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32] 테라피 (2002) 2020년 GP32 게임




2002년에 ‘ROSA:6’에서 개발, ‘게임 파크’에서 한국의 휴대용 게임기 GP32용으로 발매한 비주얼 노벨. 타이틀인 ‘테라피(Therapy)’의 뜻은 ‘치료’다.

내용은 어린 시절 아픔을 가진 고등학생 ‘준휘’가 학교에 다니면서 8명의 인물을 만나 그들과 교류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치유하는 이야기다.

비주얼 노벨은 일본의 에로 게임 개발사 ‘Leaf’에서 자사의 게임 ‘시즈쿠’, ‘키즈아토’, ‘투하투’를 출시할 때 비주얼 노벨을 자칭한 것에서 시작된 장르인데. 본작은 발매 시기로 볼 때 한국 게임 초창기 비주얼 노벨 게임이다. 기존의 사운드 노벨에서 소리보다 그래픽을 보강한 스타일의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한국 게임 시장에서 미소녀 연애 게임은 이 작품 이전에도 몇몇 나왔지만 게임 틀 자체를 비주얼 노벨에 맞춰서 만든 상업용 게임은 본작이 거의 처음이다.

초창기 비주얼 노벨 게임이라서 개발 노하우가 부족했던 건지 게임 인터페이스가 좀 불편하다.

게임 내 모든 대사가 끝까지 출력된 다음에 A버튼을 눌러야 다음 대사로 넘어갈 수 있어서 그렇다. 메시지 스킵 기능을 따로 지원하지 않고 그 대신 B버튼을 꾹 누르고 있으면 메시지 출력 속도가 빨라진다.

단, 스토리 진행상 중요 텍스트는 메시지를 빠르게 넘길 수 없다. 주로 주인공의 과거 회상과 그것과 관련된 이벤트가 나올 때 그렇다.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한 글자 한 글자씩 천천히 출력되는데, 이게 차라리 글자 폰트라도 크게 키우고 색깔이라도 넣었다면 모를까. 똑같은 크기의 폰트로 그렇게 연출하니 답답하기만 했다.

L버튼, R버튼의 존재 이유는 버튼을 꾹 누르고 있으면 화면상의 텍스트가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배경과 인물 일러스트를 감상할 수 있다는 건데. 버튼을 누르고 있는 동안에만 그렇게 볼 수 있고, 버튼에서 손을 떼면 다시 글자가 표시되는 방식이라서 더 불편하다. (그냥 버튼 한 번 눌러서 표시/비표시로 하면 안 됐었나)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불러오기, 저장하기, 기록 삭제, 모든 기록 삭제, 효과음 온/오프, 배경 음악 온/오프, 초기 화면(타이틀 화면으로 돌아가기), 취소를 선택할 수 있다.

세이브는 언제든 가능하긴 한데, 로드할 때는 세이브한 지점에서 다시 이어서 하는 게 아니라. 세이브한 지점 바로 전 구간에서 다시 이어서 하는 거라 불편하다.

게임 내 배경은 실제로 촬영한 사진을 디지타이즈해서 만든 것인데. 휴대용 게임기용 게임인 데다가, 용량 제한이 있어서 해상도가 낮은 관계로 이미지가 거칠고 흐릿하다.

캐릭터 일러스트는 괜찮은 편인데, 막상 이벤트 그림은 너무 간결해서 연필 그림 느낌 나는데 작화의 밀도가 떨어지고. 게임 배경 화면과 마찬가지로 해상도 문제를 피해갈 수 없어서 도트가 팍팍 튄다.

감정 변화에 따른 캐릭터의 다양한 표정이란 것도 미소녀 연애 게임에서는 당연한 요소라서 특이점이라고 할 수 없는데다가, 실제로 표정 변화 패턴이 있는 건 메인 히로인 단 둘 뿐이다.

그 이외의 캐릭터는 일절 표정 변화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다양성이 부족한 편이다.

관련 게임 기사에서 ‘8명의 인물을 만나 교류한다.’ 라고 적혀 있지만 이 8명의 인물이란 게 공략 대상이 8명인 게 아니고. 게임 내에서 일러스트가 뜨는 이름 있는 등장인물이 총 8명인 거다.

메인 스토리는 사실상 ‘이지’와 ‘세류’. 단 두 명이 양분하고 있고, 나머지 6명의 인물은 앞의 두 사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조연, 단역들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게임 내에서 공략 가능한 대상은 단 두 명 뿐이란 거다.

이지 루트는 컴퓨터부에 속한 이지가 축제 준비를 하면서 문제가 생기고, 학생 회장 ‘현빈’을 짝사랑하는데 연적인 ‘시정’의 견제를 받는 상황 속에서 주인공 ‘준휘’가 절친한 친구라서 도움을 받고 위로를 받으며 점점 가까워지는 이야기고, 세류 루트는 한 학년 선배이자 검법도부 부주장인 세류가 주장인 ‘태균’과 마찰을 빚는데 그것과 또 별개로 태균이 세류를 좋아해서 준휘와 삼각관계에 놓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각각의 루트에서 이지, 세류 이야기를 하느라 바빠서 정작 준휘의 상처 이야기는 묻힌다. 어느 루트로 가든 간에 똑같은 이벤트 로그로 혼자 있을 때 과거 회상을 하면서 ‘실은 내게 이런 상처가 있다!’라고 스스로 밝히는데. 그걸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상황이라서 뭔가 캐릭터의 이야기 사이에 접점이 없고. 그 때문에 스토리에 몰입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다.

공식 게임 소개대로라면 상처를 가진 주인공이 타인과 교류하면서 치료를 하는 게 본작의 테마인데, 그 치료와 치료의 과정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느낌이다.

선택지가 나오긴 하지만 캐릭터 공략 루트는 게임 시작할 때 선택한 것으로 고정되기 때문에, 다른 히로인은 배제하고 현재 루트의 주역인 히로인의 호감도를 얻느냐, 마느냐의 차이만 있다.

어떤 히로인 루트를 고르던 간에 작중에서 벌어진 사건은 공통적인 것이라서 텍스트 내용이 겹치는 게 좀 있고. 현재 진행 중인 루트에서 캐릭터의 대사를 통해 다른 루트에서 벌어진 사건의 진상을 스포일러하는 전개가 나와서 1번 게임을 클리어한 뒤 2회차를 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비주얼 노벨이다 보니 텍스트양이 꽤 되는데. 작은 따옴표, 큰 따옴표의 오타가 눈에 걸린다. 이게 보통 ‘(글)’, “(글)” 이렇게 써야 맞는 표기인데 이걸 ’(글)‘, ”(글)“ 이렇게 잘못된 표기를 계속 넣고 있다. 게임 테스트를 하기 이전에 게임 시나리오 쓸 때 오타 검수를 안한 것 같다.

결론은 평작. 상업용으로 발매된 게임을 기준 삼아서 한국 게임 초창기 비주얼 노벨이란 게 유니크하고, 캐릭터 일러스트도 괜찮지만, 이벤트 컷은 작화 밀도가 떨어지고, 공략 가능한 히로인이 단 두 명밖에 없어 게임 볼륨이 작은데, 각 히로인들의 이야기와 주인공의 이야기가 접점을 이루지 못해서 각각 따로 놀고 있어 스토리의 몰입이 안 되며, 메시지 스킵 기능을 지원하지 않아 게임 인터페이스가 불편해서 게임성은 다소 떨어지는 작품이다. 당시 한국 게임 중에 보기 드문 비주얼 노벨 게임이었다는 사실에만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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