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데이(バースデイ.1999) 2019년 일본 만화




1999년에 ‘스즈키 코지’ 원작 소설인 링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으로 3개의 단편 모음집인 동명의 소설을, 같은 해에 ‘MEIMU’가 작화를 맡아서 만화화한 작품. 한국에서는 같은 해에 서울 문화사에서 정식 발매했다. (버스데이 자체의 넘버링은 링 시리즈의 4번째 작품이다. ‘링 < 나센 < 루프 < 버스데이’ 순서다)

내용은 원작 버스데이에 나오는 3개의 단편 중 2개인 ‘허공에 떠다니는 관’, ‘레몬 하트’를 수록하고 만화판의 오리지날 단편인 ‘SADAKO’가 들어가 있다.

‘허공에 떠다니는 관’은 1990년에 다카야마 유지의 애인인 ‘타카노 마이’가 저주의 비디오를 본 직후 정신을 잃었다가 건물 옥상에서 깨어나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다.

다카노 마이는 링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에서 저주의 비디오를 본 후 처녀수태로 임신하여 사다코를 낳고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언급만 나오지만, 본 에피소드에서는 다카노 마이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하지만 건물 옥상 위에서 죽기 전에 도시를 내려 보며 독백하는 내용이 주된 이야기라서 볼륨은 상당히 작은 편이다.

다만, 독백 내용은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비디오테이프 녹화와 컴퓨터 프로그램 수정에 빗대어 자신의 유전자가 삭제되고 새로운 유전자로 바뀐다고 독백하고. 그게 곧 사다코가 태어남으로서 다카노 마이의 육신이 빈껍데기가 되는 걸 의미해서 그렇다.

허공에 떠다니는 관이 의미하는 건 다카노 마이 자신의 죽음인데 이게 소설로 봤다면 별 감흥이 없었을 테고, 영화로 봤다면 어중간한 CG로 묘사하면 유치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만화 속 그림으로 보니 여운이 남는다.

‘레몬 하트’는 1990년에 토야마 히로시가 신문사 기자 요시노 겐조의 취재를 받다가 24년 전 극단 ‘비상’에서 ‘야마무라 사다코’를 만나고 연인이 되었던 과거를 회상하면서 현실에서 사다코를 만나 그녀의 품에서 죽는 이야기다.

토야마 히로시의 시점으로 진행되는데 핵심적인 내용은 그가 극단 비상 시절 만난 야마무라 사다코에 대한 이야기이고, 작중 사다코는 원작 단편에 나온 것 그대로 마성의 여자로 묘사된다.

토야마와 사다코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어 전반적으로 멜로드라마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원작에서 사다코가 배우로서 출세를 위해 시게모리를 유혹한 장면을 토야마에게 들켜서 음향 효과실에서 추궁 받던 중 불을 끄고 어둠 속에서 떡을 쳤던 게, 본작에서는 키스와 포옹 이상의 행위는 없었던 걸로 각색됐는데. 해당 부분에서 방의 불을 껐을 때, 검은 배경에 토야마와 사다코, 두 사람의 얼굴, 손을 비롯한 살결의 일부만 하얀 색으로 칠해서 얼굴 표정과 움직임을 부각시켜 블랙/화이트 라인으로 그리는 모노컬러의 출판 만화이기에 가능한 연출을 해서 인상적이다.

토야마의 최후는 원작과 같은데 사다코와 짧게 대화를 나누는 씬과 독백이 추가됐고, 그게 본편 버스데이와 뒤에 이어지는 SADAKO의 라스트 씬과 연결되기 때문에 애잔하게 다가온다.

링 본편을 안 보고, 버스데이편만 보면 링이 호러물이 아니라 멜로드라마로 오인할 수 있을 정도다.

‘SADAKO’는 만화판 오리지날 스토리로 사다코의 어린 시절 부모님 이야기부터 시작해 극단 비상에서의 일과 살해당해서 우물에 빠진 이후 저주 귀신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본래 버스데이 원작에서 3번째 이야기는 ‘해피 버스데이’로 스토리적으로 링 시리즈의 진정한 완결편이라 일컫어지고 있으며, 링 시리즈 넘버링상 3번째 작품인 ‘루프’의 후속작인데. 만화판인 본작에서는 루프와 연결성을 배제하고 있어 해피 버스데이를 빼고 오리지날 스토리를 넣은 것이다.

스토리상의 내용은 사실 링 시리즈의 다른 이야기에서 다룬 것이라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온전히 사다코의 시점으로만 진행되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에서 나오지 않았던 여러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어서 나름대로 흥미진진하다.

사다코의 어머니인 야마무라 시즈코가 본래 무녀인데 1940년대 때 태평양 전쟁 종전 후 신불정책으로 미군이 행자 오즈누의 석상을 바다에 수장시켜, 석상의 부름을 받은 시즈코가 그걸 건져낸 뒤 초능력을 얻었다는 과거부터 시작해 부모님의 죽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거부 당한 그 힘으로 그들을 다시 보게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출세를 목적으로 극단 비상에 들어가고. 이후 아버지 헤이아치로가 입원한 요양원의 우물가에서 자신을 살해한 나가오죠 타로가 감염되어 있던 천연두 바이러스와 융합하여 우물 속 저주 귀신이 된 것 등등. 드라마틱한 내용이 쭉 이어져 사다코라는 캐릭터 자체의 밀도를 높인다.

‘저주 비디오 보면 일주일 뒤에 죽고 TV 화면의 우물 속에서 사다코가 기어 나온다!’ 여기서 탈피해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기본 스토리는 원작을 따라가면서도 캐릭터의 드라마적인 부분에서 재해석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앞의 에피소드인 ‘레몬 하트’와 연결되는 라스트씬은 비련의 화룡점정을 찍기에 충분했다.

결론은 미묘. 3가지 단편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있어, 원작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보면 내용을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있고. 단편 모음이라 각 이야기의 볼륨이 작아서 아쉬움이 있으며, 호러 만화를 자칭하고 있지만 실제론 멜로드라마의 성격이 강해 공포와 담을 쌓아 무서운 것을 기대하고 보면 실망할 수도 있겠으나, 멜로드라마로서의 재해석이 오히려 주목할 포인트가 됐고 현대 J호러의 대표 귀신인 사다코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묘사한 게 인상적이라서 본작 만의 메리트가 있는 작품이다.

독립적인 작품으로선 한계가 명확히 있어서 평작 이상이 되긴 어렵지만, 링 시리즈 내에서 보자면 영화/소설/만화 통틀어서 추천할 만한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의 작화를 맡은 MEIMU 작가는 1982년에 ‘레몬 피플’로 데뷔했고, 대표작으로 ‘데스 마스크’, ‘사랑의 에너지 하이퍼 미미’, ‘완구수리사’, ‘가사라키’ 등이 있으며, ‘이시모리 쇼타로’의 원작을 리메이크한 ‘인조인간 키카이더 02’의 만화판도 그렸다.


덧글

  • 레이븐가드 2019/01/23 23:06 # 답글

    근데 사다코는 사실 남자, 정확히는 양성인간이라서... 그런 쪽 취향이 아니면 딱히 감정이입이 안 될 것 같아요;
  • 잠뿌리 2019/01/26 04:43 #

    그게 사실 양성인간이란 설정이 부각되지 않아서 그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보면 양성이란 점이 의식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 설정을 알고 보면 감정이입이 안 될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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