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벨라돈나 (哀しみのベラドンナ.1973) 2019년 애니메이션




1973년에 ‘무시 프로덕션’에서 야마모토 에이이치 감독이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 19세기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Jules Michelet)가 1870년에 발표한 논픽션 역사서 ’마녀(La Sorcière: The Witch of the Middle Ages)‘를 원작으로 삼아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것이다. (원작 역사서는 한국에서도 2012년에 ’마녀‘란 제목으로 정식 발간된 책이다)

내용은 중세 시대 프랑스의 한 마을이 교회와 영주가 지배 하에 놓여 있었는데, 젊은 남녀 ‘쟝’과 ‘쟌느’가 결혼식을 올렸지만, 쟝은 가난한 농부라서 형편이 어려워 영주에게 조공을 바치지 못해 그 대가로 쟌느가 영주에게 처녀를 빼앗기고 그의 부하들에게 차례대로 능욕되어 집으로 돌아왔다가, 어느날 밤 악마가 눈앞에 나타나 끊임없이 유혹을 걸어오고 남편 쟝이 처한 어려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신비한 힘을 얻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작은 아니메라 3부작의 최종작으로 애니메이션 로마네크스크를 표방하고 있다. 앞서 나온 아니메라마 1부인 천일야화(1969), 2부인 클레오파트라(1970)과 전혀 다르게 오락성을 완전 배제한 작품이다.

원작인 ‘마녀’는 마녀의 탄생과 기원을 다루면서 중세 시대 종교 재판과 마녀를 통해서 중세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한 논픽션 역사서인 반면. 본작은 ‘잔다르크’에서 따온 ‘쟌느’를 여주인공으로 삼은 픽션이다.

작중 쟌느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신비한 힘을 얻어 쟝을 돕기 위해 대금업을 했지만 영주의 부인의 눈 밖에 나서 악마로 내몰려 마을 밖으로 쫓겨나 깊은 산중에 들어갔다가, 다시 재회한 악마를 받아들여 진정한 마녀가 되어 흑사병으로 죽어 가는 마을 사람들을 약초로 치료해주어 밤마다 사바쓰를 개최하고. 종극에 이르러 자신을 같은 편으로 만들려던 영주의 모든 제안을 거부해 마녀로서 화형을 당한다.

도입부부터 쟌느가 화형 당하고 쟌이 뒤늦게 쟌느를 구하러 갔다가 창에 찔려 죽는 씬으로 시작하는 만큼. 본편 스토리도 굉장히 암울해서 그 내용만 놓고 보면 대중성이 떨어지다 못해 아예 척을 지고 있다.

비극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현실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고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라서 감정 이입을 하고 보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다.

보는 사람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만족감에만 집중한 것 같다.

작품 자체는 성공시켜보겠다는 의지보다, 어차피 망할 바에 우리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야 만다! 라는 의지가 더 크게 느껴졌다.

실제로 본작은 그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봐도 애니메이션계에 다시없을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다. 그게 스토리적인 부분의 시도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자체의 기법과 연출적인 부분에서의 시도다.

본작은 애니메이션으로서의 정체성에 의문이 들 정도로 셀화의 사용율이 적다. 움직이는 화면이 최소화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씬이 그림을 한 장 두고 카메라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움직여 길게 보여주면서 사전에 미리 녹음해 둔 보이스 더빙을 추가했다.

더빙한 보이스가 그림 속 내용과 일치하게 철저한 계산 하에 만들었고, 그림 한 장 한 장을 다 일러스트급으로 그렸으며, 일부 연출에서는 종이에 그린 그림을 수채화로 색을 칠하거나. 유화를 그리는 듯한 구도로 페인팅 애니메이션 기법을 사용해 극 전개와 함께 실시간으로 그림이 완성되는 방식이 도입돼서 화보집이나 미술전을 보는 느낌마저 줘서 굉장히 이국적이다.

분명 캐릭터 디자인을 보고 성우 더빙을 들어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인데, 기법, 연출은 전혀 일본 애니메이션답지 않아서 파격적으로 다가온다.

연출적으로는 현실과 환상을 교차시키면서 쟌느의 심상 세계를 화려하게 그리고 있는데. 이게 좋게 보면 예술적이지만 안 좋게 보면 보통 사람은 다소 이해하기 힘든, 괴상한 센스라서 좀 컬트적인 구석이 있다.

앞선 천일야화, 클레오파트라도 이해 불가능한 연출이 나와서 아니메라마 3부작이 다 그렇긴 한데. 본작은 특히나 그게 더 심하다.

그 정점을 찍는 게, 마녀로 각성한 쟌느가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사바트를 여는 씬인데. 사바트 씬 때 나오는 연출은 정말 기괴함의 끝판왕이라 완전 무슨 프릭쇼 카툰을 방불케 해서 이해의 영역을 벗어났다.

알기 쉽게 풀어 말하자면, 본편 스토리는 중세 시대 마녀 이야기이고 대충 어떤 이야기인지는 알겠는데. 그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풀어내는 과정의 연출은 이해불가능한 것이다.

어째서 상업적으로 실패를 했는지 절실히 알게 해준다.

본작은 더미 납품 버전, 시사회 버전, 극장 개봉 버전 1~3, 비디오 소프트웨어 버전 등등. 총 6개의 버전이 있다.

더미 납품 버전은 아직 미완성된 부분을 급하게 만들어 납품한 것이라 비공개됐고, 시사회 버전은 극장판에서는 삭제된 5분 가량의 실사 파트가 들어가 있고, 극장 개봉 버전 1~3은 엔딩 내용이 약간씩 다르다.

정확히, 극장 개봉 버전 1의 엔딩은 악마가 웃는 씬에서 끝나고. 극장판 개봉 버전 2의 엔딩은 악마가 웃는 씬을 삭제하고 쟌느의 화형씬에서 끝나며, 극장판 개봉 버전 3의 엔딩은 여학생들을 주요 관객층으로 가정해 섹스 씬과 전위적인 장면 일부를 삭제/편집하고 엔딩 때 쟌느의 화형식을 지켜보는 여자 군중들의 얼굴이 쟌느의 얼굴로 바뀌면서 여자들이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다는 그림/글과 함께 프랑스의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그림이 대미를 장식한다. 그래서 극장 버전 3은 ‘여고생 버전’. ‘여대생 버전’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비디오 소프트웨어 버전은 VHS(비디오)/LD 발매 버전으로 극장 개봉 버전 3에서 삭제된 장면을 다시 넣어 재편집한 것이다.

결론은 미묘. 작화 기법과 연출 기법이 매우 실험적이라 일본 애니메이션 사상 다시는 보지 못할 파격성을 갖추고 있어 이국적인 느낌마저 주고, 비주얼만 놓고 보면 확실히 로마네크스를 표방하는 만큼 예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중세 마녀 소재의 픽션인 본편 스토리가 꿈도 희망도 없는 암울한 내용이라 몰입해서 보기 부담스러운 구석이 있고. 예술이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기괴한 장면도 적지 않게 나와서 대중성과 완전 담을 쌓아서 당시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이라서 시대를 너무 앞서 간 비운의 작품이다.

좋게 보면 어차피 망할 거 온갖 실험을 다 하면서 마지막 예술 혼을 불태운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안 좋게 말하면 보는 사람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만든 사람만 만족할 수 있는 성인용 애니메이션이라는 외설의 탈을 싼 예술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은 해외에서 예술적인 부분에서 호평을 받았으나, 일본 현지에서는 흥행 참패를 당해 본작을 제작한 무시 프로덕션은 결국 1974년 1월에 파산해서 스탭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리고 1977년에 이전 무시 프로덕션 노동조합이 중심이 되어 새로 설립된 곳이 ‘무시 프로덕션 주식회사’다.

덧붙여 본작은 아니메라마 이전 작과 다르게 데츠카 오사무가 전혀 개입하지 않은 작품이라고 한다.


덧글

  • 역사관심 2018/08/14 11:07 # 답글

    이 작품 보려고 하는 것중 하나인데, 참고로 1973년 애니메이션 순위에서는 거의 1-2위를 다투더군요...말씀하신 실험적 기법에 큰 점수를 준 듯 합니다.
  • 잠뿌리 2018/08/14 11:44 #

    본작에 쓰인 기법은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봐도 파격적이라서 일본 애니메이션사에 전대미문의 실험이었습니다.
  • 시몬 2018/08/15 22:17 # 삭제 답글

    리뷰 쓰신 대로라면 엄청 암울한 내용인데 정말로 제작진들이 흥행을 포기하고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보면 저도 암울해질것 같아서 일부러 찾아보고 싶진 않지만...
  • 잠뿌리 2018/08/16 16:28 #

    내용이 꿈도 희망도 없어서 대중성과 완전 담을 쌓았습니다.
  • ㅇㅇ 2019/10/21 08:52 # 삭제 답글

    외설적이고 스토리 진행도 멋대로이며 끝없이 불행하고 착한 타락한 여자에 대한 탐닉이 일본스럽다 싶었어요 그리고 프링스 혁명의 여자들로 연결하는것은 무근본 무뜬금이라 짜증이 날 지경 일러스트그림은 괜찮았어요 그 시대적이었고 60년대 후반70년대 초반 일본을 생각하면 적절해요
  • 잠뿌리 2019/10/21 14:42 #

    프랑스 혁명 여자들로 연결하는 건 왜 그런 건지 전혀 이해가 안 갔습니다.너무 뜬금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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