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사녀 (怪談蛇女.1968) 귀신/괴담/저주 영화




1968년에 나카가와 노부오 감독이 만든 귀신 영화.

내용은 메이지 시대 초기 때 일본 북부의 가난한 마을에서 욕심 많은 지주 오오누마 쇼베이가 소작농을 부려 먹으면서 자기네 가족만 번창했는데, 소작농 야스케가 쇼베이의 빚 독촉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밭까지 빼앗겨 굶어 죽게 생긴 처지에 폐병까지 앓다가 병사한 뒤. 남겨진 그의 아내 수에와 외동딸 아사가 빚 대신으로 오오누마 집안에 끌려가 잡일을 하고 괴롭힘을 당하다가 결국 수에가 죽고, 아사도 쇼베이의 아들 타케오한테 욕보인 뒤 절망 속에서 자살을 해 일가 전원이 목숨을 잃은 이후.. 야스케 일가를 비롯한 억울하게 죽어간 영세민들이 귀신이 되어 나타나 오오누마 일가가 파멸을 맞이하는 이야기다.

전체 러닝 타임 90여분 중에 1시간에 해당하는 약 60여분 동안에는, 야스케 일가의 비참한 삶을 조명하고 오오누마 일가의 악랄함을 부각시키면서 비극적인 드라마를 이끌어 낸다.

귀신, 요괴보다 인간 중심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요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다. 본편 스토리의 권선징악 체계를 구축하려고 너무 많은 분량을 인간 드라마에 할애했다고나 할까.

제목에 괴담, 사녀가 들어가는 것 치고는 귀신이나 요괴가 메인이 되지는 못해서 괴담물이나 호러물의 관점에서 보면 좀 밋밋하다.

야스케 일가가 몰살당한 후, 영화 끝나기 약 20여분 전에 아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쇼베이의 아들 타케오가 키누를 신부로 맞이하면서부터 뱀 요괴의 환영을 보며 본격적인 괴담물로 진행된다.

본작의 제목 괴담사녀에서 ‘사녀’가 그 뱀요괴를 뜻하는데 정확히, 타케오가 보는 키누가 몸 절반이 뱀 비늘로 뒤덮여 있는 환영이다.

그래서 타케오 파트에서만 나오고 다른 파트에선 일절 나오지 않는다. 타케오가 그 환영을 보고 미쳐 죽을 때 뱀 비늘에 뒤덮이는 씬이 나오긴 하나, 애초에 아사가 귀신 폼으로 재등장해서 뱀녀 폼을 밀고 나가는 건 또 아니라서 왜 굳이 사녀란 제목을 지었는지 모르겠다.

뱀녀하면 표류교실로 유명한 우메즈 카즈오의 공포 만화 ‘엄마가 무서워’에서 나온 것처럼 최소한 계란 정도는 생으로 삼켜야.. 아니면, 최소한 본작보다 2년 먼저 나온 1966년작 사녀 드라큐라(원제: 렙타일)처럼 뱀녀 분장이라도 호러블하게 했으면 사녀란 제목에 잘 어울렸을 텐데 말이다.

실제로 작중에서 공포 포인트를 강조한 것은 뱀녀보다 야스케, 수에 귀신이다. 시체처럼 창백한 인상! 이란 말 그대로 시퍼런 분장을 하고 나오는데 무표정한 얼굴로 대사를 치니 꽤 음산하게 다가온다.

요즘 인터넷 용어로 치자면 일종의 밈 같은 대사도 있다.

‘흙을 퍼먹어서라도 돈을 갚겠습니다!’ 이건데, 지주의 빚 독촉에 시달리다 죽어서. 귀신이 되어서까지 지주 근처를 맴돌며 돈 갚겠다고 말하며 도게쟈하니 지주가 미쳐 죽을 만하다.

애초에 본작에 나오는 뱀은 아무런 암시도, 복선도 없이 갑자기 툭 튀어 나왔다가, 불길함의 상징 정도로만 쓰이다 야스케 일가가 몰살당한 뒤 갑자기 귀신과 엮인 것이라서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키우던 동물에게 복수를 부탁해서, 그 동물이 요괴가 되어 나타나 주인의 원수를 갚는 이야기는 일본 괴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내용이고. 대표적으로 바케네코(괴물 고양이)를 손에 꼽을 수 있는데 본작은 희생자 가족과 뱀의 연관성이 적다.

본작에서 뱀과 야스케 일가의 접점은, 수에 모녀가 오오누마 집안에서 잡일을 할 때 집 마당에서 발견된 뱀이 집안사람들에게 맞아 죽을 위기에 처하자 뱀이 불쌍하니 죽이지 말라고 말리다가 사람들에게 괴롭힘 당한 것 밖에 없다.

그래서 인간과 뱀의 교감이 없이 뱀을 단순히 무서움과 불길함의 상정적인 의미로만 집어넣었다. 이 교감이 의외로 중요한데 바케네코 이야기를 예로 들면 주인이 자결하면서 자기 고양이한테 지금 자신이 흘린 마시고 복수해달라고 부탁하면서 접점을 극대화시켰었다.

반면 본작의 뱀은 그런 게 일절 없이 갑툭튀 수준으로 나왔다가 사라지니 급조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60~70년대 원귀류가 영화가 흔히 그렇듯, 희생자의 귀신을 본 악당이 미쳐 발광하다가 칼 한 자루 들고 주변 사람 몰살시킨 후 자기 자신도 죽음을 맞이하는 전개가 그대로 나와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만, 그렇게 본편 스토리가 권선징악으로 끝난 뒤. 희생자의 혼이 성불하는 장면을 넣어 마무리한 것은 나름대로 신선했다. 그 성불하는 묘사가 빛에 휩싸여 하늘로 승천하는 게 아니라, 남녀불문하고 새하얀 수행자 옷을 입고 안개로 뒤덮인 땅 위를 걸으며 아침 해를 향해 천천히 나아가는 장면으로 묘사해서 인상적이다.

결론은 평작. 인간 중심의 전반부 내용이 너무 지루하고. 후반부로 넘어가 본격적으로 귀신이 나와도 공포 분위기를 충분히 조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급조된 내용이 나와서 호러 영화로서 제구실을 하지 못하며, 작품 제목만 보면 뱀요괴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 같은데 실제로는 단순한 환영에 지나지 않고. 작중에 나온 귀신과 뱀의 접점도 없어서 구성이 좀 허술한 편이라서 오리지날 괴담으로서의 완성도도 다소 떨어지지만.. 문자 그대로 창백해 새파란 피부에 무표정한 얼굴로 대사를 치는 야스케 일가 귀신 분장과 연기가 괜찮았고, 귀신들이 수행자 복장을 하고 아침 해를 향해 안개 길을 걷는 성불 엔딩도 인상적이라서 잘 찾아보면 볼거리가 몇 개 있는 작품이다.


덧글

  • 역사관심 2017/07/21 04:26 # 답글

    정말 읽을 때마다 잠뿌리님의 블로그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소개가 너무 많아서, 언제나 (앞으로도) 얻기 힘든 영화정보를 얻는 보물창고로 항상 인기 있을 것 같습니다.
  • 잠뿌리 2017/07/25 17:20 #

    영화에 대한 감상과 정보를 정리하고 기록할 겸 이런 리뷰를 쓰고 있지요. 안 하면 저도 시간 지나면 잊어버려서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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