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마술의 여왕 (Ratu ilmu hitam.1983) 2019년 인도네시아 영화




1983년에 릴릭 수지오 감독이 만든 인도네시아산 호러 영화. 영제는 ‘더 퀸 오브 블랙 매직’이다.

내용은 마을에서 고하와 베이다의 결혼식이 열렸는데 누군가의 흑마술에 의해 베이다가 환영에 시달려 고하를 해골 귀신으로 보고는 기겁을 해서 결혼식이 난장판이 되고 고하의 의뢰로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려던 무당이 주살 당하자, 고하가 자신이 버린 옛 연인 모니에게 마녀 누명을 씌어 사람들을 선동해 모니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모니를 절벽 아래로 떨어트렸는데.. 모니가 죽지 않고 벼랑 밑에서 집을 짓고 살던 주술사 젠돈에게 구출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다음. 그를 스승으로 삼아 흑마술을 배워 흑마법의 여왕을 자처하면서 원수들에게 차례대로 복수하는 이야기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옛말이 있듯, 우리나라 전통의 원한 귀신물에는 처녀 귀신이 주로 나오는 반면,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 영화라서 그런지 귀신이 나오는 게 아니라 살아있는 인간이 흑마술을 배워 복수하는 내용이다.

같은 1981년에 나온 인도네시아산 호러 영화 ‘레야크(미스틱 인 발리)’가 인도네시아의 민간 전승인 랑다와 레야크를 다루면서 머리만 남아서 창자를 매단 채 떠다니는 흡혈귀 베난가란을 다루었다면, 본작은 흑마술만 남겨서 주술사의 복수와 저주력 대결을 메인 소재로 삼았다.

그래서 70~80년대 홍콩 호러 영화의 단골 소재였던 저주물에 가까운데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

홍콩 저주 영화는 막 살아있는 지렁이, 지네나 시뻘건 내장을 우적우적 씹는 것 등등 주술의 과정이 그로테스크한 반면. 본작은 주살 과정은 단순히 특정한 포즈를 취한 채 주문을 외우는 게 전부라 비교적 심플하고 얌전한 편이다.

심지어 작중 모니가 흑마술을 배우는 씬도 그냥 밤 하늘에 뜬 달을 배경으로 사람 그림자로 트램폴린(덤블링)하듯 통통 뛰다가, 머리 꼭대기에서 연기 나고 핏물로 머리 감고 앞머리 자른 게 끝이다. (홍콩 저주 영화였으면 지렁이, 내장 먹방이라도 했을 텐데)

근데 그렇다고 본작의 수위가 완전 낮은 건 아니다. 주술 과정은 얌전한 것에 비해 주살로 인해 사람이 죽을 때 묘사가 좀 고어하다.

그중에서 특히 가장 고어한 씬은, 작중 여주인공 모니의 가장 큰 원수라고 할 수 있는 고하의 죽음인데 자기 스스로 머리를 쑥 뽑아 버리고, 잘린 머리가 요괴화되어 하늘을 날면서 덮쳐와 산 사람의 생살을 뜯어 먹는 내용이라 꽤 강렬하다.

이 작품의 관전 포인트는 모니가 흑마술을 사용해 복수하는 씬들이다.

숄을 날려 상대의 목을 휘어감아 나무에 매달거나, 이기어검술 하듯 저주의 계란을 던져 자유롭게 조정하고, 어디선가 꺼내든 인형을 쥐어짜자 저주의 표적이 된 인간이 쥐어짜져 전신에서 피를 흘리며 죽는가 하면 논바닥 밑에 머리끝까지 빠졌다가 지렁이를 머금은 채 피 흘리는 시체가 떠오르는 것 등등 생각 이상으로 다채롭다.

모니 배역을 맡은 수잔나가 연기도 곧 잘해서 요사스러운 마녀 느낌이 풀풀 풍긴다. 원수들 눈앞에 떡 하니 나타나 경악에 찬 그들을 흑마술로 척살하고서 입가에 미소를 띤 채 힐끗 쳐다보는데 그 이미지가 꽤 인상적이다.

복장도 꽤 다양해서 나올 때마다 새로운 옷을 입고 나온다.

모니가 혼자 스토리를 이끌어나가는 건 또 아니고, 모니의 스승인 주술사 젠돈도 연기를 잘했고 캐릭터 간의 갈등 관계가 분명하며 모니의 구도자이자 동시에 본작의 최종 보스로 이중성을 갖고 있어서 존재감이 크다.

후반부의 등장하는 캐릭터인 포마나도 출현이 늦지만 비중은 매우 높다.

고하의 죽음과 함께 모니의 복수가 달성된 시점에서 복수극은 끝나는 관계로 그 다음 이야기를 진행하는 핵심적인 캐릭터로서 모니, 젠돈과 엮이며 갈등을 빚기 때문이다.

고하의 죽음과 함께 모니의 복수도 달성됐지만 끝까지 사람들을 몰살시키려는 젠돈과 포마나가 대립하고, 모니가 포마나와 우연히 만나 썸을 타자 젠돈이 둘 사이를 이간질시켜 포마나 VS 모니의 구도로 주력 대결이 펼쳐지면서 각 캐릭터가 숨기고 있던 비밀이 밝혀지며 세 사람의 인연이 종착역을 향해 나아간다.

사실 어릴 때 생이별한 남매 설정은 존나 뜬금없이 튀어 나와서 스토리의 짜임새가 좀 부족하지만, 주요 캐릭터의 갈등 관계가 확실히 마무리 짓기 때문에 결자해지를 했다.

포마나는 성직자 계열이라서 주력 대결을 펼칠 때 법력기로 맞서 싸우는 게 아니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어떤 상황에도 동요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맞서고 기도의 힘이 흑마술을 상쇄시키는 게 인상적이다.

극 후반부에 모니가 포마나에게 원 투 쌍장 화염 방사를 날리거나, 젠돈이 텅 빈 허공에서 창을 소환해 던지는 씬 등은 지금 보면 좀 유치한 연출이지만.. 그래도 주력 대결이 괴광선을 쏘면서 SF 영화를 방불케하는 싸움을 하는 건 아니라서 그렇게 싸구려 느낌이 나지는 않는다.

모니와 포마나의 주력 대결에서는 저주 인형으로 포마나의 몸을 속박하고 돌덩어리를 들어 인형을 짓누르자 거대한 바위가 소환되어 포마나를 깔아뭉개는 주술이 나름 긴박감 넘쳐서 볼만 했고, 그 뒤에 이어지는 젠돈과의 라스트 배틀에서는 주력을 집중시켜 머리를 폭발시켜 나름대로 화려하게 마무리 했다. (정신을 집중해 표적의 머리를 터트리는 연출이 데이빗 크로넨 버그 감독의 1981년작 스캐너스가 생각나지만 이 작품은 스캐너스와 같은 해에 나와서 모방한 건 아니다)

결론은 추천작. 저주, 흑마술, 주살, 주력 대결 등의 키워드만 보면 70~80년대 홍콩 저주 영화 같은데 홍콩이 아닌 인도네시아에서 만든 영화라서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스토리의 짜임새가 좀 부족하지만 캐릭터 갈등 관계를 잘 만들고 그것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주술사 배우들의 연기력이 뒷받침을 해줘 극의 몰입도를 높였으며, 몇몇 주살 연출이 강렬한 인상을 줘서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는 꽤 잘나간 영화다. 1982년 인도네시아 영화제에서 최우수 편집상, 최우수 감독상, 최우수 촬영상을 수상하고, 출현 배우 중에서는 모니 배역을 맡은 ‘수잔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고 모니의 스승인 주술사 젠돈 배역을 맡았던 ‘WD 막타르’가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덧글

  • 블랙하트 2016/04/08 11:10 # 답글

    그런데 애초에 베이다가 환영에 시달리게 했던건 누구인가요? 그게 이야기의 시발점인데...
  • 잠뿌리 2016/04/09 09:22 #

    고하와 베이다의 결혼식을 망친 흑마술의 주범은 젠돈이었습니다. 영화 거의 끝날 때쯤 본색을 드러내서 실토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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