령: 저주 받은 사진 (劇場版 零 ゼロ.2014) 2015년 개봉 영화




2001년에 테크모(현 코에이 테크모)에서 만든 동명의 호러 게임을, 2014년에 카도카와 문고에서 오오츠카 에이지가 노벨라이즈한 소설 ‘령 제로 ~여자 아이만 걸리는 저주~’를 원작으로 삼아 같은 해에 아사토 마리 감독이 실사 영화로 만든 작품. 패션 잡지 ‘Seventeen’ 전속 모델 나카조 아야미와 모리카와 아오이가 주연을 맡았다.

내용은 숲속에서 기숙사제로 운영하는 미션계 여학교에서 손꼽히는 미인이라 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 아야가 물에 빠져 죽는 환영에 시달리다가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자기 방에 틀어박혔는데, 그날 이후로 학생들이 차례대로 실종되어 물에 빠져 죽은 시체로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죽은 학생들이 생전에 아야를 쏙 빼닮은 소녀가 찍힌 사진을 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미치와 아야가 사건의 진상을 쫓는 이야기다.

일단 이 작품은 게임 령 제로를 원작으로 삼은 게 아니라, 게임의 소설판을 원작으로 삼아서 실사 영화로 만든 것이라서 원작의 느낌은 전혀 살아있지 않다. 제목이 아니었다면 령 제로 시리즈와 연관된 작품인지 몰랐을 거다.

보통 령 제로 하면 하얀 피부에 청순가련한 미소녀가 구식 카메라 한 대 들고 악령들을 물리쳐 퇴마무쌍을 펼치며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이야기일 텐데 본작은 카메라가 별로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애초에 퇴마물도, 미스테리물도 아니다.

굳이 장르적 정의를 하자면 백합 서스펜스 드라마에 가깝다.

본작에 나오는 저주의 원리가 뭐냐면, 아야를 닮은 수수께끼의 미소녀의 사진에 여자 아이가 자정이 되기 직전 키스를 하면 저주에 걸려 환영에 시달리다가 귀신으로부터 ‘제발, 내 저주를 풀어줘’라는 말을 듣고 카미카쿠시(실종) 당하는 것이다.

령 제로란 제목이 왜 붙었냐면, 위에서 설명한 그 저주가 학원 내에서 ‘오후 0시의 저주’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정이 되기 직전 키스하면 뒈짓한다.

감독 인터뷰를 보면 다리오 아르젠토 감독의 서스페리아, 인페르노의 영향을 받아서 기숙사를 배경으로 음악을 통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고 했는데, 작중에 들어간 음악이 서스페리아 짭 느낌 나긴 해도 배치 자체는 괜찮았지만 미친 백합 120% 전개 때문에 모든 걸 말아먹었다.

주인공 미치와 아야의 관계도 순수한 친구 사이가 아니라 완전 백합 커플이다. 아야가 사진 속 저주의 여자가 아니란 사실을 모두에게 입증하기 위해 입술 박치기를 한 것부터 시작해 너무 대놓고 백합으로 나가서 손발이 오그라든다.

저주의 여자는 아야의 모습에서 피부가 창백하게 보일 정도로 하얗게 나오는 차이가 있는데 벌건 대낮에 불쑥불쑥 나오고, 예배당에서 조회하는데 허공답보로 날아 내려와 학생들이 도미노마냥 와르르 쓰러지는가 하면 물 위를 걸어가는 등등 미스테리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전용 테마와 함께 등장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억울한 사연 있는 유령이고 완전 사악한 악령은 아니라서 링의 사다코, 주온의 가야코하고는 엄연히 다른 존재라 별로 무섭지는 않다. (애초에 미소녀 사진에 뽀뽀하면 찾아와 뒈짓한다는 설정 자체가 글러먹었다)

애초에 카미카쿠시를 통한 실종사라는 게 비포 없이 애프터만 보여주는데 그나마도 물에 퉁퉁 불은 시체가 아니라 되게 멀쩡한 시체로 나오고, 사건의 진상도 살인 자체는 귀신의 소행이 아니라서 엄청 싱겁게 끝나는데다가 작중에 나오는 카메라가 구식 카메리인 건 맞지만 게임 원작에 나온 사영기는 아니다.

카메라를 통해 유령을 볼 수는 있지만 찍어서 봉인하는 게 아니며, 히로인 전용 아이템도 아니다. 작중 조연으로 나온 메리의 어린 아들이 유령을 찍는 자유연구를 위해 들고 다니는 비품으로 처음 나온다. (대 유령 결전병기가 초등학생 자유연구 준비물로 전락하다니. 이 무슨 고스터트버스터즈 포토 캐논으로 잡으라는 유령은 잡고 쥐포 구워 먹는 것도 아니고)

카메라 이외에 원작 게임의 주요 키워드인 ‘의식’, ‘제사’, ‘제물’ 같은 옛날 풍습도 살인 사건의 계기 정도로만 나와서 오컬트 느낌도 거의 없다.

중반부에 시체 검시원으로 포지션으로 등장했다가 뜬금없이 자신이 이타코라며 공수를 시도해 여자 목소리로 희생자의 말을 전한 대머리 남자와 그 조수인 금발 염색녀는 작품 분위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도 뜬금없이 튀어나와서 위화감을 조성하는데, 원작 소설가 오오츠카 에이지가 스토리를 맡은 ‘쿠로사기 시체택배편’에 나오는 메인 캐릭터다.

본래 소설판에서는 나오지 않는데 영화판 감독인 아사토 마리가 쿠로사기 시체택배편의 열렬한 팬이라서 원작을 최대한 반영해 콜라보레이션을 이루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둘만 만화 원작 캐릭터라 영화판 캐릭터랑 있으면 되게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조연은커녕 단역 밖에 안 되는 비중을 가지고 있어 나와서 별로 하는 일 없이 공수 한 번 하고 스크린에서 사라진다. 말이 좋아 콜라보레이션이지 이쯤되면 필름, 캐스팅 낭비가 따로 없다.

근데 그보다 더 이해가 안 가는 캐릭터가 한 명 있었으니, 고스로리 아줌마인 메리(자칭)다. 아들하고 단둘이 사는 싱글맘인 것 같은데 보통 때는 급식소에서 일하며 담배 뻑뻑 피다가, 일 끝나면 가발 뒤집어쓰고 고스로리 차림에 양산 들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주인공 일행 앞에 나타난다.

사건의 진범이 누군지 알고, 범인이 저지른 살인에 대한 죄의 고백까지 들었는데 저주가 풀렸으니 아무래도 좋다는 식으로 쿨시크하게 넘어가는 거 보면 원작자가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정신 나간 캐릭터를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아무리 사건의 중심에서 벗어난 관전자 캐릭터라고 해도 이건 아니지. 사건의 진범이 벌인 과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결론은 비추천. 령 제로의 타이틀을 달고 나왔지만, 게임 령 제로랑 너무나 달라서 원작 파괴 수준인 작품으로 원작 게임 팬이 보면 엄청난 위화감을 느낄 텐데.. 원작 게임이 모르고 봐도 처음부터 끝까지 밑도 끝도 없이 백합씬만 보여주고, 무의미한 콜라보레이션부터 시작해 존재 자체에 의문이 생기는 캐릭터와 깔끔하지 못한 결 등 작품의 완성도를 갉아먹는 요소가 곳곳에 산재해 있어 작품 자체가 호러물로서 평균 이하의 졸작이다.



덧글

  • 해파리 2015/03/21 10:30 # 답글

    저한테는 짧은 머리 소녀와 잠옷을 입고 숲을 걷는 장면, 백합 분위기 등 여러 부분에서 '장화,홍련'이 생각나는 영화였어요.

    '사이렌'도 그렇고 '아오오니'도 그렇고 일본산 공포게임 원작 영화 중에선 괜찮은게 없네요.



  • 잠뿌리 2015/03/27 07:53 #

    사일런트 힐, 레지던트 이블(바이오 하자드)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지만 외국에서 만들었지요.
  • LONG10 2015/03/21 21:57 # 답글

    일본산 공포게임 원작 영화중 크라쓰는 제절초(오토기리소우)가 최고지요.
    휴가 나와서 비디오 대여점(아직 남아있을 시점)에서 빌려보는데 이게 대체 뭔지도 모르겠다가, 심지어 다른일 하시던 어머님이 "이거 대체 뭔데 보고 있는거냐?"라고 태클을 거시던 캐망작......

    그럼 이만......
  • 잠뿌리 2015/03/27 07:54 #

    오토기리소우도 언제 한번 봐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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