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야일야 이야기(千夜一夜物語..1969) 2020년 애니메이션




1969년에 무시 프로덕션에서 ‘데츠카 오사무’ 제작, ‘야마모토 에이이치’ 감독이 만든 성인 애니메이션. 아니메라마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자 일본 최초의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다. 일본 헤랄드 영화가 배급을 맡았다.

내용은 가난한 물장수 ‘알딘(알라딘)’이 바그다드의 노예 시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미녀 ‘밀리암’을 보고 한눈에 반해서 태풍이 불어 혼잡한 틈을 타 밀리암을 데리고 도망쳐 사랑을 키우지만, 야심찬 관리 ‘바도리’의 사주를 받은 ‘40인의 도적’에게 붙잡힌 뒤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는데 밀리암은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나고. 실의에 빠진 알딘이 여러 가지 사건을 겪다가 재보를 얻어 부유한 상인 ‘신밧드’를 자칭하게 됐는데. 그로부터 15년 후 바그다드로 돌아와 밀리암이 낳은 친딸 ‘쟈리스’를 발견하고 술탄과 왕위를 건 승부를 벌이는 이야기다.

본편 스토리는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를 베이스로 삼고 있어 ‘알라딘/램프의 지니, 마법의 양탄자’, ‘신밧드/로크 새, 사이클롭스’,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등이 주요 설정으로 나오지만, 아라비안나이트와 관계가 없는 여자만 사는 섬(女護ヶ島=일본의 매춘섬)과 구약 성서 창세기의 바벨탑도 나와서 순수 아랍 판타지보다 퓨전 판타지 느낌도 살짝 난다.

본편 내용은 알딘의 일대서사시인데 줄거리 요약이 길 수밖에 없는 건 본편 스토리가 지금 현재로 치면 ‘의식의 흐름’처럼 사건이 끊이지 않고 계속 발생해 스토리가 바뀌기 때문이다.

알딘이 밀리암과 야반도주로 시작했다가 도로 잡혀와 죽을 뻔 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 40인의 도적 보물을 훔치러 가고, 하늘을 나는 목마를 타고 날아다가다가 여인만 사는 섬에 불시착하고, 바다에 표류했다가 상인의 배에 구조됐는데 로크 새를 만나 섬에 난파해 외눈박이 거인 사이클롭스에게 잡혀 먹을 뻔하다가, 음식, 돈, 시종 등 생각한 것들이 현실화되는 신비로운 난파선의 주인이 되고, 술탄과 왕위를 놓고 진귀한 보물 경쟁을 하고, 쟈리스가 친딸인지 모르고 하렘에 넣으려 했다가 치정극을 찍고, 바벨탑을 쌓아 올리고, 쿠데타로 왕위를 잃고 사형당할 위기에 처하는 것 등등. 온갖 이벤트가 넘쳐흐른다.

알딘쪽 이벤트만으로도 스토리가 넘쳐흐르다 못해 터질 것 같은데. 알딘이 친아버지인 줄 모르고 원수인 바도리의 손에 자란 ‘쟈리스’가 목동인 ‘아스란’과 사랑에 빠지는데. 그게 실은 마왕녀 지니가 아스란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마왕 진이 훼방을 놓아서 쟈리스와 엮어준 것이라서 지니와 진이 옥식각신 다투는 이야기까지 나와서 진짜 스토리 분량이 미어터진다.

러닝 타임이 2시간을 훌쩍 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본편 스토리를 수많은 이벤트로 꽉 채워 놓아서 스토리 전개가 매우 빨라서 늘어지는 구간은 없다.

좋게 보면 내용물이 꽉 차서 볼거리가 풍성하지만, 안 좋게 보면 완전 과유불급의 끝판왕이라 너무 많은 이야기를 어거지로 쑤셔 넣으면서 개연성을 상실해 스토리의 디테일과 완성도가 떨어진다.

본편에 그렇게 많은 스토리를 쑤셔 넣고선 부와 권력의 무상함을 느껴 빈 몸으로 여행을 떠나는 엔딩으로 마무리 짓는데 이게 제 딴에는 풍운아 알라딘으로 묘사하고 싶었던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동안 벌려 놓은 거 제대로 수습하지 않고 손절하듯 대충 끝내버린 자기편의적인 결말이다.

그게 사실 작중 알딘의 목표는 부와 권력을 얻는 게 아니었고. 모든 사건의 시작은 밀리암과의 사랑이며, 작중 신밧드를 자처하며 바그다드로 돌아왔을 때. 죽은 밀리암을 쏙 빼닮은 쟈리스가 친딸인지 모르고 마음에 두면서 벌어지는 치정극이 핵심적인 내용이라서 그렇다.

순수하게 모험이나 여행을 즐기는 타입도 아니고, 어쩌다 보니 모험을 하게 된 케이스라서 주인공 캐릭터로서의 매력은 떨어지지만, 알딘이 가진 비극과 희극을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인간 드라마 자체는 몰입해서 볼만하다.

사실 본작의 재미는 스토리보다는 비주얼 쪽에서 찾아온다.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 독특한 기법을 많이 사용했다.

디즈니사의 아이웍스가 개발한 기법을 1937년에 옛 방앗간과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다면/다중 촬영기 ‘멀티 플레인 카메라’ 기술을 도입하고 부분적으로 실사 합성 기술까지 넣었다.

배경과 등장인물의 컬러를 일체화시켜서 움직이는 영상을 만든 것부터 시작해 만화 같은 컷씬을 집어넣고, 연필 드로잉으로 그려내는 것을 편에 영상화시키며, 바그다드의 풍경과 탑의 전경을 미니어처로 만든 것과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의 실사를 본편에 합성한 것 등등. 후대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이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게 인물, 배경 컬러 일체화인데 이게 어떤 느낌이냐면 배경과 인물 라인(테두리)를 노란색으로 칠하고 그 이외에 다른 부분은 검게 칠해서 배경, 인물의 라인을 강조한 것이라 뭔가 8비트 컴퓨터 게임의 그래픽을 연상시켰다.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표방하고 나온 만큼, 성애의 비중이 어느 정도 있긴 한데. 직접적인 성애 묘사는 거의 없고 거의 대부분 추상적으로 묘사한다. 직접적인 장면이 나온다고 해도 그 수위가 가슴 노출과 키스 정도 밖에 없다.

그나마 작중에서 수위가 좀 있다 싶은 부분은 중반부에 나오는 여자들만 사는 섬 씬이다.

지명 이름을 보면 일본의 매춘섬을 베이스로 한 것 같은데 실제 본편에서는 알몸 여인들이 우글거리는 섬으로 알딘이 유일한 남자라 하렘을 즐기게 되는데. 여인들의 정체가 실은 뱀이라서 알딘이 진실을 알고 도망치는 내용이 나온다.

여자들의 섬 여왕이 알몸 여인에서 뱀으로 변신하는 걸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것과 15년 후의 이야기를 다룬 후반부에서 마왕녀 지니의 디자인과 변신 씬이 기괴하면서도 에로하다. 마왕녀 지니가 가슴을 모으는 동작으로 가슴 달린 말로 변신하거나, 암사자로 변신해 엉덩이를 흔들며 숫사자를 유혹해 아스란을 위기에서 구해주는 씬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결론은 추천작. 본편 스토리에 지나치게 많은 이벤트를 끼워 넣고는 정리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생각나는 대로 마구 진행해서 개연성이 부족하고 완성도가 떨어지지만, 그 대신 본편 스토리 자체는 내용이 꽉 차 있고 스토리 전개가 빨라서 러닝 타임이 2시간이 넘는 데도 불구하고 늘어지는 구간이 하나도 없으며, 알딘의 일대서사시를 가장한 파란만장한 인간 드라마가 몰입해서 볼만해 스토리에 일장일단이 있고. 후대의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기법이 많이 나와서 비주얼적인 볼거리가 있어서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의 흥행 성적은 배급 수익 약 2억 9000만엔을 거두어 대히트를 쳤다. 그래서 아니메라마 3부작이 나왔지만 후속작 ‘클레오파트라(1970)’ 때 흥행 참패를 겪고, 마지막 작품 ‘슬픔의 벨라돈나(1973) 때도 흥행에 실패해 그 여파로 무시 프로덕션이 도산한다.

덧붙여 토에이에서 이 작품에 편승해 같은 해인 1969년에 배급한 작품이, 레오 프로덕션에서 ‘레오 니시무라’ 감독이 만든 ‘극화 우키요에 천일야(劇画 浮世絵千一夜)’다.

천야일야 이야기가 성인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지만, 등급 분류 때 성인 영화 지정을 받지 않아서 ‘극화 우키요에 천일야’가 기록상으로는 일본 성인용 애니메이션 1호가 됐다. (천일야화는 1969년 6월 14일 개봉, 극화 우키요에는 1969년 10월 29일 개봉이다)

추가로 본편의 하이라이트씬을 장식하는 바벨탑 붕괴 후, 지면에 남은 주춧돌 잔해 속에 뜬금없이 ‘메이드 인 저팬’ 로고를 박아 넣은 건 누구 센스인지 모르겠다.


덧글

  • 시몬 2018/08/27 20:35 # 삭제 답글

    예전에 유튜브에서 본적이 있는데 스토리가 정신없이 진행되는것만 빼면(근데 또 늘어질땐 한없이 늘어짐) 꽤 재밌는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데츠카 오사무라는 이름값에는 못 미친다고 보지만요.
    이거 볼 땐 몰랐는데 나중에 도서관에서 리처드 버튼 판 아라비안 나이트 읽어보니까 지니와 진, 쟈리스와 아스란이야기도 오리지널이 아니라 원전에 있는 에피소드더라구요. 소장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잠뿌리 2018/08/29 12:59 #

    작품 완성도는 사실 의문의 여지가 있긴 한데, 데츠카 오사무 최초의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란 점에 의의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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