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세우스와 메두사 (Perseo l'invincibile.1963) 판타지 영화




1963년에 이탈리아, 스페인 합작으로 알베르토 데 마르티노 감독이 만든 판타지 영화. 원제는 Perseo l'invincibile. 한역하면 ‘무적의 페르세우스’라는 뜻이다.

내용은 고대 그리스 시대 때, 케페우스가 아들 아크리시오를 앞세워 구데타를 일으켜 아르고스를 지배하게 됐고, 본래 아르고스의 왕위 계승자인 페르세우스는 아기였을 때 도시를 탈출해 신분의 비밀을 알지 못한 채 양치기 일을 하면서 에티오피아의 안드로메다 공주와 사랑에 빠졌다가, 그녀를 노리는 아크리시오와 대립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작은 페르세우스, 아크리시오스, 케페우스, 안드로메다, 메두사 등이 등장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우스 전설과 전혀 연관이 없고. 전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름과 설정만 가지고 와서 오리지날 스토리로 재구성했다.

특이하게 신들에 대한 신앙은 존재하는데 신들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고, 판타지적인 존재는 몬스터만 나온다.

메두사가 등장하긴 하는데 후술할 디자인이 신화 속 메두사와 전혀 다른데다가, 신들의 무기나 지원 같은 게 전혀 없이 페르세우스 혼자서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몬스터를 토벌한다. 그래서 무적의 페르세우스라는 제목이 잘 어울린다.

본작에서 몬스터는 드래곤과 메두사. 두 마리가 나오는데 드래곤의 경우 일반적인 서양의 드래곤 모습이 아니라, 강가에서 불쑥 튀어 나오는 목 긴 공룡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메두사도 신화 속에서는 뱀의 하반신과 인간의 상반신, 뱀 머리카락을 가진 반인반수의 괴물로 그려지는 반면. 본작에서는 외눈에 뱀 머리칼을 가진 통짜 몸의 촉수 괴물처럼 디자인됐다.

비인간형이기 때문에 당연히 말은커녕 괴성 하나 지르지 못하고 통짜 몸을 들이밀며 전진하는 게 리액션의 전부다.

60년대 영화라서 특수효과 기술 수준이 떨어져서 그런 것인데 드래곤 쪽도 기술적으로 몸은 가만히 있는데 목과 머리만 움직이는 형태라서 강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그렇지만 드래곤은 둘째치고 메두사는 나쁘지 않은 게 분위기 조성을 잘해서 그렇다. 연기가 자욱한 황야에 석화된 사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연기 너머로 메두사가 나타나는 설정이라 인상적이다.

몬스터는 도입부와 후반부에 걸쳐 딱 두 번 등장하는데. 몬스터 토벌이 후반부의 중요 반전과 관련이 있긴 하나, 본편 스토리의 핵심적인 내용은 아니다.

본작에서 몬스터의 존재 이유는 아크리시오스의 군대의 전법 활용이다.

작중 아크리시오스의 군대가 즐겨 쓰는 전법은 언덕 위에 매복해서 활로 기습 사격을 가하고, 적군이 퇴각하는 과정에서 낮은 지대인 강가로 내려가면 강물에서 튀어 나온 드래곤한테 공격당하고. 그 근방을 벗어나 달아나면 황야의 메두사가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 진퇴양난에 빠트리는 것이다.

매복까지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고 해도, 유인 작전으로 몬스터 출몰 지역으로 몰아넣는다는 설정이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본편 스토리의 핵심적인 내용은 페르세우스가 부모의 원수인 아크리시오스 부자를 물리치고 아르고스의 왕위를 되찾아 안드로메다와 맺어지는 것이다.

원전 신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내용인데 앞서 말했듯 신들을 아예 빼 버리고, 몬스터의 비중을 축소한 뒤 인간의 이야기에 집중했다는 차이점이 있다.

페르세우스가 몬스터 토벌하는 씬보다, 페르세우스와 아크리시오스가 참가한 토너먼트나 집단 전쟁 씬을 더 디테일하게 만들었다.

토너먼트 씬은 불붙인 창과 방패 들고 말에 올라타 일직선으로 달리는 마창 시합부터 시작해, 방패로 활 막기 주고받기, 바닥에 불붙인 뒤 나무 발판 다리 위에서 무기 골라서 일 대 일 대결하기 등이 나와서 뭔가 그리스 시대보다 중세 시대 느낌 난다. 갑옷만 입지 않았을 뿐이지 완전 기사들의 토너먼트 같다고나 할까.

집단 전쟁 씬 같은 경우는, 생각보다 엑스트라 동원 수가 꽤 많아서 두 도시 간의 전쟁인데도 불구하고 전쟁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극 후반부의 공성전이 충차, 발석차가 동원되면서 꽤 치열하게 전개되고, 말 타고 달리는 씬도 수십 명이 동원돼서 꽤 장관을 이룬다.

근데 기병 운용이 기껏 말 타고 달려 나가도 마상에서 무기를 휘두르며 전장을 휘젓는 게 아니라, 말에서 내린 뒤 백병전을 펼치는 게 기본이라서 좋게 보면 역사 고증을 지킨 거겠지만 안 좋게 보면 좀 허무하다.

이게 마상 위에서 창 쓰고 언월도 휘두르며 무쌍난무 쓰는 아시아권 역사극 전쟁 씬에 익숙해져서 그런 것 같다. (예를 들어 삼국지 같은 거)

본편 스토리의 핵심적인 내용인 페르세우스의 인간 드라마는 다소 뻔한 이야기라서 재미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

애초에 페르세우스 신화가 주는 재미는 신의 아들이 신들의 은총을 받고 각종 무기를 지원 받아 몬스터를 토벌하고 공주를 구출하는 판타지 활극인데 본작에선 신들이 없는 세계에서 인간들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 뭔가 좀 번짓수를 잘못 찾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래도 극 후반부의 반전은 상당히 괜찮았다.

메두사에 의해 에티오피아의 군대가 석화되어 전멸한 수가 꽤 많은데, 아르고스의 군대가 쳐들어오자 비장의 카드로 준비한 게 페르세우스가 메두사를 토벌해 석화 저주를 풀어 에티오피아의 군대가 부활시키는 것이라 아군 진지의 성문이 뚫려 절체절명의 순간에 구원하러 가는 전개로 이어져서 그렇다.

결론은 평작. 포스터를 보면 몬스터 토벌이 중심이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간들의 전쟁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고, 원전 신화와 다르게 신들이 직접 등장하지 않아서 페르세우스, 메두사란 이름만 보고 판타지 활극을 기대한 사람은 실망할 수도 있으나, 역사극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 씬이 생각보다 볼만하며 몬스터 디자인이나 극 전개의 일부분이 나름대로 신선한 구석이 있어서 일장일단이 있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의 한국 비디오판 제목은 ‘페르세우스와 메두사’이고, 다른 비디오에서도 본편 시작하기 전에 나온 광고에서 자주 본 기억이 난다.

국가별로 제목이 좀 다른데, 영국판은 ‘페르세우스 어게이니스트 더 몬스터즈’, 미국 TV 방영 제목은 ‘더 메두사 어게이니스트 더 손 오브 헤라클레스’, 미국 일반판 제목은 ‘메두사 VS 더 손 오브 헤라클레스’다. 무슨 이유인지 미국 쪽에서는 페르세우스가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아들로 밀고 있다.

덧붙여 작중 아르고스의 방패 문장에 메두사의 머리가 새겨져 있다. 촉수 괴물로 등장하는 메두사가 아니라 사람 얼굴에 뱀 머리카락 달린 원전 신화의 메두사다.


덧글

  • 블랙하트 2018/05/25 12:01 # 답글

    대부분의 작품에서 메두사에게 석화 당하면 그대로 영원히 돌이 되는데 메두사 죽이면 석화가 풀리는 설정의 작품은 처음 보네요.
  • 잠뿌리 2018/05/26 19:15 #

    본작의 그런 해석이 파격적인 것 같습니다. 설정 뿐만이 아니라 메두사 디자인도 신선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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