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여행 (1995) 2022년 서적




1995년에 ‘서음 출판사’에서 들여온 심령 체험 서적. 저자는 ‘로구가와 슈우구’라고 하는데, 책 제목도, 저자 이름도 아무리 검색해도 아무것도 뜨지 않아서, 책 앞표지에 적힌 ‘일본 출판 사상 최장기 슈퍼 베스트셀러’라는 말의 진위여부는 확인할 수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1995년에 수입되어 번역 출간됐지만, 본문 내용을 보면 시대 배경이 1980년대 일본이라서 현재로선 더욱더 정보를 찾기 어렵다.

내용은 본작의 저자인 ‘로구가와 슈우구’가 아는 영능력자에게 초령을 부탁해 자살한 사람들의 혼을 불러내 그들이 겪는 사후 세계에 대한 증언을 듣고. 그 이외에 여려 영능력자를 만나면서 보고 들은 심령 체험담 이야기다.

저자 프로필을 보면 현직 영능력자가 아니라, 일본 대학 예술 학과/영화학과를 졸업하고 코미디, 콩트 대본을 집필하다가 방송 작가로 전직해서 당시에 히트를 친 예능 방송들의 기획, 구성, PD, 르포라이터 일을 하는 방송인으로 나온다.

그래서 사실 방송 일이 본업이고, 심령 관련 일은 방송의 연장선상에 있어서 70~80년대 일본에서 오컬트 붐이 벌어지면서 거기에 편승하여 방송의 활동 영역을 넓힌 것에 가까워서 전문성은 떨어진다.

실제로 저자 본인이 괴기 현상에 관심이 많은 것 치고는, 심령 과학적인 부분에서의 주장은 개인의 사견이 많이 담겨 있어 객관적인 입증을 하지 못하는 관계로 신빙성이 좀 떨어지고, 그 부분의 양도 얼마 되지 않아서 심령 과학 전문 서적이라고 보기는 무리가 따른다.

사람이 죽으면 몸에서 혼이 빠져나가는 걸 ‘엑토플라즘’이라고 정의하면서, 자연사를 한 사람의 엑토플라즘일수록 쉽고 빠르게 정화되고 성불하는데. 병사한 사람은 엑토플라즘도 병들어 있어 정화와 성불이 늦고, 자살한 사람은 그보다 더 안 좋은 상태라 정화, 성불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살한 사람의 혼을 영능력자에게 초령을 부탁해 그 혼을 불러내 몸을 싣고 인터뷰하는 내용이 초반부의 메인인데. 이게 어떤 구체적인 진술을 듣는 것이 아니라 방황하는 혼이 보고 겪은 사후 세계의 이야기를, 지옥의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다.

즉, 자살령은 정화, 성불은 고사하고 지옥 같은 곳에서 평생 헤매는 걸 전제로 삼고 경고를 하는 것이다.

책 제목은 ‘자살여행’이라서 뭔가 ‘자살’이라는 민감한 단어와 ‘여행’이라는 감성 돋는 단어를 합친 게 뭔가 자살을 여행으로 미화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본문에 나오는 경고 메시지가 워낙 명확해서 오히려 자살을 막으려고 노력한 흔적으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자살령과의 교령 인터뷰 소개 글 중에서 자살령의 이름, 나이, 직업, 가족 관계 등의 신원을 밝히는 건 물론이고. 자살한 유명 연예인의 혼까지 불러내서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루머의 진상을 묻는 교령 인터뷰를 시도한 건 좀 과도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흥미 본위로 고인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 느낌이랄까.

일본에서 실존한다는 자살의 메카 ‘난키 시라하마’의 3단 절벽 현장 취재 이후에는, 갑자기 자살령 소재가 증발하고. 보통 사람들이 일상에서 귀신을 본 심령 체험담으로 가득 채워서 뭔가 책의 주제에서 벗어난 느낌을 준다.

어느 장소에 갔다가 귀신을 만났다 어쨌다 하는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데. 이야기 자체는 원 패턴이고. 소재 구성도 되게 평범해져서 흥미가 짜게 식는다.

다만, 이게 아무래도 일본인의 귀신 체험담이기 때문에, 한국인의 귀신 체험담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게 일본인이 겪은 한국인 귀신 관련 이야기인데. 부산에 지어진 일본계 호텔에서 한복 입은 한국인 귀신들이 나오고, 강제 징용 피해자로 생각되는 한국인의 원혼을 목격한 사람들의 이야기 등이다.

일본의 귀신 체험담에서는 보기 드문 이야기들이라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지막 장에 저자가 도움을 받은 영능력자들의 프로필을 소개하는 내용이 있는데. 특이한 점은, 음양사, 수행자, 법승, 신부 같은 일본의 무속인과 성직자 계열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부동명왕’의 화신이라는데 TV에서 영상담, 영시, 강령 등을 한다는 영능력자부터 시작해 이름점을 잘 치는 부친과 예지몽을 꾸는 모친 사이에 태어나 4살에 영을 보고 7살에 폭포를 맞는 수업을 해서 영감이 상승해 카드점을 본다는 영능력자에, 전생에 마녀였다고 자칭하며 점성술을 쓴다는 현대의 일본인 마녀와 가사를 입은 스님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신흥 종교를 만든 영능력자까지. 딱 TV 심령 프로그램의 패널이나 게스트로 나올 법한 사람들만 잔뜩 모아놓아서 70~80년대 당시에는 어떘을지 몰라도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신뢰감이 뚝뚝 떨어진다. (전생에 마녀였다는 현대판 마녀 영능력자를 소개하는데 대표 집필 서적이 두근두근 사랑점 어쩌고 이렇게 쓰여 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이란..)

결론은 평작. 자살령을 초령해서 인터뷰를 해서 자살령이 본 사후 세계가 지옥이라고 정의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자살에 대한 경고 차원에선 효과적이긴 하나, 자살령의 신원을 밝히는 걸 전제로 한 건 좀 선을 ㄴ머은 느낌이라 좋게 볼 수가 없고. 중반부 이후에는 자살령 이야기는 쏙 들어가서 일반인의 귀신 목격담을 주로 다루고 있어서 흥미가 짜게 식고, 책 마지막에 나오는 영능력자 소개 내용이 좀 터무니없어서, 심령 과학 서적을 자칭하고 있지만 전문성이 떨어져 그냥 80년대 일본 귀신 체험담 모음집 이상도, 이하도 아닌 작품이다.

단, 역설적으로 일본인의 귀신 체험담 모음집이라 한국인의 귀신 체험담과는 또 다른 느낌이 있어서 읽을 거리가 아주 없지는 않다.


덧글

  • 잠본이 2022/08/04 18:33 #

    몇가지 소책자를 짜깁기한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널을 뛰는군요...
    심령과학이라기보단 심령예능?
  • rumic71 2022/08/05 03:06 #

    저도 찾아봤지만 저 이름으론 정말 아무것도 안나오는군요.
  • 잠뿌리 2022/09/22 08:14 #

    수록된 내용을 보면 심령과학의 탈을 쓴 예능 방송에서 나오는 심령 이야기이긴 합니다. 특히 유명인의 죽음을 심령 가쉽거리로 이용한 게 좀 그랬었죠.
  • 잠본이 2022/09/22 11:39 #

    속된말로 시체팔이군요(...ㅠㅜ) 무서운놈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통계 위젯 (화이트)

146722
4246
10273506

메모장

잠뿌리의 트위터

2019 대표이글루_ga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