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 속의 드라큐라 (1982) 희귀/고전 호러 영화




1982년에 이형표 감독이 만든 호러 영화.

내용은 한국에서 의사로 활동하는 장충한은 미국 유학 중인 김성혜와 약혼한 사이인데 어느날 성혜가 급히 한국에 돌아와 집에만 틀어 박혀 있으면서 약혼을 파혼하고 이상한 말을 했고 그게 실은 미국에서 친구들과 함께 덴마크의 고성에 놀러갔다가 드라큐라를 보고 도망친 것이라, 드라큐라가 성혜를 노리고 한국에 건너와 사람들을 마구 해치자 충한이 친구인 박철환 신부와 상담을 해서 그 모든 게 드라큐라의 소행인 것을 알고서 둘이 힘을 합쳐 드라큐라와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시기적으로 볼 때 한국 최초의 드라큐라 영화다. 그냥 흡혈귀 영화라기보다는 ‘드라큐라’ 영화로 70~80년대 당시 해머 필름에서 나온 크리스토퍼 리 주연의 드라큐라 시리즈를 모방했다.

주인공 장춘한은 드라큐라 원작의 조나단 하커, 김성혜는 원작에서 조나단의 약혼자인 미나 머레이(본작에서도 충한의 약혼자), 성혜의 친구로 성혜보다 먼저 흡혈을 당해 드라큐라의 하수인이 된 헬렌은 원작에서 미나의 친구인 루시 워스턴라. 충한의 친구로 드라큐라의 정체를 간파한 박철환 신부는 원작의 에이브러햄 반 헬싱 교수다.

원작에서 드라큐라의 최면에 걸려 드라큐라의 방문을 감지하고 집안에 마늘을 치우는 행적이라던가, 결국 드라큐라에게 흡혈당해 흡혈귀가 되어 관 속에 누워있는 걸 말뚝 박아 끔살시키는 것도 똑같다.

약간의 차이점이 있다면 헬싱 교수 포지션인 박 신부는 엄밀히 말하자면 흡혈귀 사냥꾼이 아니라 신부라서 엑소시즘적인 입장에서 접근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중 성혜에게 구마의식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엔딩 때 성혜에게 장례 미사를 해주기도 한다.

드라큐라 원작에서 십자가가 흡혈귀에 대적할 주요 수단으로 나온 것 치고 신부 캐릭터가 딱히 나오지 않는 걸 생각하면 나름대로 본작만의 각색이라면 각색이라고 할 수 있다.

첫 드라큐라 영화라서 엉성한 부분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성혜가 미국 유학 시절 덴마크의 고성에서 드라큐라와 조우했다가 도망친 것부터 시작해, 드라큐라가 성혜를 노리고 한국으로 건너왔는데 흡혈을 시도하다 실패할 때마다 무슨 꿩보다 닭인 것마냥 디스코텍 가서 여자 꼬셔서 흡혈하거나 병원에서 도망치자 마주친 간호사를 흡혈하는가 하면, 관이 있는 폐공장에 기계 훔치러 들어온 도둑을 각목으로 때려죽이는 것 등등 이상한 전개가 속출한다. (성혜 친구 헬렌이 근무하는 혈액 은행 찾아가서 자신이 성혜 친구이자 제약 회사 직원이라며 혈액 샘플 쪽쪽 빨아 먹는 건 앞의 전개들에 비하면 그나마 양반이다)

이상한 전개의 정점을 찍는 건 스님의 존재다.

작중 박 신부가 성혜에게 구마의식을 하고 성혜가 어머니와 같이 절로 요양을 갔다가 드라큐라가 따라오자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스님이 갑자기 툭 튀어나와 염불을 외우고 염주를 던져 드라큐라를 쫓아낸다.

그리고 막판에 충한과 박 신부가 성령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드라큐라를 용서할 수 없다며 십자가와 말뚝을 들고 드라큐라을 치러 갔다가 반격을 당해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지자 또 다시 스님이 튀어 나와서 ‘나무관 나무살! 나무관 나무살!’을 외치며 염주로 드라큐라의 목을 조여서 퇴치해 버리는데 완전 컬쳐 쇼크였다.

십자가 든 신부가 흡혈귀 사냥하는데 정작 막타 찍은 건 스님이라니. 불교 파워로 드라큐라를 물리치는 건 흡혈귀 영화 역사상 전대미문의 발상이다.

한국 호러 영화에서 지나가던 스님은 지나가던 선비와 더불어 귀신/요괴 퇴치의 스페셜 리스트라고 할 수 있는데 그걸 드라큐라 영화에서도 써먹을 줄은 몰랐다.

그 스님 VS 드라큘라의 대결 구도 하나만으로 본작은 흡혈귀 영화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컬트로 장식할 만하다.

이것은 남기남 감독의 1989년작 영구와 땡칠이에도 계승된다. 영구와 땡칠이에서도 귀신/요괴들이 판을 치자 영구가 산 위 오두막집에 기거하는 스님을 모셔서 스님이 귀신/요괴들을 맨손으로 때려잡을 때 드라큐라와 격투하는 장면도 나온다.

의외라고 할 만한 부분은 드라큐라 분장 자체는 나쁘지 않다. 배우 생긴 것도 멀쩡하고. 분장 얼굴이 지나치게 하얀 게 좀 걸리긴 하지만 크게 흠이 될 정도는 아니다.

그보다 문제는 연출이다. 드라큐라가 스님의 염주에 목이 졸린 채 입에 한가득 피를 머금고 죽는 처량한 모습과 수하인 여자 흡혈귀 헬렌은 박 신부가 십자가를 들이밀자 뜬금없이 박쥐 모습이 여러 개로 겹치며 소멸하는 것 등 흡혈귀들 최후가 너무 허접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오히려 성혜의 최후는 꽤 그럴 듯하게 묘사됐다. 말뚝에 박힌 후 송곳니를 드러내고 붉은 눈을 치켜뜬 채로 고통스러워하다 죽는 장면인데 나름대로 비장미 넘치는 연기를 선보여 드라큐라나 헬렌보다 훨씬 낫다.

결론은 미묘. 기본 스토리가 원작 드라큐라와 흡사해서 내용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고 한국 영화 사상 첫 드라큐라 영화라서 엉성한 부분이 많아 냉정하게 말하면 졸작. 잘 쳐줘야 괴작인데.. 지나가던 스님의 맹활약 하나 때문에 컬트적인 가치가 대폭 상승해서 흡혈귀 영화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로 썼기 때문에 한 번쯤은 볼만한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에서 드라큐라 배역을 맡은 배우인 켄 크리스토퍼는 전문 영화배우가 아니라서 필모그래피가 이 작품 하나로 끝이다. 주한 미군 소속 외국인 병사가 휴가 나왔을 때 캐스팅해서 찍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해머 필름의 드라큐라 배우인 크리스토퍼 리를 연상시키기 위해 켄 크리스토퍼라는 예명을 주고 찍은 것인데.. 영화 예고편이나 광고 포스터에서는 크리스토퍼 켄이라고 분명히 표시되어 있지만, 당시 신문 광고 기사에서는 크리스토퍼 리라고 잘못 표기되는 헤프닝이 발생한 바 있다.

덧붙여 이 작품은 한국 영상 자료원의 고전 영화관에서 오프라인 상영을 한 적은 있고 아직 영상자료원의 VOD나 네이버 VOD 서비스도 한 적이 없는데 스카이 라이프 영화 채널인 엠플렉스에서 아침 일찍 방영해줬었다.



덧글

  • 뚱뚜둥 2015/10/21 12:04 # 답글

    어렸을때 온 가족이 함께 극장에서 본 몇안되는 영화중 하나입니다.
    아마도 마지막 상영회차로 기억하는데 밤에 이런 영화를 보다보니 나름대로 으스스 했던 기억이 납니다. 동양의 스님과 서양의 신부가 힘을 합쳐서 드라큘라 퇴치한다고 해서 재미있게 보았던 영화입니다.
  • 잠뿌리 2015/10/29 21:19 #

    스님이 드라큘라를 퇴치하는 건 진짜 전대미문의 발상이었지요.
  • 2015/10/23 14: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10/29 21:2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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