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에 소니에서 ‘루벤 플레셔’ 감독이 만든 슈퍼 히어로 영화. 마블 코믹스 ‘스파이더맨’의 대표적인 아치 에너미 중 하나인 ‘베놈’을 주인공으로 삼아 영화로 만든 것이다.
내용은 겉으로는 한량 같아도 실제로는 정의감이 넘치는 기자 ‘에디 브룩’이 거대 기업 ‘라이프 파운데이션’과 맞서다가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그 과정에서 여자 친구 ‘앤 웨잉’과 헤어져 완전 몰락했는데. 그로부터 수개월 후, 라이프 파운데이션의 ‘칼튼 드레이크’ 회장이 외계에서 온 생물체 ‘심비오트’로 생체 실험을 한다는 제보를 접수하고. 그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사무실에 잠입했다가 실험실에서 심비오트에게 습격당한 후, 자신의 육체를 심비오트 종족의 ‘베놈’과 공유하여 공생 관계가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원작의 베놈은 통제할 수 없는 힘이 형상화된 듯 거칠고 난폭하며 무자비해서 한 마리 야수 내지는 괴수 같은 이미지가 강했고, 기본적으로 숙주를 베놈 자신에게 집착하게 만들고. 자신의 욕망을 숙주에게 투영해 숙주를 자기가 원하는 데로 조종하며, 등장 작품에 따라 히어로와 빌런의 경계를 오고 가기 때문에 높은 인기를 얻었었다.
하지만 본작에서 묘사된 베놈은 원작의 베놈에 비해서 상당히 순화되어서 난폭한 면이 있긴 하지만 사람을 무차별적으로 해치는 건 아니고. 숙주인 에디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지 않으며, 에디에게 조언을 해주고 앤의 안위를 걱정하는 것 등등. 유순하고 인간적인 면이 강해졌다.
D&D의 가치관으로 비유를 하면, 원작의 베놈은 ‘카오스 이빌’인데 영화판의 베놈은 ‘카오스 굿’에 가깝다. 국내판 영화 포스터에는 ‘영웅인가, 악당인가’라는 글귀가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냥 영웅 맞다. 겉으로는 툴툴 거려도 속으로는 따듯한 츤데레 타입의 영웅이 됐다.
가치관이 바뀌었다는 것부터 시작해 세계를 지키겠다는 투의 대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올 정도라서 이 정도면 다크 히어로도 아니고. 왕도지향적인 슈퍼히어로다.
또 친해지기는 존나 쉬운 것처럼 묘사되어 기생수의 오른손이나 도라에몽 드립치는 게 괜히 그런 게 아니다.
독기가 빠져도 너무 빠져서 원작 베놈을 아는 사람이 보면 십중팔구 이건 내가 아는 베놈이 아니야! 라고 경악할 만한 수준이라서 원작 캐릭터와의 괴리감에 머리를 쥐어짤 수 있다.
근데 이게 오묘한 게, 원작을 모르고 본작만 보면 주인공 캐릭터로서는 나쁘지 않다는 거다. 정확히는, 생긴 것과 다르게 작중에서 보인 행적이 ‘귀여움’을 어필하고. 그게 통한다는 것인데 그 방증으로 귀여운 베놈 관련 팬아트가 양산되고 있다.
사실 원작 베놈이 매력적인 캐릭터인 건 맞는데. 원작 설정 그대로 적용하면 물리적으로 단독 주연 영화가 나오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그래서 소니가 베놈을 순화시키면서 내친 김에 전연령 등급 지향의 슈퍼 히어로물로 만들어낸 게 아닐까 싶다.
원작의 캐릭터보다 대중성은 더 올라간 경우에 속해서 이런 변화는 나름대로 존중해줄 만 하다고 본다.
‘아이언맨 3(2013)’의 ‘만다린’처럼 마블 유니버스에서도 파격적인 캐릭터 재해석이 나왔다는 걸 생각해 보면 꼭 원작 고증을 100% 지켜야 한다는 법은 없는 것 같다.
본작에서 진짜 문제시 되는 건 스토리의 개연성 부족이다.
정확히는, 캐릭터가 가진 갈등의 해소가 진짜 무슨 노래방 간주 점프 하듯 중간 과정 없이 순식간에 진행된다는 점에 있다. 이게 정말 극심한 부분이 후반부의 전개인데 베놈이 슈퍼 히어로로 거듭나는 씬이다.
갈등의 발생 < 심화 < 해소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심화 없이 발생 < 해소만 나오는 상태이고. 너무나 쉽고 빠르고 간단하게 바뀌기 때문에 작위적인 느낌마저 들게 한다.
갈등이 약하니, ‘악당인가, 영웅인가’ 이 광고 문구에 의미가 없어지고. 베놈이 가진 안티 히어로의 이미지가 깨져서 원작과의 괴리감을 더 크게 만들며, 스토리를 파고 들수록 그 깊이가 얕아진다.
하지만 원작 고증과 스토리를 제쳐 두고 오락 영화로서의 볼거리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충분히 볼만하다.
근육 빵빵한 베놈 전신 CG와 그 베놈이 펼치는 액션 씬은 확실히 볼만하다.
중반부의 오토바이 추격 씬 때는 고무 같은 재질의 신체 변형 능력을 활용한 베놈 밖에 할 수 없는 액션이 나와서 재미있고, 언론사 건물에서 라이프사의 요원+경찰 특수부대와의 싸움은 박력이 넘쳐흘렀다.
거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와 그 큰 몸으로 건물 외벽을 타고 올라가며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문자 그대로 베놈무쌍을 찍는다. 스파이더맨+헐크를 합친 느낌이랄까.
액션 씬 만큼은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보다 더 나을 정도다.
결론은 추천작. 원작과 괴리감이 큰 캐릭터 재해석과 개연성 없는 스토리가 문제이긴 하지만, 원작을 모르는 사람에게 한정하여 재해석된 캐릭터가 더 높은 대중성을 가졌고, 액션 퀼리티가 준수해 비주얼적으로 볼거리가 풍부해서 작품 자체의 완성도적인 부분에서 아쉬움이 좀 남아도 오락영화로서는 제값을 충분히 하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에서 역시나 ‘스탠 리’ 옹이 카메오 출현하신다.
덧붙여 후속작을 암시하는 쿠키 영상이 나오니 끝까지 보고 나오기 바란다.
덧글
그런데 문제는 이 플롯에 굳이 베놈이 들어가야 될 이유가... 베놈을 가져다가 스파이더맨 영화를 찍어버렸으니 원. 차라리 오리지널 캐릭터가 있었다면 훨씬 좋았을텐데 말이죠.
지금도 말이 많지만 저로서는 진짜 에머리히판 고질라를 본 기분이었습니다. 볼만한 괴수영화지만 굳이 고지라를 쓸 필요가 없었던 그 영화 말입니다...
그리고 찌질이 성격파탄자 에디브룩도 너무 착한 사람이 되어버렸구요. 원작에서도 개심하고 진짜 히어로로 성장하긴 하지만 그건 한참 뒤의 일이지 베놈으로 활약할때는 아니었거든요.
처음 보는 사람은 이야기 흐름이 구름점프식이니 벙~ 하고
그래도 흥했다니 제작스튜디오와 소니만 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