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2019) 2019년 개봉 영화




2019년에 ‘김주환’ 감독이 만든 호러 액션 영화. 김주환 감독은 2017년에 만든 '청년경찰'로 잘 알려져 있고, 청년경찰 때 주인공 '기준' 배역을 맡은 '박서준'이 본작에 다시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타이틀 사자의 뜻은 성경에서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나 천사 등을 일컫는 사자(使者)다.

내용은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경찰인 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박용후’는 성당에 다녔는데, 어느날 아버지가 음주 단속 중 사고를 당해 돌아가셔서 그날부터 신을 믿지 않게 됐고. 그로부터 20년 후. 성인이 되어 종합 격투기 선수로 뛰던 중, 어느 날부터 오른손에 원인불명의 상처가 생겨 피가 멈추지 않아서 고심하다가, 그게 실은 ‘성흔’으로 마귀를 쫓는 힘이 있어서. 바티칸에서 파견된 구마 사제 ‘안 신부’를 만나 그 진실을 듣고서 악마를 숭배하는 ‘검은 주교’와 맞서 싸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젊은 주인공과 나이 든 노년의 신부가 콤비를 맺어 엑소시즘(구마 의식)을 벌인다는 게 핵심적인 내용인데. 그것만 딱 놓고 보면 엑소시스트(1973)로부터의 클리셰적인 설정이라서 특이할 게 없으나, 주인공이 사제 출신이 아니라 MMA(종합 격투기) 선수라는 설정이 들어가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엑소시즘+격투기의 메인 소재만 보면 대체 어떤 내용인지 기대를 하게끔 하는데 막상 나온 결과물은 기대에 한참 못 미치는 작품이 됐다.

엑소시즘 같은 경우, 바티칸으로부터 엑소시스트(구마 사제)가 한국에 파견을 왔는데. 한국인 신부인데도 불구하고 굳이 엑소시즘할 때는 라틴어를 좔좔 외우는데 그게 왠지 어색하게 다가온다.

국민 배우 ‘안성기’가 구마 사제 ‘안 신부’ 배역을 맡았는데 연기는 잘했지만, 캐릭터 자체적으로 보면 베테랑 엑소시스트인데 과거에 엑소시즘 실패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고 노쇠한 몸 때문에 육체가 따라주지 못해 갖은 고생을 다하는 캐릭터라서 너무 평이하다.

엑소시즘에 대한 묘사도 십자가, 성수를 사용하고 기도문을 외우면서 악마의 이름을 밝혀내려고 하는 게 전부라서 되게 식상한데. 이게 또 순수하게 정통 엑소시즘만으로 구마에 성공한 게 아니고 후술할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 능력으로 다 해결해서 엑소시즘의 의미 자체가 옅어졌다.

그 데우스 엑스 마키나급 능력이 정확히 뭐냐면, 안 신부의 파트너이자 주인공인 ‘박용후’가 가진 손의 상처. 성흔을 통해 발현되는 성령의 불꽃으로 이거 한 번 썼다 하면 악마들이 죄다 퇴치된다.

몬스터 헌터 월드로 비유하자면 몇 번이나 수레를 타면서 뼈 빠지게 몬스터 토벌하고 있는데, 구조 신호 받고 난입한 누군가가 핵유저라서 트레이너 켜고 한방킬 기능 활성화시켜서 단 한 방에 몬스터를 잡아 버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고전 엑소시스트 1로 예를 들어보자. 멀린 신부가 노쇠한 몸을 이끌고 진짜 목숨 걸고 힘겹게 엑소시즘 강행하고 있는데, 데미안 신부가 갑자기 난입해서 성령의 불꽃 주먹으로 한방에 퍽-하고 악마를 쫓아내면, 아니. 이게 진짜 말이 되겠나.

엑소시즘을 하는데 악마에 빙의된 사람을 묶어 놓지도 않고 그냥 풀어놨다가, 악마 빙의의 마각을 드러내면서 물리적인 공격을 받는 패턴을 반복하는 것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줄거리와 소재만 보면 엑소시즘이 메인이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게 뒷전이다.

본편 스토리 전반에 걸쳐 하는 말과 던지는 메시지는 일종의 신앙 간증이다.

독실한 신자 집안의 주인공이 어릴 때 겪은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신을 믿지 않고 냉담을 하면서 어른이 된 뒤. 성흔의 소유자가 됨으로서 다시 믿음 깊은 신자가 되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 신파극적인 요소가 깔려 있어서 억지 눈물과 감동을 쥐어 짜내는데. 이건 호러물에 적합하지 않다. 호러물의 관점에서 보면 그게 장르의 정체성을 뒤흔들면서 몰입도를 방해한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2002)’에서 장군의 아들 ‘김두한’이 싸움을 하다가 항상 밀리면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힘을 받아 각성하여 다 때려눕히는 전개 같은 게, 본작에서도 나오는 거다.

성령의 불꽃 주먹을 가진 이유가 뭐냐면, 단순히 덕을 쌓고 선행을 많이 한 아버지의 영혼이 항상 주인공 곁에 있어서 냉담자가 되어 걸핏하면 ‘난 신은 안 믿어’이러면서도 성흔의 소유자가 되었다고 나오니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성령의 불꽃 주먹을 가지고 있긴 한데 현직 사제인 것도, 구마 정보, 지식도 전혀 없는 박용후가 우연히 안 신부를 도와준 계기로 그를 따라다니며 엑소시즘 어시스트를 하고. 안 신부는 또 안 신부대로 그걸 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상황도 그렇고. 뭔가 좀 개연성이 없는 부분이 은근히 많아서 디테일이 떨어진다.

데모니즘적인 묘사는 엑소시즘 묘사보다 밀도가 더 떨어진다.

강남의 화려한 클럽 안에 숨겨진 검은 주교의 본거지는 방 한 칸 사이즈의 지하실에 우물 하나 있는 게 전부고. 우물을 제단으로 대신하고 있어서 틈만 나면 우물 앞에 서서 악마의 제사 드립치면서 제물을 바치는 게 전부다.

주인공이 신부와 함께 신앙 간증 버디물 찍는 동안. 악당 보스는 본거지에 짱박혀 흑마술 쓰면서 원거리에서 사람 조지는 주살(저주 살인)만 반복하니, 강시물 등장 이전에 80년대 홍콩 영화의 주류 호러 장르였던 저주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작품 전반에 걸쳐 주인공과 대립각을 세워야 되는데 그러질 못하고. 악당 보스의 존재 자체를 주인공이 파악한 건 극 후반부의 일이라서 라이벌 구도도 활용하지 못했다.

영화 포스터에는 ‘악의 편에 설 것인가, 악에 맞설 것인가’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혀 있지만. 본편에는 그런 말 안 나오고 그런 것에 대한 고민도 전혀 하지 않아서, 해당 갈등 자체가 나오지 않는다.

박용후 자체가 신은 믿지 않는다고 꼬박꼬박 말하는데, 안 신부를 계속 도와주고. 악마의 이간질에도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범적인 주인공 캐릭터라서 무늬만 다크 히어로다.

후반부의 액션 씬은 액션의 밀도가 상상 이상으로 떨어진다.

박용후와 검은 주교의 부하들이 일 대 다수로 싸우는 씬은 단 1분 만에 주교의 부하들을 전부 정리하고, 중간 보스급 적인 일 대 일 대결을 하는데 단 2분 만에 끝장나며, 최종보스인 검은 주교의 각성 버전과의 대결도 달랑 5분밖에 안 된다.

검은 주교의 부하들은 성령의 불주먹으로 머리 한 번 만질 때마다 힘 한 번 못 써보고 즉사해서 제대로 된 격투를 하지 못한다.

검은 주교의 각성 버전은 뱀의 비늘과 이빨이 돋아난 마인의 형상으로 변하는데. 이에 맞서는 박용후 각성 버전은 성흔이 있는 오른손에 아예 성령의 불꽃이 깃들어 불주먹으로 두들겨 패니 뭔가 되게 유치하게 보인다.

주인공 설정이 종합 격투기 선수인데 싸우는 스타일이나 기술을 보면 장풍 쏘는 대전 액션 게임 감각이다. 주인공은 불주먹 쓰고, 나쁜 놈이 뱀의 화신인 거 보면 딱 SNK의 ‘더 킹 오브 더 파이터즈’에 나오는 오로치 사가다. (그럼 주인공은 쿄, 최종 보스는 오로치인가)

불주먹으로 뚜드려 패는 액션이 하이라이트를 장식하고 있는데 거기엔 엑소시즘의 ‘엑’자도 찾아볼 수 없어서 전반부에 쌓아 올린 엑소시즘 분위기를 와장창 깨트리고도 남는다.

쿠키 영상으로 작중에 나온 조연인 ‘최 신부’가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최 신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사제’로 돌아온다고 예고해서 마블, DC, 컨저링 유니버스 같은 유니버스화를 노리고 있지만 하나도 기대가 되지 않는다.

결론은 비추천. 종합 격투기와 엑소시즘의 소재 조합 자체는 신선하지만, 원펀맨 마냥 성령의 불꽃 주먹으로 다 때려 잡는 먼치킨적인 설정으로 인하여 액션의 밀도가 대단히 떨어지고 소재 활용을 전혀 하지 못해서 종합 격투기 설정이 들어간 의미가 별로 없으며, 엑소시즘과 데모니즘의 오컬트적인 묘사 밀도도 낮고. 작품 전체에 깔린 신파극 요소가 호러물로서의 몰입을 방해하고 있어서 액션과 호러. 그 어느 쪽도 기대치를 충족시켜주지 못한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에서 구마 사제 안 신부 배역을 맡은 안성기는 구마 사제 연기를 처음 하는 건 아니다. 이우혁 작가 원작 소설을, 1998년에 박광춘 감독이 실사 영화로 만든 ‘퇴마록’에서 ‘박 신부’ 배역을 맡은 바 있다. 그때로부터 무려 21년 후에 다시 구마 사제로 돌아온 것이다.

덧붙여 본작에서는 엑소시즘 묘사보다 오히려 무당 묘사가 좀 인상적이다. 맹인 무당이 나오는데, 멀어 버린 눈을 크게 뜨고 박용후를 주시하면서 그의 주변에 꼬여 든 잡귀들을 눈빛이 빛나는 연기와 같은 형상으로 보는 씬이 기억에 남는다.

보통, 영화에 무당이 나왔을 때 무당의 시선으로 영적인 존재를 감지하는 장면은 제대로 묘사하지 않는데. 본작에서는 짤막하게나마 무당의 영적 시점이 나와서 참신했다.


덧글

  • 시몬벨 2019/09/02 00:40 # 삭제 답글

    퇴마록, 7광구, 아라한장풍대작전 등을 보면 안성기씨는 연기는 잘하는데 영화고르는 눈은 별로 없는것 같아요. 아님 출연료를 많이 받았거나.
  • 잠뿌리 2019/09/03 11:05 #

    뭔가 잊을 만하면 흑역사가 될만한 영화에 출현하시는데, 그 이후에는 또 괜찮은 영화에 출현하셔서 작품 운과 안목이 편차치가 커서 애매한 것 같습니다.
  • Ryunan 2019/09/02 13:57 # 답글

    MMA 챔피언 이란 것도 설정만 있고 별로 활용하지는 못했죠.
    최종빌런은 유유백서에 그 역삼각형 상체에 선글라스 쓰고 나온 악당이랑 닮았던 거 같아요.
    여러모로 김 빠지는 졸작이었다고 봅니다.
  • 잠뿌리 2019/09/03 11:06 #

    MMA 챔피언이란 설정을 무늬만 가져다 쓰고 실제 작품 내에서 적용하지 못한 게 패착이 컸습니다.
  • 레이븐가드 2019/09/02 19:05 # 답글

    요즘 안성기 씨 필모가 너무 안습이네요
  • 잠뿌리 2019/09/03 11:09 #

    최근 주연작들은 진짜 좀 다 상태가 안좋죠.
  • 오행흠타 2019/10/01 13:35 # 삭제 답글

    안성기님의 신부 캐릭터 하나만큼은 꽤나 잘 어울렸던...
  • 잠뿌리 2019/10/01 16:22 #

    안성기 배우가 퇴마록 실사 영화판에서 박신부로 엑소시즘 신부 연기를 했던 적이 있어서 뭔가 그때가 겹쳐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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