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워라! 이쿠사 1(戦え! イクサー1.1985) 2019년 애니메이션




1983년에 일본 쿠보 서점(久保書店)의 성인 만화 잡지 ‘레몬 피플’에서 ‘아란 레이’가 연재한 동명의 단편 성인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1985년에 히라노 토시키 감독이 만든 SF 액션 OVA. 1985년에서 1987년까지 2년에 걸쳐 만들어져 전 3편으로 완결됐다.

내용은 외계의 크툴루족이 냉동 수면 상태에서 자신들이 정착할 별을 찾아다니다가 기계에서 태어난 생명체 ‘빅 골드’의 폭주로 지구를 침략하자, 크툴루를 수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여성형 인조인간 ‘이쿠사 1’이 빅 골드에 반기를 들어 크툴루족과 적대시하면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지구인 소녀 ‘카노 나기사’를 파트너로 삼아 이쿠사 로보에 탑승해 싸우는 이야기다.

본작의 원작 만화는 단편 만화인데 완결이 제대로 나지 못해 미완결로 끝난 작품이라서, 3편짜리 OVA로 재탄생한 본작은 원작의 주인공인 이쿠사 1과 카노 나기사 등 등장인물의 외모 일부만 재사용하고 다른 부분은 전부 새로 만든 작품이라 문자 그대로 오리지날 애니메이션이다.

작중 인물의 성별이 여자 쪽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남자는 나기사의 아버지와 지구 방위 연합군 등의 단역들만 나오고. 주인공 일행과 악당을 모두 포함해 주조연 전원이 여자들로 나와서 작중 커플링도 여자x여자가 주를 이루고 있어 요즘 용어로 치면 백합물이다.

원작은 성인 만화지만 본작은 약간의 누드 씬이 나오긴 하나 직접적인 성애 장면은 없고. 촉수가 나오기 하나 위협에 그치거나 직접적인 공격 씬이 나오지 않아서 보기보다 선정성은 약한 편이다.

후술할 거대 로봇의 보조 파일럿이 알몸으로 탑승하긴 하는데 알몸이라고 해도 윗부분만 보여주고. 작중에 나오는 로봇 배틀이 워낙 강렬해서 누드가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다.

주인공 커플은 원작 만화와 같은 이쿠사 1과 카노 나기사로 서로 역할 분담과 포지션이 확실해서 캐릭터 밸런스가 잡혀 있다.

이쿠사 1은 본작의 액션을 책임지면서 크툴루족의 강적들을 상대로 단 혼자서 맞서 싸우면서 비장함을 연출하고, 카노 나기사는 친구와 부모님을 잃고 끊임없이 크툴루족의 표적이 되어 위기에 처하면서 극의 긴장감을 이끌어낸다.

주인공 일행은 이쿠사 1과 카노 나기사. 단 두 명에 불과한데 크툴루족인 코발트, 세피아, 이쿠사 2, 빅 골드 등의 주요 간부와 최종 보스 이외에도 갖가지 외계 생명체와 로봇 병기, 거대 요새 등을 총 동원된다.

상공에서 거대 요새가 지상 폭격, 거대 로봇의 파괴 행위로 도시가 초토화되는데 괴물들이 인간에게 기생하기까지 해서 지구 침략 수준이 아니라 지구 멸망 수준으로 묘사된다.

특히 괴물들 묘사가 하드해서 공포물을 방불케 한다.

인간 폼에서 괴물로 변신할 때 가죽이 찢기고 터지는 연출이 나와서 엄청 살벌하게 그려지고, ‘인간에게 기생한다’는 설정을 잘 살려서 가족과 친구, 이웃 등 주변 사람들이 괴물로 변신해 위협을 가해오는 게 꽤 압박이 크다.

어차피 괴물들 나와봤자 이쿠사 1 뜨면 다 털리긴 하는데 그 바로 전에 나기사가 위기에 처하는 상황이 호러블한 것이다.

표지의 미소녀들만 보고 미소녀 모에물로 생각하고 보면 ‘왓 더 뻑?’ 소리가 절로 나면서 뒤통수가 얼얼할 거다.

캐릭터 디자인 자체는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표준형 미소녀들로 나오는데, 단순히 외형적인 부분의 미모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적절히 넣어 비장하고 간지나는 묘사를 해서 이쿠사 1, 이쿠사 2 등 주요 전투 타입 캐릭터들은 예쁘고 귀여운 게 아니라 멋있다.

지구 방위 연합군도 등장하긴 하지만 제대로 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크툴루족한테 탈탈 털리기만 하는데. 이게 사실 괴수 특촬물에 대한 오마쥬라서 그렇다.

실제 괴수 특촬물에 등장한 지구 방위군의 병기들이 본작에 등장한다. 드릴 달린 공중 전함이라던가, 열선포(66식 메사 살수 광선차)가 거기에 해당한다. (66식 메사 살수 광선차는 ‘프랑켄슈타인의 괴수 산다 대 가이라(1966)에서 처음 나왔던 가상의 병기다)

액션은 정말 생각 이상으로 괜찮다.

본작의 액션을 책임지는 이쿠사 1은 인조인간으로 비행, 우주 비행, 항성간 항행, 이공간 출입 등등. 이동 관련으로 만능에 가까운 능력을 가졌고 양팔에서 출수하는 에너지 블래스트, 건담의 빔 샤벨/스타워즈의 라이트 세이버 느낌 나는 빔 소드를 사용해 거침없이 싸우며, ‘이쿠사 로보’라는 거대 로봇에 탑승해 나기사의 보조를 받아서 크툴루족의 거대 로봇과 맞붙기까지 해서 액션의 종류도 다양하고 묘사의 밀도도 높다.

이쿠사 로보도 꽤 인상적이다. 가슴이 달린 여성형 로봇인데 생체 메카닉이 장갑을 뒤덮은 형상이라 데미지를 입으면 피 같은 액체를 흘리고, 증폭된 감정에 의해 일시적으로 파워업해서 엄청 치열하게 싸운다.

로맨스 요소도 있는데 앞서 말했듯 남자 캐릭터가 한 명도 없어서 여x여 커플이 메인이다.

처음부터 커플로 나오지만 순차적으로 사망하는 코발트, 세피아. 라이벌 기믹으로 나와서 온갖 나쁜 짓은 다 했지만 주인공 2명 모두와 애증의 관계를 맺은 이쿠사 2, 로봇 조종 파트너로 출발했다가 우정 이상의 관계로 발전하지만 끝내 맺어지지 못한 주인공 커플인 이쿠사 1와 카노 나기사 등등. 주조연을 막론하고 비애적인 백합물을 연성하고 있다.

특히 본편 스토리의 엔딩 때 시공을 리셋하면서 나기사는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지만 이쿠사 1과의 기억을 잃어서, 혼자만 모든 걸 기억하는 이쿠사 1이 애처로운 눈으로 나기사를 지켜보다가 지구를 떠나는 씬은 비애의 절정을 찍는다. (어쩐지 강철천사 쿠루미로 잘 알려진 ‘카이샤쿠’ 원작 만화 ‘신무월의 무녀(2004)’가 이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결론은 추천. 겉으로 보면 단순한 미소녀물 같지만 실제 본편 내용물은 미소녀물인 것을 넘어서 SF+괴수+공포+로봇+액션+로맨스(GL) 등 다양한 장르를 접목시켰고 각각의 묘사 밀도도 높았던 수작.

여담이지만 본작은 사운드 트랙, 게임북, 소설, 캐릭터 피규어 등등. 멀티 컨텐츠가 다양하게 나왔다.

덧붙여 본작은 OVA로 시리즈화됐다. 시리즈 넘버링은 ‘싸워라! 이쿠사 1(1985) < 모험! 이쿠사 3(1993) < 전자소녀 이쿠세리온(1995)’ 이 순서다. (이쿠사 1의 1은 시리즈 넘버링 숫자가 아니라 작중에 나오는 인조인간 이쿠사의 넘버링으로 본작에서 주인공이 이쿠사 1. 라이벌이 이쿠사 2였고 후속작의 주인공이 이쿠사 3인 것이다)

추가로 본작의 속편인 ‘모험! 이쿠사 3’는 이후 2010년에 닌텐도 DS용으로 발매한 ‘슈퍼로봇 대전 L’에 참전했는데. 본작의 주인공과 라이벌들도 이쿠사 3 관련 멤버로 등장한다. 본작에서 이쿠사 1에게 패배해서 사망한 이쿠사 2가 슈퍼로봇 대전 L에서는 적으로 나왔다가 아군으로 합류하는 캐릭터가 됐다. 그래서 원작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이쿠사 1, 2, 3호기의 합체기까지 나온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에서 크툴루족이 지구 침공 때 지켜보던 군중 중에 기동전사 Z건담의 카미유 비단과 화 유이리가 깜짝 출현하고, 지구 방위 연합군 대원들 헬멧 디자인이 마크로스의 파일럿 헬멧인 것 등등. 원작을 알고 보면 재미난 패러들이 있다.


덧글

  • 먹통XKim 2018/08/26 21:50 # 답글

    25년전쯤 무자막 비디오로 본 추억이 있죠
  • 잠뿌리 2018/08/29 12:56 #

    오래된 작품이라 슈로대 L에 참전했을 때 반가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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