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太陽の王子 ホルスの大冒険.1968) 2020년 애니메이션




1968년에 토에이에서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 아이누 민족의 서사시 ‘유카루’를 1959년에 후자카와 카즈오가 인형극으로 만든 ‘치키사니의 태양’을 원작으로 삼아 애니메이션화한 것이다.

내용은 아기 때 악마 그룬왈도에게 마을이 멸망당해 아버지와 단 둘이 멀리 피신해 해안가에서 난파선을 개조해 만든 움막에 살던 호루스가 소년이 되어 은빛 늑대 일당과 싸우다가 고대의 바위 거인 모그를 깨우게 되고. 모그의 어깨에 박혀 있던 태양의 검을 뽑아냈는데 마침 아버지가 병으로 돌아가시면서 남긴 유언에 따라 그룬왈도의 손아귀로부터 살아남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을 찾아서 절친인 아기 흑곰 코로와 함께 배를 타고 떠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아이누 신화를 기반으로 한 인형극을 원작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배경과 소품적인 부분에서 꽤 신선한 구석이 많다.

호루스가 표류한 마을은 강가의 마을인데 연어를 주식으로 삼는 곳으로 마을 주민의 복색, 축제, 결혼 풍습 등에서 아이누의 색체가 강해서 기존의 중세 판타지와 차별화됐다.

마을 사람들이 그룬왈도의 일당과 싸울 때 사용하는 무기도 작살, 활 등인데 의외로 검, 창 같은 건 잘 사용하지 않는다.

주인공 호루스의 무기만 해도 사실 검이 아니라 줄 달린 손도끼다. 태양의 검은 대 그룬왈도 결전병기이자 호루스의 대모험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상징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호루스가 손도끼 다루는 게 꽤 특이한데. 휘두르기/투척용을 겸해서 사용하고, 투척을 했다가 손에서 떠나간 걸 자루 끝에 달아 놓은 노끈을 잡아 당겨 회수하고. 또 그렇게 잡아당기면서 회전시켜 범위 공격을 시도하는 등 다채롭게 사용한다.

호루스가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찾아 떠나는 모험은 사실 도입부에 가깝고, 호루스가 모험의 과정에서 그룬왈도와 첫 만남 이후 설산에서 추락해 강가를 표류하다가 도착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이 메인 스토리라고 할 수 있다.

호루스 자체는 용감하고 남을 함부로 의심하지 않은 올곧은 성격의 소유자지만, 무슨 문제가 생기면 항상 가장 먼저 달려 나가서 단독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게 마을을 위기에서 구하는 것과 동시에 안티 세력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해 모함을 받게 되는 원인이 되어 갈등의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된다.

그래서 단순히 호루스가 그룬왈도를 물리친다!라는 내용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마을을 위해 분골쇄신하지만 모함을 받아 고난을 겪는 호루스가, 결국 그것을 극복해 혼자의 힘이 아닌. 모두의 힘을 합쳐 태양의 검을 완성해 그룬왈도를 물리친다는 내용으로 이어져서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고 묘사의 밀도가 높다.

작중에 그룬왈도를 물리칠 결전 병기인 태양의 검이 본편 스토리 내내 칼날을 벼려낼 수 없어 제대로 사용할 수 없었는데, 후반부에 호루스가 망각의 숲을 헤매다가 깨우침을 얻어 마을에서 그룬왈도에 대앙해 쌓아 올린 거대한 장작불에 모두의 힘을 모아 칼날을 벼려 내어 진검을 완성하는 것으로 나와서 본작이 가진 ‘동료’ 테마의 상징이 됐다.

하이라이트씬에서 바위 거인 모그가 동굴 벽을 무너트려 빛이 들어오자 그룬왈도를 포위한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창을 들어올려 창날에 햇빛이 반사되어 그룬왈도에게 직접 내리 쬐이고 호루스가 태양의 검으로 최후의 일격을 가하는 씬은 본작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떡밥 회수도 잘했는데 도입부에 나오는 바위 거인 모그의 떡밥이 그 케이스에 속한다.

모그가 자신의 어깨에 박혀 있던 태양의 검을 호루스가 뽑아내자 그걸 가져가도 좋다고 한 뒤, 언젠가 그 검을 제대로 사용할 날이 오면 태양의 왕자란 칭호가 따라올 것이고 그때는 모그 자신이 직접 고개 숙여 인사 하러 찾아갈 것이라고 말한 걸. 후반부에 멋지게 등장시켜서 떡밥을 훌륭하게 회수했다.

본작의 끝판 대장 그룬왈도는 능력적인 부분에서 최종 보스의 포스를 자랑해서 인상적이다. 자신의 환영을 거대화하는 것부터 시작해 늑대, 까마귀, 거대한 물고기 등 짐승들을 수하로 삼고. 눈보라 늑대와 얼음으로 된 거대한 맘모스를 조종해 싸움을 걸어오는 빙결 마법 특화 마법사다.

히로인인 힐다는 그룬왈도의 여동생으로 그의 명령에 따라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호루스와 만나 마을에 가서 노래를 불러 마을 사람들을 현혹시켜 호루스를 쫓아내지만.. 인간의 마음과 악마의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캐릭터로 나와서 단순한 히로인 그 이상의 캐릭터성을 갖고 있다.

이 작품을 초반, 중반, 후반으로 나누면 초반, 후반의 주인공은 호루스지만 중반의 주인공은 힐다라고 봐도 될 만큼 비중이 크다.

힐다가 항상 같이 다니는 동물인 다람쥐 치로는 힐다의 양심을 상징. 하얀 올빼미 토토는 악마 그룬왈도의 부하이자 힐다의 감시자로 힐다가 가진 악마의 마음을 상징한다.

힐다 본인은 자신을 잘 따르는 마을 소녀 마우니와 힐다 본인이 일으킨 재앙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은 마을 사람들을 보고 감화되어 인간의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시자인 토토와 마을 내 호루스의 안티 세력인 도라고 등과 엮이면서 악마적인 일을 벌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화되는 법 없이 악마적인 일을 해도 끝까지 인간의 마음을 잃지 않은 채 번민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힐다의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게 해준다.

고뇌를 통한 감정 묘사도 좋았지만 그 과정에서 나온 힐다의 번민하는 표정과 막판에 그룬왈도와 완전 인연을 끊고 자신의 죽음을 감수하면서 호루스 일행을 돕고 마지막에 보여준 진정 어린 미소가 가히 최고라고 할 만 했다.

결말은 권선징악으로 그룬왈도를 물리치고 도라고도 벌 받고, 힐다가 무사히 살아남아 호루스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과 재회에 성공한 해피엔딩으로 깔끔하게 잘 끝나서 상쾌한 기분을 안겨준다.

결론은 추천작. 판타지 대서사시물인데 중세 판타지가 아니라 아이누 신화가 배경이라서 신선한 맛이 있고, 단독 행동을 하던 호루스가 동료인 마을 사람들과 힘을 합쳐 악마 그룬왈도를 물리치면서 동료라는 테마가 잘 드러나 있어 용사물로서 합격점이고. 악마의 여동생이란 신분 때문에 인간의 마음과 악마의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힐다는 보통 히로인을 넘어선, 독립적인 하나의 캐릭터로서 깊이가 있어서 본편 스토리를 한층 드라마틱하게 만들었으며 그룬왈도 일당의 위협, 모그의 존재감, 마을 단위의 대규모 전투씬 등 비주얼적인 볼거리도 풍부해서 재미와 완성도를 동시에 갖춘 명작이다.

일본 현지에서 개봉 당시에는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는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전해진다.

본작의 제작 도중 오일쇼크 파동이 터져 토에이 동화에 구조조정이 단행되어 제작이 일시 중단된 걸. 토에아 동화 노조를 이끌던 다카하타 이사오와 미야자키 하야오가 회사 수뇌부와 대치한 끝에 노조의 힘으로 겨우 완성되어 세상에 선보였지만.. 개봉한 그 해 일본 사회의 혼란이 정점에 전국 100여개의 대학에서 안보 투쟁과 민주화 운동이 벌어지고 연말에 전학공투회의 도쿄 대학 야스다 강당 사건까지 벌어진 격동의 시절이었기 때문에, 만들기도 어렵게도 만들었지만 개봉 시기까지 너무나 안 좋아서 작품 자체가 온전한 평가를 받지 못해서 훗날 재평가됐다.

여담이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젊은 시절 본작의 원화 스텝으로 참여했다. 1965년에 구로다 마사오 감독이 만든 ‘걸리버의 우주여행’에서는 엔딩씬의 동화 작업 및 히로인의 반전 설정 아이디어 제안으로 참여했고 본작에선 원화 스텝 중 한 명이었다.

덧붙여 본작에 나온 힐다는 니시카와 히데아키의 ‘Z맨’에 등장한 육망삼사신 N 가이스트의 종속신 힐다로 그 이름과 설정이 오마쥬된 것 같다. 힐다는 가이스트의 종속신으로 이데아 악마 간부란 정체를 숨기고 나나씨 일행에게 접근하지만.. 나나씨의 순수한 말과 행동에 감화 받고 그런 그를 속이는 것에 가책을 느끼며 번민하던 중. 자신을 잘 따르는 마을 아이 마오와 가까워지면서 인간의 마음을 열었다가 직속 부하인 데쯔시에게 발각 당해 죽을 뻔 했다가 나나씨에게 구출된 뒤. 인간처럼 붉은 피를 흘리는 인간의 마음을 가진 이데아로서 마을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져 구원 받는 캐릭터다.

추가로 태양의 왕자란 타이틀에 태양의 검. 거기다 주인공의 이름은 호루스라서, 이집트 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신 호루스에서 그 이름을 따온 게 아닐까 싶은데 실제로는 관계가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본작을 만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은 알프스 소녀 하이디, 플란다스의 개, 엄마찾아삼만리, 미래소년 코난, 빨간머리 앤 등 70년대 인기 애니메이션에 참여하고 미야자키 하야오와의 인연으로 지브리 스튜디오에 들어가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 천공의 성 라퓨타 프로듀서. 반딧불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의 감독. 그 외 기타 여러 지브리 스튜디오 작품에 참여했다.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를 제작한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크라프트’가 해산되어 미야자키 하야오와 스즈키 토시오가 차기작인 천공의 성 라퓨타를 제작할 스튜디오를 찾던 중. 다카하타 이사오가 차라리 스튜디오를 하나 만들자고 두 사람에게 제안해 1985년에 지브리 스튜디오가 설립됐다고 한다.

다카하타 이사오는 제작자는 경영의 책임을 짊어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서 임원 취임을 사퇴하고 제작진으로서 지금 현재도 지브리 스튜디오에 소속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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