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무법자 (1992) 한국 애니메이션




1992년에 소년 챔프에서 박종준 작가가 그린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삼아, 심상일 감독이 만든 극장판 애니메이션. 원제는 ‘스트리트 화이터 3’인데 애니메이션판 제목은 ‘거리의 무법자’다.

내용은 서기 2010년에 세계 3차 대전으로 지구가 한 차례 멸망한 뒤 흩어져 있던 대륙이 하나로 뭉치고 멸망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대륙 위에 ‘꿈의 도시’를 세웠는데, 거기서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게임을 연패해 졸도한 우리질 도사의 명을 받고 두 제자인 이소룡과 제갈생이 그 남자를 잡으러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전체 러닝 타임이 50분밖에 안 되는데 날로 먹는 구성을 자랑해서 극장용 애니메이션이라고 하기도 좀 민망한 수준이다.

달랑 50분 밖에 안 되는 걸 1부 뿌타카타싸라비야 꿈의 궁전, 2부 꿈의 도시 스트리트 화이터로 나눠 놨다.

1부, 2부 장 제목은 거창한데 사실 1부는 제갈생, 이소룡이 달라이신(달심), 블랑카를 만나 던전 입구를 넘어가는 내용, 2부는 던전을 넘어 스트리트 화이터 공간에 들어가 춘리, 가일과 만나고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바이슨을 물리치는 이야기다.

게임에서 졌다고 자기 이긴 놈 잡아오란 명령부터 시작해 문어, 성게라고 놀림 받았다고 목숨 걸고 쫓아가는 것 등 작중 인물들의 동기부터가 말도 안 되는 것투성이다.

스토리 패턴이 ‘어딘가에 간다<처음 보는 사람이 있다<뭐야 저녀석은, 일단 공격하고 보자!<처발린다.’ 이거라서 진짜 정신산만하기 짝이 없다.

제갈생, 이소룡은 사실 원작자 박종준 작가의 간판 캐릭터한테 류, 켄 코스츔만 시킨 반면, 나머지 멤버는 원작 디자인을 그대로 가져왔다. 달라이신, 블랑카, 춘리, 가일, 혼다 등이 그 케이스에 속한다.

단, 성격은 좀 다른 게 달라이신은 남을 이용해 먹는 속이 시커먼 남자로 나오고 블랑카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해 으르렁거리는 달라이신의 부하이며, 춘리는 우라질 도사의 손녀로 제갈생, 이소룡의 구애를 한 몸에 받는다.

가일만 유일하게 원작과 같은 공군 파일럿으로 나오고 성격도 큰 변화가 없다. 아니, 사실 가일은 뭔가 이렇다 할 성격을 드러낼 에피소드도 없었다.

버뮤다 삼각지대를 비행하다가 바이슨의 발가락 떼 공격에 추락해 스트리트 화이터 공간에 떨어져 이소룡, 제갈생과 싸우다가 두 사람을 각성시켜주는 역할이라서 그렇다.

캐릭터 소개를 처음에 몰아서 하지 않고 캐릭터가 나올 때마다 평균 30초를 투자해 이름, 성격, 취미 같은 걸 일반 타자 속도로 텍스트를 늘어놔서 스토리 진행의 맥이 뚝뚝 끊기는데.. 그 프로필에 적힌 설정은 작중에 전혀 반영을 하지 않아서 필름 낭비가 따로 없다.

본편 끝나기 약 5분 전에 전반부 45분 동안 전혀 언급도 없고 암시도 주지 않았던 배경의 전말이 드러나 당황스럽게 만든다.

실은 3차 대전 이후 황폐한 지구를 구하기 위해 어떤 에너지원이 필요한데 그걸 신무천황 바이슨이 노리고 있고, 바이슨은 검은 태양의 지배자로 스트리트 화이터 공간의 주인으로서 이소룡, 제갈생 일행이 장차 큰 위협이 될 것 같아 그들을 한 자리에 모아 서로 싸워 죽게 하려고 했는데.. 정작 우라질 도사는 일곱 화이터들이 모두 모여 힘을 합치면 바이슨을 쳐 잡을 수 있다고 말하고, 실제 최종 전투에선 여섯 명이 함께 싸우지만 모두 바이슨한테 처 발렸다가 이소룡, 제갈생이 각성해 ‘용혈신지’라는 더블 장풍으로 격퇴한다.

여기서 여섯 명은 오타가 아니다. 분명 작중 우라질 도사는 화이터가 일곱명이고, 세계 칠대불가사의를 통해 스트리트 화이터 공간으로 넘어올 것이라고 했는데 정작 그렇게 넘어온 건 가일 한 명 뿐이고 그나마 일곱 번째 멤버는 나오지도 않는다. 이소룡, 제갈생, 달라이신, 블랑카, 춘리는 그냥 정문 열고 안에 들어왔다.

혼다는 그래도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지나가다 한 번 잠깐 나와 베가(발록)을 한 방에 관광시켰는데 장기에프와 사가트는 아예 나오지도 않는다. (베가가 불쌍한 건 혼다한테 한 방 맞고 깨졌는데 가면이 곧 맨 얼굴로 나온다는 거다)

끝판 대장인 바이슨은 사실 이름만 따왔지, 디자인이 오리지날 캐릭터인데 정확히는 원작자의 오너캐로 짜리몽땅한 키에 콧물을 흘리며 발냄새와 발가락 떼 같은 걸 사용하는 더러운 캐릭터로 나온다. 근데 작중 명칭은 거창해서 신무천황 바이슨이고 라스트 보스전에서 뜬금없이 승룡권을 외치며 주먹질을 한다.

결과적으로 사람 소개하고 모이는데 45분, 배경 설명 1분, 라스트 배틀 2분, 스텝롤 2분. 이런 날로 먹는 구성을 띠고 있는데 결말도 깔끔하게 끝낸 게 아니라 ‘크크크, 다음에 두고 보자!’ 이런 식으로 마무리를 지어서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다. (이정도면 진짜 한국 애니메이션 역대급 구성이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각본을 쓴 건지 알 수가 없다)

성우진은 오세홍(이소룡), 유해무(제갈생), 최수민(춘리), 김환진(달라이신), 장광(가일), 바이슨(설영범) 등으로 지금 보면 캐스팅이 화려하긴 한데.. 투 탑 주인공인 이소룡, 제갈생이 워낙 소란스럽고 정신 줄 놓은 캐릭터들이라 집중하기가 어렵다.

결론은 비추천. 붉은매와 더불어 소년 챔프표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이지만, 내용 자체가 허술하다 못해 날로 먹는 구성이라서 원작을 제대로 살리지도 못한 엉망진창의 괴작이다.



덧글

  • 잠본이 2015/02/14 19:30 # 답글

    폐기물 감별하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ㅠㅠ)
  • 잠뿌리 2015/02/15 21:43 #

    이번 폐기물은 상상 이상으로 독했습니다.
  • 장금이 2017/10/05 16:15 # 삭제 답글

    정말로 볼만 했습니다 스토리가 좀 허무하고 그렇지만
    어렸을적 추억이 떠오르네요 나름대로 재미있게 잘 즐겨 봤습니다
    우리나라는 스토리에 약하다는게 좀 있지만.
  • 잠뿌리 2017/10/11 11:15 #

    스토리 약한 게 치명적인 문제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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