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 옥쇄하라!(総員玉砕せよ!.1973) 2021년 일본 만화




1973년에 ‘미즈키 시게루’ 선생이 발표한 반전 만화. 원제는 総員玉砕せよ!(총원 옥쇄하라!) 한국에서는 2021년에 ‘AK 커뮤니케이션즈’에서 정식 발매했다.

내용은 1945년 3월, 남태평양 ‘뉴브리튼’섬의 바이엔에 배치된 500명의 일본군이 미군에게 전원 옥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작의 작가 ‘미즈키 시게루’ 선생은 ‘게게게의 키타로’로 유명하고, 만화가 이전에 요괴를 연구하는 민속학자로서 요괴물을 대중화시켜 현대 요괴 장르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작가인데. 요괴와 관련이 없는 작품 중에 또 다른 대표작이 바로 이 작품으로. 실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겪은 전쟁 경험을 만화로 각색해서 그린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선 중 하나인 ‘태평양 전쟁’은 당시 일본 제국이 하와이 진주만에 위치한 미 해군 태평양 기지를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되어,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 제국은 전쟁을 일으킨 전범 국가에 해당하는데. 그렇다고 해도 일본 자국 내에서 2차 대전, 태평양 전쟁 배경의 반전물에서는 격동의 일본 국내 상황을 베이스로 해서 가해자의 모습은 철저히 감추고 피해자의 모습만 부각하여 자기 연민에 빠지기 십상이기 때문에, 일본 자국 내에서야 넘나 불쌍. 흑흑하고 공감할지 몰라도. 일본 이외에 타국. 전쟁 피해를 입은 국가에서 볼 때는 근본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다.

대표적으로 일본 내에서는 걸작으로 손꼽히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반딧물의 묘(1988)’ 같은 작품이 전쟁 피해자 코스프레의 정점을 찍어 호불호가 갈리고, 또 그 이후에 나온 ‘바람의 분다(2013)’ 역시 전쟁 가해국의 모습은 일절 없이 피해자로만 묘사하기 때문에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지는 게 일반적인 사례였다.

‘맨발의 겐(1973)’처럼 전쟁과 군국주의를 가열차게 비판하면서 일본 자체의 문제도 지적하는 작품조차도, 핵폭탄의 피해를 입은 내용이 나온다고 피해자 코스프레로 오인받을 정도로, 일본에서 태평양 전쟁을 소재로 한 반전물을 만든다는 건 태생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른 바,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 있어도 니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라고 축약할 수 있을 정도의 금기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태생적인 문제를 완전히 초월해서 일본 반전 만화의 금자탑이 되었다.

본편 내용은 본작의 작가 ‘미즈키 시게루’ 선생이 실제 태평양 전쟁에 참여한 전쟁 경험을 각색한 것이기 때문에 당시 전쟁 참전 군인의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은 일이 여과없이 나와서 리얼리즘적인 부분에서는 따라올 작품이 없다.

실제 전쟁 참전 병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은, 병사가 남긴 체험 수기를 분석하거나, 혹은 누군가 한 다리 건너서 들은 간접적인 것들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헌데, 그렇다고 어떤 특정 병사 개인의 상황에 몰입해서 비극적이라는 감성에 호소해 자기 연민에 빠지는 게 아니라, 작중에 벌어진 부조리한 상황 그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서 지옥 같은 전장 속에서 병사가 아닌 보통 사람이 죽어가는 모습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나라를 위해, 혹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싸우려고 전쟁에 참가한 게 아니고. 내가 왜 여기에 끌려왔는지 모르겠고. 난 그저 배가 고프고. 먹는 걸 좋아해서 뭐든 먹고 싶은데. 그렇게 먹고 살려다가 조까튼 주변 환경과 상황 때문에 하나둘씩 죽어가는, 그런 상황인 것이다.

작중 인물 중 누군가 죽고, 다치고, 눈물을 흘려도 애도할 틈도 없이 스피디하게 진행해서 전쟁 중에는 누구나 죽기 마련이고 가는데 순서가 없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그걸 또 작가 특유의 시니컬한 유머를 버무려서 전쟁은 마냥 슬프기만 한 게 아니라, 그 자체로 X같다는, 현실은 시궁창이라는 상황 자체에 온전히 몰입하게 해준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위안부 문제, 부대 내 구타 같은 가혹 행위, 무의미한 특공 정신 등 일본 제국주의의 망령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일본이 역사 왜곡을 일으키면서까지 감추고 싶어 하는 치부를 드러내게 하기 때문에, 언뜻 보면 어깨 힘을 풀고 가볍게 읽히는가 싶다가도 은근히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감탄사를 불러일으키는 구석이 있다.

후반부에 옥쇄 파트로 넘어가면서 반전 만화로서의 본격적인 스퍼트가 시작된다.

‘옥쇄(玉碎)’는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라는 뜻으로,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제국에서 일본군이 일체의 후퇴 없이 적진을 향해 돌격해서 목숨을 버리는 자살 특공 공격으로서, 본작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전쟁의 부조리함의 끝을 보여주면서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대체 무엇을 위한 옥쇄인가?’ 라는 한마디 말로 만화 전체 내용을 요약할 수 있을 정도다.

옥쇄로 인해 죽은 병사들을 조명하고 불쌍함, 안타까움, 비극을 강조하기보다. 아무 의미 없는 옥쇄를 미화하고 강요하는 일본 군부와 주변 상황을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전쟁의 부조리함을 부각시켰기 때문에, 전쟁 가해 국가에서 반전 만화를 그린다는 사실에 있어 전쟁 피해 국가에서 불편하고 어색함을 느낄 수 있다는 태생적인 문제를 초월한 것이다.

결론은 추천작. 작가의 실제 전쟁 체험을 바탕으로 그렸기에 리얼한 묘사 속에 작가 고유의 시니컬한 유머를 곁들이고 관조적인 시점에서 바라보면서, 감정에 호소하거나 강요하는 일 없이. 전쟁의 부조리함 자체를 부각시켜 통렬한 비판을 가해 극도의 반전 메시지를 전달해주어 전범 국가에서 나온 반전 만화라는 태생적인 문제를 초월한 고전 명작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의 국내 정발판은 표지 디자인 선정도 괜찮고, 책 자체도 깔끔하고 볼륨 있게 잘 뽑혀져 나왔는데. 미즈키 시게루 선생의 수기가 번역되지 않고 누락된 게 옥의 티다.

덧붙여 본작은 미즈키 시게루 선생의 전쟁 참전 경험을 소재로 한 자전적인 작품이긴 하나, 실제 미즈키 시게루 선생은 태평양 전쟁 때 한쪽 팔을 잃으셨지만 살아남아서 본국으로 귀환해 작가가 되었기 때문에 결말이 각색됐다.

미즈키 시게루 선생이 전쟁 체험담이 100% 실제 경험 으로 만화화된 것은, 미즈키 시게루 선생의 전기 만화라고 할 수 있는 ‘미즈키 시게루전 ~나의 일생과 게게게의 낙원이다~(水木しげる伝 ~ボクの一生はゲゲゲの楽園だ~)에 나온다. (정확히 3권부터 나온다)

추가로 본작은 일본 현지에서 1973년에 나왔기에 한국에서는 무려 48년 만에 정식 발매된 작품이라 거의 반세기 만에 나온 것인 만큼. 정식 발매 자체가 큰 의의가 있다. 미즈키 시게루 선생의 작품들을 정식으로 볼 수 있는 건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미즈키 시게루 선생하면 요괴물을 빼놓을 수 없기에, 9월에 발매 예정인 미즈키 시게루 선생의 ’요괴대도감‘도 매우 기대하고 있다.


덧글

  • 존다리안 2021/08/24 11:40 # 답글

    명작이기는 하지만 신간 가격이…ㅜㅜ
  • 잠뿌리 2021/08/24 11:46 #

    책 두께가 두껍고 한권 안에 모든 내용을 다 담고 있어서 납득할 만한 가격이었습니다. 이북 버전은 2권으로 나눠서 나왔으니 출간본은 2권을 합쳐 1권 값이라고 볼만했죠.
  • rumic71 2021/08/24 11:48 # 답글

    이 분 작품은 믿을 수 있죠.
  • 잠뿌리 2021/08/24 18:29 #

    미즈키 시게루 선생의 작품은 믿고 보는 신뢰가 있죠.
  • 2021/08/27 21:0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21/08/28 14:4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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