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저주 (失眠.2017) 귀신/괴담/저주 영화




2017년에 구예도 감독이 만든 고어 영화. 황추생이 주연을 맡았다. 원제는 ‘실면’. 한국에서 제 21회 부천 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 초청 받아 상영됐는데 국내판 번안 제목은 ‘불면의 저주’다.

내용은 1990년 홍콩의 대학교에서 수면에 대해 연구하던 람식가 박사가 비윤리적인 연구라는 이유로 더 이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는데 10년 전 베니스에서 처음 만나 아직까지 마음에 두고 있던 여문해가 찾아와 이형성 불면증에 의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잃고 오빠마저 석달동안 잠을 자지 못하다 끝내 죽음에 이르러, 람식가의 연구에 거액을 지원해주고 그의 부탁으로 수면 연구의 임상 실험 지원자까지 되어 주었다가 두 사람의 집안의 얽힌 불면증의 진상이 밝혀지는 이야기다.

본작을 만든 구예도 감독은 1992년에 팔선반점 인육만두를 만들어 중국 고어 영화의 역사를 새로 썼고, 그때 주인공 배역을 맡았던 게 황추생이다. 햇수로 무려 25년 만에 감독/배우로 다시 만나 고어 영화를 찍은 것이다.

주인공 람식가는 잠을 자는 게 인생의 낭비라고 생각해서 사람이 잠을 자지 않고 살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게 사실 람식가 본인 자체가 환영에 시달리며 잠들지 못한 것에 비롯된 것이고, 더 나아가 그 모든 게 집안에 얽힌 비밀이란 것이 메인 스토리다.

잠을 자지 못하는 것에 대해 과학적으로 접근해 불면증으로 해석하고, 환자의 뇌를 끄집어내 현미경으로 세포 분석을 한다거나, 잠을 자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실험에 특별히 만든 단백질 가스를 주입해 경과를 지켜보는 것 등등. 과학적인 풀이가 나와서 언뜻 보면 의학 드라마 혹은 의학 스릴러 같은 느낌이 나지만.. 실제로는 현재의 이야기보다 과거 이야기에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고, 과거의 이야기는 저주 소재의 오컬트물에 가깝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술사가 죽기 직전 저주를 걸어, 저주의 타겟이 된 사람이 본인은 물론이고 후손까지 화가 미쳐 저주에 시달리다가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다.

이건 70~80년대에 자주 나왔던 홍콩산 저주 영화의 클리셰라고 할 만한 내용인데 본편 메인 스토리가 딱 이거다.

잠을 자지 못하는 게 질병 혹은 유전적인 원인에서 온 게 아니라, 저주를 받아서 집안 대대로 저주가 대물림되는 것이다.

거기까지만 보면 다소 식상한 내용이지만 저주가 일어난 원인을 되짚어가는 과거가 꽤 신선하고 또 파격적이다.

과거편의 배경은 일제 강점기 시대의 홍콩으로, 과거편 주인공은 람식가의 아버지인 람싱인데 일본군의 부역자다. (황추생이 람싱과 람식가 1인 2역을 맡아서 연기했다)

람싱이 부역자가 되어 일본군을 위해 일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아 기회가 될 때마다 동포를 돕지만 매국노 취급 받으며 손가락질 당하던 중. 일을 잘해서 진급을 하게 됐는데 홍콩 위안부를 관리하면서 파멸로 치닫는다.

해외에서 위안부를 소재로 한 작품은 매우 보기 드문데 본작은 그걸 과거편의 핵심적인 내용으로 삼고 있다.

위안부의 피해자 중 한 명이 죽기 직전에 람식가한테 저주를 걸어 떼몰살 루트로 돌입하는데, 람식가가 일본군 몰래 동포를 도왔어도 결국 부역자는 부역자라며 그 자신뿐만이 아니라 후손까지 저주에 미쳐 멸족 당하는 것이라 결국 매국노는 절대 용서하지 못한다는 테마로 귀결시켜 과거 역사의 원한과 비극을 극대화시킨다.

람싱이 동포에게 쌀과 고기를 사다 주고, 위안부 소녀들을 탈출시켜주는 것 등등 선행을 베풀었어도 잔혹한 사람이라고 매도당하며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걸 보고 있으면 반일 영화로서의 성격도 강해 보인다.

캐릭터 관계를 꽤 디테일하게 잘 만들었다.

현재의 람식가와 그를 찾아온 여문해의 관계와 두 사람 사이의 인연에 얽힌 비밀부터 시작해서, 과거편에서 람싱과 그가 우연히 구한 소녀 만운의 쌍둥이 여동생 하오와의 악연 등등. 각각의 점이 하나의 선으로 이어져 그 인연의 끝에 맞이하는 파멸이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람싱/람식가가 서로 전혀 다른 타입의 캐릭터인데도 불구하고, 황추생이 1인 2역을 맡아서 각각의 역할을 잘 소화했다.

람싱은 부역자지만 항상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어딘가 좀 내성적이고 기가 약한 모습을 주로 보여주다가 막판에 가서 저주의 효과로 멍한 얼굴을 한 채 식칼을 들고 일본군을 무참히 썰어 죽여서 슬래셔 무비 살인마로 탈바꿈하는 게 인상적이고, 람식가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매드 사이언티스트처럼 나와서 기억에 남는다.

감독, 배우, 장르 태그 고어를 보면 팔선반점 인육만두의 정신적인 후속작이라고 할 만한 만큼 고어 수위도 높은데 과거편에서는 앞서 언급한 람싱의 일본군 도살. 현재편에서는 람식가의 시체 뇌 스틸과 인육 먹방이 거기에 해당한다.

시체 뇌 스틸 씬에서 얼굴 피부 벗기고 두개골 갈라 뇌 끄집어내는 씬이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나와서 꽤 충격적이고, 그 뇌를 또 말레이시아 공항 검문을 피하려고 두리안 껍질에 담아서 홍콩으로 택배 붙이는 게 상상을 초월한 전개였다.

람싱이 일본군 장교 죽일 때 거시기 노출이 무삭제된 채 식칼로 거세시킨 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난자하는 거나, 하이라이트씬에서 보여 준 인육 먹방을 보면 확실히 팔선반점 인육 만두의 고어함을 계승하는 것 같다.

잔인한 걸 떠나서 봐도, ‘네가 그러고도 잠이 오냐?’라는 작중 대사로 압축이 가능한,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저주도 나름 오싹하고 신선하다. 보통은 호러물에서 꿈을 소재로 하면, 악몽을 꾸거나 꿈 속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 이렇게 쓰이는데 아예 잠 자체를 못 자게 해서 미쳐 죽게 한다는 건 발상의 전환이다.

약간 아쉬운 점이 있다면 수면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을 통해서 의학 스릴러처럼 시작했다가, 과거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저주 오컬트물로 탈바꿈하면서 기승전저주로 끝난다는 거다.

수면의 이해와 개념, 연구 관련으로 꽤 그럴 듯한 이론을 구축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아닌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땡-치고 넘어간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결론은 추천작. 사람의 수면에 대한 연구 관련 부분이 꽤 그럴 듯하게 다가오는데 과학 풀이가 아닌 오컬트로 귀결시켜 기승전저주 영화로 끝나 아쉬움이 남지만,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저주란 게 신선하고, 과거편이 홍콩 일제 강점기 시대의 위안부를 소재로 하여 부역자는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역사의 원한과 비극을 다루어서 호러물의 관점에서는 매우 드문 소재라 파격적이며, 주요 캐릭터의 관계 설정이 디테일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두 집안에 얽힌 비밀과 사건의 진상이 드라마틱하게 다가오는 한편. 고어 수위가 팔선반점 인육 만두를 계승한다고 볼 수 있을 만큼 높은 편이라 호러 매니아에게 있어서는 컬트적인 매력이 넘치는 작품이다.


덧글

  • 로그온티어 2017/09/26 17:45 # 답글

    저주로 치환되니까 비현실적인 이야기로 넘어가버려서 메세지가 희석되는 느낌이 듭니다.
  • 잠뿌리 2017/09/27 21:40 #

    저주 이야기가 핵심이라서 과학적인 풀이가 단지 거들뿐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현재편보다 과거편에 더 포커스를 맞춘 것도 그랬죠.
  • 역사관심 2017/09/27 01:08 # 답글

    항상 흥미로운 영화리뷰 잘 보고 있습니다!
  • 잠뿌리 2017/09/27 21:40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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