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S] EXP (1995) 2020년 가정용 컴퓨터 486 게임





1996년에 ‘YS는 잘맞춰’로 잘 알려진 열림기획에서 DOS용으로 만든 RPG 게임.

내용은 서기 2765년에 지구가 인구 증가와 자원 고갈을 해결하기 위해 지구연합 MATHICK에서 해저 개발을 착수했다가 반대가 심해 중간에 포기했는데 개발에 참여했던 사람이 다시 돌아오지 않자, 다른 행성으로의 이주 계획을 세워 R 행성의 대기가 지구와 같다는 걸 알고 행성 개발에 막대한 인력을 투자한 결과. 인간을 개조해야 R행성에서 버틸 수 있다는 걸 알고서 가난한 지구인 노동자를 보내 DESTRAGON이라 부르며 개발을 시켰고 마침내 R 행성이 제 2의 지구가 되어 DESTRAGON들 중 일부는 귀화하고 나머지는 지구 연합에 약속된 땅을 받고 정착하여 감자를 이용한 CX라는 초에너지원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는데.. 시간이 흘러 지구인들이 DESTRAGON을 외면해서 갈등이 생기고 지구인들이 탄압을 시작하자, DESTRAGON들이 반격을 개시해 R 행성을 독립시키고 제 1 지구의 일부까지 장악한 상황에서, 해저 개발 때 사라졌던 사람들의 후손이 나타나 스스로를 HYDRA라 부르며 새로운 체재를 형성. 그래서 지구가 MATHICK, DESTRAGON, HYDRA의 3개 세력으로 나뉘고 그중 MATHICK와 DESTRAGON이 전쟁을 벌이는 가운데.. MATHICK의 군부대 소속 특수요원 닉스가 R 행성의 CX 연료 공장을 파괴하는 임무인 통칭 R-PROJECT에 투입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줄거리가 장황하고 설정이 거창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별 게 없다.

일단 배경 설정이 지구연합과 개조 인류의 전쟁인데 작중 분위기는 말로만 전쟁이 났다 어쨌다 하지 전쟁 느낌은 전혀 안 난다.

애초에 주인공은 특수 요원이고 공장 파괴 미션을 수행한 뒤 군부대로 돌아갔다가 새로운 임무를 받고 타 세력과의 외교 및 함선 탈취 임무를 새로 받고 떠나는 게 본편 내용의 전부다.

주인공이 움직이는 동선에 따라 전황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서 전쟁물 느낌이 전혀 안 든다.

그냥 마을 사람들하고 대화를 나눌 때 전쟁 때문에 불안해 죽겠네. 전쟁 때문에 상권이 죽었네, 어디를 못가네. 이 정도 언급만 나올 뿐이지 전쟁의 황폐함이나 참상 같은 건 그 어디에도 묘사되지 않았다.

전투를 제외하고 마을 NPC와의 쓸데 없는 대화를 제낀 뒤 순수하게 메인 스토리 하나만 일직선으로 진행하면 플레이 타임이 1시간이 될까 말까 할 정도로 적은 분량이다.

주인공이 목적지가 아닌 곳에 불시착해 헤매는 부분만 제외해도 게임 전체 볼륨의 1/3이 뚝 잘려 나간다. 동료 셋이 파티에 합류한 시점에서 곧바로 최종 결전 장소로 넘어가서 남은 2/3 분량도 결코 많다고 볼 수 없다.

분량이 적은 만큼 스토리 밀도가 대단히 낮고 스케일은 한 없이 작다.

SF RPG를 표방하고 있지만 우주를 배경으로 한 것도 아니고, 지구와 지구를 닮은 행성에서 어디에 가든 다 똑같은 필드 맵과 좁디좁은 마을을 돌아다니는 거라 일반 RPG와 차이가 전혀 없다.

작중 3대 세력 중 하나인 HYDRA 같은 경우, 작중에 달랑 마을 하나, 성 하나 있는 작은 구역으로 묘사되고 R행성에서 시작해 지구로 건너와 MATHICK의 지구인만 잔뜩 나오지, DESTRGON은 거의 안 나와서 애초에 종족 갈등으로 번질 사건 자체가 없어서 오프닝의 배경 설명에 나온 3개 종족 대립은 뻥카다.

애초에 박스 팩키지에 나온 일러스트랑 게임 속 일러스트랑 다른 것부터가 낚시다. 박스 팩키지의 닉스, 트레이시는 메사이어의 ‘개조정인 슈비빔맨’ 짝퉁 느낌을 주고, 부르노는 캡콤의 ‘전장의 이리’를 생각나게 하지만.. 게임 속 일러스트는 전부 다르다.

심지어 박스 팩키지에 ‘치가이’라고 써있는 쿨시크한 물고기 인간처럼 생긴 애는, 작중에 ‘에그맨’이라고 해서 노란 계란처럼 생긴 애로 나온다. (참고로 EXP 데모 버전에서는 플레이어 조작 캐릭터가 에그맨이었다)

그나마 일관성 있는 디자인은 최종 보스인 MINUST인데 애 디자인은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와 스톰트루퍼를 믹스한 거다.

게임 내 그래픽 자체도 전반적으로 볼 때 그리 좋은 수준은 아니다. 스토리 전개상 R행성, 지구로 무대가 바뀌는데 어느 지역에 가든 다 똑같은 필드 밖에 안 나온다.

스토리 전개가 우주선, 배, 잠수함 등 끊임없이 뭔가를 타고 이동하는데 목적지에 도착해서 필드로 나와 보면 필드 맵 한 개를 돌려가며 쓴 거라 과연 제대로 다른 구역으로 온 게 맞는지 의문이 들게끔 한다.

그나마 실내 디자인은 좀 다르긴 한데 세세한 디테일이 떨어지고, 구역이 너무 작아 이동 반경 자체가 좁아서 퀼리티 낮은 건 마찬가지다.

던전 같은 것도 일절 없고, 트랩 요소도 전무하다.

서브 퀘스트는 게임 전체를 통틀어 딱 한 번 밖에 안 나온다. 처음 시작한 마을에서 주점에 들어가 불량배 무리를 격퇴하고 주점 주인한테 말을 걸면 100골드 받는 거다.

전투는 기본적으로 심볼 카운터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어 필드를 돌아다니는 몹과 닿으면 전투가 발생한다. 기둥이나 그늘 등에 가려져 몹이 안 보이는 경우가 생기거나, 혹은 필드나 실내 맵이 엄청나게 좁은 곳이 많아서 생각처럼 쉽게 피해 다닐 수는 없다.

전투 커맨드는 방향키 상하좌우에 엔터키를 사용한다. 상(아이템 사용), 하(퇴각), 좌(ESP/마법 사용), 우(가드). 디폴트 상태에서는 공격이 가능하다.

공격하기 전에 표적을 정하기 직전 자동으로 스카우팅이라 표기되는 애널라이즈 기능이 발동해 적 몬스터의 정확한 데이터가 나온다.

공격/피격 때는 캐릭터 전신 일러스트가 클로즈업되는데 언뜻 보면 그럴 듯 해 보이지만.. 단순히 도트 크기만 늘려서 팡팡 치는 이미지며 전용 공격 모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공격 마법은 이펙트조차 없다. (고전 FPS 게임인 ‘울펜슈타인’이나 ‘둠’에 나오는 3D 도트 캐릭터가 클로즈업되는 걸 생각하면 된다)

캐릭터 한계 레벨이 달랑 19밖에 안 되고, 경험치가 균일하게 분배되는 게 아니라.. 전투 때 적을 공격한 멤버에게만 경험치가 들어오는 방식이라서 진득하게 키우기 어렵다.

주인공은 닉스, 동료는 브루노, 트레이시, 에그맨 등 파티원은 전부 4명인데 이중에 닉스, 브루노가 전사 계열. 트레이시, 에그맨이 에스퍼(마법사) 계열이다.

전사 계열은 모든 무기/방어구를 착용할 수 있지만 에스퍼는 착용 불가능한 장비가 많다. 그 대신 사용 가능한 마법은 둘 다 공통적으로 치료 마법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이외의 것으로 트레이시는 공격 마법. 에그맨은 버프 마법을 가지고 있다.

치료 마법이 HP 회복 계열만 있고 해독 계열은 딱히 없다. 왜냐면 이 게임에는 ‘상태이상’이란 게 존재하지 않아서 그렇다. 독, 혼란, 수면, 공포 같은 게 일절 없는 것이다.

장비 슬롯은 근접 무기/총화기, 탄약, 갑옷, 방어구, 아이템, 아이템. 이렇게 이루어져 있는데 작중에 나오는 장비 종류 자체가 상당히 적어서 뭘 껴야 될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진다.

근접 무기는 게임 전체를 통틀어 람보즈 나이프, 일렉트릭 스틱 등 단 2개 밖에 안 나온다.

그나마 총화기가 여러 종류 나오는데 최강의 무기인 슬로터는 상점에서 구입할 수 없고 보물 상자에서만 얻을 수 있다.

초반부는 근접 무기가 좋지만 종류가 단 두 개 밖에 없어서 후반부로 가면 총이 더 위력이 세서 좋다. 다만, 총기류는 잔탄 제한이 있어 탄약도 따로 구입해 슬롯에 장착시켜야 하기 때문에 유지비가 따로 든다.

초반부에는 거치는 모든 마을에 여관이 있는데.. 중반부 이후로는 이상하게 마을에 여관이 싹 전멸한다. 무기점, 잡화점은 있는데 여관만 없고 스토리 전개상 가장 마지막 마을에서도 순수 여관이 아니라 뜬금없이 민박집을 한다는 NPC한테 돈을 주고 쉴 수 있게 되어있다.

상태이상이 없고 HP, MP만 회복하면 되니까 그런 것 같은데 그래도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

대사 퀄리티는 바닥을 기다 못해 심연의 어비스 수준까지 떨어졌다. 작중 나오는 개그의 대부분의 말장난이다.

몇 가지 적자면, [위대한 분이 오셨군요 / 난 위가 별로 크지 않소] , [(서태지 노래 패러디)쿵쿵짝.. 쿵쿵짜짝.. 난 알아요... 어쩌구저저쩌구../ 니가 알긴 뭘 알어?] , [(불량배가 주인공을 보며)너 갈구냐? / 아니, 닉스인데요] 대략 이런 식이라 완전 쌍팔년도 최불암 개그 스타일이다.

그밖에 주인공 일행 이름은 닉스, 브루노, 트레이시인데 특수부대 국장 비서 이름이 미스 리, 불량배 패거리 이름이 슈퍼 불량보이, 감옥 아랫방에서 똥 싸는 NPC, 아무 이유 없이 나왔는데 주인조차 자리에 없어 텅 빈 레코드 가게, 산소 마을에 미스 산소로 뽑힌 애가 전 산소 같은 여자에요 드립치고, 카지노에서 딜러가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으라고 일갈하는데 그 맞은편에 개가 멍멍 거리며 도박을 하는가 하면, 타이틀 EXP의 풀 네임은 엑설런트 포테이토인데 그게 생감자 두 쪽이 만나 하나가 되면서 신비한 힘을 발산한 것이라는 등등 상상을 초월하는 유치함을 자랑한다.

근데 박스 팩키지 홍보 문구는 이걸 가지고 환타지 코믹 RPG라고 홍보하고 있으니 총체적 난국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최악이라고 할 만한 건 허망한 엔딩이다. 이 작품은 사실 본편 내용보다 엔딩이 더 유명하다.

너무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네타를 해버리자면.. 최종 보스를 쓰러트리고 나서 자폭 스위치가 가동된 절체절명의 순간. 감자 두 쪽이 합쳐져 EXP로 각성. 말하는 감자가 주인공 일행을 도와주는데.. 그 도움이란 게 주인공을 타임워프시켜 게임 처음 시작했을 때 침상에서 깨어나고 그 사실을 깨달은 주인공이 깜짝 놀라서 두 눈 동그랗게 뜨고 ‘띠요옹’하듯 펄쩍 뛰는 장면에서 끝난다.

한 때 유행하던 짤방 대사로 말하자면 ‘아 시발 꿈’ 수준이다. 게임 힘겹게 깨고 이제 엔딩을 보려는 찰나, 리셋 버튼 누른 격이다 내 진짜 살다 살다 타임워프를 이렇게 오용한 엔딩은 난생 처음 본다.

트레이시 출생의 비밀이 밝혀졌는데 봉합이 되지 않았고, 첫 만남부터 최악이라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브루노, 스테이시의 갈등 관계와 마지막 동료 에그맨과 중간보스격 인물인 킹의 은원 관계를 정리하지 못한 채 타임슬립 엔딩 하나로 작중 인물들이 열어 놓은 플레그를 전부 분쇄시키고 후다닥 끝내 버린 거라서 더욱 최악이다.

결론은 비추천. 일본 RPG 게임을 기준으로 보면 SF 배경의 RPG도 많이 나왔지만(코나미의 랑그랑쥬 포인트, 세가의 환타지스타, 에닉스의 스타오션 등등), 당시 한국 RPG 게임 기준으로 보면 보기 드문 장르의 것이라 나름대로 유니크한 구석이 있으나.. 인간적으로 게임 스토리와 대사가 너무 유치하고 볼륨과 배경 스케일이 한없이 작으며, 본편 스토리를 어떻게 다 풀어내지도 못한 채 허겁지겁 끝낸 엔딩까지 안 좋은 걸 두루 갖춰 재미와 완성도가 극히 떨어지는 괴작이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옛날에 게임월드에서 슈퍼 겜보이(메가드라이브)용으로 나올 예정인 국산 게임이라고 소개한 적이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기획이 틀어진 건지 몰라도 결국 PC용으로 나왔다. 만약 당초 기획대로 메가드라이브용으로 나왔다면.. 소드 오브 소단의 자리를 위협할 만한 게임이 됐으리라 본다.

덧붙여 감상글에 왜 자꾸 영어 명칭을 쓰는지 의문을 가질 사람이 있을 텐데.. 이 게임은 한국 게임인데 작중 지역, 종족, 인물 명칭은 죄다 영어 대문자로 쓰고 있다. 문제는 계속 그렇게 쓰는 게 아니라 잊을 만하면 오타처럼 한글 표기가 들어가서 헷갈리게 한다는 거다.



덧글

  • 한상일 2015/04/08 10:50 # 답글

    95년도 게임이었군요 96년도로 착각하고 있었죠. 그때 당시로도 유치한 대사로 까인건 기억이 나네요. 전 아직도 ㄲㅊ수술 해줄까가 기억에 남아서 잠자리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정도입니다(...). 데모버전도 뭔가 불안불안해 보였는데 역시나 본편은 안습한 완성도였군요...
  • 잠뿌리 2015/04/09 16:50 #

    게임 타이틀에는 1995년으로 뜨는데 엔딩 롤에는 1996년이라고 적힌 걸 보면 1995년 개발, 1996년 발매인 게 정확한 것 같습니다. ㄲㅊ 수술 해줄까 그 대사가 데모 버전에만 나오는 대사라서 충격을 안겨줬는데 지금은 데모가 오히려 레어해져서 구할 수 없게 됐죠 ㅎㅎ
  • 헤지혹 2015/04/08 13:20 # 답글

    그 시대엔 나름 유명한 게임이었군요 (.....)
  • 잠뿌리 2015/04/09 16:51 #

    사실 그 시대에 나온 게임 중에 아무런 반향도 일으키지 못하고 묻힌 게임 중 하나입니다. 엔딩이 황당해서 해본 사람들만 경악을 했지요.
  • 블랙하트 2015/04/08 14:52 # 답글

    http://www.hardcoregaming101.net/korea/specials/special-lost3.htm#exp

    메가드라이브 시절의 모습은 여기에서 일부를 볼수 있습니다.
  • 잠뿌리 2015/04/09 16:52 #

    메가드라이브판 개발 스샷이나 PC판이나 그래픽은 큰 차이가 없네요. 근데 만약 메가드라이브판이 그대로 나왔다면 환타지 스타 짝퉁 소리를 들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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