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TV 삼국지 (日本テレビ 三国志1985) 2019년 애니메이션




1985년에 중국 삼국지를 소재로 삼아 이마자와 테츠오 감독이 만들어 일본 TV 수요 로드쇼에서 방영된 TV용 장편 애니메이션.

원작에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삼국지라고 적혀 있지만, 실제로는 내용도, 캐릭터 디자인도 전혀 다른 별개의 작품이고. 본래 제목은 ‘삼국지’로만 표기되어 있지만 다른 삼국지와 차이를 두기 위해 일본 TV에서 방영된 것을 들어 ‘일본 텔레비 삼국지’라고 흔히 불린다.

‘삼국지 1’, ‘삼국지 2: 하늘을 나는 영웅들’의 2부작 구성인데. 편당 기본 러닝 타임이 약 90여분이나 돼서 한국에 비디오판이 나올 때는 1시간짜리 비디오 3편으로 나뉘어져 출시됐다.

내용은 조조의 남정을 시작으로 제갈량의 삼고초려, 장판파 전투, 적벽대전까지가 1부, 유비와 손상향의 결혼을 시작으로 익주 공방전, 위 오 연합군의 형주 침공에 이어 천하삼분지계 성립까지가 2부의 이야기다.

보통, 삼국지를 소재로 한 작품은 대부분 황건적의 난으로 시작해 동탁의 난을 쭉 거치는 반면. 본작은 그 앞의 부분 이야기를 생략하고 유비가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던 중 제갈량을 초빙하는 삼고초려부터 바로 시작한다.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 관계의 밀도는 좀 떨어지는 편이다. 기존의 삼국지가 황건적의 난부터 시작하는 이유가 삼국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의 도원결의에서 출발하는 것이라 그렇다.

관우, 장비의 최후도 원작과 다른데. 우선 관우는 오나라의 배신 이후, 위나라가 형주를 침공했을 때 전위가 던진 독 묻은 비수를 맞고 독에 중독되었다가, 위나라 궁병의 일제 사격을 받아 전신에 화살이 꽂힌 채 선채로 죽는다.

오나라에게 잡혀 죽는 게 아니라 위나라와 싸우다 전사하는 차이가 있다.

장비는 위나라의 익주 침공 때, 관우의 복수를 하겠다며 하얀 옷 입고 대뜸 성문 열고 뛰쳐나가 싸우다가 눈속에 매복하고 있던 서황에게 당해 칼에 찔려 치명상을 입은 뒤. 피를 철철 흘리다가, 조조에게 베여 죽는다.

범강, 장달 등 부장에게 암살당하는 게 아니라 장렬하게 전사한 거다.

장비는 스케일이 한참 작긴 해도 장판파의 금강역사 이벤트도 나오고, 원작에서 끝내 이루지 못한 관우 복수전을 하면서 전사해 본작의 수혜를 입었지만.. 관우는 원작의 주요 이벤트가 삼국정립 한참 전에 몰려 있어서 화웅 일기토, 천리행(오관참장) 등이 죄다 잘려서 작중에서 비중도, 활약상도 떨어져 피해를 많이 받았다.

중요한 부분은 아닐 수도 있지만, 관우/장비가 각각 청룡언월도/장팔사모 쓰는 것보다 그냥 일본도 뽑아 들고 싸우는 씬이 많은 것도 뭔가 좀 그랬다.

관우, 장비는 그나마 충직한 무인이자 형제로 묘사되는 반면. 유비는 좀 원작과 완전 달라졌다.

정확히는, 원작에서는 유비가 덕이 높은 군주로 묘사되는데 본작에서는 덕이 높다기 보다는 그냥, 존나게 불쌍한 청년 무사처럼 나온다.

그게 유비의 천하통일 행보에 포커스를 맞춘 게 아니라, 여화 공주(작중 손권의 여동생. 삼국지 원작의 손상향)의 로맨스와 조조와의 대결 구도에만 집중하고 있어서 그렇다. 조조와의 대결 구도도 이게 촉나라, 위나라의 나라 간의 대립이 아니라 유비와 조조 개인의 대결 구도에 가깝고. 실제로 두 사람이 만나서 기회만 되면 말을 몰아 달려 나가 칼을 부딪치며 일기토를 벌이니 뭔가 좀 괴리감이 든다. (이게 무슨 아더왕의 원탁의 기사도 아니고. 전장에서 군주가 틈만 나면 달려 나가 적의 군주랑 일기토를 벌이다니. 유비가 아니고 여포네, 완전)

1부까지는 그래도 하이라이트가 적벽대전이라서 영웅 유비의 성공 스토리로 볼만한데.. 2부에서 본편 끝나기 약 20여분 전부터 관우, 여화 공주, 장비 등 유비쪽 주요 인물을 몰살 당하고. 더 이상 죽을 사람이 없으니 맨 마지막에 위나라 군대 전멸한 다음. 유비가 촉나라를 제갈량과 조운에게 부탁하고선 말을 타고 나가, 혼자 남은 조조랑 칼싸움하면서 작품이 끝나서 급조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본작은 1부가 호평을 받아서 2부를 급하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부는 1985년 3월 20일에 방영됐고, 2부는 1986년 8월 22일에 방영했다)

유비를 너무 비극의 영웅으로만 그려놔서 작품 내내 불쌍한 표정 짓는 것도 보기 부담스러운 요소 중 하나였다.

이게 80년대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 역사극이 하나의 장르로서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를 구현. 혹은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역사 속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역사가 아닌 캐릭터의 이야기를 풀어낸 것이라서 그렇게 된 듯싶다.

유비의 숙적인 조조는, 금발벽안으로 나오는데 캐릭터 설정 자체가 환관의 손주에서, 북방의 침략자인 서역인(고대 로마인)이 한나라인을 범해서 태어난 혼혈아로 바뀌었다.

거기다 원작의 꾀 많은 간특한 영웅이 아니라 다혈질에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거친 군주로 나온다. 완전 여포 같은 이미지다.

‘조인’, ‘서황’, ‘하후돈’, ‘허저’. ‘이전’, ‘전위’ 등등 수하 장수들도 쭉 나오긴 하나. 관우, 장비한테 싹 다 몰살당해서 죄다 조연/단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나마 허저가 원작의 괴력무쌍 호위 장수에서 털보 닌자 아저씨로 변하긴 했어도 출현 분량이 좀 있고. 전위랑 서황은 관우, 장비에게 치명상을 입히기라도 하지 나머지는 죄다 나오기 무섭게 단칼에 죽고. 심지어 조인은 유비한테 베여 죽으니 위나라 장수들 홀대에 정점을 찍는다.

심지어 제갈량의 라이벌인 사마의는 작품 거의 끝날 때쯤 투석기 지휘하는 군사로 잠깐 나오고 땡이다.

유일하게 ‘우금’이 여체화되어 등장해 조조를 연모하는 여장수가 되어 눈길을 좀 끌지만, 그쪽 러브 라인은 전혀 진행되지 않은 채 적벽대전 때 전사해서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했다.

로맨스 쪽은 유비와 여화 공주 쪽에 집중하고 있는데. 여화 공주의 최후가 원작에서는 유비와 이혼하고 오나라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나지만, 본작에서는 불에 타오르는 성에서 오빠인 손권의 권유도 뿌리친 채. 유비를 떠올리며 검무를 추는 환영을 보면서 죽음을 맞이한다.

여화 공주가 제갈량 삼고초려 때 위장 잠입한 것으로 처음 나와서 등장이 앞당겨 졌고, 유비와 정략 결혼 전에 먼저 만나서 적으로 간주했다가 스토리가 진행됨에 따라 연애 감정이 싹트게 됐는데.. 주유의 짝사랑 대상. 조조를 향한 위장 결혼 책략 등등 본의 아니게 썸타는 캐릭터가 대폭 늘어나 마성의 히로인이 되어 버렸다.

원작에 없던 위나라 군대와의 싸움 씬도 나오는데, 행글라이더 타고 위군 진영으로 날아가, 무슨 쿠노이치(여자 닌자)마냥 단검을 들고 싸우는데 뜬금없이 판치라가 나와 팬티가 노출되는 등등. 완전 오리지날 캐릭터로 만들어 놨다.

제갈량 같은 경우, 본작의 첫 에피소드가 삼고초려라서 엄청 빨리 나와서 레귤러 멤버로 자리 잡는다. 캐릭터 해석 여부는 둘째치고 외모부터가 기존 삼국지의 제갈량 이미지와 완전 달라서 오히려 눈에 띈다.

20대 초반의 미청년에 아이섀도우를 하고 나와서 그렇다.

하지만 작중 제갈량의 지략 묘사는 적벽대전 직전의 화살 십만개 얻어오기, 동남풍 불기 등을 재현한 것 이외에는 좀 애매하게 묘사된다.

그게 성을 비워놓고 위나라 군대가 쳐들어오면, 폭탄이 터져 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위나라 군대를 전멸시키는 전법을 자주 써서 그렇다. (애초에 그렇게 쾅쾅 터트릴 화약이 있으면 그냥 위나라 군대에 사용하면 안 되나)

유일하게 인상적인 전략은 눈 내리는 겨울에 목재 성채 위에 물을 부어서 하룻밤 만에 얼음 성벽을 만들어 농성에 들어가는 것 정도 밖에 없다.

물론 얼음 성 만들기는 본작의 오리지날 설정은 아니다. 실제 삼국지에서는 조조의 막료 ‘누규’가 겨울철 위수 전투 때 마초군의 야습에 시달리는 조조에게 한기를 이용해 얼음성을 만드는 진언을 올린 일화가 있다.

반대로 원작보다 출현씬이 한참 늦어서 손해 본 캐릭터는 ‘조운’이다. 본작에서 조운은 2부에서 도적 출신으로 현상금을 목적으로 유비의 목숨을 노리다가 그 휘하로 들어간 캐릭터라서 비중이 매우 낮다. 2부에서 나오다 보니 장판파의 아두 구출 이벤트도 없다.

생긴 것 자체가 사냥꾼 복장에 검을 사용하기 때문에, 원작에서의 말 타고 창 휘두르는 장수 이미지와 완전 동떨어져 있다.

본작만의 오리지날 캐릭터로는 조운의 동료로 ‘매’를 기르는 소녀 ‘미선’, 관우가 형주에서 거두는 어린 소녀 ‘령명’ 등이 있다. 둘 다 단역이라서 별다른 활약은 못하고 존재감도 옅다.

사실 캐릭터 묘사보다는 배경과 연출이 인상적이다. 한밤 중에 성벽 위에 올라갔는데 밤하늘에 은하수가 보인다던가, 강이 반짝반짝 빛나고, 유성우가 내리는 밤하늘을 등지고 악기를 연주하는가 하면, 물가에서 싸우는 씬 때 물결이 반짝이는 씬이 어김없이 들어가는 것 등등. 80년대 일본 애니메이션의 미장센이 돋보인다. (문제는 미장센이 보기에는 좋으나, 작품의 재미를 보장시켜주지는 못한다는 거)

전쟁에서 장수들 죽어나가는 씬에서 사실 직접적으로 목이 잘려 나가는 것보다는, 유혈 묘사 없이 목이 잘리거나 투구가 반으로 쪼개지는 것 등등.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이 많아서 사망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는 적은 편이다. 무삭제판이 따로 나올 정도는 아니란 말이다. (애초에 TV에 방영된 작품이라서 자체 검열이 있다)

결론은 평작. 삼국지를 베이스로 하고 있지만, 역사물보다는 액션물에 더 가깝고 사건과 배경 자체는 원작의 역사를 따라가지만 그 과정에서 캐릭터와 스토리가 원작과 전혀 다른 것이 되었기에 좋게 말하면 재해석, 안 좋게 말하면 원작 파괴를 당해 삼국지인데 삼국지 아닌 느낌을 강하게 주는 작품으로, 1부까지는 그래도 조조의 대군에 저항하는 유비 일행의 영웅전기물로서 볼만했지만.. 2부로 넘어가서 떼몰살 루트를 타면서 유비의 비극적인 영웅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초점을 맞춰 보기 부담스러운 데다가, 스토리를 너무 급하게 만들어 끝낸 티가 많이 나서 그게 작품 자체의 완성도를 떨어트리는 주요 원인이 되어 아쉬운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에서 유비 성우를 맡은 이노우에 카즈히코가 본작으로부터 31년 후인 2016년에 코에이의 ‘삼국지 13’에서 조조 성우를 맡은 게 흥미롭다.

본작은 성우진이 꽤 화려한데 주유 성우가 ‘기동전사 건담’의 ‘샤아 이즈나블’ 더빙으로 유명한 ‘이케다 슈이치’. 여화 부인 성우는 타카하시 루미코 원작 ‘우르세이 야츠라(시끌별 녀석들)’의 ‘라무’ 더빙으로 유명한 ‘히라노 후미’다.


덧글

  • 역사관심 2018/01/15 04:47 # 답글

    항상 궁금해하기만 하던 작품인데 소개 잘 읽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추천, 평작, 비추천등의 평이 이 넓고 넓은 미디어의 세계에서 골라보는데 큰 도움 받고 있습니다 ^^
  • 잠뿌리 2018/01/16 20:23 #

    별말씀을요. 감사합니다^^
  • 블랙하트 2018/01/15 10:19 # 답글

    만화가 츠다 마사미가 이 만화를 동생과 함께 보다가 아이셰도우 재갈량에 충격받은 이야기가 유명하죠.
  • 잠뿌리 2018/01/16 20:24 #

    단행본 작가 후기에 실렸던 게 기억이 납니다.
  • 2018/01/15 10: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1/16 20:2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01/15 12:0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01/16 20:2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시몬 2018/02/07 04:44 # 삭제 답글

    그게...우금이었군요...손부인(여화공주)보다 더 맘에 들었었는데.
  • 잠뿌리 2018/02/09 00:08 #

    진영별 히로인들인데 둘 다 최후가 비참했죠.
  • 먹통XKim 2018/04/13 22:54 # 답글

    1989년 새해 특선으로 엠비씨 더빙 방영당시 삭제가 거의 없어서 놀랐죠
    조조가 오군 장수 목을 베어버리거나 유비가 뛰어올라 조인의 투구를 반자르며서 조인이 얼굴에서 피를 제법 뿌리며 죽는 것도 그대로 나옵니다..--비디오로 다 자름.


    오히려 비디오로 재더빙하고 나온게 삭제와 오역이 심합니다.
    나무위키에 올린 이 애니 항목을 내가 예전에 덧붙였는데...

  • 잠뿌리 2018/04/14 01:33 #

    TV 더빙판이 무삭제인 게 신기한 작품이죠. 직접적으로 썰리는 장면은 없어도 은유적으로 피가 흐르거나 썰리는 장면이 꽤 돼서 아이들이 보기는 좀 그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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