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사자: 망자의 저주 (Viy.2014) 2014년 개봉 영화




2014년에 올레그 스텝첸코 감독이 만든 러시아산 판타지 영화.

내용은 18세기 때 영국의 지도 제작자 조나단이 세계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 서유럽에서 시작해 동유럽을 거치던 중 우크라이나의 어느 숲속에서 여비와 식량이 떨어져 곤경에 처했을 때 지나가던 사제들을 만나 간신히 목숨을 구하고 근처에 있는 마을에 방문했는데 그곳은 마녀 전설을 믿는 주민들이 사는 곳으로, 약 1년 전 영주 소트닉의 딸 파노츠카가 돌연사를 한 뒤 신학생 호머 브루터스를 불러 교회에서 3일 동안 기도를 해달라는 유언을 남겨 호머가 부름을 받고 와서 기도를 하는 과정에서 마녀의 공포에 시달리다 죽고 교회는 폐쇄된 채 1년 넘게 장례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수틀리면 사탄 취급하는 신부와 대립하는 소트닉이 은밀하게 조나단을 불러 폐쇄된 교회 지리를 측량해달라는 부탁을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네이버 영화에선 이 작품이 프랑스에서 만든 것이라고 나와 있는데 잘못된 정보다. 실제로는 러시아, 체코, 우크라이나, 독일 등 4국 합작인데 국가 비중으론 러시아가 가장 커서 러시안 영화로 분류된다.

주인공은 영국 출신의 지도 측량사 조나단 그린인데 작품의 주요 무대는 영국이 아니라 러시아. 그것도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마을로 주민들이 마녀 전설을 믿는 곳이라서 외국 대도시와 국내 지방 산골 마을 정도의 차이가 있다.

본작 내용은 러시아의 대문호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이 1835년에 발표한 단편 모음집에 수록된 ‘비이’를 각색한 것이다.

비이는 고골이 창작한 악마로 땅의 신령으로 묘사되는데 러시아에서는 1967년에 실사 영화화 됐고, 한국에서는 90년대 때 유령의 공포/괴기랜드 등 아동용 공포 서적에서 마녀의 관/요녀란 제목으로 소개된 바 있으며 2010년에는 오월의 밤/마녀의 관이란 제목이 붙어 원서 번역판이 이북으로 출시되기도 했다.

본래 비이 원작은 주인공이 호머 브루터스로 영주의 딸을 위해 반 강제로 3일 동안 기도를 하다가 마녀와 악마들에게 시달리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변하고 끝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내용인데.. 본작은 원작으로부터 1년 후에 외지인인 조나단이 주인공이 되어 마녀 사건이 벌어진 마을을 찾아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내용이다.

한국판 포스터를 보면 캐러비안의 해적을 잇는 초특급 판타지 어드벤처라고 광고하는데 이게, ‘세상의 끝. 악마들이 깨어났다!’라는 황당무계한 광고 문구에 ‘사탄의 사자: 망자의 저주’라는 유치찬란한 제목과 안 좋은 의미의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켜 폭망했다. (이래봬도 이거 러시안 블록버스터 영화인데 이런 해괴망측한 제목을 짓다니.. 러시아에 사과해! 고골한테 사과해!)

일단, 캐러비안의 해적은 바다 배경의 해적 이야기인 반면 본작은 산속 마을이 배경이다. 조나단이 마차 타고 레이싱하고, 클라이막스 때 아주 짧은 액션씬이 나오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게 판타지 어드벤처 수준인 건 아니다.

애초에 작중 조나단의 목표는 소트닉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교회 근방 지리를 측량해 지도로 그리는 것으로 금화 1000개를 받기로 한 것이다 보니 여기에 무슨 스펙타클한 모험이 들어갈 구석이 없다.

다만, 그렇다고 볼거리가 없는 건 아니다. 몇몇 장면은 꽤 임펙트가 크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오는 과거 회상에서 호머의 3일 기도 때 마녀와 대치하는 장면이 볼만하다.

1일째 밤에 마녀의 관에 놓인 꽃이 교회 안에 퍼져 눈발처럼 흩날리다가 마녀가 벌떡 일어남과 동시에 관속에서 고목 나뭇가지가 솟구쳐 올라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호머를 찾아다니는 것과 2일째 밤에 마녀가 들어간 관이 관째로 떠올라 교회 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호머가 벌목용 도끼 한 자루 들고 거기에 맞서는 장면. 그리고 조나단이 술집에서 본 악마의 환영과 비이의 존재다.

원작에서는 사실 그게 3일째 밤에 나와야 되는데 본작에서는 조나단이 밤에 마을 사람들과 술을 마시다가 보는 환영으로 나온다.

자리에 동석한 세 사람이 악마화되어 한 명은 입에서 부리 달린 악마 얼굴이 툭 튀어나오고, 다른 한 명은 하체가 없이 날개 달린 상체만 가지고 털난 짐승 손을 발처럼 써서 다가오며, 마지막 한 명은 무슨 브로켄 마냥 댕겅 잘린 자기 목을 한손에 쥐고 다른 손엔 시미터를 든 채로 주인공을 찾아다녀서 인상적이다.

그 환영씬의 화룡점정을 찍는 건 비이의 존재인데 수천 개의 망자의 손이 수풀처럼 우거져 있고 그 중앙에 반 해골에 가까운 비이의 본체가 있어 이상할 정도로 길게 늘어진 눈꺼풀을 들어 올리면 수백 개의 작은 눈알이 촘촘이 박혀 있는 두 눈동자를 번뜩거리고 있어 존재감이 상당하다.

호러 판타지 영화의 크리쳐 디자인 중에 손에 꼽을 만하다.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판의 미로 같은 느낌이다.

아쉬운 건 비이의 비중이 엄청 작다는 거다. 눈꺼풀을 들어 올리고 마법의 원 안에 숨은 주인공의 존재를 간파하는 원작의 행적을 그대로 따르긴 하나, 환상 속의 존재로서 조나단에게 양의 가죽을 쓰고 악마 흉내를 냈던 사건의 진범을 찾아 달라는 퀘스트만 줄 뿐. 그 이외의 등장씬은 쿠키 영상 때 밖에 없다.

근데 비이의 비중이 적을 수밖에 없는 게, 본작의 메인 소재는 마녀의 저주지만.. 오컬트나 위치 크래프트물이 아니라 마을 주민들이 믿고 두려워하는 마녀의 저주가 실은 인간에 의해 조작된 것이란 거짓을 밝혀내는 이야기라서 미스테리물에 가깝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보는 환영, 과거 회상에서 나온 호머 이야기, 마녀의 저주 등이 판타지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태그들이긴 한데 제일 나쁜 놈은 마녀도, 악마도 아니라 사람들을 기만하고 선동해서 이익을 취하는 인간 악당들이다.

조나단이 술집에서 환영을 본 이후로는 일체의 판타지적인 요소 없이 스토리가 전개되며, 처음부터 나쁜 놈이 누군지 다 보여줘서 사실 사건의 진범에 대한 건 네타할 거리조차 없다.

주인공이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가기보다는, 스토리에 주인공이 거꾸로 끌려 다니는 경향이 있다.

그도 그럴 게 작중 조나단은 소트닉에 비밀 임무를 맡아서 악당들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혔고, 신부의 선동으로 인해 사탄의 사자 취급을 받아 붙잡혀 화형당할 뻔하기까지 했기에 행동의 제약이 너무 커서 그렇다.

거기다 한국판 포스터는 지구를 마주하고 횃불, 화승총, 단검으로 완전 무장해 가오 잡는 뒷모습이 나오지만.. 실제로는 육체적인 스펙이 좋은 것도, 싸움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주인공 직업은 그냥 지도 측량사라고. 해적도, 병사도, 용병, 암살자도 아니란 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게 주인공의 행동 제약과 낮은 능력치로 인해 스토리가 자칫 늘어질 수 있었던 걸 다른 캐릭터들이 커버했다.

소트닉이 붙여준 조수 페트루스의 어시스트적인 활약과 마을 처녀와의 러브 라인. 악당들의 반목과 흉계로 인해 악화일로를 걷는 주변 상황 등이 서로 맞물려 스토리의 흥미를 돋궈준다.

그러다 막판에 가서 조나단이 대오각성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고 악당들의 음모를 저지해 마을을 구해줘 주인공으로서 제 역할을 다 했다.

스토리가 전반적으로 그렇게 짜임새 있는 편은 아니지만, 최소한 앞뒤가 맞지 않거나 급조한 부분은 없고 결말도 비교적 깔끔하게 잘 끝내서 평타는 친다.

결론은 추천작. 비이 원작의 액기스를 뽑아 영상화시킨 부분은 생각보다 스케일이 꽤 크고, 원작으로부터 1년 후의 사건이란 IF 스토리로 각색해 결말을 뒤집어 재해석한 내용이 흥미롭게 다가오는 작품이다.

단, 원작 그대로의 각색이 아닌 IF 스토리 각색이다 보니 원작에 대한 정보 의존도가 커서 원작을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좀 크다는 걸 염두에 두어둬야 한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2005년 12월에 제작 발표가 난 뒤에 자금 부족으로 여러번 프로젝트가 중지되었다가 2012년 10월에 가서야 겨우 촬영이 완료됐다.

러시아 현지에서는 개봉 당시 오프닝 스코어 수익이 약 6억 루블로 러시아 박스 오피스의 기존 기록을 깨고 역사를 새로 쓰면서 대히트쳤다. 그래서 후속작 제작이 발표됐고, 본작의 엔딩과 이어지는 내용으로 조나단 그린의 18세기 중국 여행기가 나온다고 한다.



덧글

  • Esperos 2015/09/26 21:47 # 답글

    헛. 고골리의 '비이'는 매우 재미나게 읽었고, 아라사에서 영화화한 것도 무척 재미났죠. 그런데 이걸 또 영화화하다니! 찾아봐야겠군요.
  • 잠뿌리 2015/09/30 19:09 #

    비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볼만합니다.
  • 2015/09/27 06:5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5/09/30 19: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포스21 2015/09/27 11:28 # 답글

    호, 뭔가 흥미가 생기네요
  • 잠뿌리 2015/09/30 19:10 #

    생각보다 괜찮은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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