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본 얼레이(Shibone Alley.1970) 2019년 애니메이션




1970년에 ‘존 데이비스 윌슨’ 감독이 동명의 뮤지컬을 원작으로 삼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작품. 원작은 1954년에 발매한 레코드 앨범으로 시작해 1957년에 나온 ‘조 다리온’과 ‘멜 브룩스’의 저서이자, 조 다리온이 가사를 맡고 ‘조지 클라인싱거’가 노래를 부른 브로드웨이 뮤지컬 음악으로 연대상 최초의 브로드웨이 쇼 중에 하나인 ‘신본 얼레이’다.

내용은 미국 뉴욕에서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 신문 기기자 ‘아치’가 바퀴벌레로 환생해 타자기를 사용해 시 쓰는 법을 배워 새로운 삶을 살게 됐는데, 뒷골목에 모인 고양이들을 관중 삼아 노래를 부르는 암코양이 ‘미헤타블’에게 매료되어 둘이 친구가 되어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작에 나오는 주인공인 바퀴벌레 ‘야치’와 뒷골목 암코양이 ‘미헤타블’은 본래 1916년 뉴욕에서 발간했던 ‘더 이브닝 선’ 신문의 칼럼니스트 ‘돈 마르퀴스’가 만든 캐릭터로, 마르퀴스의 데일리 칼럼 ‘더 선 디얼’과 단편 소설에 등장해 1910~1920년대의 도시에서 일상생활을 풍자하는 모험을 하게 됐는데, 1950년대에 들어서 음악 버전이 등장해 신본 얼레이의 베이스가 되었다고 한다.

본편 스토리를 총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암코양이 ‘미헤타블’은 숫고양이 ‘빅 빌’에게 구애를 받고, 바퀴벌레 ‘아치’를 매료시켜 친구가 됐는데.. 뒷골목 고양이로 살지 말라는 아치의 설득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극장을 운영하는 고양이 ‘타이론 T 태터솔’를 만나서 그가 자신을 스타로 만들어주겠다는 말에 넘어갔지만 아무 것도 되는 일이 없어서 결국 빅 빌 품으로 돌아가 새끼를 낳았으나, 빅 빌은 아이들에게 무관심해서 미헤타블이 부잣집을 찾아가 자신을 포함해 새끼까지 전원 셀프 입양시키고 함께 돌아가자는 아치의 청을 거부한 뒤. 아치는 술에 취해 살다가 절망하게 됐는데.. 옛날이 그리워진 미헤타블이 부잣집에서 혼자 빠져나와 뒷골목으로 돌아가 다시 노래하고 춤을 춰서, 그 모습을 본 아치가 그게 그녀(미헤타블)의 진실 된 모습이란 걸 깨닫고 현실을 받아들인다.

이렇게 스토리를 정리하면 멀쩡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스토리 자체에 집중한 게 아니라 노래와 춤의 뮤지컬에 집중하고 있어서 극 전개가 거의 의식의 흐름으로 봐야 할 정도로 즉흥적이다.

거기다 연출 자체도 좋게 말하면 예술, 안 좋게 말하면 난해한 것들이 너무 많이 나와서, 뮤지컬로서의 노래와 춤으로도 그건 커버할 수 없다.

그게 심해지는 구간은 아치가 타자기로 시를 쓸 때다. 시의 내용하고도 상관이 없는 이상한 화면과 실사 사진, 배경을 미친 듯이 쑤셔 넣고 있다.

주요 캐릭터가 동물/벌레 캐릭터라서 체감이 안 될 수도 있는데. 요염하게 디자인되어 색기를 풀풀 풍기는 미헤타블과 후반부에 술에 취한 아치 앞에 나타난 무당벌레 창녀들의 묘사는 좀 선정적이라서 전 연령가로 보기는 좀 어렵다.

작품의 등급이 성인 등급은 아니지만, 성인 관객을 대상으로 한 애니메이션에 가깝다.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는데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 그 자체보다는 뮤지컬에 더 집중한 작품이라서 뮤지컬 요소가 부가적으로 들어간 디즈니 애니메이션과는 정반대 노선이라고 할 수 있다.

단, 뮤지컬의 관점에서 보면 작중에 나오는 춤과 노래 자체의 퀼리티는 무난한 편이다. 앞서 말했듯 뮤지컬에 집중한 작품이라서 주요 캐릭터가 전부 짧은 음악 파트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캐릭터 간의 대화를 노래처럼 묘사하는 경우도 있어서 연극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비주얼은 배경은 스케치에 가까운 느낌으로 간결하게 그려 넣고 비, 눈 같은 이펙트가 나올 때를 제외하면 정지된 컷으로 나오는 반면. 캐릭터 자체는 자연스럽고, 뮤지컬 컨셉에 맞게 춤과 노래 스킬을 기본 장착하고 있어서 역동적으로 묘사된다.

결론은 미묘. 본편 스토리 자체는 정리해서 보면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뮤지컬에 집중하느라 스토리를 내쳤고, 난해한 연출이 들어가서 용 이해가 어려운 구간이 있어서 예술로 포장할 수 없는 수준이라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완성도에는 좀 의문이 들지만.. 뮤지컬로서의 춤과 노래 퀼리티는 무난한 편이고, 뮤지컬 요소에 집중한 것 자체가 본작만의 개성으로 이어졌기 때문에 그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서 자기 색이 뚜렷하고 독특한 풍미가 있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의 여주인공 미헤타블은 영문 이름이 ‘mehtable’로 표기하는데, 구약 성서 창세기 36장에 나오는 동명의 인물은 ‘므헤다벨’이라고 부른다. (에돔의 왕 하달의 아내이자 마드렛의 딸이며 메세함의 손녀라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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