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에 ‘투믹스’에서 ‘봄청년’ 작가가 연재를 시작해 전 44화로 완결된 공포 만화.
내용은 프리랜서 공포 소설 작가인 ‘민희연’의 눈에는 귀신이 보여서 매일 같이 고생을 하는데, 어느날 우연히 만난 남자 ‘원빈’이 자신에게 호감을 품고 있지만 그의 잘생긴 외모가 빨간 문어 귀신 얼굴로 보여 썸 아닌 썸을 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편 스토리는 페이즈별로 바뀌는데 이게 좀 기복이 심한 편이다.
초반부는 여주인공 희연은 귀신을 볼 수 있는데 보는 능력 밖에 없어서 사건에 일방적으로 휘둘리고, 남주인공 원빈은 미남이지만 희연의 눈에는 문어 귀신으로 보여서 남녀 주인공으로서 제대로 된 썸을 타지 못한 채 엇갈리는 걸 헤프닝을 그리고 있어서 극 전개가 답답한 구석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극 전개가 더딘 것인데. 이야기의 진전이 잘 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물론 그게 복선이 깔려 있는 것이라 이유 있는 답보 상태지만 밀고 당기는 게 아니라 밀고 밀기만 해서 흥미가 짜게 식는다.
결과적으로 초반부는 줄거리랑 설정만 썸 타는 거지, 본편 내용은 페이크 썸이라서 남녀 주인공의 이야기는 흥미도가 떨어지지만, 중반부에 들어서서 감찰자 ‘신라연’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작중 감찰자는 저승사자를 도와서 이승과 경계의 것을 감찰하는 인간 능력자로 나오는데. 라연의 권유로 희연도 감찰사가 되어서 귀신에 얽힌 사건 사고를 해결하게 된다.
감찰사는 감찰을 하고, 퇴마는 ‘저승차사’가 맡아서 분업을 하는 걸 기본으로 해서, ‘꿈 < 잿빛 공간 < 허의 경계’ 등 3개로 구분된 이공간에서 희연이 귀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여 귀신과 접촉해 ‘공명’하여 귀신의 사연을 체험하고, 그 본질을 파악하는 ‘헤아리기’를 통해 일종의 정화를 시켜 귀신 도우미로 삼거나 성불시킨다.
피투성이 소녀 귀신 ‘설’이 마스코트 캐릭터처럼 나오고, 승차자들이 정장 입은 미청년인데 처형용 도끼 들고 귀신들을 썰어버리는 것과 라연이 데리고 다니는 신수가 4눈박이 오드아이 백호로 나와서 인상적이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이 이해의 영역에 들어서 판타지화된 시점에서 괴신 공포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퇴마물로 장르가 바뀐다. (엄밀히 말하자면 장르 카테고리가 공포/스릴러가 아니라 공포/판타지에 가깝다)
거기까지만 딱 보면 감찰사 라연과 희연의 더블 콤비 퇴마행이 될 것 같은데.. 이게 또 후반부로 가면서 한 번 더 바뀐다.
희연에게 얽힌 귀신이 실체를 드러내 위협을 가하고. 희연은 그동안 알게 된 여러 동료들의 도움을 받고 감찰자 능력을 사용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 과정에서 초반부에 나온 내용들이 실은 다 떡밥이었고 그걸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회수하면서 사건의 진상에 도달해 떡밥 회수율은 높은 편이라 이야기 자체의 만듦새는 좋은 편이다.
단, 그게 어디까지나 여주인공으로서 희연의 이야기에 한정되어 있다. 작품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희연 개인의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뚜렷하지만 그것을 위해 다른 많은 것이 희생됐다.
감찰자의 퇴마물 설정과 원빈과의 로맨스다. 이 두 가지는 희연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퇴마물 설정이야 비록 희연이 말이 좋아 감찰자가 됐지 퇴마행을 펼치진 못하지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되니 그렇다 쳐도. 원빈과의 로맨스는 로맨스의 ‘로’자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빈약하다.
남녀 주인공으로서 교감을 나눌 기회가 거의 없었고, 원빈은 끊임없이 희연에게 호감을 보이지만, 반대로 희연은 원빈에게 끝까지 호감을 보이지 않으며, 원빈의 존재 자체가 희연에게 얽힌 귀신과 깊은 관련이 있는 것으로만 나와서 페이크 남자 주인공에 가깝다.
작화는 연재 초반에 인물은 평범하고, 컬러는 일부분만 들어갔고, 배경은 뭔가 그리다가 만 듯한 희미한 선만 실루엣만 보여서 작화에 힘을 빼도 너무 많이 빼서 디테일이 떨어지는데 연재 1년차에 접어들 무렵인 후반부로 건너가면 조금 나아진다.
특히 배경 부분이 초반부와 후반부가 비교될 만 하다.
반대로 후반부 때는 없어지지만 초반부 때 있던 작화 특징이 하나 있는데. 작중에 나오는 귀신을 빨강, 파랑 등의 단색으로 채색해 산 사람의 하얀 피부와 대비를 이루는 점이다.
작화에 힘을 뺀 것과는 또 별개로, 웹툰으로서의 기본 구도는 좋은 편이다. 캐릭터 시점이 한 방향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내용 진행에 따라 계속 바뀐다.
진짜 작화 밀도 낮은 작품은 캐릭터가 앞만 보는 정면 샷만 주구장창 넣어서 평면적이라는 걸 생각해 보면, 본작은 의외로 입체적인 구석이 있다.
결론은 평작. 귀신이 보이는 영안을 소재로 해서 공포물로 시작했다가 퇴마 판타지로 장르가 바뀐 작품으로 여주인공 관점으로 보면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갖췄고 떡밥 회수율이 높아서 이야기 자체의 만듦새는 괜찮지만.. 줄거리를 보면 남자 주인공과의 로맨스가 부각될 것 같은데 실제 본편에서는 로맨스의 비중이 떨어지다 못해 남자 주인공에 페이크 주인공화됐고, 장르가 퇴마물로 바뀌었다고 해도 퇴마행이 나오는 게 아니라서 중간에 추가되는 설정들이 흥미를 끌긴 하나, 제대로 활용되지는 못해서 좀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음식으로 비유하자면, 빵, 설탕, 계란, 프라이팬이 있어서 프렌치토스트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데 그냥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맨 빵을 프라이팬에 살짝 데워서 우적우적 씹어 먹는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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