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를 먹다 (天地を喰らう.1983) 2019년 일본 만화




1983년에 모토미야 히로시가 주간 소년 점프에서 연재를 시작해 1984년에 단행본 전 7권으로 조기종결한 삼국지 만화.

내용은 악동 기질이 다분한 소년 유비가 동갑내기 제갈량과 함께 천계에 가서 용왕의 딸과 인연을 맺고 지옥계로 내려가 탄사귀와 맞서 싸우다 치명상을 입지만 그의 분투를 본 귀졸들의 도움을 받아 탄사귀의 간을 빼 먹고 담력을 익혀 늠름한 어른 사내대장부로 각성해 지상으로 귀환하여 관우, 장비를 만나 의형제를 맺고 마계의 마족들에게 조종을 받아 세상을 어지럽히는 황건적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는 ‘모토미야 히로시’가 ‘멋진 남자 김태랑’으로 잘 알려져 있고, 천지를 먹다는 캡콤이 만든 게임이 유명해서 그쪽을 먼저 접한 사람들이 많은 반면 원작 만화를 본 사람은 별로 없다.

줄거리를 보고 ‘어, 잠깐. 이건 삼국지가 아니잖아!’라는 사람이 있을 텐데 이건 과장도 각색도 아니다. 진짜 이런 내용으로 전개된다.

인간 세계 뿐만이 아니라 천계, 마계, 지옥계가 나온다.

일단 이 작품은 원제가 ‘천지를 먹다’로 ‘삼국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소년 점프 연재 당시 인기가 없어 조기 종결되는 바람에 삼국이 형성되기 전에 끝난다.

정확히는, 동탁 사후 반동탁 연합군이 해산되고 여포가 헌제를 옹립한 뒤 장안을 점거한 시점에서 후다닥 끝나 버린다.

유비는 황건적, 동탁뿐만이 아니라 마계의 마족들과 맞서 싸우며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원작의 쌍검이 아닌 칼 한 자루만 쓰는데 싸움도 엄청 잘해서 황건적의 난 때 정원지, 등무를 자기가 직접 베어 버린다. 원작 삼국지에서 그 둘을 베었어야 할 관우, 장비가 여기선 유비에게 쳐 날려진 머리를 잡는 역할만 했다.

관우는 유비의 하룻밤 침소를 마련하기 위해 단신으로 관군의 성에 쳐들어가 언월도 두 방에 문을 따고 관군 장수를 베어 버리는가 하면, 화웅 앞에 청룡언월도를 냅다 던져 놓고 맨 손으로 말 두 마리를 타고 달려가 화웅보다 먼저 청룡언월도를 집어 단칼에 베어 버리는 등의 활약을 한다.

장비는 처음에는 창을 들고 나왔다가 나중에는 보검을 들고 싸우다 또 활을 쓴다. 삼국지 원작 장비의 트레이드 마크로 할 수 있는 장팔사모를 쓰는 장면은 한 번도 안 나온다.

천지를 먹다 1(아케이드판)의 스테이지 클리어 때 나오는 장비의 일러스트도 사실 원작에 나온 컷의 일부로 보검 휘두르는 걸 칼날만 사모로 수정했다.

천지를 먹다 1(아케이드판)의 커버 일러스트에는 사모가 아닌 활을 등에 진 장비 모습이 나오는데 실제로 원작 만화에서도 다른 무기보다 활 쓰는 게 인상적이다.

기다란 통나무를 스스로 꺾어서 즉석에서 초대형 활을 만들어 화살 한 대에 적병 3명씩 한 번에 관통시켜 버리는데 완전 몬스터 헌터 수준이다.

화약을 다루는 화호, 도둑 출신인 송인, 송용 형제, 해적 출신인 주초 등 유비 진영의 오리지날 장수들이 나오지만 본편 내용이 거의 끝나갈 때쯤 여포군의 급습을 받아 단역 전부 떼몰살 당한다.

동탁군이 행군하는 다리 위에서 대자로 뻗어 자다가 군마에 밟힐 뻔 하자 벌떡 일어나 사람 탄 말을 양손으로 들어올려 다리 아래로 던지고 화약으로 다리를 폭파시켜 끊어 버린 패기를 보여준 화호를 제외한 나머지 캐릭터는 이렇다 할 단독 이벤트 하나 없어 존재감이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막판에 가서 뜬금없이 떼몰살시킨 건 좀 황당했다. 아마도 조기 종결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이 캐릭터들은 캡콤의 1989년작 ‘천지를 먹다 1(아케이드판)’에서 보조 캐릭터로 나와서 플레이어의 전투를 돕는다. 게임 내 스킨은 다 똑같지만 사용하는 무기와 썸네일 일러스트는 다르다.

제갈량, 조운은 첫 등장 때 원샷을 받는 이벤트가 있고 나중에 둘이 따로 합류하지만.. 본편 내용이 조기 종결되는 바람에 유비 진영에 정식으로 합류하는 과정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어느새 유비 일행과 나란히 서 있어서 같은 일행인 것처럼 나온다.

그 때문에 황건적의 난과 동탁의 난을 배경으로 한 천지를 먹다 1(아케이드판)에서 제갈량, 조운이 나오는 것이다.

그나마 제갈량이 조운보다 좀 나은 건 유비와 동갑내기 소년으로 초반부에 잠깐 나와서 천상계에 함께 갔다가 용왕의 딸과 떡을 치기도 하고, 유비가 황건적을 조종하는 마족과 싸울 때 용으로 변신한 용왕의 딸을 타고 날아와 황건적의 수장 장각의 실체인 마계의 왕 현상대왕과 술법 대결을 벌여 유비를 돕기도 한다.

여기서 쓰러진 현상대왕의 몸이 조각나서 108마성이 되어 중국 전역에 떨어져 108 사람 몸에 들어가 동탁, 조조가 마성의 포로가 되어 동탁의 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동탁은 천지를 먹다 1(아케이드판)에서는 말 두 마리를 타고 나와 언월도 이도류를 쓰면서 엄청 강한 이미지로 나오지만 정작 이 원작 만화에서는 전장에서의 활약은 전무하다. (정작 만화 본편에서 말 두 마리 타고 달리는 건 동탁이 아니라 관우다)

작중 동탁이 유일하게 포스 있게 나오는 건 여섯 명의 알몸 미녀에게 둘러싸인 6P를 연상씬 뿐이다.

오히려 화웅이 원작대로 관우한테 썰리긴 하지만 나름대로 포스 있게 나온다. 첫 등장에서 나레이션이 깔리는데 적장을 마구 베어 사람 머리 3개의 머리카락을 입에 씹어 물고 언월도를 든 손의 반대쪽 손에 사람 머리 다섯 개의 머리채를 잡은 채 마상 위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무시무시하다.

본편 스토리가 딱 동탁 주살까지만 나와서 여포가 조조를 제치고 유비 삼형제의 라이벌격이자 최종 보스 기믹으로 나온다.

금발 머리인데 첫 등장 때 복장이 로마군 복장이라서 서양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실제로 설정이 한인(중국인)과 서역인의 혼혈이라서 기존의 삼국지에서 나온 여포의 일반적인 이미지랑 궤를 달리하고 있다.

적토마를 타고 달리며 방천화극을 휘둘러 사람과 말을 통째로 썰어버리며 용력을 자랑하는데 그것만 강조되는 게 아니라, 소제와 헌제를 데리고 달아나던 장양을 쫓아가 베어버리고 두 사람을 구출하는 것부터 시작해 동탁군에 가담하긴 하지만 동탁을 스스로 베어 버린 뒤 헌제를 옹립하는 등 명실상부한 군주로 우뚝 선다.

본작에서는 왕윤이 나오지 않아서 초선을 이용한 이간계가 없다. 작중 초선은 여포와 친남매 지간으로 여포와 마찬가지로 금발벽안의 미녀로 아름다운 외모에 비상한 머리까지 겸비해 책사로서 활약한다.

판을 미리 짜놓고 여포의 행동을 교모하게 유도해 정원에 이어 동탁을 배신하게 만들어 한나라 궁궐을 장악해 작중 유일한 책략가 포지션이다. (작중에 나온 제갈량은 책사라기보다 도사 이미지다)

상대적으로 조조의 존재감이 상당히 희박하다.

반동탁군이 해산된 이후 유비가 형주의 유표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어 서주목이 되기는커녕 평원 태수조차 되지 못한 상태에서 끝나는 관계로 조조 세력도 당연히 크게 나오지 않는다. 심지어 조조측 장수는 조조 혼자 나올 뿐 다른 장수는 일절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전반부에서는 동탁 주살 시도, 후반부에서는 반동탁 연합군의 개기일식 전술을 주도한 부분에서 존재감이 있었다.

개기일식 전술은 본작에서 유일하게 전략 전술로 나온 것인데 개기일식이 시작될 걸 미리 알고서 검은 천으로 눈을 가리고 있다가, 태양이 가리워져 세상이 어두워졌을 때 일제 공격에 들어가 햇빛에 노출되어 있어 어둠에 익숙하지 않아 혼란에 빠진 적군을 싹 쓸어버리는 것이다.

손견은 호로관 전투에서 진작에 사망하고, 손책이 일찍 뒤를 이은 것으로 나오는데 반동탁 연합군 해산 후 전쟁 때 군량 지원을 끊었던 원술과 전쟁을 하는 것만 나와서 존재감이나 비중이 배경 인물 신세라서 단역만도 못 하다.

조기 종결이라서 소드 마스터 야마토급으로 끝냈는데.. 천계의 용왕조차 따르는 전 우주의 통치자로 석가모니상 닮은 왕황대제가 전란에 황폐화된 인간계를 보고 인류 말살을 선언했다가 용왕의 호소로 유비의 가능성을 보고서 말살을 보류. 여포, 조조, 원소/원술 형제, 손책, 유표 등등 난세의 군웅이 한 자리에 모여 천하패권을 두고 박터지게 싸우려는 순간, 유비가 병졸 하나 없이 형제들을 비롯한 가신들만 데리고 홀연이 나타나자 군웅들이 위기감을 느껴 일제히 유비를 공격하려던 찰나 번개가 내리치고 지진이 일어나고 회오리 바람이 몰아치면서 천재지변으로 난세 군웅이 싹쓸이 당해 전쟁이 끝나고. 백성들의 행렬이 유비 일행을 따르는 가운데 유비가 삼라만상에 통달해 천하를 통일한 '성천자'가 될 것이란 멘트와 함께 끝을 맺어 의식을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날리다 못해 머릿속에서 초신성 폭발을 일으킨다.

결론은 비추천. 스토리의 주역인 유비 삼형제와 여포의 재해석이 흥미롭게 다가오지만, 뜬금없이 판타지 요소를 집어넣어 판타지 삼국지가 된 것도 모자라 인기가 없어서 조기 종결되는 바람에 뭔가 제대로 시작해보기도 전에 끝나 버려 졸작이 될 수 밖에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이 가진 의의가 있다면 비록 만화가 졸작이지만 만화를 베이스로 캡콤에서 만든 게임은 명작이란 것 정도다. (정확히는, 1989/1992년에 나온 아케이드판 1, 2가 명작이다)

원작에 나온 그림 중 일부가 각 게임판에서 두루두루 쓰였다. 천지를 먹다 1(아케이드판)의 경우, 적장 물리쳤다의 컷 씬에서 유비, 관우, 장비가 적장 베는 장면은 다 원작에서 나온 것인데 조운만 그게 없어 새로 그려졌다. 원작에서는 조운이 활약하기도 전에 끝난 관계로 조운 첫 등장 때는 칼 쓰는 것만 나왔지 창 쓰는 건 안 나왔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천지를 먹다 2(아케이드판)에서 조운이 칼 들고 나오는 건 원작에 충실한 묘사다.

여담이지만 천지를 먹다 1(아케이드판)에서 장각, 장량, 장보 삼형제는 그냥 멀쩡한 인간 장수로 나온다. 원작 만화에서는 장각의 실체가 마계의 왕인 현상대왕이었지만 게임에서는 판타지쪽 설정을 전부 버렸기 때문에 그렇다. (근데 게임에서 말 두 마리 타고 쌍 언월도를 불에 달궈 파이어볼 쏘는 동탁도 충분히 판타지스럽다)

RPG로 나온 천지를 먹다(패미콤판) 시리즈는 만화 원작을 베이스로 삼되 내용 자체는 삼국지연의를 각색해 오리지날 스토리를 넣었다. (근데 여전히 판타지적인 요소가 좀 남아 있는 듯, 적벽대전에서 동남풍을 불게 하려고 뜬금없이 일본에 가서 야마타노 오로치를 물리치고 히미코에게 바람의 서를 얻어오는 전개가 나온다)

덧붙여 이 작품은 84년에 조기 종결됐지만, 저자인 모토미야 히로시는 86년에 초한지를 다룬 ‘적룡왕’으로 돌아왔다. 적룡왕은 이 작품에 비해서 판타지 요소를 전혀 넣지 않고 대하 역사극에 충실하게 그렸다. 한국에도 정식 발매되서 전 7권으로 완결됐는데 적룡왕을 먼저 접하고 천지를 먹다를 보면 괴리감이 클 것이다.

천지를 먹다 흥행 참패 후 십 수년 동안 소년 점프에 사극이 연재된 적이 없다는 건 잘못 알려진 정보다. 적룡왕이 1986년에 소년 점프에서 연재되다가 1987년에 슈퍼 점프로 이적됐다가 점프 코믹스로 단행본이 나와 완결됐다. (적룡왕은 모토미야 히로시의 주간 소년 점프 마지막 연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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