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라리횬의 손자 (ぬらりひょんの孫.2008) 2019년 일본 만화




2008년에 시이바시 히로시가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를 시작해 2012년에 전 25권으로 완결한 요괴 만화.

내용은 현대 일본을 무대로 해서 관동 요괴들의 총본산 누라구미의 총대장 누라리횬의 손자로 요괴의 피를 1/4 이어 받아 낮에는 인간, 밤에는 요괴로 변하는 소년 누라 리쿠오가 조직의 3대 보스로 취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누라리횬은 저녁 시간 때 남의 집에 들어가 자기 집인 마냥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데 그 행동이 너무 당당해 아무에게도 의심 받지 않은 채 홀연히 사라지는 요괴다.

게게게의 키타로, 지옥선생 누베 등등 비롯한 요괴 만화의 단골손님으로 토리야마 세키엔이 그린 백귀야행도에 선두에 위치해 그려졌다고 해서 요괴의 총대장이란 설도 있다. 그래서 게게게의 키타로 만화 원작에서는 단역 요괴로 등장한 반면 애니메이션판에서는 요괴 부하들을 거느린 요괴 두목으로 나온다.

본작은 누라리횬의 밥도둑 설정을 잘 살려서 아예 남의 눈에 띄지 않고 기척을 지우고 움직이는 것을 기술로 승화시켜 누라리횬이 몽환을 형상화한 요괴라 정의하면서 또 한편으론 백귀야행의 필두인 요괴 두목으로 묘사한다.

작중 백귀야행은 요괴 야쿠자 조직으로 토지신들과 자기 영역을 지키며 상대 조직과 항쟁을 벌인다. 누라리횬의 복장과 등의 문신, 사용하는 주무기가 ‘시라사야’에 부하들과 맹세의 잔을 나누어 마시는 것, 그리고 조직 내에 간부들 직속 파가 따로 있는 것 등등 야쿠자 설정의 밀도가 높다.

본격 요괴 임협물(야쿠자물)로 이런 시도는 전에 본 적이 없는 것이라 신선하게 다가온다.

작중에 나오는 ‘경외’는 상대의 두려움이나 존경심을 이끌어내는 것으로 요력이나 투기에 가까운 중요한 기의 개념이며, 백귀야행은 요괴 두목이 자신의 경외로 요괴들을 사로잡아 무리를 지어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토리야마 세키엔의 백귀야행을 기본 베이스로 해서 선이 굵은 일본 전통 화풍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구성해서 일부 연출을 붓화로 그려서 굉장히 인상적이다.

기본적인 작화도 전반적으로 안정적이다. 본작이 작가의 데뷔작인데 작화가 처음부터 안정적이라서 기본기가 탄탄한 것 같다. (무엇보다 소재 특성상 요괴 집단의 전투가 주를 이루는 만큼 요괴들이 떼거지로 몰려나오는데 그걸 처음부터 끝까지 능숙하게 그린 게 대단하다)

캐릭터도 괜찮다. 누라리횬을 엄청 미화한 주인공과 1대, 2대까지.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손자)의 3대에 걸쳐 장대한 펼치는 장대한 요괴 임협물을 만들어 나가고, 병약 미남자 컨셉에 독/치료 담당 젠, 가사 아래로 천가지 무기를 다루는 정의의 히어로가 형상화된 요괴 흑스님 쿠로타보, 청면금강 요괴 아오타보, 설녀 츠라라, 머리와 몸이 분리된 실 조종사 쿠비나시 등 최측근 간부들도 각기 다른 개성과 매력이 있으며, 시고쿠산의 팔백팔 요괴 너구리나 토노의 요괴 무투파 집단, 구미호 하츠로모 기츠네의 백귀야행 등등 다른 조직도 잔뜩 나와 항쟁을 하거나 협력 관계를 맺으니 캐릭터들이 넘쳐흐른다.

문제는, 캐릭터가 넘쳐흐르다 못해 한계 수용치를 초과했다는 것이다.

백귀야행이란 설정은 거창하지만 결국 거기에 속한 멤버 중 두각을 나타내는 건 최측근 간부들 밖에 없다.

초반 레귤러 멤버인 아오타보, 쿠로타보도 중반부 이후로는 사라지고 츠라라, 쿠비나시 정도만 남는데 최후반부로 가면 사실상 츠라라 혼자 레귤러 멤버로 남는다.

누라구미 조직원보다 오히려 케이카인 음양사인 유라가 더 비중이 높아서 종족, 소속 단체가 분명 다른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쪽이 레귤레 멤버가 됐다.

레귤러 멤버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 상대적으로 이야기의 스케일은 커지고 새로운 캐릭터는 계속 늘어나는데 그게 한 명 한 명씩 나오는 게 아니라, 팀 단위로 여럿이 몰려나오니 종족, 이름, 사용하는 기술까지 공개됐는데 배경 신세를 면치 못하는 캐릭터가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작중 백귀야행의 주인은 부하의 경외를 등에 지고 일종의 합체 기술인 ‘귀전’을 사용하면서 등짝에 문신을 하나씩 늘려 가는데.. 실제 작중에서 경외 합체 기술을 사용한 멤버는 100명의 1/10인 10명도 채 안 된다.

스토리의 굴곡도 계단을 오르듯 찬찬히 올라가는 게 아니라 갑자기 한 번에 확 치고 올라가서 따라가기 힘든 점이 있다.

하고로모 기츠네의 백귀야행과 항쟁을 벌이는 교토편이 그런 부분인데 보통 만화의 최종장에 해당하는 스케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갔다가 애매하게 끝내 버리고는, 스케일이 한 차례 리셋된 이후 다음 스토리로 이어지기 때문에 뭔가 너무 급하게 전개한 것 같다.

교토편에서 백귀야행에 들어온 것처럼 보였던 토노 요괴들이 별 다른 활약도 해보지 못한 채 묻힌 것도 그렇고, 카마이타치 요괴 이타쿠를 제외한 나머지가 만화 끝날 때까지 엑스트라 신세를 면치 못한 걸 생각해 보면 캐릭터 낭비도 좀 심한 편이다.

특히 90~93막까지 장장 3회분에 걸쳐 단독 주인공으로 원샷을 받으며 분량을 할애 받은 아와시마 같은 경우, 그 에피소드 이후로는 단역으로 전락해 리쿠오와 귀전 한 번 못 써본 쩌리짱이 돼서 스토리 중반부의 피해에 해당한다. (사실 토노 일가 중 리쿠오랑 귀전을 써본 유일한 멤버는 이타쿠 하나뿐이니 나머지는 다 쩌리다)

그 밖에 큐키편에 첫 등장해 레귤레 멤버는 무리라고 해도 준 레귤러 멤버 정도는 될 것 같았던 고즈마루/메즈마루는 초반부의 피해자, 한 개 조직을 거느린 차기 두목급 캐릭터로 후반부에 합류해 최종결전을 함께 하지만 요괴의 본모습조차 보여주지 못한 닷사이는 후반부의 피해자다.

누라구미 대간부 히히가 듣보잡 요괴한테 죽은 것부터 시작해 일본 3대 악귀인 스도쿠 천황 언급, 오소레(경외 기술) 등장 이후 뜬금포로 오소레 기술 쓰는 간부들, 하쿠모노 가타리 구미의 간부 야나기다의 생사 등 자잘한 설정에 구멍이 많아 디테일이 떨어진다.

이러한 문제가 나중에 가면 나아지는 게 아니라 점차 심화돼서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하쿠모노가타리구미, 고카도인 가문과의 대결을 그린 후반부에는 아예 백귀야행이 분산되게끔 만들어 리쿠오가 최측근만 데리고 따로 행동하고 다른 멤버들은 각자 맡은 구역에서 적과 싸워 여기저기서 싸움이 벌어지는 전개가 이어진다. 그래서 안 그래도 밀도가 낮은 캐릭터 운용이 난잡해지기까지 하다.

일본 전국의 요괴들과 음양사가 모여 하나의 거대한 적과 싸운다는 점에 있어, 후지타 카즈히로의 대표작 ‘요괴소년 호야(우시오와 토라)’의 VS 백면서생전이 생각나는데 거기선 그 최후의 일전을 위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쌓아 올린 이야기와 감정이 밀도가 매우 탄탄해 그야말로 최종결전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반면, 본작은 급조된 느낌이 들어 허장성세가 따로 없다.

거기다 적과 아군의 간부급 캐릭터의 대결도 비포만 있고 애프터만 없이 강제 스킵을 해서 결착을 짓지 않아서 최종결전의 임펙트가 더욱 떨어진다.

후지타 카즈히로의 요괴소년 호야와 꼭두각시 서커스에서 최종장의 전투 때 그동안 나온 주요 캐릭터들의 굵직한 대결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분명히 마무리 지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은 끝까지 중요 포인트를 놓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캐릭터가 잘 정리된 건 츠라라 밖에 없다. 귀여운 외모와 리액션은 별개로 리쿠오의 최측근으로서 충성과 연심을 다 바치고, 인간으로서 살아갈 리쿠오를 위해 정히로인 자리를 카나에게 양보하지만 공인 최측근으로서 존재감을 과시하며 한편으로 최종 결전 이후 본가로 돌아오는 리쿠오를 맞이해주는 역할까지 맡아 대미를 장식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대활약한다. 진짜 이 작품 1권과 완결권인 25권을 보면 츠라라로 시작해 츠라라로 끝난다.

그 이외에 순수 인간으로 아무 능력도 없는데 은근히 얼굴을 자주 내비친 ‘키요 십자단’ 멤버들이 리쿠오의 인간으로서의 아이덴티티 유지에 도움을 줬고 또 종극에 이르러 리쿠오의 정체를 알면서도 그 존재를 이해해줌으로써 인간 진영 캐릭터로서의 결착을 지었기 때문에, 우르르 몰려 나왔다가 존재감 없이 사라지는 요괴들보다는 좀 나은 편이다.

결론은 평작. 데뷔작인데도 불구하고 작화에 안정감이 있고 전통화풍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 선보인 연출이 인상적이며, 요괴 야쿠자 설정이 참신하고 캐릭터도 매력적이지만.. 스토리가 그걸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그 결과 캐릭터 운영에도 실패해 폭망한 작품으로 아쉬움이 남는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연재 당시 인기가 계속 떨어져 결국 소년 점프에서의 연재가 중단됐다가, 점프 NEXT로 연재처를 이전해 간신히 완결까지 연재됐다.

덧붙여 2010년에 스튜디오 딘에서 TV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무려 2기까지 방영했다. 1기 전 24화, 2기 전 24화에 총집편과 OVA를 더해서 총 52화로 구성되어 있고 본편 내용은 원작의 교토편까지 진행되며 2기의 부제는 ‘천년마경’이다.

추가로 만화 원작 번외편에서 리쿠오의 꿈에서 나온 카나, 츠라라, 유라의 히로인 3인방 유닛 ‘카타테☆SIZE’의 노래 ‘TKG(달걀 비빔밥)밖에 사랑할 수 없어‘가 실제로 애니메이션 1기에서 해당 성우 3인조가 직접 부른 엔딩 테마로 나와서 심포닉☆드림의 앨범에 수록되었다.

책 본편에 수록된 번외편 이외에 매 권마다 책 커버를 벗기면 책 맨 앞과 맨 뒤에 1컷짜리 만화가 깨알 같이 들어가 있는데 그것도 체크 포인트다. (뭔가 단행본 커버 재질도 프리즘 카드마냥 반짝반짝 거리는 게 꽤 화려해서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다)

마지막으로 1대 누라리횬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판 ‘누라리횬의 손자 오오에도 누라구미 전말기’와 캐릭터북인 ‘누라리횬의 손자 요비록’도 한국에서 정식 발매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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