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왕 (1996) 2019년 전격 Z급 영화




1996년에 김용태 감독이 만든 코미디 영화. 제목 ‘미지왕’은 ‘미친 놈 지가 무슨 왕자인 줄 알아’의 줄임말이다.

내용은 바람둥이 왕창한이 11살 연상의 엄청난과 결혼을 하게 됐는데 결혼식 당일 신랑이 사라지는 바람에 하객으로 온 경찰과 양가 가족들이 협력해 즉석에서 신랑 찾기 긴급수사 본부를 설치해 경찰들이 신랑 주변 인물을 차례대로 불러 심문 수사를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주변 인물들의 증언을 통해서 주인공이 어떤 인물인지 집중 탐구하면서 스토리를 진행해서 이 구조 자체는 멀쩡하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선 혼돈의 카오스가 따로 없다.

증언을 듣고 심문 수사를 하기는 하는데 문제는 그 증언과 증인 전부 정신줄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내용과 개그를 마구 집어넣었는데 이게 한도 초과로 넘쳐흘러 사방팔방으로 다 흩뿌려지고 있다.

왕창한이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 결혼을 결심한 것 까지는 알겠는데.. 어린 시절 친구들과 냇가에 놀러갔다가 보트에서 떡치는 어른들한테 새총을 쏜 것부터 시작해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클럽에 가서 놀다가 꽃뱀한테 당해 새우잡이 배를 탔고, 실은 잘 나가는 회사의 CEO로 숨은 재벌이며 내연의 여자가 몇 명 있고 애가 너무 괴팍해서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일지도 모른다는 썰이 나오는 것 등등 내용의 연결성이 하나도 없는 떡밥을 쉬지 않고 계속 던져댄다.

아마도 감독이 스스로 웃긴 장면이라고 생각한 걸 아무런 정리도, 정제도, 절제도 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넣어놓은 것인데 이게 영화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기본을 지키지 않았고 무엇보다 하나도 안 웃기다.

예식장 자체가 신부측 지인이 운영하는 영화 스튜디오고, 신랑이 실종되자 신부 친구들이 빡쳐서 투닥거리는데 두 명이 서로 붙어서 ‘야! 너는 지금 불난집에 부채질하니?’라고 대사를 치자 곁에 있던 대사 없는 친구가 선풍기를 들고 서서 바람을 보낸다거나, 결혼식장 대문 앞에서 왠 도사가 나타나 춤을 치며 비가 내리는가 하면, 신랑이 실종됐지만 수사에 협조하면 밥은 주겠다면서 신부측 하객은 양식 요리 먹고 신랑측 하객은 중국 요리 시켜서 맨손으로 주워 먹는다.

장인어른댁 인사를 가니 초대형 글라스에 와인을 부어 마시고 치킨 다리 뼈를 안주 삼아 씹으며 즉석에서 방귀를 트고, 양가 부모 상견례는 놀이동산에서 롤러코스터 타면서 한다. 왕창한이 진실로 사랑한 여인은 실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변신한 것이고 애기 무당의 예언에 따라 천벌을 받아 번개 맞은 왕창한이 새카맣게 탄 채로 헤롱헤롱거릴 때 결혼식이 이어지는데 작중에 나온 의사는 실은 정신병자고 수사를 한 경찰들은 도둑들이다.

작중에 나오는 개그, 연출, 스토리 전개가 이런 식이니 정신산만함의 극치다. 감독 생존에 제작 의도가 충무로에서 인디영화를 시도한 것이었다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컬트적인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상업 영화도, 예술 영화도, 독립 영화도 아닌 게 정체가 뭔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이론적으로는 코미디, 멜로, 에로, 수사, 미스테리, 패러디, 판타지 등 모든 게 다 들어가 있지만 그걸 버무리는 과정에서 정줄 놓고 아무렇게나 막 뒤섞어 수수께끼의 물체 X가 됐다.

관객과 함께 그 혼돈을 즐기기보다는, 그들 스스로만 혼돈을 즐기다가 끝나 버린 것이다.

촬영하는 사람은 분명 즐거웠겠지만 보는 관객은 괴롭고 그 온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게 이 작품이 가진 한계다.

충무로에서 인디 영화를 선보이려고 했던 도전이라고는 하나, 보는 관객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 가슴에 와 닿지가 않는다.

결론은 미묘. 일단 냉정하게 말하자면 난장판 코미디인데 하나도 안 웃겨서 치명적인 문제가 있는 작품이다. 후대에 컬트 영화로 평가받지만 솔직히 컬트적인 재미를 찾기는 어렵다.

한국 영화사상 손에 꼽을 만한 괴상망측한 작품이라서. 단순히 쌈마이 영화라는 말로 정의할 수 없다. 후대에 나온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비견될 만한 작품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한국 영화에 있어 ‘재앙의 사신’이라면 이 작품은 ‘마왕’이다)

본인의 항마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측정해보고 싶은 사람은 한번쯤 볼 만 하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당시 기성 배우가 아닌 신인 배우와 스텝들을 주로 뽑아서 화제가 됐다. 3477명이 신인배우 공모전에 응모해서 27명이 주조연으로 뽑혔고, 17개 부분 스태프 가운데 8개 부분이 신인 스태프로 채워졌다고 한다. 하지만 흥행 참패를 면치 못했고 개봉 당시 서울 관객 1만명도 채 안 됐다고 전해진다.

덧붙여 이 작품에서 주인공 왕창한 역을 맡은 배우는 조상기다. SBS 드라마 야인시대 2부에서 ‘상하이 조’역을 맡은 것으로 친숙한 배우다. 야인시대에서는 심영의 중요한 곳을 총으로 쏴서 고자로 만들었는데 정작 단독 주연작인 여기서는 원없이 떡을 친다. 이 작품이 영화 데뷔작인데 이 작품의 흥행 참패에도 배우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지금 현재까지 연기 활동을 하는 걸 보면 정말 인간 승리다.

추가로 이 작품은 故 김용태 감독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으로 단역(라스트 씬에 나온 고백성사실의 신부), 연출, 각본까지 다 맡았다. 김용태 감독은 2012년에 심장 마비로 별세했고 이 작품 하나로 한국 컬트 영화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작품은 단역 배우 수가 엄청나게 많다. 극중 왕창한의 친구로 나온 정웅인과 ‘MBC 무한도전’에서 에어로빅 강사로 잘 알려진 염정인이 이름 없는 단역으로 나온 게 기억에 남는다.



덧글

  • 애쉬 2014/10/18 19:29 # 답글

    왕창한이 엄청난양 아버님 첨 뵙는 자리에서 아버님이 안주로 드시는 건 한약재로 쓰는 말린 개구리입니다.
    와인 대포와 함께 엄청난양 가문의 졸부성을 들어내는 장치 중 하나로 봅니다.

    정말 정신 없는 영화인데… 촬영이 정말 보통 수준이 아닙니다. 실내에 야간 장면까지 조명 설계나 노출이 완벽에 가까운 작품으로 기억합니다.

    썰렁 개그가 남발하는데 개중에 정말 꽃혀서 아직도 기억나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ㅎㅎㅎ

    저는 비운의 저평가 콜렉션으로 분류했습니다. 장진 감독님은 좋아할 것도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ㅎ
  • 질풍의랩소디 2014/10/18 19:31 # 답글

    제목이 감독 셀프 디스라든지(...)
  • 세이닌 2014/10/18 19:34 # 답글

    ......글을 읽고있는것만으로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네요-_-

    마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않은 것 같습니다;
  • 타누키 2014/10/18 20:06 # 답글

    포스터는 본 것 같네요. ㅎㄷ
  • 진보만세 2014/10/18 22:12 # 답글

    처음 영화정보를 접했을 때, 주연배우의 인상과 개성이 강렬해 '잘하면 롱런하며 입지를 굳힐만 하다' 싶었는데, 워낙 영화가 흥행적으나 비평적으로나 괴망작이 되는 바람에 묻혀지는 배우의 하나로 전락해버린 느낌이 강합니다.

    그래도 가끔 단역으로나마 얼굴을 꾸준히 비춰오고, 다른 단역과 달리 기존 미지왕의 인상이 남아있어 친숙한 감정이 앞서 들게하니, 좋든 나쁘든 영화의 유명세 덕을 어느정도는 받고 있단 점에서 조상기씨에겐 잊을 수 없는 은혜(?)로운 작품이 아닐까 하네요..^^
  • 역사관심 2014/10/19 07:29 # 답글

    한국에서 몇 안되는 컬트영화로 꼽힌다는... 이야기를 보니 삐리리 불어라 재규어팀이 (만화) 보낸 오늘도 충실한 쓸데없은 날이었다의 결과물같네요 ㅎㅎ..
  • 잠뿌리 2014/10/25 10:54 # 답글

    애쉬/ 아. 그게 말린 개구리였군요. 전 무슨 치킨 닭뼈를 먹는 줄 알았습니다 ㅎㅎ 저는 이 작품을 저평가할 수 밖에 없는 게 촬영보다 스토리를 중시해서 그렇습니다.

    질풍의랩소디/ 제목이 참 많은 걸 시사하고 있지요.

    세이닌/ 한국 영화 중에 가장 혼란스러운 영화로 손에 꼽을 만 합니다.

    타누키/ 본편보다 포스터를 기억하는 사람이 꽤 있네요.

    진보만세/ 조상기 인터뷰에 보면 이 작품을 찍은 뒤 연기를 접을까 고민도 했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이 워낙 크게 망해서 당시에는 자신이 이런 작품에 출현했는지 아무도 몰랐다고 하네요. 조상기가 단역으로 활동할 수 있는 건 본인의 부단한 노력이지, 이 작품이 도움이되기는커녕 오히려 발목을 잡았을 것 같습니다 ㅎㅎ;

    역사관심/ 어떻게 보면 우스타 쿄스케풍의 영화네요.
  • ㅇㅇ 2018/11/19 00:37 # 삭제 답글

    한국 영화사상 손에 꼽을 만한 괴상망측한 작품이라서. 단순히 쌈마이 영화라는 말로 정의할 수 없다. 후대에 나온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과 비견될 만한 작품이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 한국 영화에 있어 ‘재앙의 사신’이라면 이 작품은 ‘마왕’이다)...라고 잠뿌리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사실 그걸 노리고 만든 게 이 영화다. 이 영화는 원래 괴상망측하라고 만든 영화이다.

    등장인물 복장부터 보면 답 나온다. 뚱녀들에게 발레리나 옷을 입혀놓은 것부터 시작해서 조상기가 주인공인 것도 그렇고 일부러 이렇게 만든 영화이다. 아예 처음부터 그걸 노리고 만든 영화라서 딱히 그 점을 비판하지 않는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통계 위젯 (화이트)

797969
11049
9398094

메모장

잠뿌리의 트위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