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룡시대 (大恐竜時代.1979) 2019년 애니메이션




1979년에 토에이 동화에서 사이보그 009로 유명한 이시모리 쇼타로가 원작, 각본, 감독, 그림 콘티에 참여해서 만든 TV용 단편 SF 애니메이션.

내용은 동물과 식물, 심지어 외계인까지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공감 능력 엠퍼시를 소유한 준이 어느날 밤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에 이끌려 해변가에 갔다가 레미, 쵸비를 만나서 행성 형태의 UFO와 조우하여 지구 인류가 엠퍼시 능력을 상실해 죽음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지구별이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해 준과 레미가 태어나게 했으니 삶과 죽음, 생명의 참뜻을 깨우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보라고 공룡시대로 타임슬립시켜 공룡의 번영, 멸망까지 목격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TV 스페셜 애니메이션으로선 최초로 스트레소 방송을 시도했고, 이시모리 쇼타로 본인이 작중 준의 아버지 배역을 맡아 더빙에 참가한 이색적인 전력이 있다. 이시모리 쇼타로가 성우 더빙을 맡은 건 이 작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현대의 아이들이 공룡시대로 타임 슬립을 했는데 그게 외계인이 깨우침을 얻으라고 보낸 것으로, 잠은 자는데 먹을 필요가 없는 식료불요에 공룡의 번영과 멸망이 순식간에 지나가는 빠른 시간의 흐름을 겪으면서 남녀 주인공 준과 레미가 공룡에 대한 학설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주는 걸 기본으로 하고 있다.

남자 주인공 준은 공사장의 흙에 핀 꽃 한 송이를 구하러 위험을 무릅쓰는 것부터 시작해 ‘생명의 시’라는 제목의 시집을 쓰고, 동년배의 아이들이 공차며 놀 때 혼자 우주의 소리를 듣고 지구와 현대 인류를 걱정하는 것 등등 감성 수치 만땅을 찍고 있다.

얘가 너무 감성적이고 여리디 여린데 레미까지 준과 비슷한 스타일이고 둘 다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있어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하고 화자로서 언제나 한발 멀리 서 있는데 비해 쵸비는 그 둘과 다르게 감성보다 감정을 우선시하고 저돌맹진해서 확실한 차이가 있다.

언뜻 보면 쵸비의 철없고 급한 성질로 인한 돌출 행동에 눈살을 찌푸릴 수도 있지만, 사실 가만히 보면 그쪽이 오히려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도 있다.

트리케라톱스의 새끼를 거두고, 원시인 소녀와 썸을 타고, 티라노 사우르스에 대한 강렬한 적의를 나타내면서 급기야 그 격노의 마음을 원시인들에게 전파시켜 원시인들을 이끌고 티라노 사우르스에게 저항하는 것 등등. 본작의 드라마틱한 에피소드에는 항상 쵸비가 중심에 서 있다.

애초에 UFO가 타임슬립을 시키려 했던 건 준과 레미 단 두 사람인데. 쵸비는 친누나인 레미가 한 밤 중에 나가는 걸 보고 뒤 쫓아왔다가 어쩌다 보니 시간 여행에 따라나선 것이라 변수 작용을 한 캐릭터다.

트리케라톱스가 조력자, 티라노 사우르스가 최종 보스, 티라노 사우르스에게 인신공양을 하며 숭배하는 원시 부족 등등 주요 태그들이 공룡이 나오는 서브컬쳐의 단골 소재들이다.

작중 티라노 사우르스는 최종 보스답게 굉장히 위협적으로 묘사된다. 눈에 보이는 공룡을 죄다 잡아먹고, 준 일행을 집요하게 쫓다가 반격을 당해 한쪽 눈이 멀어 외눈 공룡이 됐는데 트리케라톱스 2대에 걸친 싸움 끝에 절벽 아래로 떨어져 동귀해진 했는데도 막판에 다시 나오는 것 등등 최종 보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너무나 거대해져서 본능이 시키는 데로 마구 먹어대다가 결국 멸종한 공룡은 현대 인류의 사회와 같다고 아예 UFO의 대사로 언급되고, 살의의 파동에 눈 뜬 류 마냥 각성한 쵸비가 자신의 살의를 원시인들에게 전이시켜 부족 전체가 티라노 사우르스와 싸우고, 그 전투 과정에서 원시인들이 일제히 투창을 던지고 낙석을 시전하는 공격 씬 사이사이에 기관총, 바주카포, 미사일, 핵미사일 등 현대 병기의 그림을 순차적으로 집어넣은 연출 등을 보면 뭔가 참 시사하는 것들이 많다.

사실 본작의 테마는 공룡시대 자체보다는 엠퍼시 능력이다. 현대의 인류가 공룡처럼 멸망의 길을 걷지 않고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지혜와 사랑이고 전 인류의 엠퍼시를 깨어나게 함으로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나오기 때문이다.

돌려서 표현하는 법 없이, 작중에 나오는 대사로 스트레이트하게 설명하기 때문에 철학적인 뉘앙스가 강해도 내용 이해 자체는 쉬운 편이다.

아니, 어쩌면 철학보다 감성이 풍부하다고 하는 게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인상적인 장면이 몇 가지 있다면, 티라노 사우르스와 트리케라톱스 2대의 장렬한 공룡 일기토 씬. 쵸비와 원시 부족의 소녀가 꽃밭에서 만났을 때 급속도로 친해진 게 서로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도 어린 아이들 특유의 공감대가 있어 친해지기 쉽다고 나오는 씬, 그리고 원시인들이 맘모스, 티라노 사우르스와 싸울 때 일제히 창을 던지는 게 무슨 슈팅 게임마냥 탄막 전개를 펼치는 씬이다. (무슨 십만 궁수가 일제 사격하는 줄 알았다)

또 어쩐지 괜히 죽여서 비극적인 이벤트를 발생시켜 쵸비를 각성시킬 것 같았던 원시 부족의 소녀가 제물로 바쳐질 뻔했던 언니랑 무사히 살아남아 원시 부족의 낙석 공격에 참여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작중에 쵸비의 각성은 소녀의 죽음이 아니라 촌장이 죽어서 촌장이 제사할 때 부족 전체에 전한 원시 엠퍼시 능력이 이전되어 증오와 투쟁으로 발현된 것으로 나온다)

결론은 추천작. 공룡시대로 타입슬립하는 SF 애니메이션으로 공룡의 번영과 멸망을 통해 삶과 죽음, 생명의 참뜻을 깨우친다는 주제가 다소 어렵게 보여도 내용 이해가 쉽게 만들었고 공룡물로서의 밀도도 높아서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거의 학습 만화에 가까운데 작품 속에 내재된 감성이 너무 충만해서 일부 대사와 설정들이 손발이 오그라들게 하는 경향이 있어 약간의 감성 내성이 필요한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한글 더빙판은 더빙 자체는 좋은데 80년대 수입작이라서 그런지, 번역이 좀 괴랄하다. 공룡들의 이름 뒤에 들어가는 ‘사우르스’를 전부 ‘좌우르스’라고 표기하고, 티라노 사우르스를 킬라노 좌우르스라고 부르는데 진짜 쌍팔년도 콩글리쉬 느낌 팍팍 난다.

덧붙여 한국에서 2012년에 한상호 감독이 만든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3D’의 일본판 번안 제목이 ‘대공룡시대’인데 본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덧글

  • 포스21 2017/02/04 12:20 # 답글

    재밌군요. ^^
  • 잠뿌리 2017/02/06 22:02 #

    네. 재미있는 작품입니다.
  • Wolfwood 2017/02/04 21:39 # 답글

    그러고보니 이 더빙을 본것도 같기도 하고.......
    글을 보니 본것 같은 느낌이 들기는 하네요. 분노를 전이시켜서 티라노 잡는게 어렴풋이 떠오르는 느낌이...
  • 잠뿌리 2017/02/06 22:03 #

    쵸비가 분노 전이될 때 눈에서 불꽃이 타오르면서 죽일거야 란 말을 반복하는 게 꽤 살벌하게 다가왔지요.
  • 글로리ㅡ3ㅢv 2017/02/04 22:07 # 답글

    트리케라톱스와 외눈박이 티라노라... 어쩐지 김청기 감독의 공룡백만년똘이가 생각나네요.
  • 잠뿌리 2017/02/06 22:03 #

    생각해보면 공룡백만년똘이(똘이와 백공룡 티라노)의 현대인의 백악기 시대 시간이동 설정도 이 작품에서 따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 2017/02/08 07:5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먹통XKim 2017/02/06 13:40 # 답글

    파일로 퍼진 버젼은 1980년대 초반에 삼화비디오에서 낸 더빙 버젼으로 남주인공 성우가 이향숙 님입니다

    80년대 중반에 케베스 1에서 두어번 더빙방영했는데 성우진이 바로 요즘도 코난에서 뭉치(코지마 겐타)를 맡으신 한인숙님이 꼬맹이 쵸비 성우를 맡으셨던 기억에 남네요.

    왜 이분만 기억하냐면 어린 시절이라 그렇고 미래소년 코난에서 짐시(포비로 알려진)를 맡다보니 이 목소리다!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쵸비가 눈에서 불꽃이 일어난 채로 분노하며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에게 덤벼들자고 하던 장면이 어린 저에게는 뭔가 섬뜩하게 기억해서 잊혀지지 않았고 초반부에 꽃 목소리를 듣고 공사차량이 땅뭉개려는 걸 몸으로 막아 꽃을 구하던 남주인공을 공사장 인부들이 미친X 보듯 하며 웃던 장면이 어릴적 기억에 남았답니다.
  • 잠뿌리 2017/02/06 22:05 #

    그때 쵸비 분노 연출이 대사도 그렇고 꽤 살벌했습니다. 초반부에 준이 공사장 꽃 구해주는 장면은 공사장 인부들이 사내놈이 계집애 같다며 비웃는데, 그 전후의 준의 나레이션 대사가 너무 오글거려서 도리어 기억에 남게 됐습니다.
  • 2017/02/08 07:5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2/10 12:21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엄씨 2018/01/23 13:32 # 삭제 답글

  • 2018/02/14 14:50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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