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웅전을 기다리며, 되짚는 한국 올드 게이머의 20세기 JRPG 라이프 스토리 1부 2022년 게임(카테고리 미정리)



백영웅전(Eiyuden Chronicle: Hundred Heroes)

‘래빗 앤 베어 스튜디오(Rabbit and Bear Studios)’에서 개발, ‘505 Games(505 게임즈)’에서 발매를 맡은 JRPG 게임이다.

2020년 7월 27일부터 7월 28일까지 약 한 달여 간 ‘킥스타터 모금’을 실시해 목표 금액을 달성한 뒤 펀딩을 끝마쳐 게임 개발에 착수하여 2023년 발매 예정이다.

아직 발매되려면 1년이나 남은 게임인데도 불구하고, 킥스타터 모금을 개시한 2020년부터 지금까지 쭉 가슴에 품고 기대하고 또 기대해온 게임이다.


왜냐하면 코나미의 대표 RPG 게임인 ‘환상수호전(幻想水滸伝)’의 개발에 참여했던 스태프들이 독립해서 만든 게임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게이머로서, 환상 수호전은 각별한 게임이다. 내 게임 인생사에서 JRPG 게임이 가진 진정한 매력을 제대로 느끼고 즐길 수 있었던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환상 수호전이란 브랜드가 생명을 다해서 관련 작품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걸 언제나 안타깝게 생각했고 있었는데. 이렇게 정신적 후계작이 나온다고 하니, 설레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제는 지나간 지 20여 년이 훌쩍 넘어간 과거. 20세기를 회상하며, JRPG(일본 롤플레잉 게임)를 주제로 삼아 그간 걸어왔던 게이머의 길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고자 한다.


흔히 세계 3대 RPG는 ‘울티마(Ultima)’, ‘위저드리(Wizardry)’, ‘마이트 앤 매직(Might and Magic)’으로 알려져 있다.




거기에 대응하는 일본 3대 RPG는 ‘드래곤 퀘스트(ドラゴンクエスト)’, ‘파이널 판타지(ファイナルファンタジー)’, ‘여신전생(女神転生)’이 손에 꼽히고 있다.


여신전생은 사실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게 1992년에 슈퍼 패미컴용으로 나온 ‘진 여신전생(真・女神転生)’부터라서, 1980년대 후반, 8bit 콘솔 시절부터 나오기 시작한 드래곤 퀘스트와 파이널 판타지가 JRPG의 표준을 제시하면서, JRPG의 시대를 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드래곤 퀘스트 3(ドラゴンクエストIII そして伝説へ…)’는 게임 발매 당시 전국 각지에서 게임을 사기 위해 1만여 명의 인파가 몰려 게임 매장 문을 열기도 전에 새벽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는 일화가 뉴스에 나오기도 했을 정도로 JRPG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 인기에 힘입어 수많은 JRPG 게임이 쏟아져 나왔고, 그중에도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못지 않은 명작 게임들이 배출되어 20세기는 JRPG의 황금기였다.

그러나, 그 황금기를 온전히 누리고 즐길 수 있었던 건 일본 현지의 게임 시장이었지. 한국 게임 시장은 아니었다.

한국 게임 시장은 특수한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JRPG의 황금기를 누리지 못했다.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한국 게임 시장에서 비디오 게임에 대한 인식은 철저하게 어린아이용 놀이 기구였다.



닌텐도의 ‘패미컴/슈퍼 패미컴’이 ‘현대전자의 ’컴보이/슈퍼 컴보이’,



세가의 ‘세가 마크 3/메가 드라이브’가 삼성전자의 ‘겜보이/삼성 슈퍼 겜보이’,


아스키의 MSX가 대우전자의 ‘재믹스’ 등의 이름으로 정식 발매되긴 했지만, 당시 CM부터가 완전히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 맞췄기 때문에 정식 발매된 게임의 장르는 아이들이 쉽게 할 수 있는 액션, 아케이드 게임에 치중되어 있었다.

같은 80년대 후반에 일본의 게이머들은 드래곤 퀘스트, 파이널 판타지 같은 JRPG 게임을 한창 즐기고 있을 때, 한국에서는 그제야 패미컴의 초기 라인업을 접하고 ‘슈퍼 마리오’에 빠지게 됐으니 JRPG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시기였다.



후술할 한국의 게임 잡지 ‘게임월드’의 창간 기념 별책 부록으로 증정했던 ‘게임백과’에 실린 90년대 초반 한국 게임 시장에서의 패미컴 소프트 라인업을 RPG의 R자도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다 사실, 비디오 게임이 아이들용이란 인식과는 또 별개로, 게임기와 게임 소프트의 가격은 당시 물가를 생각하면 높은 편이었기에 가계 부담으로 직결되어, 게임기 자체의 보급률은 낮은 편에 속했다.

아이들이 자기가 마음에 드는 콘솔을 골라잡는 게 아니라, 가격이 저렴한 콘솔을 타협해서 구입하는 게 일반적인 사례였기 때문에 콘솔 기기 구입에 대한 선택의 폭은 좁았다.

모든 가정에 게임기란 있을 수 없고, 있어도 만만한 게 재믹스니까. 수요가 있어도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게임 소프트의 정식 발매는 극히 제한됐다.

각 콘솔 발매 초기에 나와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인기 게임들이 나온 뒤로는, 신작은커녕 이미 일본 현지에서 발매된 지 수년 된 구작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게임 소프트 정식 발매 라인업이 처음 공개된 라인업에서 그대로 동결된 것이다.

그 때문에 일본에서 국민 RPG 대우를 받던 드래곤 퀘스트는 당시 한국 게임 시장에선 정식 발매되지 않았고. 그만큼 JRPG에 대한 인식이 낮다 못해 없는 수준이었기에, JRPG가 뭔지 알 수도 없었고.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시절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게임 시장에서 JRPG의 명맥이 흐르기도 전에 끊긴 건 아니었다.


1990년에 한국 게임 잡지 ‘게임월드’가 창간되면서 한국에서 정식 발매되지 못한 해외 게임을 소개하고 게임 공략 기사를 실으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게임들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비록 패미컴은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게임 잡지에 소개된 패미컴용 JRPG 게임은 상상의 나래를 자극하면서 게임 사진을 보고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끌었다.


캐릭터 직업을 바꾸니 모습도, 사용하는 기술도 달라지네? 파이널 판타지 3 재밌겠다!


다양한 캐릭터를 조종하면서 각자의 스토리를 진행하다가 나중에 하나로 합치면서 모두 함께 모험을 하다니, 드래곤 퀘스트 4 대단해!


어, SD 건담이 칼 들고 갑옷 입고 마법 쓰면서 마왕 뚝배기를 깨네? SD 기사 건담 이야기 흥미진진하다!


우주선 타고 우주 돌아다니면서 로봇도 나오고 무기도 개조하고 우주 대모험하는 라그랑쥬 포인트 쩔어!

10대 초반, 초등학교 시절 당시에는 게임 잡지에 실린 공략 글을 몇 번이나 다시 봤는지 모른다. 냉정하게 보면 그 당시는 게임 잡지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을 때라서, 게임 공략 자체가 디테일하지 못해서 지금 다시 보면 엉망진창이지만, 그래도 그때는 그거라도 있어서 너무나 좋았다.

10대 중반, 중학교 시절에도 여전히 게임 잡지를 즐겨 보면서 JRPG 공략 글을 탐독했는데. 그때부터는 슬슬 8bit 게임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16bit 게임 쪽에 관심이 쏠렸다.

당시에는 게임 잡지가 활성화된 덕분에, 국내 게이머들도 어느 정도 게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해서 그런지. 중학생 시절이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 정식 발매되지 않은 게임들을 직접 구해다 플레이하는 애들이 주위에 생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콘솔은 보유하고 있지 않았지만, 게임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슈퍼 패미컴 자체를 빌려와 ‘파이널 판타지 6’, ‘택틱스 오우거’, ‘브레스 오브 파이어 2’ 등의 명작 RPG 게임을 직접 플레이해보기에 이르렀다.

직접 플레이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JRPG 게임이 문자 그대로 일본 RPG 게임이다 보니, 언어의 장벽이 생겨서 100% 게임을 즐길 수는 없었다.

게임 잡지에 실린 공략 글에 의존해서 게임을 플레이했어도, 게임 내에 나오는 대사가 다 번역되지는 못해서 스토리 자체에 깊이 빠져들지는 못했다.

공략 글 내에서 번역되지 않은 대사는 뜻도 모른 채 버튼을 연타해 스킵하고 넘어가면서, 게임 화면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그 분위기에 취해야만 했다.

음식으로 비유하면, 양념치킨을 집어 들어 소스를 바른 튀김 옷만 벗겨 먹고 그 안의 살코기는 한 입도 베어먹지 못한 것 같다고나 할까.

허나, 명작 RPG는 괜히 명작 RPG인 것이 아니다. 스토리가 뛰어나지만, 스토리 이외에도 그래픽, 사운드, 게임 조작 등 모든 부분에서 장점을 두루 갖추고 있었기에 명작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비록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내용은 전혀 몰랐어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조이패드를 손에 잡아 조작하는 것 자체에서 절반의 재미라도 느낄 수 있어서 JRPG에 대한 흥미와 관심은 식을 줄 몰랐다.



8bit에서, 16bit로, 16bit에서 32bit로 콘솔 기기의 세대가 교체되어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세가 세턴’ 시대에 돌입했을 때는. 새로운 시대의 JRPG 게임들이 속속들이 등장했다.

한국 게임 시장에서 비디오 게임은 아이들용이란 인식이 변화되어 JRPG를 맞이할 준비가 되는가 싶었지만…, 가격 문제가 여전히 남아서 발목을 잡고 있는데. 그게 과거보다 더 심해져 게임기 자체의 보급률은 예전보다 더 떨어지는 바람에 한국에서의 차세대 콘솔 게임 시장은 흥하지 못했다.


‘세가 세턴’은 삼성전자,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1’은 ‘카마 엔터테인먼트’에서 콘솔 기기를 정식으로 수입했으나, 전자는 일본 게임 CD가 구동되지 않는데 한국 수입판 게임 CD는 몇 종류 되지 않고. 후자는 게임 CD 정식 발매 라인업이 북미 게임밖에 없어서 아무리 정식 발매판이라 AS가 잘되고 전원 케이블을 연결하는데 변압기도 필요하지 않았어도 구입할 메리트가 떨어졌다.

정식 유통이 부실하니, 용산 보따리 상인이 일본에서 물건을 떼와 불법 밀반입하여 국내에서 파는 과정에, 용산 프리미엄 가격이 붙어 일본에서 판매되는 정가의 몇 배를 부풀려 파는 통에 한국 게임 시장이 더없이 혼탁해졌다.

급기야 콘솔 기기 자체를 개조하여 복사 CD를 구동하는 게 성행하기까지 했는데. 그렇다고 해도 콘솔 자체도 가격을 후려쳐 비싸게 팔아먹으니 초기 구매 비용이 장난 아니게 많이 들었다.

사회인이었다면 일을 해서 돈을 벌어 구입했을 텐데, 당시에는 10대 후반인 고등학생 시절이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한 친구들이 세뱃돈이나 용돈을 모아서 사거나, 생활력 좋은 친구들이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벌어 사는 경우가 있긴 했으나, 사실 그런 케이스는 보기 드문 축에 속했다.

용산 프리미엄이란 이름의 마왕이 게임 시장 질서를 망가트리는 혼돈의 카오스 속에서, 차세대 게임기를 가진 애들은 그야말로 전설로 남을 만한, 선택받은 자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당시 일본의 판타지 용사물 주인공은 대부분 나이가 10대 중후반이었지 아마)


‘파이널 판타지 7(ファイナルファンタジーⅦ)’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여 당시 전 세계 판매량이 약 980만 장, 일본 내에서만 320만 장이 넘게 팔려 나가면서, 플레이스테이션 1의 콘솔 판매량도 덩달아 급상승해 300만대가 넘게 팔려 나갔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보급률의 관점에서 파이널 판타지 7을 위한 게임기 1대, 게임 CD 1장 팔려 나가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는데, 서로 딛고 있는 땅이 달랐다.


그래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서 한국 게임 잡지도 질적으로 발전을 이루었고, 게임 프로를 자처하는 만큼의 지식과 경험, 실력을 갖춘 게임 매니아들이 스태프로 참여해 책을 펴내면서 게임을 다루는 범위가 더욱 넓어지고, 게임 공략 글 자체의 퀼리티도 상승해 JRPG를 더욱 심도 있게 다루어 그 매력에 흠뻑 빠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선택받지 못한 자로서, 차세대 게임기 시대를 따라잡지 못해, 게임 잡지에 실린 게임 정보와 공략 글만 보고 위안을 얻어야 했다.

그래서, JRPG는 ‘별’ 같은 존재였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바로 눈에 보이는데, 만지고 싶어서 손을 뻗으면 닿지 않아, 그저 멀리 보고만 있어야 했던, 그런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별이. JRPG의 별이 내 눈앞에 떨어졌다.

비디오 게임기가 아닌, 컴퓨터의 세계로 말이다.

-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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