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Sveto mesto.1990) 2022년 영화 (미정리)




1835년에 ‘니콜라이 고골’이 집필한 단편 ‘Viy(뷔이)’를 원작으로 삼아, 1990년에 ‘조르제 카디예비치’ 감독이 만든 유고슬라비아산 에로틱 호러 영화. 슬로베니아어 원제는 ‘Sveto mesto(성지)’. 영제는 ‘A Holy Place’다.

내용은 억지로 신학을 공부하는 ‘토마’가 2명의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밤이 되어 이름 모를 노파가 혼자 사는 초가집에 신세를 지게 됐는데. 그 노파가 실은 막강한 봉건 영주 ‘고스포다르 즈판스키’의 딸 ‘카타리나’가 변신한 것이라, 마구간에서 홀로 자던 토마를 습격했다가 역습을 당한 후. 본가로 돌아가 죽기 직전 토마가 3일 동안 예배당의 영안실에서 기도를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작은 니콜라이 고골의 ‘뷔이’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원작 스토리를 그대로 따라가지 않고 새로 각색했다. 정확히는, 스토리의 기본 줄기는 원작을 따라가는데 전후 과정의 캐릭터 묘사와 설정을 재구성한 것이다.

주인공 ‘토마’가 억지로 신학 공부를 한다는 것부터 시작해, 길가다 마차 타고 스쳐 지나간 영주의 딸 ‘카타리나’에게 한눈에 반했는데, 마녀 노파가 카타리나로 변해서 죽어가자 안타까운 표정으로 키스를 하고 동침을 하려다가 갑자기 마차가 튀어나오자 냅다 도망치고. 카타리나에 얽힌 비밀이 성적인 내용으로 가득 차 있는 것 등등. 싸구려 에로물로 만들어 버렸다.

원작에서는 영주의 딸이 갓난아기의 생피를 빨고, 남자들을 홀려서 죽이는 패악을 저질러 무섭게 묘사되는 반면. 본작에서는 영주의 딸이 아버지인 영주에게 성적 학대를 받아 남성을 불신하게 되어 집안의 여자 하인을 꼬드겨 레즈비언 행각을 벌이지만.. 여자 하인이 남자 하인과 관계를 맺으니 질투심에 흑화해서 여자 하인 머리카락을 자르고. 남자 하인들을 유혹했다가 거시기를 짓밟아 버리는 일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토마의 3일 기도 씬 같은 경우도, 2일 밤에 관이 날아다니고, 3일 밤에 온갖 잡귀들을 불러내 위협하다가 거대한 요괴 ‘뷔이’를 데리고 와서 마법의 원 안에 은신한 토마를 간파하는 원작의 하이라이트 씬들은 전혀 안 나온다.

예배당 영안실 안에 거의 원룸 사이즈의 좁디 좁은 공간이라서 토마와 카타리나의 대치가 심심하고 밋밋하게 진행되다가, 마지막 3일 밤에는 카타리나가 토마의 거시기를 쾅쾅 짓밟고. 다음날 아침 토마가 관 속에서 카타리나 위에 포개어진 게 발견되자 시체를 범하려 했다는 오해를 받아 맞아 죽는 결말로 끝나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줄거리와 캐릭터 설정대로라면 토마와 카타리나 애증 어린 관계에 집중하면서 에로틱한 스토리를 만들어 나갔어야 했는데 전혀 그러질 못하고 있다.

설정은 무슨 토마가 카타리나한테 반했지만, 카타리나는 모종의 이유로 남성불신에 빠졌고 죽어서도 남자들에게 복수하려는 원귀가 되어 토마를 파멸로 몰고 가는 걸로 되어 있는데. 작중에서 카타리나는 죽었다가 3일 기도 때만 망령으로 되솔아나다 보니. 살아서 토마를 온전히 만난 것이 아니라 남녀 주인공 캐릭터로서의 애증과 갈등을 제대로 빚지 못하고 있다.

카타리나는 본편 내내 과거 회상으로만 등장하고, 그녀에 얽힌 비밀을 집안 하인들의 증언에 의한 과거 회상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주인공 토마가 사건의 진실을 알기 위해서 무언가를 한 건 아니라서 극 진행이 되게 답답한 데다가, 에로틱함이란 것도 과거 회상에 나온 카타리나에게만 의존하고 있을 뿐. 현재 시점에서 진행되는 게 전혀 없으니 시나리오의 기본 설계부터 잘못된 느낌을 준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인데,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현재와 과거를 경계로 단절되어 있으니 대체 뭘 어쩌자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이게 말이 좋아 에로틱 호러지, 실제로는 거창한 설정에 비해 야한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고. 노출 씬도 목욕할 때 가슴 노출 정도밖에 없어서, 오히려 영주가 죽은 딸의 알몸을 그린 초상화를 보는 게 제일 야할 정도다.

그밖에 미장센적인 부분에서 본작은 원작의 슬라브 느낌은 전혀 안 나고. 중세 유럽 느낌이 나서 고딕 호러 영화에 가까워졌다. 그게 본작 고유의 슬라브의 민속색을 옅게 만들어서 개성을 더 죽여버린 것 같다. 앞서 1967년에 실사 영화화 된 ‘뷔이’와 큰 차이가 있다.

결론은 비추천. 니콜라이 고골의 뷔이를 원작으로 삼고 있지만, 원작을 충실하게 재현한 게 아니라 새로 각색한 것으로, 3일 밤마다 되살아나는 마녀와 요괴에게 생명의 위협을 당하는 신학생 이야기라는 원작의 호러블한 색체를 완전 지우고, 3일 밤마다 되살아나는 마녀 여주인공에 얽힌 성적 비밀에 초점을 맞춰 에로물로 만든 작품이다.

뷔이 원작의 각색을 관대하게 본다면 ‘이걸 이렇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구나.’ 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뷔이 원작의 재현을 중시한다면 실망이 매우 클 것 같다.


덧글

  • rumic71 2022/06/26 19:03 #

    원작에 비교적 충실한 영화가 따로 있었죠.
  • 잠뿌리 2022/06/29 16:30 #

    옛날 뷔이 영화가 원작에 충실해서 훨씬 나았습니다.
  • 잠본이 2022/06/27 13:28 #

    원작단편은 어린이용 각색으로 읽고 잠못잤던 기억이 나는데 그걸 저렇게 만들어 버리다니(...)
  • 잠뿌리 2022/06/29 16:30 #

    어린이용으로 각색되어도 원판 자체가 무서운 내용이다 보니 밤잠 설치게 만들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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