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브라더후드 오브 사탄 (The Brotherhood of Satan.1971) 사타니즘/데모니즘 영화




1971년에 ‘버나드 맥버티’ 감독이 만든 사타니즘 호러 영화.

내용은 ‘벤’이 연인 ‘닉’과 어린 딸 ‘케이티’를 데리고 미국 남서부를 거쳐 케이티의 할머니 생일 축하 파티에 가던 중 힐스브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 지역에 정차하여 신고를 하려고 인근 마을에 들렀는데, 살인 사건과 아이들의 실종 사건이 연이어 발생해 마을 분위기가 흉흉한데도 주민들이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지역 보안관에게 의심을 받아 갈등을 빚는 상황에, 늙은 사타니스트들이 커번(마녀들의 집회)에 자신들의 영혼을 아이들의 몸으로 옮기려는 계획을 꾸미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사타니즘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악마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고. 악마를 숭배하는 사타니스트들만 나온다.

근데 이게 노인들로 구성된 사타니스트 집단으로 어린 아이를 납치해 아이의 몸에 자신들의 영혼을 옮기려는 계획을 꾸민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고. 그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해 아이들의 장난감을 흉기로 바꿔 살인을 저지른다.

작중 사타니스트의 묘사라고 해봐야 일반 신도는 빨간 후드를 뒤집어쓰고, 우두머리는 깃 세운 검은 망토 차림을 한 게 전부인데 시도 때도 없이 엎드려 사탄한테 비는 것만 나와서, 클라이막스 때 불 붙인 삼쉬르(시미터=곡도)로 셀프 몰살 당할 때를 제외하면 볼거리가 거의 없지만, 애초에 사탄을 숭배하는 사타니스트의 공포보다 노인이 아이의 몸으로 영혼을 옮긴다는 계획이 주된 공포 요소라서 사타니즘은 그저 거들 뿐이다.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아이들의 장난감을 흉기로 만들어 방해되는 어른을 살해한다는 설정 자체는 제법 그럴싸한데 70년대 저예산 영화라서 제작비와 영화 기술의 한계로 그 설정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예를 들어 프롤로그 씬에서 장난감 탱크를 먼저 보여준 다음에 실제 탱크가 자동차를 깔아 뭉게어 부수는 장면을 이어서 보여준 후. 땅에 탱크 캐터필트 자국이 나 있는 걸 보여줘서 ‘장난감 탱크가 실제 탱크로 변했다!’라는 암시만 줄 뿐. 변하는 과정은 전혀 보여주지 않는다.

중반부에 인형 씬만 해도 인형이 스스로 움직이는 듯한 묘사는 하지만, 움직이는 장면 자체는 나오지 않으며, 그냥 그 인형이 있는 집 안의 어른들이 뭔가에 의해 살해 당하고 뜬금없이 인형이 눈물 흘리는 장면만 나와서 비포와 애프터 사이의 중간 과정이 생략됐다.

그마나 좀 나은 건 말 탄 기사 씬 정도다. 말 탄 기사 미니어쳐가 실제 인간 사이즈로 커져서 검 든 기사가 말을 타고 달려와 모가지를 뎅겅 자르는 씬인데. 이것도 미니어쳐가 리얼 사이즈로 변하는 과정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도 최소한 실제 배우가 갑옷 입고 말을 타고 달리는 씬이 그대로 나와서 어설픈 모형이나 필름 짜깁기는 없기 때문이다.

참수 씬도 직접적으로 잘리는 걸 보여주지 않고 건물 벽에 비친 그림자로 묘사한 것도 저예산 영화의 연출로서 괜찮았다.

이 작품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주인공 일행의 무능함이 절정에 달해서 극의 긴장감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점에 있다.

이게 정확히, 늙은 사타니스트들이 어린 아이들을 납치하고 어른들을 죽여대는 상황에서 주인공 일행은 상황 파악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어영부영 시간만 축내다가 사타니스트들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은 채 사악한 계획을 성공시키는 전개로 이어져서 그렇다.

주인공 일행과 사타니스트의 커번을 교차 편집해서 스토리를 진행하는 관계로 주인공이 스토리를 이끌어 나가면서 사타니스트의 음모를 밝혀내는 게 아니라. 그냥 알아서 사타니스트들이 자기들 시점으로 이야기 진행될 때 자동으로 음모가 밝혀지니 주인공의 존재 이유가 없어진다.

게다가 사타니스트들이 노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마을 내 노인들은 대부분 커번에 집결해 있는 상황이라, 주인공 일행은 물론이고 마을 내 주민조차 사타니스트들과 직접적인 접촉이 없고. 행동 동선도 전혀 겹치지 않아서 과연 같은 마을에서 벌어진 사건인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완전 따로 놀고 있어서 문제가 있다.

극 후반부에 주인공 일행이 정말 뒤늦게 사타니스트의 존재를 파악하고, 사타니스트의 커번을 찾아다니는데 한참 동안 헤매다가 상황이 전부 종료된 뒤에 목적지에 도착하는 장면은 답답합의 끝을 보여준다.

범죄 스릴로로 대입하면 연쇄 살인 사건이 발생하는데 형사 일행이 사건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간만 보내고. 살인마를 죽일 사람 다 죽이고 더 죽일 사람 없을 때 사건 다 끝난 뒤에야 형사들이 사건 현장에 도착해 ‘꼼짝마, 경찰이다!“ 이렇게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 일행의 무능함이 지나쳐 작위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아무리 사타니스트의 승리 결말을 지향한 것이라고 해도 이건 좀 아니다.

결론은 비추천. 늙은 사타니스트가 어란 아이를 납치해 아이의 몸으로 영혼을 옮긴다는 메인 설정을 통해 노인을 공포 소재로 삼은 것과 어린 아이의 장난감을 흉기로 만들어 방해되는 어른을 살해한다는 설정 등이 아이디어적인 부분에서는 꽤 그럴 듯 했는데, 70년대 저예산 영화라서 예산과 제작 기술의 한계로 그런 설정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비주얼이 시시하고. 사타니즘 영화인데 오컬트 묘사의 밀도가 매우 떨어지며, 주인공 일행의 무능함이 지나쳐 작위적인 느낌이 강해 스토리에 극적인 맛이 없고 지루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어 재미가 없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미국 영화지만 촬영 장소는 뉴 멕시코주 앨버커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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