사건의 핵심적인 캐릭터로서 이야기의 중심에 있었는데, 이게 스토리 전개가 빨라지면서 단순히, ‘야생의 팔귀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귀안이 팔귀를 물리쳤다!’ 이런 단순한 패턴이 반복돼서 이야기 자체의 재미가 급속도로 떨어진다.
후반부로 넘어가면 진짜 스토리 전개에 대한 고민을 일절 하지 않고, 그저 글 콘티가 나오는 대로 기계적으로 그리면서 어떻게든 빨리 끝내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들게 한다.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엔딩도 제대로 내지 못했다는 점인데.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최종화의 뒷부분을 뚝 잘라먹어서 결말 자체가 흐지부지됐다. 작가 후기조차 나오지 않아서 대체 왜 그렇게 끝낸 건지 알 수가 없다.
그게 만약 ‘남은 엔딩 내용과 후일담은 소설 원작에서 확인하세요!’ 라고, 원작 소설의 판촉용 엔딩으로 끝낸 거라면. 수년 간 본 웹툰을 보아 온 웹툰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아니, 무슨 웹툰 엔딩을 DLC로 만들어 팔아먹는 것도 아니고)
결론은 비추천. 초반부의 중국 민속/설화 베이스의 괴기 판타지가 재괴지의 아류작이긴 하나 장르의 유니크한 특성상 매력은 있었지만,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사건 중심에서 퇴마 액션 중심으로 노선이 변경되 요괴 퇴치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되어 유니크함이 사라져 매력이 없어졌고. 주인공에 대한 의존도가 너무 높아 캐릭터 전반의 운용이 나쁘며, 스토리 전개가 빠른 대신 이야기의 디테일이 다소 떨어지고. 떡밥 회수도 되지 않은 채 엔딩마저 제대로 내지 못해서 용두사미가 된 작품이다.
주호민 작가의 작품은 그림이 좀 부족해도, 스토리가 좋으니 스토리로 승부를 본다는 예시가 됐었는데. 이번 작품은 그 스토리가 폭망하니, 스토리가 강한 주호민 작가란 말도 퇴색하기에 이르렀다.
주호민 작가의 재기작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아서, 그저 주호민 작가가 아직 현역 작가로서 작품 활동을 했었구나. 정도를 확인하는 것에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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