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모 (1999) 2019년 전격 Z급 영화




1999년에 이광훈 감독이 만든 판타지 로맨스 영화.

내용은 진채별이 증권사에서 일하는 나한수와 결혼을 앞둔 사이인데 나한수가 출세를 위해 증권사 사장의 딸 차현주와 바람을 피웠는데 채별이 그 사실을 모른 채 자신을 홀대하는 한수에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가 지하철 승강장에서 자귀모의 영업 귀신들에 의해 등을 떠밀려 지하철에 치여 죽은 뒤. 엉겁결에 죽었다고 해서 엉겹결이란 이름을 부여 받고 자귀모에 가입하지 않으면 떠돌이 귀신이 된다고 해서 울며겨자먹기로 자귀모에 가입했다가, 한수가 바람피는 정황을 포착하고 생전에 성폭행을 당해 자살한 백지장의 부추김으로 복수를 꾀하는 가운데.. 자귀모 선배 귀신인 칸토라테스가 인간과 귀신은 사는 세계가 다르다며 복수를 만류하면서 갈등을 빚는 이야기다.

타이틀 자귀모는 자살한 귀신들의 모임의 줄임말이다.

본작은 당시 25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로 CG를 본격적으로 사용해 구미호, 은행나무침대 퇴마록의 계보를 잇고 있다.

당시 기준으로 한국 영화사상 최초로 첫날 개봉관이 90곳에 이르렀었다.

캐스팅도 나름대로 화려하다. 주역인 칸토라테스 역은 이성재, 칸토라테스가 찾아 해매는 생전의 연인 역에 장진영, 히로인 진채별 역은 김희선, 채별의 생전 남자 친구이자 악역인 나한수 역에 차승원. 그 외에 영업 귀신 역으로 명계남, 박광정, 저승사자 역으로 장세진, 정원중. 조연인 다이어티 역에 이영자. 그리고 특별출연으로 유퉁, 정선희, 김애경, 홍석천도 나온다.

하지만 이 작품이 나올 당시 남녀 주인공인 이성재와 김희선은 드라마로 먼저 데뷔했고 영화배우로 활동한 지 얼마 안 된, 신인 배우들이었기에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특히 김희선은 역대급 미모와 스타성을 갖춰 높은 인기를 누린 것에 반비례하듯 처참한 연기력으로 논란이 됐는데 본작에서도 그 발연기가 유감없이 드러났다.

백지장 역을 맡은 유혜정은 1998년에 ‘키스할까요’를 통해 1998년 제 19회 청룡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지만 그 수상 경력이 무색하게 본작에서 선보인 연기력은 김희선 못지않게 떨어진다. (사실 이쪽은 좀 억울할 만한 게 영화 속 캐릭터 자체가 문제가 많다. 중2병 걸린 처녀 귀신같은 느낌이라...)

김희선, 유혜정 둘 다 작중 배역의 비중은 엄청 큰 것에 비해 연기를 너무 못해서 전체 배우의 평균 연기력을 깎아 먹는다.

차라리 이 둘보다 개그우먼 이영자가 더 연기를 잘했다. 오프닝에서 영업 귀신들의 꼬임에 넘어가 아파트에 뛰어 내리기 직전의 메소드 연기는 김희선, 유혜정의 발연기와 비교하는 게 실례다

근데 사실 본작에서 가장 연기를 잘한 건 작중 채별의 어머니 역으로 나온 배우다. 단역이라서 비중이 엄청 낮지만 대사 한 마디로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누나가 왔는갑다 <- 이 대사가 ㅠㅠ)

주연 배우들의 연기력이 떨어지는 게 문제긴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각본에 있다. 이 작품은 오로지 뭔가 있어 보이는 비주얼에만 신경을 쓰고, 스토리는 완전 내놓은 자식 취급을 해서 막 나가는 구석이 있다.

채별이 한수에게 복수를 시도->칸토라테스가 제지->채별이 다시 한수에게 복수를 시도->칸토라테스가 제지. 이 전개가 반복되면서 그 과정에서 백지장이 리타이어하고, 채별이 지명수배되어 쫓기는 몸이 되어 칸토라테스가 채별을 도와 함께 도망치다가 마지막에 가서 눈이 맞아 연인이 되는데..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으로 발전할 만한 감정의 에스컬레이터가 없이 중간 내용을 스킵하고 대뜸 둘을 엮어 버려서 감정 몰입을 하기 어렵다.

칸토라테스가 엄연히 생전의 연인에 대한 미련이 남아 귀신으로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건 없이 채별을 처음부터 끝까지 도와주고 보살펴 준 게 너무 작위적이라 부자연스럽다.

이 작품 관련 기사에서 감독 인터뷰를 보면 11명의 주조연의 이야기를 다 담았다느니 어쨌다느니 하지만.. 실제로 이 작품의 중심 내용은 채별의 복수와 사랑이다. 다른 인물의 이야기는 곁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영업 귀신, 다이어티, 저승사자 등등 조연들의 이야기는 떡밥만 던졌지 회수를 하지 않아서 살짝 맛만 본 수준이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영업 귀신은 피도 눈물도 없지만 사연 있는 애들로 그들 나름의 애환이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그게 달랑 씬 하나 분량이며, 저승사자와 비밀 연애를 하는 다이어티도 연인 관계란 것만 씬 하나로 나오고 전후 과정이 나오지 않았다.

오직 채별과 관련된 캐릭터(칸토라테스/백지장)들한테만 비중을 몰아줘 다양한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그냥 캐릭터 머릿수만 많을 뿐이다.

그나마 엔딩은 주인공 커플과 악당 커플의 결자해지로 정의구현 해피엔딩으로 잘 끝났다.

사실 이 부분도 우연이 너무 지나치고, 저승사자가 뭔 호구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좀 말이 안 되는 부분도 있어 작위성의 화룡점정을 찍긴 하지만, 나름대로 고구가 먹고 목 막힌 거 사이다 마시고 뻥 뚫은 마무리라서 메데타시메다타시로 넘어갈 수 있다.

비주얼은 꽤 신경을 써서 25억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고 언론에서 헐리웃 CG를 구현했다!라는 자화자찬 기사도 올라왔지만.. 현실은 ‘구리다’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다.

저승사자가 붉은 빛을 뿜으며 주먹질을 하고 손날을 휘둘러 검광으로 베는 것부터 시작해 물을 자유롭게 조종해 물기둥과 물의 거인을 만들어 싸우고, 귀신/저승사자 등 영적인 존재들이 이승의 것과 접촉할 때의 물 같은 질감 효과, 귀신이 인간에 빙의했을 때 그 사람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바뀌는 모핑 기법 등등 이것저것 시도는 많이 했지만 연출이 너무 유치해서 기술력이 퇴색했다.

좋게 말하면 만화 같은데, 나쁘게 말하면 지나치게 만화 같아서 현실 감각이 너무 떨어져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다. (저승사자 싸우는 거 보면 무슨 킹 오브 파이터즈 실사판인 줄 알았다)

CG도 유치한데 분장은 더 유치하다. 작중 자귀모 영업 귀신이 교육할 때 극장 스크린에서 여자 귀신이 맹수 귀신한테 잡혀 먹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여줄 때 거대 구렁이 괴수 머리 인형이 여자 사람 입에 물고 꾸역꾸역 삼키는 건 무슨 영구와 공룡 쭈쭈 수준이고, 야밤에 여자 귀신이 바깥에 돌아다니면 그걸 노리고 덮쳐서 강간하는 색귀는 특촬물에도 나오지 않을 법한 조잡한 분장의 인간형 우주 괴수로 나와 발정난 개 마냥 여자 붙잡고 허리를 털어대니 끔찍한 수준이다.

이 작품은 줄거리만 보면 멜로물인데 이상하게 강간씬을 적나라게 보여줘 되게 보기 불편하다. 색귀의 존재부터 시작해서 백지장이 귀신으로서 원수에게 복수할 때마다 생전에 그들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을 과거 회상으로 보여줘서 충분히 스킵하고 넘어가도 될만한 것들에 포커스를 맞췄다.

그나마 지금 봐도 나은 점이 있다면 자살한 귀신의 사회에 대한 배경 설정이 신선하다는 점이다. 기존에 사후세계 이야기하면 흔히 저승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 반면. 본작은 현실 속에 숨겨진 귀신들의 사회로 묘사한다.

즉, 귀신이 저승으로 떠나지 않고 현실의 인간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제리 주커 감독의 1990년작 사랑과 영혼을 떠올리게 하는데 그보다 설정이 더 디테일하고 스케일이 크다.

작중에 나온 자귀모는 자살한 귀신들의 모임으로, 영업을 통해 산 사람을 자살하게 만들어 그 혼을 데려다가 가입시켜 세를 불려나가는 다단계 업체 같은 조직이다. 본관 건물도 따로 가지고 있어 귀신들이 그곳에서 거주한다.

죽은 이유에 따라서 새로운 이름을 부여 받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이승에서의 감각이 사라지고, 자귀모에 가입하지 않은 귀신은 생전의 기억을 전부 잃은 채 떠돌이 귀신이 되어 구천을 맴돌며, 모든 귀신들은 야외에서 맹수 귀신, 색귀, 저승사자 같은 위협적인 존재와 대치되기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곳이 어디가 되었든 간에 유령 레일이 쫙 깔리고 유령 열차가 나타나 이승의 것을 투과해 죽은 사람 근처에 도착해 그 혼을 실어 나르기도 한다.

정수기에서 물귀신이 튀어 나오는 것도 꽤 신선했다. (여기서 물귀신 역을 맡은 건 불량감자란 별명으로 잘 알려진 유현철이다)

오히려 저승에 대한 묘사는 거의 없고, 저승사자가 자귀모 귀신을 처형하는 장소도 허공에 떠오른 작은 땅덩이 같이 묘사해서 그쪽은 볼게 없다.

저승사자의 자귀모 귀신 처형씬도 뭐 언론 기사에서 거창하게 설명해 놓은 거치고 그냥 빛의 기둥 안에서 보라색 기운에 쐬여 물거품 느낌 나게 소멸되는 게 전부라서 대단한 CG가 들어간 것도 아니다.

차라리 대전 액션 게임 주인공마냥 광원 이펙트 아낌없이 쓰며 싸우는 저승사자가 연출이 유치해도 임펙트는 더 크다. (본작의 액션을 담당한 저승사자 역을 맡은 배우는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문영철 역을 맡았던 장세진이다)

결론은 미묘. 대충 만든 스토리, 비중 배분을 실패한 캐릭터, 유치찬란한 연출, 주연 배우들의 발연기 등 안 좋은 요소를 두루 갖춘 작품으로 그 당시나 지금 현재까지 악평을 듣는 게 당연한 졸작이지만, 현실 속에 숨겨진 자살한 귀신들의 사회를 그린 배경 설정은 저승을 중심으로 한 사후 세계 이야기와 또 다른 것이라 신선함이 있어 볼만한 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닌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을 김희선이 출현했다 하면 망하는 쪽박 영화이자 한국 CG 영화는 폭망한다고 디스하는 내용의 기사, 인터뷰, 칼럼에 항상 언급되는데.. 정작 개봉 당시인 99년에는 흥행했다는 기사가 많이 올라왔다.

개봉 당시 흥행 성적이 서울 관객 42만명 동원으로 1999년에 나온 한국 영화 중 흥행 순위 7위를 기록했다. 그래서 당시 언론에서는 흥행에 성공했다는 기사가 많이 올라왔다. (물론 제작비를 생각하면 과연 순수익이 얼마나 나왔을지 모르겠지만)

1999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중 흥행 1위인 ‘쉬리’의 관객수가 244만명이라 그게 넘사벽인 거지, 그 아래로 ‘주유소 습격사건’, ‘텔 미 썸딩’,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용가리’까지 2위부터 6위는 96~51만으로 십만 단위에서 놀았다.

용가리가 관객수 51만으로 1999년 한국 영화 흥행 순위 6위란 게 더 놀랍다. 근데 이 용가리는 제작비가 100억 으로 자귀모의 제작비인 25억의 4배나 된다. 하지만 관객 수는 겨우 10만 더 많은 수준이라 암담하다.

덧붙여 본작에서 남자 주인공 칸토라테스 역을 맡은 이성재는 이 작품 전후에 나온 ‘미술관 옆 동물원’,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1999년 청룡영화상, 대종상 영화제, 춘사 영화상,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분에서 남자 신인 연기상을 싹쓸이 했다. 근데 해당 상을 수상할 때 자귀모에 대한 언급은 쏙 빠져 있는 거 보면 필모그래피의 흑역사라고 인식하긴 한 모양이다.



덧글

  • 슈타인호프 2016/01/07 10:12 # 답글

    극장에서 봤습니다. 동행 눈치 보여서 강간씬이 보기 불편했던 기억은 저도 있네요.
  • 잠뿌리 2016/01/07 11:41 #

    그 강간씬은 충분히 스킵하고 넘어갈 법한데 너무 열심히 묘사해서 보기 되게 불편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화이트)

361661
5192
9447467

메모장

잠뿌리의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