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명작동화 숲은 살아있다(世界名作童話 森は生きている.1980) 2019년 애니메이션




1943년에 러시아의 아동 문학 작가 ‘사무일 마르샤크’가 구 소련 시대 때 집필한 동명의 희곡을, 1980년에 토에이 동화에서 야부키 키미오 감독이 만든 애니메이션. 원제는 ‘12월’. 일본판 제목은 ‘숲은 살아있다’. 한국판 번안 제목은 ‘사계절’이다.

내용은 어렸을 때 친부모를 모두 여의고 못된 계모와 의붓 언니 밑에서 구박을 받으면서 부족한 형편에도 한 겨울에 동물들의 먹이를 챙겨주며 착하게 살던 아냐가, 어느날 나라의 철없는 어린 여왕이 책을 보다가 4월에 피는 꽃 갈란투스를 보고 홀딱 빠져서 1월인 현재 갈란투스 꽃을 찾아오는 자에게 꽃을 담아 온 바구니 안에 금화를 가득 채워줄 것이라 선포를 하자, 계모와 의붓 언니에게 등이 떠밀려 눈보라가 치는 밤에 집을 나선 아냐가 추위 속에 동사할 뻔 하다가 12월 정령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본작에 나오는 12월의 정령은 1월부터 12월까지 총 12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정령 집단으로 여주인공 아냐를 위해서 1시간만 12월의 겨울에서 4월의 봄으로 계절을 바꿔 갈란투스 꽃을 채집해갈 수 있게 해준다.

고깔 후두가 달린 로브를 뒤집어 쓴 12월의 정령들은 사실 12명 전부 다 소개되는 건 아니고, 12월의 정, 4월의 정 정도가 약간 비중이 있게 나오는데 이들이 아냐를 위해 계절을 바꾸는 씬이 꽤 인상적이다.

아냐와 12월의 정령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가 전반부의 내용이고, 후반부의 내용은 어린 여왕과 계모 모녀 중심으로 진행된다.

12월의 정령 이벤트를 마친 뒤에는 아냐의 비중이 대폭 감소한다. 정확히는, 출현씬 자체가 줄어든 것인데 작중 모종의 사건으로 잠시 사라지기 때문에 여주인공의 공백이 좀 있다.

그 공백을 메우는 게 바로 어린 여왕 일행과 계모 모녀다.

아냐의 행적이나 가족 관계를 보면 우리나라로 치면 콩쥐팥쥐, 서양으로 치면 신데렐라 스타일에 가까워서 사실 아냐 중심의 이야기를 했다면 좀 식상할 수 있었을 텐데. 아냐 이외에 다른 인물을 스토리의 중심에 두니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계모 모녀는 팥쥐 모녀 뺨치게 악랄하게 묘사된다. 1월인 지금 4월의 꽃이 피어날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냐를 눈보라치는 밤에 꽃 꺾어오라고 쫓아내고는, 아냐가 얼어 죽으면 아냐 몫만큼 자기네 먹을 게 늘어난다며 낄낄거리며 좋아하는데 신데렐라의 계모와 언니들 이상이다. (최소한 신데렐라에서는 얘를 의도적으로 죽음으로 몰고 가지는 않았는데)

어린 여왕은 완전 철이 없고 자기 멋대로라서 보는 사람 뒷목 잡게 만들지만 사실 그런 황당한 행적이 본작이 가진 재미의 포인트 중 하나다.

작중의 어린 여왕이 어느 정도로 철이 없냐면 중요 문건이 올라와 사형을 시키느냐, 특사로 임명해 사면하느냐의 선택지가 나오자 손가락을 꼽더니 특사로 임명해 사면하는 건 글자가 기니까 짧은 걸로 하자며 사형에 서명하고. 왕궁 박사가 구구단을 가르치는데 틀린다고 타박하면 사형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말도 안 되는 답을 적는가 하면. 그림책에서 갈란투스 꽃을 보고 홀딱 빠져서 눈내리는 1월인 지금 4월에 피는 꽃을 따오라고 시키고, 꽃을 따오기 전까지 1월은 영영 오지 않는 거라면서 그 전까지 31일 뒤에 32일, 33일 등이 있다고 고집을 부리니 진짜 이쯤되면 어린이 동화 속 캐릭터 중에 손에 꼽을 만한 철부지다. (어쩐지 우리 헬조선의 대통령님이 생각난다)

날이 추운데 병사들이 땀 흘리는 거 보고 왜 그러냐고 묻다가, 노인 병사한테 삽으로 눈을 치우느라 더워서 땀을 흘렸다고 하니 냅다 삽을 건네받고 셀프 삽질하다가 덥다고 외투 벗는 걸 보면 요즘 관점에서 보면 천연 미소녀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밖에 어린 여왕 일행 중 ‘결단코’를 입에 달고 살면서 과학적 증명에 매달리는 박사(왕궁 박사)와 본작에 나오는 어른 중 가장 젠틀한 노인 병사도 나름 눈에 띈다.

여왕 일행과 아냐의 계모, 의붓 언니가 호수에 갔다가 1월부터 12월이 순식간에 흘러가면서 삽시간에 계절이 바뀌는 걸 경험하는 게 클라이막스씬인데 지금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완전 동화판 재난물에 가까워서 흥미진진했다.

봄의 꽃향기에 취하기도 전에 여름의 무더위와 가을의 세찬 바람, 겨울의 빙설이 무슨 콤비네이션 기술마냥 작중 인물들을 덮치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클라이막스로 향해 간다.

결말은 해피엔딩으로 어린 여왕은 조금 철이 들며, 계모와 의붓언니도 벌을 받지만 개심을 조건으로 용서의 여지를 마련해줌으로서 훈훈하게 끝난다.

보통, 이런 류의 이야기가 권선징악으로 끝나는 걸 생각해 보면 꽤 관대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콩쥐 팥쥐 원작에서 팥쥐가 사형 당해 사람 고기 젓갈로 만들어져 팥쥐 엄마에게 보내진 걸 생각하면 본작은 진짜 마더 러시아다운 자애로운 결말이다)

결론은 추천작. 러시아판 콩쥐 팥쥐/신데렐라 같은 작품으로 모종의 사건으로 히로인이 자리를 비운 동안, 어린 여왕과 계모 가족 같은 주변 인물들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스토리를 진행해서 나름대로 흥미롭고, 12월의 정령들 묘사와 사계절 변화의 마법 같은 판타지적인 설정과 연출이 확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원작 12월은 1956년에 구소련에서 동명의 타이틀로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졌고, 1956년에 일본에서 실사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뮤지컬로 제작되어 상영된 바 있다.

덧붙여 본작에서 이름이 확실히 나오는 건 여주인공 아냐 밖에 없다. 나머지 인물은 전부 지칭으로 나온다. 계모 가족은 노파/딸, 여왕 일행은 여왕, 박사, 노인 병사. 12월의 정령들은 4월의 정, 12월의 정 이런 식으로 표기된다.


덧글

  • 먹통XKim 2017/02/06 13:32 # 답글

    MBC에서 아침에 더빙방영한 거 기억나네요
  • 먹통XKim 2017/02/06 13:45 # 답글

    비디오판 성우는 역시나 비슷한 시기에 내던 (밑에 걸리버 우주여행) 성우진이 그대로 참여하셨네요

    왜냐하면 출시사가 같은 금성비디오라서(;;;;) 아냐는 최수민, 의붓언니는 박은숙,탁원제, 황원같은 성우진이네요.(김환진 성우도 있고)

    --그런데 김환진 성우 회고를 보니 이 무렵 비디오 더빙은 그야말로 각본 주고 즉석 연기하고 하루에 10편 더빙하다보니 세월지나보면 참 아쉽다고 ㅡ ㅡ...


  • 잠뿌리 2017/02/06 22:08 #

    하드한 스케줄에 즉석 연기 치곤 더빙 퀼리티가 괜찮았습니다. 계모 모녀도 특히 얄밉고 간드러지게 더빙을 해서 제대로 악역 느낌이 났지요.
  • 2017/02/08 07:5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2/10 12: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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