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시 (怪屍.1981) 2020년 전격 Z급 영화




1981년에 강범구 감독이 만든 좀비 영화. 한국판 원제는 기이할 ‘괴’와 주검 ‘시’를 쓴 괴시. 영제는 ‘어 몬스트로우스 콥스’.

내용은 대만인 강명이 강원도 백담사에서 열리는 자연보호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5년 만에 친언니 유현지을 만나러 가는 유수지와 조우해 길을 알려주는 대신 차를 얻어 타게 됐는데, 오랜만에 한국에 와서 길을 못 찾아 헤매던 도중 초음파로 해충을 박멸하는 스티브 박사의 학설에 따라 산속에서 초음파 기계로 실험하던 연구팀을 만났다가 대학 동기인 준수와 재회하고, 같은 시각 물에 빠져 죽은 술주정뱅이 용돌이가 살아 돌아와 수지를 습격하고 사진작가인 현지의 남편 영태가 살해당하기에 이르자.. 강명과 수지가 경찰의 의심을 받으면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를 표방하고 있고, 실제로 작중에 나오는 게 좀비 맞다.

이게 부두술로 살아 움직이는 시체나, 방사능 물질 유출, 바이러스에 의해 좀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해충 박멸용 초음파에 의해 시체가 움직이게 된 것이지만 말이다.

초음파가 시체의 신경을 자극해 움직이게 만들었는데 산 사람을 습격해 그 피를 빨아 먹고 핏속의 정기를 에너지원으로 삼는 것이라 흡혈귀 느낌이 나지만.. 죽은 시체가 살아 움직이는 게 기본이라서 말을 하기는커녕 지성 자체가 없고 양손을 앞으로 나란히 세운 채 다가와 목을 졸라 죽이니 좀비물스럽다.

총에 맞아 끄떡없는 것과 불에 약하다는 약점 설정도 초기 좀비물의 특성이다.

흡혈 설정이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흡혈씬 하나 없이 입에 피 좀 묻히고 나오거나, 혹은 시체의 목 근처에 피가 흐르는 씬 정도만 나오고. 좀비가 사람 목 졸라 죽일 때 목 꺾이는 소리를 리얼하게 집어넣어 교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 작품의 스틸컷에서는 작중 현지의 남편 좀비가 허우대 멀쩡하게 나와 한국 최초의 좀비물은 좀비가 용모단정하다는 말이 나오게 했는데 실제로는 좀 다르다.

상태 멀쩡한 좀비가 몇몇 있긴 하지만, 반쯤 부패한 모습으로 나오는 좀비도 여럿 있다. 중반부에 공동묘지 시체 안치소에서 등장하는 좀비들이 그런 케이스다. (특히 초록색 조명 받고 나온 곰보 좀비)

좀비들이 지성이 전혀 없고 움직임이 너무 굼떠서 좀비와의 대치씬에서 긴장감이 떨어지고 좀비를 창문에 매달고 달리는 자동차 도주씬은 마네킹 달고서 달리는 수준이라 싸구려 비주얼을 자랑하지만, 누가 됐든 죽었다 하면 좀비로 되살아나고 처음에 한 두 명 좀비가 됐던 게 나중에 초음파의 거리가 늘어나면서 병원에서 대소동이 벌어지는가 하면. 작중에서 죽은 남편, 자매 등 친지가 좀비가 되어 가족 곁으로 돌아와 목숨을 위협하는 전개가 나오는 것 등등 좀비물이 가진 위협 요소는 충분히 잘 살렸다.

강명 일행을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보고 의심을 하는 경찰 관계자와의 갈등도 괜찮았다. 강명이 스위스 아미 나이프(맥가이버칼)을 가지고 있다고 살인범으로 의심하는 건 좀 황당하지만 말이다.

워낙 옛날 영화라 특수분장은 허접하고 연출력이 떨어져 유치해 보일 순 있지만, 비주얼이 아니라 텍스트적으로 접근하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문제는 이게 완전 오리지날 스토리가 아니란 점이다.

이 작품의 스토리는 1974년에 이탈리아, 스페인 합작으로 조지 그라우 감독이 만든 좀비 영화 ‘Non si deve profanare il sonno dei morti(북미판 제목: 렛 슬리핑 콥시즈 라이(Let Sleeping Corpses Lie)’의 내용을 표절했다.

근데 이게 복사+붙여넣기 한 것은 아니고 조금씩 차이를 줘서 바꿨다.

예를 들면 남녀 주인공의 첫만남이 원작에서는 조지가 골동품 상점 주인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여행을 가던 중 주유소에 들렀는데 에드나가 실수로 오토바이를 차로 들이받아서 두 사람이 동행하게 됐는데, 괴시에서는 강명이 맨몸으로 길을 가다가 수지에게 길을 알려주겠다면서 동행을 하게 된다.

핵심 소재라고 할 수 있는 좀비 탄생의 계기가 된 것이 초음파를 사용한 해충 박멸 기계인 것은 정말 빼도 박도 못할 표절이지만.. 원작에선 청소용 트럭의 형태를 띤 해충 박멸 기계의 초음파 방사선이 원인이고, 괴시에선 해충 박멸 기계가 기지국의 형태를 띠고 있어 초음파 자체가 원인으로 나온다.

스펀지에서 방송됐을 때는 이런 사실이 알려지지 않아서 농촌 해충 방지를 위한 초음파 기계로 좀비가 탄생했다는 설정이 토속적인 소재라는 말이 나왔지만 현실은 교모하게 베낀 거다.

여주인공의 여행 목적이 자매를 찾아가는 것이고, 남주인공과 동행 후 남주인공이 잠시 자리를 비우고 해충 박멸 기계를 보러 간 사이 좀비의 습격을 받는 것과 자매의 남편이 사진작가인데 좀비에게 살해당하면서 생전에 남긴 필름을 주인공 일행이 빼돌려 사진을 현상해 좀비 탐색의 계기로 삼으며, 그 과정에 해충 박멸 기계의 영향인 듯 보이는 기형아 출산은 거의 동일하다. (원작에서는 태어난 아기의 몸에 이상 조짐이 보이는 것으로 묘사, 괴시에서는 사산된 아기의 엑스레이 사진만 나온다)

좀비설을 입증하기 위해 공동묘지 시체 안치소에 갔다가 좀비가 떼거지로 나타나고, 주인공 일행을 의심해 감시하러 온 경찰이 좀비를 총으로 쐈는데 끄떡없어서 경악하는 내용도 원작과 동일하지만.. 괴시에선 문제의 태권도 장면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서 본의 아니게 큰 차이가 생겼다.

이 태권도 장면은 강명과 수지가 좀비들과 대치됐을 때, 강명이 자세 잡고 태권도로 저항하는 씬을 말하는 것인데 스펀지에서 방송했을 때 주인공이 태권도를 사용해 좀비와 싸운다는 걸 강조해서 태권도로 좀비를 물리친다는 말이 나왔지만.. 실제로 작중에선 태권도로 저항을 하지만 전혀 안 먹힌다. 오히려 좀비가 발차기 맞고 끄떡없어서 썩소를 짓는 씬이 나올 정도다.

태권도가 안 통하자 허리띠를 풀어 좀비들을 뚜까 패지만 그것도 안 먹혀서 결국 불이 약점이란 걸 밝혀내 횃불로 시체를 태우고 도망친다.

원작에선 이 부분이 좀비의 공포를 극대화시킨 씬으로 관속에서 일어난 좀비들과 그들에 맞서 도망치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인간, 그리고 좀비 무리가 행동이 굼떠도 머릿수로 밀어 붙이며 비석을 집어 던져 뒤치기를 가해 쓰러진 경찰에게 달라붙어 식인 파티를 벌이는 것 등등 괴시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호러블하게 전개된다.

괴시에서는 좀비가 느려 터지기만 해서 별로 무섭지 않은 반면, 원작의 좀비는 느리지만 식인 설정을 기본으로 갖췄고 무려 도구를 사용하여 습격해 오기 때문에 꽤 무섭다. (비석 던지기도 그렇고, 주인공 일행이 문 걸어잠그고 들어간 집에 단체로 통나무 들어 공성추 쓰는 것 등등)

사실 좀비가 인육을 먹는다는 설정이 원작과 괴시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괴시에서는 앞서 언급했듯 사람 피를 빨아 먹고 인육은 먹지 않는다.

우연히 좀비가 불에 약하단 사실을 알게 된 것부터 남주인공이 좀비 사태의 원인을 제공한 해충 박멸 기계를 파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것, 경찰이 공동묘지 시체 안치소를 거쳐 남주인공을 붙잡아 가두었는데 해충 박멸 기계의 여파로 병원에 있던 시신들이 좀비 떼로 부활해 대소동이 벌어지며 여주인공의 자매가 좀비가 되어 돌아온 남편한테 죽어서 좀비 부바가 되는 내용 등은 기본 전개가 거의 다 똑같다.

단, 괴시의 병원 대소동은 별 다른 비주얼 쇼크 없이 스킵되듯 지나간 것에 비해 원작의 병원씬은 작품의 하이라이트씬이라서 고어 수위가 극도로 올라가며 스토리가 싹 정리된다.

특히 괴시의 병원씬에서 되게 조잡한 분장의 붕대 좀비가 원작에선 해부용 시신 좀비로 도끼 들고 사람 찍어 죽여서 존나 무섭게 나온다.

엔딩은 원작의 경우, 여주인공의 비극적인 죽음과 남주인공의 억울한 죽음, 아둔한 형사의 죽음 등 주요 인물이 떼몰살 당하고 좀비 발생 원인은 전혀 해결되지 못한 채 아포칼립스를 예견하며 끝나는 반면. 괴시는 좀비 현지에게 습격당한 강명이 죽어서 좀비가 됐지만 초음파 송신소에 불쑥 나타나 준수의 목을 조르며 동귀어진하여 초음파 기계를 파괴하고 수지와 형사는 무사히 살아남는 내용으로 끝나서 태권도 씬과 더불어 엔딩 씬 만큼은 원작과 완전 다른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은 미묘. 기존에 나온 외국의 좀비 영화 스타일을 답습한 수준이 아니라 스토리를 표절해서 만들어 오리지날리티가 거의 없고, 베껴서 만든 것 자체도 완성도가 너무 떨어져 열화판에 속해 원작을 아는 사람에겐 비웃음을 사고 원작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냥 유치하고 허접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라서 한국 영화사적으로 그 나름의 존재 의의가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대책 없는 표절 작품이지만 최초의 타이틀을 하나 달고 있는 만큼, 한국 호러 영화에 대한 견문을 넓히기 위해서 한 번쯤은 볼만 하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2011년에 KBS 2TV 스펀지에서 한국 최초 좀비 영화 ‘괴시’로 소개되어 영화가 나온 지 30년 만에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덧붙여 이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본작의 비디오 커버 위쪽에 노출된 전격 뿜는 양손은,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페노미나’ 포스터의 손을 복사+붙여넣기 한 것이다.

추가로 본작의 주인공은 대만에서 온 대만인이지만 그냥 설정만 그렇고 실제 캐릭터는 한국인에 가깝고 본작 자체도 한국/대만 합작이 아니라 한국 영화다.

대만인 주인공 설정이 들어간 이유는 강범구 감독이 1975년에 대만으로 건너가 대만 영화 제작자 고인하, 대만 영화 감독 로웨이와 교류하면서 홍콩과 대만을 오가며 거주하고 영화진흥공사 홍콩 법인과 연계해 한국 영화의 대만 수출 업무에 관여했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 싶다. 타이틀 롤만 해도 전 스텝의 이름이 한글이 아닌 한자로 표기되어 있다.

실제로 강범구 감독 자체가 1958년작 지옥화의 촬영 감독으로 데뷔한 이후 다수의 작품에 감독/연출로 참여하면서 홍콩/한국 합작으로 사망탑, 칠소여복성. 대만/한국 합작으로 몽녀한의 감독을 맡은 바 있다.

칠소여복성을 끝으로 영화 제작은 하지 않고 호소자, 강시선생, 서태후 등 중화권 외화의 한국 수입 중개업 일을 했다고 한다.


덧글

  • 남중생 2016/08/13 00:29 # 답글

    이건 좀 재미있네요. "괴시"라는 약간 생소한 한자어 제목도 그렇고, 홍콩/대만 영화를 (아무 관련도 없으면서) 흉내내는 것이 흥행 수단으로 쓰였다는 거군요...?
  • 잠뿌리 2016/08/13 08:11 #

    이 작품이 한국 최초의 좀비 영화다 보니 좀비란 단어가 생소해서 한자인 괴시를 쓴 것 같습니다. 좀비의 우리나라식 한자 표현이네요. 주인공만 대만 출신이고 나머지 인물은 대부분 한국인이라서 그걸 흥행 수단으로 쓰기 보다는 대만 수출을 염두해둔 게 아닐까 싶네요.
  • 남중생 2016/08/13 14:22 #

    아하... 반대로 해외에서의 흥행 수단! 감사합니다.
  • 사부로 2016/08/13 08:47 # 답글

    이거 꼭 한번 보고 싶었죠. 아직도 그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 잠뿌리 2016/08/13 08:51 #

    저는 최근 유튜브에서 봤습니다.
  • 사부로 2016/08/16 02:21 # 답글

    찾았습니다! 덕택에 소원 하나 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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