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왕 (2014) 2014년 개봉 영화




2011년에 기안 84 작가가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했던 동명의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삼아, 2014년에 오기환 감독이 실사 영화로 만든 작품.

내용은 학교에서 일진 성철이한테 괴롭힘을 당하던 빵셔틀 우기명이 서울로 전학 온 뒤 전교 제일의 미녀로 기안고 여신이라 불리는 박혜진에게 첫눈에 반해 패션의 길을 걸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본작은 웹툰 원작 영화지만 줄거리나 캐릭터 설정이 원작과 좀 다른 점이 많다.

본래 주인공 우기명은 공부만 할 줄 아는 평범한 고등학생인데 좋아하는 여자 아이한테 관심을 받고 싶어서 패션왕의 길을 걷게 됐고, 일진 애들과 친하게 지내는데.. 본작에서는 빵셔틀 출신으로 일진에게 괴롭힘을 당해서 전학을 간 것이며, 패션왕의 길을 걷게 된 동기는 원작과 같지만 그 과정과 결과는 상당히 다르다.

김두치, 김원호, 김창주. 이렇게 삼김 세 명은 원작에서 우기명의 베스트 프렌드로 나왔는데 영화에서는 김창주가 절친 포지션, 김원호가 악역이자 끝판 대장. 김두치는 김원호의 충실한 하수인이자 양아치 일진으로 나온다.

원작의 히로인 박혜진도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김원호와 사귀는 사이로 우기명을 상대로 간보기하고 어장 관리하다가 수틀리니까 냅다 차버리는 극악무도한 악녀로 묘사되고 있다.

원작에서 우기명을 좋아하다가 김두치와 사귀게 되는 곽은진이 영화에서는 히로인 포지션을 차지했다. 우기명의 멘탈을 케어하는 히로인으로서 작중 로맨스 부분의 비중이 커서 포커스를 한 몸에 받는다.

김남정은 원작보다 비중이 크게 높아져 우기명의 멘토로서 패션왕 콘테스트 끝까지 우기명을 캐리한다.

일단 등장인물의 관계 설정을 새롭게 하고, 본래 친구, 연인이었던 캐릭터가 악역으로 나와서 선악 대결 구도로 진행되는 게 좀 낯설고 어색하게 다가온다.

본래 패션왕에서 패션 대결은 선악 대결 구도 같은 것 없이 그냥 병맛 간지 배틀을 벌이는 것인데.. 본작에서는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삐뚤어진 부잣집 도련님과 일진 양아치에 맞선 왕따 출신의 패션 혁명이라서 쓸데없이 진지하다.

우기명은 왕따 출신이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희노애락의 감정이 없이 세상사에 달관한 캐릭터로 묘사된다. 울거나 화내고 좌절하는 법 하나 없이 무슨 구름 위의 신선마냥 속세에 초연한 자세로 허허 웃으며 조곤조곤 말해서 무미건조하게 다가온다.

사실 주원 자체가 꽃미남이라서 우기명이 원작의 너드가 아닌, 꽃미남 빵셔틀로 재축된 관계로 지나치게 여성 관객의 팬심을 노린 작위적인 설정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사람이 아니라 인형 같은 느낌마저 준다.

그 단적인 예로 작중 우기명이 한혜진의 생일날 집에 찾아가서 실로폰을 치며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인데 그건 진짜 본편 최악의 장면으로 보는 순간 의식이 아득한 우주 저편을 넘어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걸 느꼈다. (어떻게 보면 인터스텔라와 비슷한 점도 있다. 그쪽은 진짜 블랙홀에 간 거지만..)

그 이외에 패션왕 콘테스트 준결승전이 원작에 없던 여심을 사로잡는 대결이라서 곱게 단장하고 심사 위원한테 가상 고백하는 씬이 나오는데 이쯤되면 추정이 아니라 확정이다.

그런 여성향 추가 설정을 제외하면 남는 게 없는데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으로서의 목적이 애매하다는 거다. 원작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나는 패션왕이 될 거야!’라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집념, 집착, 의지 같은 게 전혀 없다.

본작에서도 패션왕이란 것 자체는 별로 중요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냥 패션이란 못 가진 자가 가진 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란 말을 집어넣음으로서 사회 기득권층에 대항할 무기로만 묘사할 뿐이다.

근데 그게 선악 대결 구도를 만들어 놓고 악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하지 않은 채 애매하게 끝내 버리기 때문에 주인공의 당연한 승리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없다.

작중의 끝판 대장 김원호는 생부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패션왕이 되고자 하는 분명한 목표가 있고, 그것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서 돈과 양아치를 동원해 이기려고 하는 악랄함까지 갖췄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우기명이 너무 초탈해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일 없이 두 사람의 갈등은 되게 싱겁게 끝난다.

패션왕 콘테스트는 원작에서 결승전이 나오지 않고 흐지부지 된 반면 본작에서는 결승전 끝까지 다 나오는데 본편의 하이라이트가 되어야 할 결승전이 병맛 간지 배틀이 아닌 왕따 극복물로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인 싸구려 신파극으로 끝내기 때문에 패션왕의 아이덴티티를 상실했다.

애초에 본작에서 패션 배틀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낮다. 러닝 타임이 114분이나 되는데도 불구하고, 패션 배틀이 나오는 부분은 작품 전체를 통틀어 딱 2번. 원작에서도 나온 우기명 장님컷, 체육간지 대결 밖에 없다. 전부 합쳐 5분도 채 안 되는 짧은 분량이다.

그 짧은 분량의 내용도 우기명 장님컷을 제외하면 묘사의 밀도가 매우 떨어진다. 그것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원작의 패션 배틀은 사실 병맛 나는 상황을 적절한 나레이션으로 설명을 해서 시너지 효과를 얻은 것인 반면 영화에서는 그런 기법을 쓸 수가 없어 해설자가 따로 존재하는데.. 육성으로 들으면 병맛 재미가 있다기 보단 그냥 유치하고 조잡하게 들릴 뿐이다.

패션왕이 되기 위한 수련 과정도 원작에 없던 게 본작에서는 추가됐다고는 하나, 그것 역시 극히 짧게 나오고 그렇다고 기상천외한 훈련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병맛 재미조차 없다.

패션왕 콘테스트도 원작처럼 토너먼트 대결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 주어진 미션을 수행하는 걸 심사위원이 판정하는 것만 나와서 엄청 심심한 전개로 나간다. (물론 그렇다고 원작에서 나온 늑대인간 변신 씬을 넣을 순 없겠지만 말이다)

일 대 일 대결 구도를 이룬 결승전을 앞서 언급한 왕따 탈출 싸구려 신파극으로 끝내는 바람에 대결다운 대결 한 번 나오지 않아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실망스럽게 한다.

‘변태가면 HK’처럼 만화적인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우주구급 코미디로 나갔어야 했는데.. 그것을 크게 제한해 진부한 드라마로 만들어서 폭망한 작품으로 인터넷 만화 원작 ‘다세포 소녀’ 실사 영화판보다도 못하다. (그쪽은 영화가 만화적 상상력을 잘못된 방향으로 발휘해서 폭망했다)

결론은 비추천. 원작 자체가 실사 영화로 만들 만한 작품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도 병맛 간지 패션배틀이라는 원작의 개성을 잘 살리지 못하고 쓸데없는 로맨스와 싸구려 신파극 등 감동 강박증에 걸린 한국 영화의 고질적인 문제점만 계속 드러내서 원작보다 더 재미가 없는 졸작이다.

여담이지만 본작에서는 원작자 기안 84 작가가 카메오 출현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우기명을 괴롭히는 일진 영철이의 친구 중 한 명으로 나온다. (빨간 잠바 입은 학생)

덧붙여 이 작품의 흥행 성적은 전국 관객 58만 명에 그쳤고 개봉 19일 만에 극장에서 내려가 IPTV 서비스를 시작했다.

언론에서는 같은 시기에 인터스텔라가 개봉해 외화 돌풍에 막혀 한국 영화가 울상이란 실드를 쳤지만.. 설령 인터스텔라가 동시기에 개봉하지 않았더라도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덧글

  • 소시민 제이 2014/11/26 21:17 # 답글

    너무 병맛 같아서 보는거 포기....
    뭔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정도의 포스터부터가...
  • 까진 눈물의여뫙 2014/11/27 16:52 # 답글

    뭐 원작의 묘미였던 동물변신신 이런 건 실사영화에서 나오려면 보기가 좀 그러니까요.(무적코털 보보보같은 걸 실사영화로 보려고 극장표를 사기는 좀...) 솔직히 그런 거 때문에 저 영화 안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장르는 달라졌지만 그래도 그나마 좀 볼만한 걸로 재탄생했다고는 생각하네요.

    뭐 원작이 패션왕이라 그런지 평들은 씹망이지만.
  • 지나가던한량 2014/11/27 02:20 # 답글

    기안의 작품컬러는 보는 사람의 흑역사를 끄집어내는 불편한 리얼함인데, 이 영화는 그저 만화 원작 영상물들의 비현실적 특성들을 안일하게 담습할 뿐이었으니 작품성이 끔찍해질 수 밖에요.
  • 동사서독 2014/11/27 03:52 # 답글

    미지왕 생각이 나는군요
  • 기사 2014/11/29 02:03 # 답글

    이거 의상을 담당한 디자이너만 불쌍하게 됐지요.
  • 2014/11/29 10: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잠뿌리 2014/12/07 22:45 # 답글

    소시민 제이/ 포스터처럼만이라도 나왔으면 병맛 개그 영화로 컬트적인 맛이 있었을 텐데 본편에는 그런 게 없이 싱거워서 재미가 없습니다.

    까진 눈물의여뫙/ 원작 자체가 영화화에 적합한 컨텐츠는 아니었지요.

    지나가던한량/ 사실 패션왕 원작이 눈길을 끈 건 그 비현실적인 특성이 극대화되었기 때문인데 그거 덕분에 영화화된 거라 그 부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시점에서 작품성이 폭망한 겁니다. 기안 84 작가가 패션왕 이전에 부진했던 건 그 작품 컬러가 대중성과 거리가 매우 멀었던 것이라서 이 영화판도 흥행하고 싶었다면 대놓고 판타지로 나갔어야 했지요.

    동사서독/ 미지왕은 그래도 새로운 시도가 돋보여서 컬트적인 가치는 있지만 이 패션왕 영화판은 그런 것조차 없습니다.

    기사/ 이 작품에서 제일 고생한 건 영화 의상 디자이너죠.

    비공개/ SNL 패션고는 재미있게 봤습니다. 차라리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으면 컬트 무비로서의 가치라도 남았을 것 같네요.
  • 오행흠타 2015/02/22 01:03 # 답글

    하필 이걸 영화로 한다 해서 놀랐고 인터스텔라랑 같은날개봉한다길래 또 놀라고, vod로 4000원(!)결제해서 보고 놀라고(...)

    10대 개그 이해 못한 40대 아저씨가 어설프게 흉내내다 이도저도 아닌 결과물 내놓은 느낌;; 두치 역할 하신분의 재현도는 좋았습니다만...

    인터스텔라한테 밀려 완전히 망한 걸로 작가가 복학왕에서 가끔 개그 요소로 쓰고 있네요(...)
  • 잠뿌리 2015/02/23 20:02 #

    두치는 배우 재현도는 좋지만 캐릭터 해석이 엉망이라 그냥 악당 쫄따구로만 나오고 아무런 활약도 못했죠. 원작 파괴 수준이라 원작자한테 절로 동정이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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