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신사바 저주의 시작 (筆仙.2012) 2014년 개봉 영화




2012년에 중국에서 안병기 감독이 만든 호러 영화. 안병기 감독의 중국 진출작인데 한국에서는 2014년에 개봉했다.

내용은 가정 폭력을 행사한 남편 치쿤이 구치소에 들어가고 어린 아들 샤오신과 단둘이 살던 호러 소설가 샤오아이가 좀처럼 신작을 잘 쓰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치쿤이 석방됐다는 소식에 친구인 이난에게 부탁해 교외에 위치한 이난의 별장에 신세를 지게 됐는데.. 샤오신이 어디선가 낡은 소녀 인형을 가지고 온 뒤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녀 귀신이 나타나 모자 주위를 맴돌면서 샤오아이가 쓰지도 않은 공포 소설이 자동으로 써지고 출력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일단 이 작품은 원제가 ‘필선’인데 한국에서는 뜬금없이 분신사바 저주의 시작이라는 제목으로 개봉했다. 거기다 2013년에 안병기 감독이 중국에서 만든 ‘필선 2’를 한국에서는 분신사바 2라는 제목으로 먼저 개봉하고, 전작인 이 작품을 2개월 뒤에 개봉한 것이라서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그런데 사실 두 작품의 연관성은 단 1그램도 없다. 분신사바 2(필선 2)는 안병기 감독의 가위를 리메이크한 것으로 그나마 작중에 분신사바 하는 장면이 한 컷 정도 나오지만.. 정작 이 작품은 저주의 시작 부제를 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분신사바의 분도 찾아볼 수가 없다.

제목 필선은 붓 필 자에 신선 선 자를 쓴 것으로 작중에서 샤오아이가 써야 할 소설을 귀신이 쓴 것으로 나온다. 엄밀히 말하자면 사실 노트북으로 쓴 거라 붓 필자를 쓰기 좀 애매하긴 하지만 최소한의 상징성은 있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신사바 제목을 붙인 것은 안병기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라서 무리하게 엮어 들어간 것 같다. 먼저 개봉한 분신사바 2보다 더 심한 관객 기만이다.

영화 본편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미스테리 심령물로 시작했다가 귀신이 설치고 싸구려 신파극으로 귀결된다. 한국 공포 영화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는 다 갖고 있다.

소재, 연출, 반전도 정말 흔해 빠진 것으로 딱 2000년대 초반 한국 호러 영화에서 즐겨 쓰던 방식이다.

예를 들면 아이가 밖에서 놀다가 왠 더러운 인형 가지고 왔는데 귀신이 딸려와 반쯤 빙의되어 눈을 부라리며 태세 전환하거나, 남들 눈에 보이지 않는 귀신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든가, 주인공이 사실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라는 뻔하디 뻔한 반전. 그리고 독기가 서린 원귀가 죽이려고 하니 눈물로 호소하며 용서를 구해 성불시키는 라스트씬. 그리고 이야기 다 끝났는데 개연성 없이 갑자기 툭 튀어나온 깜짝 엔딩으로 화룡정점을 찍으니 뭐 하나 새로운 게 없다.

정말 감독의 상상력과 아이디어가 땅에 떨어지다 못해 심연의 어비스 밑바닥까지 떨어진 게 절실히 느껴진다.

연출 부분에서 제일 꽝이었던 건 정면 시점의 귀신 순간이동인데 1998년에 나온 여고괴담 느낌나서 진짜 뭔 20세기 영화를 보는 줄 알았다.

미장센이 돋보이는 것도 아니다. 작중의 무대가 분명 교외의 별장이기는 하지만 그런 공간과 배경을 별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교외의 별장이라고 해도 두 사람만 남은 것도 아니고 이난이 수시로 와줘서 뭔 일이 터지면 어른 둘이 달려가서 ‘무슨 일이야?’ 이 패턴을 계속 반복하고 있으니 미장센 드립칠 만한 구석이 없다.

필선 소재도 전혀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샤오아이는 호러 소설가지만 설정만 그런 건지, 실제로 작중에서 쓰는 글은 거의 동화에 가깝다.

근데 귀신이 대필하듯 소설을 쓰고 원고에 적힌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고는 하지만.. 귀신이 쓰는 글에 초점을 맞춘 게 아니라, 그런 글이 나오게 된 이유가 밝혀지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순수 공포보다는 미스테리의 성격이 강하다.

문제는 미스테리의 관점에서 보면 주인공의 적극적인 행동과 추리에 의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게 아니라, 그냥 혼자서 우왕좌왕하고 히스테리 부리고 반전 결말을 암시하며 자동진행되는 것이라서 몰입도가 대단히 떨어진다.

이 작품에서 그나마 나은 점이 있다면 여주인공과 아역들이 연기를 잘했다는 거다. 아역들이 눈을 부라리며 표독스러운 연기하는 게 문득 안병기 감독의 초기 대표작인 ‘폰’이 떠올랐다.

결론은 비추천. 식상한 소재, 뻔하고 유치한 연출, 싸구려 신파극 등등 한국 호러 영화가 가진 고질적인 문제를 다 갖춘 졸작이다.

21세기에 나왔지만 20세기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낡고 먼지 날리는 점이 있는데.. 사실 이정도 수준이면 20세기에 나왔어도 재미없다고 폭풍 비난을 받으며 묻혀 버렸을 것 같다.

중국 공포 영화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다고 한국 언론에서 후빨해주고 균형잡힌 월메이드 호러 영화라고 칭송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유명무실로 겉조차도 번지르르하지 못하고 속까지 비어버린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올해 개봉한 호러 영화 중에 주온 신작은 부제가 끝의 시작인데 이 작품은 부제가 저주의 시작이니. 뭔가 호러 영화 제목 짓기에서 시작을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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