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6년에 다이에이(현 카도카와)에서 시대극 영화 ‘자토이치’, ‘네무리 쿄시로’ 시리즈로 잘 알려진 야스다 키미요시 감독이 만든 특촬 시대극 영화.
내용은 일본 전국 시대 때 탄바국를 다스리던 하나부사 가문이 가로인 오다테 사마노스케 일파에게 하극상을 당해 가문의 영주와 부인이 죽임을 당하고, 영주 부부의 어린 자식들인 타다후미, 코자사 남매만 충신 코겐타의 도움을 빠져나가, 마신 아라카츠마의 석상이 있는 마신의 산에 들어가 마신을 섬기는 무녀 노부오의 도움으로 산속 동굴에서 몸을 숨기고 살게 되는데.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지나 타다후미, 코자사 남매가 장성하고, 탄바 백성들에게 가혹한 노역을 시키며 폭정을 펼치던 사마노스케가 코겐타, 타다후미를 사로잡아 처형을 시키려 하고 급기야 마신의 분노를 경고하던 노부오마저 베어 죽여 파극으로 치닫던 중. 코자사가 도움을 청하며 기도를 올리고 스스로 몸을 던지려던 찰나, 아라카츠마가 스스로 움직여 악당들을 벌하는 이야기다.
본작은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프랑스 출신 줄리앙 뒤비비에르 감독이 1936년에 만든 판타지 호러 영화 ‘골렘(Le golem)’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유대 전설에서 랍비가 만들어 조종한 진흙 인형 골렘을 일본 시대극의 마신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주인공 남매가 영주의 어린 자식들로 아버지의 부하가 반란을 일으켜 부모님과 나라를 잃고. 충신에 의해 간신히 목숨만 건져서 달아나 숨어 지내다가 장성했다! 라는 오프닝만 보면, 이 남매가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부모의 원수를 갚는 전개가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멀쩡하게 장성한 것 치고는 아무런 활약도 하지 못한 채 부모의 원수인 사마노스케 일당에게 붙잡혀 죽음의 위기에 처하고. 홀로 남은 여동생은 마신에게 도움을 청하며 기도하는 처지라서 솔직히 인간 파트의 이야기는 재미가 없다.
인간 파트의 존재 의의는, 마신에게 징벌 당할 악당들이 그동안 무슨 악행을 저질러 왔는가? 이것의 확인 밖에 없다.
배경만 전국 시대지, 시대극 특유의 활극 요소가 없어도 너무 없다.
총 러닝 타임 84분 중에서, 마신이 본격적으로 두각을 나타내는 60여분 이후부터가 슬슬 볼만해지기 시작한다.
앞의 60여분 동안 주인공 일행의 무력한 모습과 악당들의 악행이 번갈아가면서 나와 인간에게는 아무런 기대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마신이 등장해 모든 걸 때려 부수며 악당들에게 벌을 내려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선과 악을 분명히 구분 짓고, 반드시 쳐 잡아야 할 악당을 똑바로 타겟팅하고 있어서 재난에 가깝게 묘사된 기존의 특촬 괴수와 달리, 마신의 파괴 행각은 악에 분노한 심판자에 가까워서 감정 이입 포인트가 또 다르다.
작중 대마신은 풀네임이 ‘아라카츠마(阿羅羯磨)’이고, 평소 때는 토용 무사 인형의 표정을 짓고 있는데. 화가 나면 손으로 얼굴을 닦는 제스쳐를 취한 뒤 분노한 얼굴이 드러난다. 그때 분노한 얼굴의 기본 마스크는 불교 신화의 호법천신 ‘금강역사’의 노한 얼굴에 가깝다. 온화할 때는 무신. 화가 날 때는 마신이란 설정이라 불교의 부처/분노존(명왕)의 변화 느낌도 준다.
공식 설정의 신장은 15척(약 4.5미터)에 주무기는 격투로 펀치, 스텀핑(밟기) 등을 사용한다. 무사 석상의 모습을 하고 있어 몸이 돌이라 맷집이 강한데, 허리에 찬 칼은 후기 시리즈에서는 뽑아서 사용하지만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인 본작에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맨손으로 싸운다.
마신의 액션은 걷기, 펀치, 밟기 밖에 없고. 배경이 전국시대가 전투기, 탱크 같은 현대 병기의 반격을 받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스케일이 크게 보인다.
당시 다이에이 교토는 일본 시대극 영화의 본고장으로서 수년 동안 만들어 온 시대극 세트의 노하우를 총 동원하여 본작의 모형 세트다증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기존의 특촬 괴수물에 나온 도시 미니어처와 비교할 수 없는 디테일이 있고. 작중 건물이나 벽이 부서질 때는 실제로 수십 명의 스태프가 끌어당기거나, 불도저를 사용해서 아날로그적인 이펙트를 넣었기 때문에 박력이 넘친다.
거기다 인간들이 화승총, 활, 화차, 투석기 등의 구식 무기를 사용해 마신에게 저항하고, 건물 사이에 사슬을 걸어놓아 마신의 움직임을 봉쇄하려고 하는 것 등등. 갖은 저항을 다하는 게 스케일을 더 키워주고, 또 그게 시대극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액션, 소품들이라 현대전과 또 다른 맛이 있다.
마신의 분노가 불특정 다수를 향한 것이 아니고 분명한 타겟팅이 설정되어 있어서 악당 두목 사마노스케의 최후가 인상적이다.
결론은 추천작. 주인공이 워낙 무력하게 나와서 인간 파트의 이야기는 좀 심심한 편이지만, 대마신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극 후반부는 꽤 볼만한 작품으로 당시 현대 도시를 배경으로 한 괴수 특촬과 달리 전국 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 특촬이란 게 신선하게 다가오고, 재난으로 묘사된 기존의 괴수 영화와 달리 신벌(神罰)이란 테마로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주고 있어서 왕도적인 재미가 있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은 시리즈화되어 같은 해인 1966년에 4개월 주기로 후속작이 3편까지 나왔다. 본작은 1996년 4월에 나왔고, 1966년 8월에는 후속작인 ‘대마신, 노하다’, 1966년 12월에는 최종작인 ‘대마신역습’이 나왔다.
덧붙여 작중 대마신의 슈트 액터는 프로 야구 선수 출신 배우인 ‘하시모토 리키’다. 1968년에 다이에이에서 나온 요괴 특촬 영화 ‘요괴대전쟁’에서 고대 바빌로니아의 요괴 ‘다이몬’의 슈트 액터를 맡기도 했다. 인형 탈을 쓰고 있지만 두 눈은 분명히 노출되어 있고, 힘든 상황에서도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연기를 해 충혈된 눈동자가 강한 인상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추가로 1966년 당시 촬영에 사용된 높이 약 4.5미터의 실물 대마신상은 다이에이 쿄토 촬영소에 보관되어 스테이지 입구에 세워두었다가, 피규어 메이커 카이요도에게 100만엔에 인수되어 카이요도 본사 정문에 보관되었다고 한다. 높이만 높은 게 아니라 중량도 1톤 가까이 됐다고 하는데 1986년부터 1991년까지 보관소에서 한밤중에 거대한 그림자가 걷거나 커다란 발소리가 울리고 다음날 대마신상이 놓인 위치가 달라졌다는 괴담이 떠돌았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가메라 시리즈와 함께 다이에이의 특촬 영화를 대표하는 양대 간판작으로 당시 큰 인기를 끌었고. 만화, 애니메이션 등 서브컬쳐에 자주 패러디됐으며, TV CM에도 나오고, 1990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에서 유명 투수였던 사사키 카즈히로의 별명으로 잘 알려졌다.
덧글
손으로 얼굴을 닦는 제스쳐를 취한 뒤 분노한 얼굴이 드러나는 모습은 KOF 14에서 다이몬 고로의 CLIMAX 초필살기 '경천동지'로 패러디 되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