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쥬와 즈시오마루 (安壽と廚子王丸.1961) 2019년 애니메이션




1961년에 토에이 동화에서 아부시타 타이지 감독이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 백사전, 소년 사루토비 사스케, 서유기에 이은 네 번째 작품으로 토에이 창립 10주년 기념작이다. 당시 예고편에는 토에이 동화의 사장 오오카와 히로시가 직접 출현했다.

일본의 민간 설화인 ‘안쥬와 즈시오의 모험’을 원작으로 삼아 1915년에 모리 오오가이가 단편 소설로 쓴 ‘산쇼다유’를 베이스로 해서 애니메이션으로 각색해서 만든 것이다.

내용은 황실의 영지인 숲을 관리하던 판관 이와키 마사우지가 오니쿠라의 모함을 받아 조사를 받으러 교토로 올라간 뒤 반년 후 유죄 판결을 받아서, 집에 남아 있던 가족들이 난을 피해 달아나던 중 인신매매범들에게 붙잡혔다가 노예로 팔려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원제인 산쇼다유는 작중에 안쥬, 즈시오마루 남매가 팔려간 부잣집 주인 이름이다.

이 작품은 영상미 부분에 있어서 실사 영화의 표현 방식을 차용해서 극사실주의 애니메이션을 표방하고 제작되었다. 그래서 그 당시 시대극 영화의 유명 배우들을 데려와서 작중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분장을 시켜서 모델로 삼아 작화를 그렸다.

라이브 액션 방식이라고 해서 실제 풍경과 배우의 연기를 먼저 촬영한 다음 그 필름에 만화 속 등장인물을 넣어서 영화의 장면을 완성하는 기법을 일부 도입한 것이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기법을 쓴 것은 아니다. 여전히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영향을 받고 있어서 말하는 동물들이 감초 역할로 출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 캐릭터의 움직임은 전부 라이브 액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굉장히 사실적이라 실사 영화를 방불케 한다.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배경도 사실주의 노선으로 나가서 작품의 무대인 토호쿠 지방에 가서 실존하는 마을의 풍경을 그림에 직접 담아서 일본 애니메이션 배경 미술의 역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배경 음악도 전곡 오케스트라를 동원해 필름에 맞춰 라이브로 연주해 넣었는데 그 당시 애니메이션 음향 기술상 지금처럼 편집을 하기 어려웠다는 걸 생각하면 과감한 시도였다.

연출적으로 인상적인 건 후반부에 즈시오마루가 벼슬을 얻어 산쇼 저택으로 돌아갈 때 살수들의 기습을 받는 씬인데 살수들의 일제 사격을 칼로 쳐내는 장면에서 화살이 3D 시점으로 쌩쌩 날아오는 게 기억에 남는다. (60년대초 애니메이션에서 3D 효과라니!)

비주얼적인 부분의 완성도는 나무랄 곳이 없다. 이 한편으로 디즈니의 아성을 넘어서겠다는 토에이의 의지마저 느껴졌다.

하지만 이 작품은 토에이 동화에서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 중 첫번째 실패작으로 기록되어 있다.

왜 그렇게 실패를 했냐면 스토리에 기복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렇다.

본작의 핵심적인 내용은 즈시오마루가 산쇼 저택에 탈출한 뒤 관백 후지와라 모로자네에게 몸을 의탁해 늠름한 청년으로 성장해 벼슬을 얻어 어머니와 재회하는 것으로 축약할 수 있는데.. 이 과정에서 즈시오마루가 상황을 타개할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스토리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도 아니라서 감정이 고조되지 않는다.

장성한 후 벼슬을 얻어 금의환향한 다음에도 원수를 처단한 게 아니라 아무런 벌도 주지 않은 채 그냥 놓아주고 어머니와 재회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서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가 전혀 없다.

산죠 일가를 용서해준 이유가 산죠가의 차남 사부로가 남매를 잘 해대주었고 또 안쥬와 연인 관계로 안쥬 사후 탁발승이 되어 안쥬의 동상을 깎으며 살았기 때문인데 그 로맨스를 부각시키기 위해 권선징악을 버린 것 같다.

단편 소설 원작에서는 사부로가 오히려 악역으로 안쥬 남매의 탈출 계획이 들통 나 달궈진 부젓가락으로 안쥬에게 죄인의 낙인을 찍는 등 패악을 저지른다. 근데 본작에서는 그 악행이 사부로의 형이 한 일로 바뀐다.

산쇼 일가보다 더 악덕한 만악의 근원인 오니쿠라는 죄를 지어 처벌 받았다는 언급만 나올 뿐이다.

그런 싱거운 결말 때문에 당시 토에이 동화 제작진이 크게 반발해 토에이 동화 본사와 노조 사이에 갈등이 생겨 반목하다가 제작이 진행된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고 한다.

작중에서 유일하게 복수하는 장면이 나오는 건 이와키가의 하녀 키쿠노가 물에 빠져 죽은 뒤 인어로 변신해 이와키 일가를 노예로 팔아 버린 인신매매범이 탄 배를 전복시켜 물에 빠트려 죽이는 씬 하나뿐이다.

키쿠노가 인어로 변신하는 씬이 좀 뜬금없긴 한데 본작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이라서 동화적 판타지 요소를 부갓시켜서 그런 것 같다.

안쥬만 해도 본래 원작에서 즈시오마루를 도망시킨 뒤 연못에 몸을 던져 자살한 것으로 나온 게 본작에서는 연못 투신 후 하얀 백조로 환생해 날아다니며 극후반부에 장성해 돌아온 즈시오마루를 어머니에게 인도해준다. (키쿠노도 그렇고 안쥬도 즉석에서 환생이라니 이게 무슨 3분 카레도 아니고)

또 즈시오마루가 벼슬을 얻게 된 것은 원작에서는 관백의 양자가 되어 일가 몰락의 경위를 조정에 탄원을 올려 죄를 용서 받은 후 안쥬 영혼의 보살핌을 받아 가문을 부흥시킨 것인데 비해 본작에서는 난데없이 땅거미 요괴 츠지구모를 퇴치해 벼슬을 받은 것으로 나온다.

본작에서 유일하게 재미있는 부분은 아이러니하게도 본작의 극사실주의 작화와 반대 노선을 걸으며 만화적 리액션을 충실히 하는 동물들이 나오는 씬이다.

하얀 암컷 쥐 춍코, 새끼곰 모쿠, 시바견 란마루 등등 동물들이 나오는 씬만 유일하게 볼만 했다. 좀 특이했던 건 란마루는 말 못하는 개인데 춍코랑 모쿠는 사람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니며 말도 많이 한다는 설정이다. 란마루는 둘째치고 춍코, 모쿠는 지금 관점에서 봐도 상당히 귀엽게 나온다.

특히 춍코는 시대를 앞서 간 모에 캐릭터로 즈시로가 츠지구모를 퇴치하러 갈 때 다른 동물들과 함께 따라가서는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떠는 게 너무 귀엽다.

재미와는 별개로 나름대로 감동을 준 부분은 즈시로와 어머니가 재회하는 라스트씬인데 이때 즈시로의 어머니가 자식들을 그리워하며 짤막하게 부르는 노래가 너무 구슬프게 들린다.

결론은 평작. 작화, 음악, 연출에 대단한 정성이 들어가 있고 풀 애니메이션에 라이브 액션 기술까지 도입해 기술적인 부분은 당시 손에 꼽힐 정도로 높지만, 스토리가 그걸 뒷받침해주지 못해서 상업적인 재미가 너무 떨어지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민간 설화 원전에서는 즈시오마루가 원수들을 처형시켜 권선징악을 확실히 한다. 모리 오오가이의 단편 소설에서는 동화적 환상 요소에 포커스를 맞춰서 안쥬가 영혼이 되어 동생을 도와주며 마지막에 즈시오마루가 봉사가 된 어머니와 재회했을 때 지장보살이 어머니의 눈을 뜨게 해주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근데 애니판에서는 지장보살 설정이 사라져서…)

덧붙여 사실 산쇼다유하면 이 작품보다는 1954년에 미조구치 겐지 감독이 만든 영화 ‘산쇼다유’가 더 유명하다. 영화판 산쇼다유는 오하루의 일생, 우게츠 이야기에 이어서 미조구치 겐지 감독의 베니스 영화제 3년 연속 본상 수상작 중 하나다. (베니스 영화제 은사자상 수상)

추가로 본작으로부터 1년 전에 나온 1960년작 서유기의 동화 담당으로 참여한 린타로는, 본작의 화풍이 지나치게 사실주의적이라 만화 영화로서의 메리트를 느끼지 못하고 이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낸 뒤 데츠카 오사무를 따라가서 데츠카 프로덕션의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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