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 (Specters.1987) 요괴/요정 영화




1987년에 마르첼로 아발론 감독이 만든 이태리산 호러 영화. 이탈리아어 원제는 스페트리(Spettri). 영제는 스펙터.

내용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지하철 공사 도중 벽이 무너지면서 로마의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무덤이 발견되어 라스키, 바바라, 마커스, 안드레아 등의 4명으로 구성된 미국 고고학 연구팀이 탐사에 나섰다가, 도미티아누스의 무덤 아래 봉인된 고대의 이교도 무덤을 발견하고 무덤에 꽂혀 있던 발톱 모양의 단검을 뽑은 이후에 악한 신이 부활하여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어나가다가, 마커스의 연인이자 현직 영화배우인 앨리스까지 악신의 타겟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작중에 고대 이교도의 무덤에 적힌 비문인 malum은 라틴어로 ‘악(惡)’이란 뜻이고, 무덤 안에 봉인되어 있던 게 악신이란 걸 의미한다.

도미티아누스는 실존했던 로마 황제로, 로마 제국의 11번째 황제다. 생전에 로마 제국에 대한 복종을 이끌어내기 위해 스스로를 주님이자 하느님이라고 부르게 하면서 우상화했기 때문에 기독교를 탄압하고. 반란의 무리를 진압한 이후에 수많은 사람을 처형해 공포 정치를 펼쳤다.

줄거리만 보면 도미티아누스의 악령 같은 거라도 나올 것 같은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로마 황제나 로마 자체와 아무런 연관이 없는 악령이 등장하며, 작중에선 그 정체가 끝까지 밝혀지지 않은 채. 단순히 봉인이 풀려 현세에 부활한 악령이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테러를 가하는 것으로 나온다.

무덤 발굴에 참가한 사람들과 고대 유물을 노리고 접근한 사람. 또 그들 주변의 사람 등등. 고대 무덤과 관련된 사람들을 차례차례 해치는데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건 물론이고 그 모습조차 뚜렷하게 나오지 않는다.

검은 물 같은 것을 출현의 전조로 삼아서 괴물의 손만 지겹게 보여주다가, 어둠 속에 빛나는 2개의 눈동자를 잠깐잠깐 보여주고, 영화 끝나기 직전에 뿔 달린 악마 얼굴을 슬쩍슬쩍 보여주는 게 전부다.

악마의 전신은 극 후반부에 딱 한 번, 연기와 함께 나타나 실루엣만 보여주기 때문에 뭔가 악마에 대한 신비감을 조성하기보다는, 비주얼의 시시함에 실망감만 안겨준다.

그렇게 악신의 모습은 거의 노출시키지 않은 채. 스테티 캠 기법으로 악마가 쫓아오는 1인칭 시점이나, 혹은 희생자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모습만 보여주고 초록색 조명 같은 거 깔아 놓는 거 보면 뭔가 영상 자체가 너무 인색한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최대한 돈 안 들이고 만들려고 티가 난다.

조잡하고 유치하더라도 악신의 모습을 좀 보여줘야 옛날의 쌈마이한 맛으로라도 볼 텐데. 그런 것조차 없으니 볼 게 없다.

다른 인물들은 유물 발굴과 관련되어 있으니 악신에게 끔살 당한 건 이해가 가는데 앨리스가 타겟이 된 건 좀 뜬금없고. 앨리스가 악신에게 위협 당할 때 나오는 연출이 뭔가 좀 웨스 크레이븐의 ‘나이트메어’ 시리즈 같은 느낌이 나서 생뚱맞다. (정확히, 앨리스가 잠자다가 침대에서 악신의 손이 튀어나와 앨리스를 붙잡아 침대 시트 속으로 쏙 들어가는 장면 같은 것)

그나마 남녀 주인공 배우들은 자기 밥값을 한 게 작중에서 험하게 굴러서 그런 것인데. 중반부에 남자 주인공 마커스가 동료 고고학자들의 외부 백업을 받으면서 단신으로 무덤 탐사에 나서는 씬과 후반부에 고대 이교도의 무덤에 다시 가서 앨리스를 구해 함께 탈출하는 씬은 나쁘지 않았다.

지하 통로에 물 쏟아지고, 천장 무너지고 난리도 아닌데 초록색 조명 깔고 악신 나타나고. 조력자인 맹인 영매사는 끔살 당하고 우당퉁탕 대소동이 따로 없어서 클라이막스답긴 했다.

다만, 그 뒤에 이어지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랑께’ 엔딩은 또 그렇게 식상할 수가 없어서 결과적으로 스토리가 폭망이다.

결론은 비추천. 고대 로마 황제의 무덤과 거기에 봉인된 악령의 부활이란 설정은 되게 그럴 듯한데, 로마 관련 설정을 전혀 활용하지 못했고. 본편 스토리 내내 악신의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고 정체도 밝혀지지 않은 채 그냥 등장인물들이 죽어 나가기만 하다가 식상한 엔딩으로 이어져서 볼거리도 없고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떨어지는 망작이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마르첼로 아발론 감독이 만든 영화 중 단 2개 뿐인 호러 영화다. 다른 호러 영화는 1989년에 만든 ‘마야(Maya)’다. 멕시코의 한 작은 마을에서 고대의 악마가 깨어나 사람들이 떼몰살 당하는 이야기의 영화다.

덧붙여 실제로 현실에서 이탈리아 로마의 지하철 공사 도중 미니 폼페이 유적이 발굴되는 사건이 있었고, 베네치아 광장 발굴 현장에서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아테나이움이 발견된 적도 있다.


덧글

  • 먹통XKim 2018/04/13 22:33 # 답글

    마야...오래전 재개봉관에서 보는데 무진장 잘라서 짜증나던 기억이 있죠...

    헌데 비디오는 더 잘랐답니다;;
  • 잠뿌리 2018/04/14 01:20 #

    그 당시 영화가 씬 잘리는 게 일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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