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머스를 뒤덮은 그림자 (インスマスを覆う影.1992) 러브 크래프트 원작 영화




1992년에 TBS에서 ‘코나카 치아키’ 감독이 만든 TV용 단편 드라마. ‘H.P 러브 크래프트’의 단편 소설 ‘인스머스의 그림자’를 원작으로 삼아 일본 특촬 드라마로 만든 것으로,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방송됐던 TBS의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기미아 브레이크(ギミア・ぶれいく)에서 사이드 코너인 ’코너 드라마‘로 방영했었다.

내용은 프리랜서 사진 기자인 ‘히라타’가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물고기 얼굴의 남자와 엇갈린 뒤, 여행 잡지사에 취직해서 사내 사진 자료를 훑어보다가 쇠락한 어촌 ‘인스머스’ 관련 사진을 보고 흥미가 생겨 편집장을 설득해 그곳으로 로케이션 촬영을 하러 갔다가, 자신에게 매혹적인 시선을 보내는 과부와 만나고 괴이한 일을 겪으면서 자신이 가진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는 이야기다.

본래 인스머스의 그림자 원작에서는 주인공이 여행과 골동품 수집을 즐기는 캐릭터였지만 본작에서는 사진 기자로 바뀌어 본편 스토리 내내 사진을 찍어대고. 본래 어머니의 고향인 아캄으로 가는 버스를 탔던 게 본작에서는 아캄이 기차역으로 갈 수 있는 곳으로 나오고 처음 목적지가 인스머스인데 현지인이 아니라고 버스를 못 타서 오리지날 캐릭터인 ‘타마미’의 차를 타고 이동하는 차이가 있다.

원작의 NPC 포지션인 술주정뱅이 노인의 역할을 대폭 축소시키고. 주인공의 어머니와 타마미를 신 캐릭터로 넣어서 좀 뜬금없이 로맨스를 부각시켰다.

근데 사실 타미미와의 로맨스는 살짝 간 보는 수준일 정도로 분량이 상당히 짧아서, 좀 어거지로 등장시켜 남녀 커플로 엮은 느낌이 강하게 든다.

오히려 주인공의 어머니 쪽이 중요 캐릭터로 나와서 존재감을 어필한다. 어머니인 줄 모르고 썸을 타다가,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어머니란 사실을 알게 돼서 뭔가 근친상간적인 관계의 느낌이 들게 한다. 어찌 보면 이게 일본 드라마답다면 일본 드라마답다고 할 수 있지만 말이다.

스토리적인 부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포인트는, 주인공이 딥 원의 후손이라는 출생의 비밀이 하이라이트씬 때 밝혀지는 것은 원작과 같은데. 거기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이 딥 원의 후손이란 단서가 주어지면서 천천히 각성해 나가는 내용이 들어갔다는 점이다.

즉, 출생의 비밀이 중요한 반전이 아니라 그걸 중심으로 본편 스토리 자체를 재구성한 것이라서 주인공 자체가 보통 인간으로 묘사되는 게 아니라,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좀 이상한 인간으로 묘사되었으며 배우의 괴연이 그걸 뒷받침해줘서 괴기한 느낌이 잘 살아있다.

그 때문에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을 때 경악하며 절규하는 게 아니라, 저항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원작과는 또 다른 여운을 안겨준다.

비주얼 쪽으로는 90년대 일본 드라마라서 촬영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듯, 특수 분장과 연출은 현재 관점에서 보면 다소 구린 편에 속한다.

인스머스 주민들이 수상한 행동을 보일 때 빨간 조명, 녹색 조명을 아래쪽에서부터 비추는데. 한국으로 치면 딱 ‘토요 미스테리 극장’ 수준이다.

작중에 나오는 ‘딥 원(심해인)’은 여행 잡지사 내 사진 자료에서는 생선 머리를 달아 놓은 것으로 나오고. 인스머스 내에서 조우하는 딥 원은 반인반어와 어인. 2가지 형태가 있는데 전자는 머리카락이 있고 이목구비는 뚜렷한데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하관과 목이 주름진 모습, 후자는 대머리에 양서류 눈이 돌출된 주름진 얼굴로 묘사돼서 분장 상태가 좋지 않다. 어찌된 일인지 굽은 척추와 비늘 피부의 특징은 구현되지 않았다.

머릿수가 많지만 움직임이 느려 터져서 전혀 무섭지 않다. 원작에서는 딥 원끼리 텔레파시로 대화를 하는 능력도 있지만 본작에서는 삭제됐다.

원작처럼 주인공이 딥 원의 피를 이어 받아 ‘인스머스의 얼굴’ 증상을 겪는 게 본작에선 사진으로 구현됐는데. 목에 아가미가 달리고 이빨이 뾰족해지는 게 전부인 데다가, 그 모습을 드라마 포스터에 그대로 노출시켜 반전이라고 할 것도 없게 만들어 되게 애매하다.

딥 원이 섬기는 ‘다곤’ 같은 경우는 해안가에 출몰한 거대한 검은 그림자로만 묘사돼서 그 실체가 뚜렷하게 나오지 않아서 임팩트가 약했다.

온전한 TV 드라마 한편이 아니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드라마 코너로 방영된 단편 드라마라서 퀼리티의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사실 본작에서 인상적인 건 러브 크래프트 소설에 나온 주요 마을인 던위치, 아캄, 킹스포트, 인스머스의 한자 표기가 나온다는 점이다.

던위치는 단우시(壇宇市), 아캄은 적무(赤牟), 킹스포트는 왕항(王港), 인스머스는 음주승(蔭洲升)으로 표시된다. 한문 표기를 보면 현지화시킨 것 같은데 표지판에서 영어와 병행 표기를 한다.

아캄이 적무인 게 일본어로 빨강(赤)이 ‘아카’. 그리고 뒤에 ‘무’를 붙여서 ‘아카무’라고 발음하니 그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 뭔가 되게 이상한데 재밌는 번안이다.

결론은 평작. 원작에 나온 인스머스의 불온한 분위기를 일본 어촌으로 어레인지해서 분위기 조성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원작과 약간 다른 본작만의 각색된 스토리가 흥미로우며, 주인공 배우 연기도 좋아서 몰입해서 볼만한 부분도 있지만.. 딥 온의 특수 분장이 허접하고 연출이 너무 구려서 전반적인 비주얼 퀼리티가 낮아서 일본 최초의 러브 크래프트 소설 드라마화라는 유니크함을 받쳐주지 못해 단편 드라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을 만든 코나카 치아키 감독은 본작의 각본도 맡았고, 소설판도 집필했다. 소학관에서 나온 ‘크툴루 괴이록(クトゥルー怪異録)’에 드라마판 제목 그대로 실렸다.

덧붙여 본작에서 주인공 히라타 배역을 맡은 배우는 영화배우와 영화감독을 겸하는 ‘사노 시로’다.

추가로 본작의 오리지날 씬 중에 향토관 관장이 소유한 ‘네크로노미콘’이 나오는 장면이 있는데. 주연 배우 사노 시로가 수제로 만든 소품이라고 한다.

크툴루 신화 원작에 나온 것처럼 사람 가죽으로 만든 책으로 묘사된 게 아니고 그냥 보통 책에 겉표지에 영어로 네크로노미콘이라고 친절하게 쓰여 있어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덧글

  • 잠본이 2018/09/02 16:22 # 답글

    코나카 치아키 본인이 알아주는 러브크래프트 덕후라 이후 자기가 각본으로 참가한 울트라맨 티가나 디지몬 등에서도 오마주를 슬쩍 넣곤 했는데 관련 인터뷰에서도 이 작품을 자기의 원점으로 회상하더군요. 뭔가 프로작품이라기보단 아마추어를 벗어나기 시작한 졸업작품이라는 느낌이랄까.

  • 잠뿌리 2018/09/02 19:15 #

    특수 분장, 연출이 엄청 구려서 좀 아마추어 티가 많이 나긴 했습니다. 다만, 그렇기 때문에 신선한 구석도 어느 정도 있었죠.
  • 로그온티어 2018/09/02 19:02 # 답글

    이 작품을 자막없이 봐서 (그것도 왠 인터넷 아카이브에서 봤습니다.) 뭔 내용인지 모르고 봤기에 슬쩍 요청드렸습니다;; 아무튼, 이걸 보면서 일본이 해안가가 많은 지방이라서 그런지 혹은 요괴와 미신이 문화에 녹아든 지역이 많아서 그런지 몰라도, 일본이 은근 코스믹호러와 걸맞는 느낌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나저나 혹시 이런 자료를 구하는 오프라인 매장이나 온라인 사이트같은 게 있는 건가요? 워낙 많은 지식을 가지시고, 마이너한 작품도 발굴하시기에 저는 그 소스출처가 궁금합니다. 저도 보게요 (...)
  • 잠뿌리 2018/09/02 19:16 #

    이 작품은 유튜브에서 봤습니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 레이븐가드 2018/09/14 23:29 # 답글

    네크로노미콘 영어판은 간행이 안 되고 낱장(지금으로 치면 정발 없이 텍본만 나도는 셈)으로만 있다 하니... 그 관장이 개인적으로 제본했다 치면 표지가 허접해도 설정상으로는 맞을 듯;;
  • 잠뿌리 2018/09/15 20:12 #

    표지는 영어인데 내용은 일어인 것 같습니다. 배경이 일본 어촌이라서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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