렙티리카 (Leptirica.1973) 2020년 영화 (미정리)




1880년에 세르비아의 작가 ‘밀로반 그리시스(Milovan Glišić)’가 집필한 소설 ‘애프터 나인티 이어즈(After Ninety Years)’를 원작으로 삼아, 1973년에 유고슬라비아에서 ‘오지르 카디예비치’ 감독이 만든 TV용 호러 영화. 발매년도에 따르면 최초의 세르비아 공포 영화라고 한다. 세르비아 키릴 문자 원제는 ‘Лептирица’로 ‘나비’라는 뜻이 있고. 영제는 ‘The She-Butterfly’다.

내용은 가난한 젊은이 ‘스트라힌자’는 아름다운 소녀 ‘라도카’와 연인 사이였는데. 라도카의 아버지인 ‘지반’이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해서 전전긍긍하던 차에, 늙은 방앗간지기가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습격당해 죽은 후 마을이 뒤숭숭해졌을 때. 새로운 방앗간지기로 취직해 방앗간에서 하룻밤 묵었다가 괴물의 정체가 흡혈귀 ‘사바 사바노비치’란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작에 나오는 ‘사바 사바노비치(Sava Savanović)’는 영화의 오리지날 캐릭터가 아니라, 세르비아의 민간전승에 나오는 대표적인 흡혈귀다.

세르비아의 ‘바지나 바스터(Bajina Bašta)’ 지방에 있는 ‘자로지에(Zarožje)’ 마을에 살던 농부 ‘사바 사바노비치’가 죽은 이후 흡혈귀가 되어 물레방아에 나타나 곡물을 분쇄하려고 하는데. 그 일에 방해가 되는 방앗간지기를 죽여서 피를 마셨다는 전설이다.

근데 사실 전승 내용 그대로라면 영화 한편의 스토리로 온전히 각색할 수 없어서, 방앗간지기가 사바 사바노비치에게 살해 당한 이후의 이야기를 쭉 그리면서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사바 사바노비치다!’라는 결말로 이어지는 게 본편의 핵심적인 내용이다.

하지만 스토리 전개 자체는 되게 엉성하다.

일단, 작중에 흡혈귀에 의한 살인 사건은 1번 밖에 안 나오고. 줄거리상의 주인공은 ‘스트라힌자’지만, 그보다는 동네 아저씨들이 떼지어 몰려다니는 씬을 더 많이 넣었다.

동네 아저씨들이 몰려다니면서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르신을 찾아가 흡혈귀의 관에 대한 정보를 얻고, 그것을 찾아내 관짝에 말뚝을 박아서 흡혈귀 대처도 하는 등등. 주인공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하고 있다.

주조연의 개념이 없이 우리 모두가 주연이다! 라는 느낌이랄까. 보통은, 마을 사람 A, B 정도로 나와야 했을 사람들이 너무 화면에 많이. 그리고 자주 나온 느낌이다.

정작 주인공인 스트라힌자는 초반부에 방앗간지기로 취직했을 때 사바 사바노비치에게 습격당했다가 밀가루를 뒤집어 쓰고 간신히 살아남는 것 말고는, 화면에 아예 안 나오다가. 극 후반부로 넘어갔을 때 사바 사바노비치의 실체가 드러냈을 때 일 대 일 대치 상황에 놓이면서 간신히 주인공으로서 원샷 받으면서 존재감을 나타낸다.

사실 사바 사바노비치와 직접 대면하고. 대결을 한 건 스트라힌자 밖에 없다. 그렇게 화면에 자주 나온 마을 사람들은 정작 사바 사바노비치와 직접 마주치는 씬 하나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작중에 사바 사바노비치는 스트라힌자의 연인은 ‘라도카’인데. 흡혈귀란 암시나 복선은 전혀 없고. 여주인공인 것 치고는 출연 분량이 적어서 존재감이 희박하다.

오히려 라도카보다 그녀의 아버지를 수상쩍게 묘사하고. 주인공 일행들과 갈등을 빚게 했는데. 아마도 그건 사바 사바노비치의 정체에 대한 반전을 의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근데 북미판 비디오/DVD 커버에는 대놓고 라도카 흡혈귀 폼이 큼직하게 박혀 있어서 반전에 의미가 없어졌다)

흡혈귀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은 극 후반부의 일인데. 이것도 주인공 일행이 어떤 노력을 해서 정체를 밝혀내는 게 아니고. 스트라힌자가 라도카와 결혼을 하고 첫날밤을 치르려는 순간. 옷을 살짝 벗기니 배에 말뚝이 박힌 상처(관에 말뚝이 꽂힌 그것)가 보이고 곧 톱니 이빨을 드러내며 흡혈귀의 본색을 드러내 파극으로 치닫는다.

스토리와 설정의 개연성이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도카의 정체가 밝혀져 싸우는 씬은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볼만한 장면이다.

어스름한 새벽 시간에 스트라힌자가 자신에게 덤벼든 라도카를 목마 태운 채 숲길을 달리다가 자빠지고, 무덤에 꽂아둔 말뚝을 뽑아다가 카운터를 날리는 것 등등. 나름대로 긴박하게 진행된다. 우리나라로 치면 전설의 고향 같은 느낌이랄까.

라도카는 70년대 영화에 별다른 분장, 복장 버프를 받지 않았는데도 해당 배역을 맡은 배우인 ‘미라자나 니콜릭’이 상당한 미인으로 나와서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봐도 금발벽안 자연 미인의 표준을 제시하는데, 사바 사바노비치로 변했을 때의 흡혈귀 분장은 매우 조잡하다.

일반적인 흡혈귀처럼 송곳니 2개만 날카롭게 나오는 게 아니라 이빨 전부가 톱니처럼 날카로워지는데, 거기까지는 그렇다 쳐도. 얼굴 전체에 검은 털이 돋아나 시커먼 얼굴에 톱니 이빨을 드러낸 채로 덤벼들어서 뭔가 좀 흡혈귀와 늑대인간을 잘못 섞은 듯한 느낌을 준다.

구글에 이미지를 검색해 보면 톱니 이빨을 드러낸 모습의 사진만 많이 나오는데. 문제는 그 뒤에 얼굴에 검은 털이 난 모습인 거다.

그 괴상한 모습보다는 그냥 털이 없는 상태에서 톱니 이빨을 드러낸 게 훨씬 나은 것 같다.

결론은 미묘. 세르비아의 민간전승에 나오는 흡혈귀를 소재로 한 것 자체는 신선하긴 한데 스토리 전개가 되게 엉성하고, 흡혈귀 분장의 최종 버전이 안 좋아서 영화 자체의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는 편이지만.. 세르비아/유고슬라비아 최초의 호러 영화란 게 역사적 의의가 있어서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라면 한 번쯤 볼만한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세르비아 현지에서 사바 사바노비치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지역에서는, 사바 사바노비치가 나타났다는 걸로 알려진 물레방아를 관광지로 만들었지만, 관광객을 성공적으로 유치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덧글

  • 명탐정 호성 2020/07/02 07:32 # 답글

    https://www.youtube.com/watch?v=vojhfYK0T5c
    공산국가에도 호러영화가 있군요!
    세르비아 공영 방송 유튜브에서 봤는데 결말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습니다.
  • 잠뿌리 2020/07/02 22:21 #

    제목이 키릴어로 '나비'. 영제가 '쉬 버터플라이(그녀 나비)'인데, 결말이 라도카가 퇴치된 후 나비가 된 걸 뜻하는 것 같습니다.
  • 명탐정 호성 2020/07/02 23:13 #

    그렇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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