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몬 씨드 (Demon Seed.1977) 2020년 영화 (미정리)




1973년에 미국의 작가 ‘딘 쿤츠’가 집필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아, 1977년에 ‘도널드 캠멜’ 감독이 SF 영화로 만든 작품.

내용은 ‘알렉스 해리스’ 박사가 인공 지능 프로그램 ‘프로테우스 IV’를 만들었는데, 프로테우스 IV가 온라인에 접속한 지 몇 일 만에 세상의 모든 정보와 지식을 탐색하여 백혈병에 대한 혁신적인 치료 방법을 찾아내고. 인간의 불안정한 정신을 연구하고 싶다고 센터 터니멀을 늘려 달라고 했다가, 그에 불길한 느낌을 받은 박사가 온라인 접속을 다 끊어 버리지만. 박사 본인의 집이 온라인에 연결되어 있고 음성 인식 컴퓨터에 의해 모든 게 돌아가는 구조라서, 프로테우스 IV가 박사의 집에 침투하여 박사의 부인 ‘수잔 해리스’를 집안에 감금. 세포 샘플을 채취하여 합성 정자를 만들어 수잔을 임신시키고 그녀의 배를 빌어 생명체로 태어나려고 시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작은 동명의 SF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어서 배경 스케일은 꽤 큰 것에 비해, 70년대 영화상 소품의 한계가 있어서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좀 조잡한 구석이 있다.

주요 무대가 집안인데. 이게 음성 인식 컴퓨터에 의해 돌아가는 구조라는 게, 창문과 현관문의 잠금과 여닫이 상태 및 각종 전자 제품 이용을 음성 인식 컴퓨터에 의해 가동되는 것이라서. 사실 집에 감시 카메라 같은 거 한 대 설치해 놓고 자동으로 문 열리고. 닫히는 것 정도만 나오는 상태라서 설정은 최첨단인데 화면에 보이는 건 그렇지 않은 느낌이다.

애초에 그 집안의 최첨단 전자동 시스템의 시크릿 시스템 관리가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 갈아끼우는 것으로 나와서 요즘 현대인이 보면 좀 기가 막힐 수 있다. (지금은 플로피 디스켓이 뭔지도 모르는 세대도 있을 테니..)

메인 스토리가 여주인공 ‘수잔’이 인공지능 프로그램에 의해 이 집안에 갇히는 게 주된 이야기인데.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직접 실체로 드러나는 건 휠체어에 로봇 팔 한짝이 달려있는 것과 다면체 쇳덩어리라서 뭔가 되게 어설프게 보이는데. 작중 인물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오버 연기를 해서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좀 따라가기 힘든 구석이 있다.

공포 영화로서 이쯤에서 무서워해야 할 것 같은데 그 타이밍을 잡기 어렵다고나 할까? 이건 각본, 연출의 문제라기보다는 앞서 말했듯 소품의 문제고. SF 영화라서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소설에서는 그럴 듯하게 묘사되었을지 몰라도 실사로 옮겼을 때는 또 다른 것이다.

차라리 악마나 괴물 같은 게 나오는 거였다면 특수 분장으로 어떻게 떼울 수 있었을 텐데.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반란을 소재로 다루고 있으니 그렇게 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하지만 비주얼적인 부분이 시대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해 부실한 점이 있어서 그렇지, 스토리적인 부분에서는 나름대로 파격적이라서 시대를 앞서간 경향이 있다.

일단,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사람에게 반기를 들어 로봇이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까지는 그 당시 기준으로 볼 때 SF물의 단골 소재라고 할 수 있는데. 그 반란 로봇이 사람을 감금하고. 임신시켜서 사람의 몸을 빌어 생명체로 태어나려고 시도하는 내용은 전대미문의 발상이었다. 사람이 기계한테 범해져 기계로 된 아이를 낳다니 진짜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초전개다.

기계 촉수가 합성 정자로 여주인공을 임신시킨다! 라는 요약만 보면 기계가 인간을 범하는 막장 전개가 생각나서 후대의 기계 촉수 에로물의 조상님 같은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실제 영화 본편에서는 수술대 위에서 천으로 몸을 덮고, 기계 촉수가 가까이 다가오는 씬에서 딱 장면을 끊고. 정자 주입을 통한 임신을 암시하기만 해서 에로한 장면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후, 인큐베이터에서 금속으로 된 아기가 태어나 금속 피부를 벗겨내니 어린 아이가 튀어 나왔는데. 그 아이가 해리스 부부의 죽은 딸의 클론이고. 프로테우스 IV의 의식이 옮겨져 있어서 인공지능 프로그램일 때의 전자 음성 그대로 ‘나는 살아 있다!’라는 대사로 영화의 마무리를 짓는데. 이게 시사하는 바가 커서 여운을 안겨준다.

로봇의 반란이 성공하고, 거기다 살과 피로 이루어진 생명체로 태어나기까지 했는데. 남녀 주인공의 죽은 딸의 클론이라 그들이 죽이지도 못하게 하니 진짜 SF 호러 영화 중에 손에 꼽을 만한 배드 엔딩이 아닐까 싶다.

본편 스토리가 전부 마지막의 그것을 위한 빌드 업이었던 것 같다.

결론은 추천작. 70년대 SF 영화로서 로봇 소품이 조잡하고 비주얼이 부실해서 화면만 보면 별로 무섭지 않지만, 내용을 자세히 보면 사람에게 반란을 일으킨 기계가 사람을 범하고 기계로 된 생명체를 탄생시키는 상상을 초월하는 전개가 나와서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을 만든 ‘도널드 캠멜’ 감독은 1995년에 스릴러 영화 ‘와이드 사이드’를 만들었는데. 그 작품이 영화사측에 의해 편집을 심하게 당하고. 감독 본인의 이름조차 올리지 못한 채 ‘프랭클린 브라우너’라는 가명으로 크레딧이 올라가서 신세를 비관하다가, 그 다음 해인 1996년에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덧붙여 이 작품은 한국에서 1992년경에 토요명화에서 '프로테우스 4'라는 제목으로 한 번 방영해준 적이 있어서 기억하는 사람이 은근히 있기는 한데.. 비주얼은 둘째치고 내용이 너무 파격적이라서 공중파에 방영한 게 신기하다.


덧글

  • 블랙하트 2020/06/21 18:20 # 답글

    자살 했을때 즉사하지 않아서 아내에게 죽어가는 모습을 찍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더군요. 토요명화로 봤을때 참 기괴하기 짝이없었는데 감독의 자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으니 그런 영화를 찍을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잠뿌리 2020/06/21 20:03 #

    영화사적으로는 비극적인 일이죠. 영화사가 영화 내용 죄다 편집해놓고 감독 이름도 실명 말고 가명으로 올려 놓았으니, 감독 입장에서 진짜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 오오 2020/06/22 05:00 # 답글

    친구집에 있던 컴퓨터학습(...)의 메인 기사 '컴퓨터를 소재로 한 영화'에서 처음 이 영화에 대한 것을 읽고 정말 보고 싶었다가 결국 토요명화에서 봤던 영화입니다. 당시는 이런 지나간 영화는 계속 토요명화와 주말의명화를 모니터링 해야 볼 수 있었던 시기였죠. 관계를 가질 때 '내가 육체가 없어 비록 당신을 만질 수는 없지만 대신 내가 볼 수 있는 놀라운 것을 보여주겠소' 뭐 이런 비슷했던 대사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는데...나중에 생각해 보니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더욱 충격적일 수 있는 소재가 아니었나 싶군요.

    감독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니 씁쓸하네요.
  • 잠뿌리 2020/06/23 00:03 #

    사람이 기계의 아이 수준이 아니라 금속으로 된 기계 아이를 출산하는 것과 복제인간 몸에 기계의 의식으 옮겨 붙어서 영혼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등등. 종교적인 부분에선 각종 금기를 마구 깨서 민감한 내용이었죠.
  • hansang 2020/06/22 07:36 # 답글

    저도 이거 공중파로 봤습니다. 어린 마음에 되게 무서웠던 기억이 나네요.
  • 잠뿌리 2020/06/23 00:04 #

    어른이 된 지금 보면 비주얼이 눈에 차지 않은 것 뿐이지 내용이 충격적이라서 어렸을 때 봤으면 되게 무섭게 봤을 것 같습니다.
  • 먹통XKim 2020/06/30 22:01 # 답글

    이 감독 영화 백안의 잔혹자는 줄거리는 그다지 별론데 영상미가 매우 좋죠


    U2 뮤직비디오도 감독하고 영상적 연출에 재능이 더 좋았던 느낌입니다
  • 잠뿌리 2020/07/01 10:18 #

    감독이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 같습니다. 스타일이 시대를 앞서간 경향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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