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옥(1972) 희귀/고전 호러 영화




1972년에 권영순 감독이 만든 판타지 사극 영화.

내용은 여색을 밝혀 자기 신하의 부인마저 빼앗고 온갖 사치와 향락을 누리며 패악을 저지르던 임원빈이 극악무도한 악인인 것에 비해 그의 정실부인은 매우 선한 인물이라 매일 같이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려 남편의 죄를 사해달라고 빌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빈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정실부인의 정조를 의심해 자살하게 만들었으며 부처가 보낸 사자를 해치려 하다가 역으로 본인이 천벌을 받아 죽음의 위기에 처한 후, 외동딸 연아가 자기 목숨을 바친 효성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는데도 끝까지 죄를 뉘우치지 않고 살던 중, 후처인 도화 부인과 집사에게 독살당해 지옥에 떨어지자.. 극락에 올라간 연아가 부처에게 간곡히 청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목련존자의 제자 효성과 함께 지옥에 내려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자식이 지옥에 떨어진 부모를 찾아 떠난다는 게 메인 스토리인데 기본적으로 불교에서 부처의 10대 제자 중에 한 명인 목련존자의 이야기를 각색했다.

작중 인물들 복색을 보면 삼국시대 전후가 아닐까 싶다.

한국 호러 영화의 단골 배우인 허장강, 도금봉이 출현하고 그밖에 네임드 배우로 박암, 황해, 주증녀, 신영일, 사미자 등이 나온다.

본편 내용은 생각보다 꽤 짜임새 있다.

스토리 전반부에 남자 주인공 이원빈 일당의 패악을 통해 악행의 끝을 보여주면서 그것과 대비되는 원빈의 정실부인과 외동딸 연아의 선행과 효성을 부각시켜 선과 악을 극대화시키고, 중반부에 이원빈이 지옥에 떨어진 뒤부터 후반부로 이어지는 지옥 탐사를 통해서 지옥물로서의 밀도를 높여 간다.

원빈 일당 모두 지옥에 떨어졌는데 생전에 지은 죄에 따라서 혓바닥을 집게로 늘리고. 추위에 얼어붙게 하고, 산성 못에 빠트려 몸에 뼈만 남기거나, 뱀을 뒤덮어 고문하는 것 등의 맞춤형 형벌을 내려 볼거리를 제공한다.

불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지옥차사가 검은 삿갓 쓴 저승사자가 아니라 호피 가죽옷 입고 방망이 든, 뿔 달린 도깨비들로 나오며, 지옥 내에서 망자들을 때리고 욕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생긴 게 한국 전래동화의 도깨비지 실제 아이덴티티는 야차에 가까워 보인다)

70년대 영화다 보니까 지옥 풍경 묘사가 좀 아동용 특촬물 세트장 같은 느낌을 줘서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좀 유치하고 허접해 보일 수 있겠지만, 지옥의 망자들이 신음하는 소리를 무슨 배경 음악마냥 크게 깔아놔서 나름대로 처절한 분위기를 내고 있다.

다만, 특정한 괴수 조형은 좀 못 봐줄 정도다. 본작의 포스터에도 나온 머리 3개 달린 괴조인데 작중에선 삼두신조라고 나오고 완전 종이 인형 그대로 나온다.

지옥을 소재로 했다고는 해도 시대 배경을 보면 사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작중에 나오는 대사 중에 특이한 게 꽤 많다.

예를 들면 도화 일당이 무당에게 원빈의 죽음을 사주하면서 주살 굿을 올리게 할 때 그걸 ‘단명즉사의 기도’라고 말한다던가, 효성이 지극한 연아를 보고 아미타불(부처)가 천상대효라고 칭찬하고. 목련전에 나오는 화락천궁을 언급하는 것 등등. 지금 현재에는 잘 사용하지 않은 용어들이 잔득 나와서 뭔가 좀 있어 보인다.

지옥 탐사 때 연아와 효성이 원빈을 찾는 것도 찾는 거지만, 찾는 과정에서 염라대왕과 충돌하고 대립하면서 극의 긴장감이 상승해 몰입도가 높아진다.

작중 여주인공 연아의 상대역인 효성은 목련존자의 수제자로 갑주를 걸친 장군의 모습으로 연아를 지켜주는데, 지옥차사를 쫓아버리고 삼두신조를 태워 죽일 정도로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그 힘에 대한 한계가 분명히 있어서 염라대왕 앞에서는 어쩌지 못해서 밸런스를 무너트리지는 않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연아의 보디가드 정도의 역할이다.

원빈이 워낙 악독한 죄인이라 지옥 중의 지옥인 대무간 아비지옥에 갇혀 있다가, 결국 연아와 재회를 하긴 하는데.. 여기서 지원을 하러 온 목련존자가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상황을 한 번에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도와줄 수 있는 일에 대한 한계가 있다는 걸 인식시켜주고. 아무리 연아의 효성이 지극해도 원빈 스스로를 구하는 것은 결국 그 자신의 깨우침이란 걸 알려주면서 곁에서 지켜보고 기도해주기만 하다가 마침내 원빈이 뉘우침을 넘어선 깨달음을 얻고 모두 함께 극락으로 복귀해서 결말이 굉장히 깔끔하다.

자식의 효성이 부모를 구원하는 것은 개심의 계기를 마련해주는 것뿐이지. 본인이 깨우치지 못하면 스스로를 구할 수 없다는 내용이라서 부처님이 직접 도움을 주거나, 혹은 연아의 기승전효성으로 단순하게 끝내지 않아 이야기에 깊이가 있다.

결론은 추천작. 작중 지옥 배경 세트장이 특촬물스러워서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좀 유치한 감이 있지만, 도깨비의 욕설과 구타 소리, 망자의 신음소리가 하모니를 이룬 지옥 서라운드 사운드 덕분에 분위기 조성은 잘했고 작중 인물이 생전에 지운 죄의 맞춤형 형벌을 묘사해 지옥물로서의 볼거리를 제공하는 한편. 인물 관계가 명확하고 선과 악을 확실히 구분해 극단적인 묘사를 통해 이야기의 몰입도를 높이며 거기에 깔끔한 결말이 뒷받침을 해줘 깊이까지 더해져 불교의 지옥 소재 영화로서 재미있게 잘 만든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의 주역 이름을 보면 지금 현재의 유명 인사들 이름과 같다. 이원빈은 원빈, 연아는 김연아다.

덧붙여 본작은 1986년에 공중파 방송 KBS1에서 석가탄신일 특선방화로 방영된 적이 있다.

추가로 이 작품이 1968년에 나온 홍콩 영화 목련구모의 리메이크작이란 말이 있는데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일단, 대지옥의 여주인공은 연아지, 목련존자가 아니다. 여주인공 목련존자란 말부터가 잘못 알려진 정보다. 실제로 목련존자는 조연 캐릭터로 따로 등장한다.

작중 염라대왕과 면식이 있는 캐릭터로 나오고 일찍이 지옥에 가서 어머니를 구해온 경험이 있어 부처의 명을 받아 연아 모녀를 돕긴 하나, 자기 수제자 효성을 보내 연아와 지옥 여행을 하게 하니 목련구모와는 전혀 다른 전개를 보여준다.

결정적으로 목련구모는 원작의 설정을 반영해 살아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을 찾아 지옥 여행을 떠나는 것인데 비해 본작에서 아버지 찾아 지옥 여행 떠나는 연아는 이미 죽어서 극락에 올라간 몸이라 큰 차이가 있다.

사실 1968년작 목련구모는 불교 지옥 영화보다는 불교 지옥을 소재로 한 무협 영화에 더 가까운 구성을 띄고 있다. 실제로 권각술을 펼치며 싸우는 씬과 목련존자가 염라대왕과 대립각을 세우며 석장으로 지옥문을 때려 부수는 장면 등이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데 대지옥에서는 그런 게 나오지 않는다.

애초에 목련존자 이야기 자체도 고려 시대의 목련경, 조선 시대의 연대 미상 고전 소설인 목련전, 중국 명나라 시대 때 정지진이 지은 목련구모권선희문 등등 여러 가지 버전이 있어서 같은 목련존자의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해도 조금씩 다른 작품이 나오는 거다.

때문에 목련구모를 리메이크했다는 게, 동명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게 아니라 목련존자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다는 의미에서 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 그건 또 리메이크와 별개의 사안이라서 목련존자 이야기의 한국판에 가깝다고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단, 목련구모가 한국에서 히트친 거 보고 ‘우리도 저런 거 하나 만들어보자!’란 식으로 만든 것일 순 있다)


덧글

  • 란티스 2017/03/03 17:43 # 답글

    아...이거 정말 어렸을때 봤을땐 무서웠었죠 특히 산성 못에 빠트려 몸에 뼈만 남아 있는 모습의 그 장면은 어렸을적에 본게 각인이 되었던지 소름이 쫙돋더라고요. 지금도그런건 싫지만 그래도 너무 인상깊었던건 아버지에 대한 연아의 모습...그러거보니 중국판으로도 목련동자이야기는 방영했던거 같은데..허나 이 영화는 솔직히 다시는 보는건 어렵겠지만요
  • 잠뿌리 2017/03/04 20:07 #

    작중 연아가 천상대효로 칭찬 받을 정도라 아버지에 대한 효성이 지극해서 자기 목숨을 바칠 정도였죠.
  • windxellos 2017/03/03 12:34 # 답글

    아주 예전에 석탄일 특선영화인가 뭔가로 TV에서 본 기억이 아슴아슴 떠오르네요. 아귀지옥에서 식량이 되는 연꽃잎을 뿌린다든가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영화 자체는 대단히 인상적으로 본 것 같은데 이미지만 남아 있고 구체적인 장면은 기억나는 게 별로 없어서 아쉽네요. 재방 같은 건 기대하기 어렵겠죠 아무래도;
  • 잠뿌리 2017/03/04 20:08 #

    연꽃을 한 잎 먹으면 며칠 동안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설정인데 그게 목련전 원작에도 나오는 거라 본작하고 목련구모에서도 빠짐없이 나오지요.
  • 무지개빛 미카 2017/03/03 14:13 # 답글

    대체 저 정도 사람을 구하러 지옥 끝까지 갈 이유가 뭔가? 하고 어릴적에도 깊이 생각한 적이 있었고, 결국 결론은 "효심이 강하면 뭐든 다합니다"라는 일종의 계몽영화라고 생각했을 정도 였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에 본 적은 있지만 아마 전... 이게 공중파가 아닌 케이블로 불교방송에서 본 적이 있을 껍니다.
  • 잠뿌리 2017/03/04 20:09 #

    그게 사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를 부각시키긴 했는데 부모도 자기 죄를 뉘우치고 스스로 깨우쳐 극락왕생한다는 게 핵심이라서 여운이 깊죠.
  • 음음군 2017/03/03 17:23 # 답글

    아 우리나라에서도 지옥에 관한 영화가 있다는걸 이글을 통해 알았습니다.
    이 영화와는 관련이없지만...
    작년에 우현한 기회에 신토호 라는 일본회사에서 만든 '지옥'이란 영화를 보게되었는데
    쇼크를 받고 한동안 무서워서 잠을 못잤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이 신토호 라는 곳이 로망 포르노 전문이란 것에 또 놀랐습니다.;;
  • 잠뿌리 2017/03/04 20:10 #

    일본에서도 60년대와 90년대에 지옥 영화가 나왔었는데 지옥형벌 묘사가 고어해서 보통 사람이 볼 때는 충격적일 수 있지요.
  • 곧휴잠자리 2017/03/10 10:54 # 답글

    이거 저 초4이던 89년 석탄절에 방영해서 조금이나마 보긴 했다는... 그 덕에 대낮인데도 분위기 안좋았어요.

    오만가지 처절한 비명소리에... 암튼 담날 학교가니 애들이 서로 어제 대지옥 봤냐며 난리났었다는 ㅋㅋ
  • 잠뿌리 2017/03/11 01:42 #

    아이들이 보기에는 진짜 컬쳐 쇼킹한 영화죠 ㅎㅎ
  • 바벨2세 2019/05/13 17:08 # 삭제 답글

    불교의 개달음은 무었일까요, 그저 평행세계의 여행일까요.
  • 잠뿌리 2019/05/14 15:51 #

    그걸 알게 되는 사람이 해탈의 경지에 오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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