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9년에 ‘애너 보든’, ‘라이언 플렉’ 감독이 만든 마블 슈퍼 히어로 영화.
내용은 6년 전의 기억을 완전히 잃고 할라 행성의 크리 일족 전사로 살아 온 ‘비어스’가 스크럴 일족과 싸우다가 지구에 불시착한 후.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쉴드 요원 ‘닉 퓨리’와 함께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편 스토리는 캡틴 마블이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고 진정한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로 중요 반전을 경계로 적이 바뀌며, 그게 캡틴 마블이 잃어버린 기억과 직접적으로 연결되고 본편 스토리의 핵심적인 내용이라서 그 부분의 짜임새는 좋다.
캡틴 마블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무엇인가로부터 통제 받으며 살아오느라 제 능력을 다 발휘하지 못했는데, 그 통제로부터 벗어나 슈퍼 파워를 대폭발시키는 것이라서 거기에 감정 이입을 한다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도 있다.
작중 캡틴 마블이 받은 통제가 ‘너는 안 돼’라는 사회의 편견과 ‘너는 뭘 하지마라’라는 규칙인데. 이게 작중 모 캐릭터의 입으로 직접적인 대사로 언급되는, 여자가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되기 힘들었던 80년대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 그 모든 걸 극복하고 슈퍼 히어로로 각성한 것이라서 여성 히어로 서사의 밀도가 높은 편이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속한 작품 중에서 최초로 여성 히어로 단독 주연작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건 다 보여줬다.
항간에는 본작이 마블계의 ‘라스트 제다이’가 될 거란 우려가 있었지만, 라스트 제다이는 여자 캐릭터의 유능함을 부각시키는 방법으로 남자 캐릭터의 무능함을 강조했던 것에 비해 본작에서는 남녀 성별을 전혀 따지지 않고 각각의 캐릭터가 맡은 바 역할을 충실히 다 하면서 동등한 동료로 취급하기 때문에 라스트 제다이랑 비교할 수는 없다.
본편 스토리의 아쉬운 점은 무엇으로든 변신할 수 있는 변형인간 스크롤 일족과의 대립 묘사 밀도가 얕아서 긴장감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예고편에서는 되게 그럴 듯하게 묘사했는데 정작 본편에서는 갈등과 오해 같은 게 너무나 쉽게 풀린다.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16기: 전설을 부르는 춤춰라! 아미고!(2006)’의 곤약 인간이 더 긴장감이 넘칠 정도다.
이건 캡틴 마블의 근본적인 목적이 자신의 기억을 되찾기 위해 여행을 하는 것이고. 지구에 내려온 스크롤족을 쳐 잡는 것은 부차적인 일로 취급해서 그렇다. 메인 퀘스트와 서브 퀘스트의 차이인 것이다.
캡틴 마블의 기억 찾기 여정을 함께 하는 ‘닉 퓨리’는 기존의 마블 영화에서 조연이나 깜짝 출현으로 짧게 나왔던 것에 비해, 본작에선 주연으로 나와서 캡틴 마블과 버디 무비를 찍는다.
작중 배경이 90년대 중반이고 CRL 모니터와 모뎀 통신, 비디오 가게, 전자 오락기, 공중전화 등이 나와서, 일부 영화 평에 무슨 90년대 감성 어쩌고 하는데. 극 진행이 빨라서 옛 시대의 정취를 즐길 여유를 주지 않는다. 그냥 소품으로만 등장할 뿐이다. 레트로한 요소가 스토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설정으로 부각되어 그 감성을 폭발시킨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와 차이가 크다. (예를 들면 스타 로드의 구식 워크맨, 끝내주는 노래 모음집 1집 카세트 테이프, 욘두의 트롤 인형 같은 것들)
본작은 캡틴 마블 배역을 맡은 배우인 ‘브리 라슨’의 페미니스트 논란과 故 스탠 리 추모 글을 모욕적으로 올린 것 때문에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욕을 많이 먹었는데, 객관적인 감상을 위해서는 배우와 작품을 별개로 놓고 봐야 한다.
본작의 치명적인 문제점은 브리 라슨의 존재 그 자체가 아니라 캡틴 마블이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손에 꼽히는 강캐임에도 불구하고, 독립 출현 작품인 본작에서의 액션은 부실하다는 점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생각 이상으로 액션 분량이 적다. 그리고 전체 내용의 약 4/5에 해당하는 부분에서 각성 이전의 캡틴 마블을 그리고 있어서 힘 조금 세고 양손에서 불광선 쓰는 블래스터 능력자로만 묘사되기 때문에 기존 마블 히어로와 비교해서 크게 차별화된 게 없다. (블래스트는 이미 아이언맨에서 실컷 보여줬는데)
캡틴 마블이 진정한 각성을 이루어 풀 파워 전개를 하는 게 극 후반부의 하이라이트씬인데 이걸 그냥 대형 마트 시식 코너의 맛보기 수준으로 짤막하게 넣어놔서 기대에 못 미친다.
그 때문에 본작은 4DX나 아이맥스로 보기에는 다소 돈이 아까운 수준이다.
캐릭터 자체의 간지 관점에서 봐도 같은 여성 슈퍼 히어로 단독작으로선 ‘원더 우먼(2017)’에 나온 겔 가돗의 원더 우먼이 훨씬 간지 난다. 슈퍼 파워 스케일이야 우주를 유영하면서 블러스트를 발사하는 캡틴 마블이 원더 우먼보다 더 크지만, 액션 연출 쪽은 원더 우먼이 더 위인 거다.
이 작품에서 가장 볼만하고, 또 강렬한 인상을 주는 건 고양이 ‘구스’의 존재다. 본작의 엠바고가 풀린 후에 올라온 해외 리뷰에서 유독 고양이를 언급한 게 당연할 정도로 고양이 구스는 본작의 씬 스틸러 역을 톡톡히 한다.
캡틴 마블은 슈퍼 파워적으로 기존의 슈퍼 히어로와 크게 차별화된 게 없어서 별로 인상적이지 못한 반면. 고양이 구스는 그 반대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넘어서 슈퍼 히어로 영화에 출현한 동물 중에 독보적이라고 할 만큼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완전 ‘기승전냥이’ 수준이라고 할까나. 애묘가들한테 추천할 만 하다.
결론은 평작. 슈퍼 히어로의 기억 찾기와 각성을 다룬 본편 스토리는 무난한 편인데, 변신 능력을 갖춘 스크럴 일족과의 대립은 설정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긴장감이 떨어지고, 주인공이 막강한 슈퍼 파워를 지닌 것에 비해 액션 분량이 짧고 액션 묘사의 밀도가 떨어져 액션적인 부분은 기대 이하라서 같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영화로 치면 ‘퍼스트 어벤져(2011)’보다는 ‘토르: 천둥의 신(2011)’ 수준이라서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을 입증시켜준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쿠키 영상은 2개 나오는데 하나는 어벤저스: 엔드 게임 떡밥. 다른 하나는 개그 영상이다. 어벤저스: 엔드 게임 떡밥 쿠키 영상은 연출이 좀 별로라서 인상적이지 못하다. 이미 엔드 게임 트레일러로 공개된 영상에 캡틴 마블만 합성한 느낌이 나서 그렇다.
덧붙여 본작은 故 스탠 리의 추모 헌사와 함께 영화가 시작되고, 작중 전철 시퀀스에서 카메오 출현한다.
덧글
https://www.youtube.com/watch?v=YFLlwtqHINs
몰래츠에 스탠 리가 카메오로 나온 장면이 있는데 그 장면 대본 연습 중이었다는 설정인듯. (캡틴 마블 영화 시대 배경도 1995년)
그리고 슈퍼 히어로 무비로서 액션이 부실한 건 좋게 평가할 수 없죠. 슈퍼 히어로 무비는 기본적으로 액션이 메인이라서 그렇습니다. 액션이 아예 배제된 장르라면 또 모를까, 액션 영화에서 액션이 부실하면 그건 문제가 있죠. 그 부실한 액션을 메꿀 만큼 작품성이 빼어난 것도 아니고요.
스토리는 무난한데 그것과 별개로 극 전개상 헛점이 많습니다. 위기를 극복하고 성장하는 히어로가 아니라 풀 파워를 봉인 당한 히어로가 각성하는 것이라 기승전캡틴마블이 다 때려 잡는 이야기라서 그렇습니다.
슈퍼 파워를 얻게 된 게 드라마틱한 것도 아니고,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스파이더맨의 그것처럼 슈퍼 파워를 가진 사실 자체를 가지고 갈등하는 것도 아니라서, 단순히 각성 후 슈퍼 파워 풀 파워 전개로 대적할 자 누구 없이 다 떄려 잡고 부수고 폭발하니 작품성을 찾아볼만 여지가 없죠.
애초에 시리즈의 기원을 다룬 오리진 작품으로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페미니즘 영화에 포커스를 맞추면 원더우먼보다 더 나은 건 맞지만, 슈퍼 히어로 영화로선 원더 우먼보다 크게 나은 게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