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질라 (Godzilla.1998) 괴수/야수/맹수 영화




1998년에 인디펜던스 데이로 유명한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만든 고질라 리메이크판.

내용은 남태평양 프렌치 폴리네시아에서 프랑스가 30년 동안 수차례 핵실험을 강행해서 그 영향으로 섬에 살고 있던 파충류와 해안에 사는 각종 생물이 전멸하기에 이르렀는데 그중에서 살아남은 파충류가 변이를 일으켜, 30년 후 초대형 괴수 고질라가 되어 어선을 습격해 물고기를 먹으며 재해를 일으키다 급기야 도시에 나타나기에 이르자, 체르노빌에서 핵오염 이후 지렁이의 유전자 변이를 연구하던 핵감시 위원회 소속 타로폴로스 박사가 미국무부에 스카웃되어 미군의 고질라 저지 계획에 참가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일단 이 작품은 고질라의 헐리웃 리메이크판이지만, 원조 고질라를 생각하고 보면 혈압이 올라 뒷목 잡고 쓰러질 만큼 훼손의 정도가 심하다.

러닝 타임이 무려 138분이나 되고 이걸 초중반으로 삼등분할 수 있는데, 초반부는 도시에 나타난 고질라 저지 계획. 중반부는 고질라가 낳은 알에서 태어난 공룡들의 습격, 후반부는 죽은 줄 알았던 고질라에게 다시 공격당하는 내용이다.

초반부 약 40여분 동안 고질라의 발만 지겹게 보여주고 전신은 잘 보여주지 않는다. 뉴욕에 나타난 고질라! 라고 해도, 고질라가 적극적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큰 몸으로 도시를 누비니 자동 파괴가 벌어지며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도망치는 것 정도다.

초대 고질라의 리메이크판이라 괴수가 나와서 싸우는 게 아니라 괴수 재난물인데도 불구하고, 재난물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

고질라의 첫 도시 입성 때의 재난 이후로는, 시민들의 재난에 휘말리는 묘사가 전혀 없어서 텅 빈 도시에서 미군과 고질라가 싸우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그렇다.

거기다 초반부의 주인공 일행은 고질라에 대한 위험에서 한참 벗어난 상태에서 되도 않는 러브 스토리를 만들고 있으니 짜증이 밀려든다.

그 러브 스토리도 뭔가 재미있는 게 아니고, 출세욕에 눈이 먼 히로인이 남주인공 통수 쳤다가 자기 상관한테 통수 맞아서 사랑도, 승진도 다 놓쳐 멘붕한 뒤에 뭔 오해를 풀고 어쩌고 하겠다며 다시 남주인공 뒤쫓아 가서 돌격 리포트하는 것인데 그걸 좋게 포장하려고 하니 정말 보는 내내 정 떨어진다. (아무리 헐리웃 영화라고 해도 정도가 있어야지!)

원작 파괴와 별개로 놓고 봐도 스토리 자체가 정말 재미가 없고 완성도가 떨어져서 도대체 이 작품을 찍을 당시 감독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롤랜드 에머리히가 이 작품 바로 전작으로 1996년에 인디펜던스 데이를 만들어 초대박 흥행을 친 걸 생각하면 진짜 주화입마라도 걸린 모양이다.

고질라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등에 각질 달린 티라노 사우르스처럼 디자인된 것도 원조 고질라와 좀 거리감이 있는데 그 이전에 설정부터가 완전 글러먹었다.

본작의 고질라는 바다 이구아나가 돌연변이되어 거대 공룡화된 것으로 방사능 브레스도 쓰지 않고, 도시를 마구 파괴하기 보다는 기껏해야 어선을 습격해 물고기나 처묵처묵하는 수준인데 생식 행위 없이 무생임신이 가능한 상태로 수백 개의 알을 낳기까지 하니 이질감이 굉장히 크다. (수컷이 셀프 임신이라니 이 무슨,; 휴지통을 임신시킨 거여?)

중반부로 넘어가면 고질라는 잠시 리타이어하고, 고질라가 물고기 처먹고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 낳은 알에서 새끼 고질라가 태어나 주인공 일행이 위험에 처하는데 여기서부터는 영화가 쥬라기 공원으로 바뀐다.

쥬라기 공원에 나온 벨로시렙터의 무리 습격을 단순히 공룡 스킨만 다르게 넣은 수준이라서 모티브 정도가 아니라 표절에 가까운데 이게 앞부분의 거대 괴수 고질라의 이야기와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아서 이질감의 절정을 찍는다.

디아블로 3로 예로 들면 이런 거다. ‘기괴 살덩이의 대습격!’이란 제목의 영화를 보고 있는데 중반부 이후 기괴살덩이 폭살 후 시체 지렁이가 나와서 ‘시체지렁이의 역습’으로 내용이 바뀐 거다.

후반부에서는 고질라의 마지막 습격과 최후를 그리고 있는데 미공군 전투기가 쏜 미사일 몇 대 맞고 죽는 고질라를 보고 있노라면, 괴수 영화 매니아들은 입에서 쌍욕이 저절로 튀어나올 것 같다.

인간이 통제하고, 인간의 손으로 죽일 수 있는 건 고질라가 아니다. 인간이 어쩌지 못하는, 존재 그 자체가 재난인 게 고질라의 아이덴티티인데 이 작품은 리메이크판이라면서 그걸 전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고질라의 아이덴티티를 부정하고 디자인, 설정도 원작 능욕 수준으로 훼손시킨 걸 보면 감독이 원조 고질라에 대한 애정이라든가, 존경심 같은 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고질라에 대한 인식이 ‘열도의 사람들과 북미 일부 매니아들이 열광하는 대형 파충류.’ 딱 이 정도 수준인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원작을 파괴할 수는 없다.

자잘한 부분에서도 허접한 게 눈에 띄는데 작중 타로폴로스 박사가 약국에서 구입한 인간용 임신 체크기를 사용해 고질라의 임신 상태를 파악하는 것, 그리고 초반부에 남태평양에서 고질라가 습격해 침몰한 일본 어선이 인근 해역에 떠밀려 왔는데 분명 해당 어선은 일본 사람들이 어획을 하고 생선 손질을 했는데 정작 타로폴로스 박사가 해변에서 발견한 증거물은 동원 아이큐 참치 통조림이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걸 가지고 광고비 한 푼 안 들였는데 뜻밖에 상표가 노출됐으니 홍보에 적극 활용하자는 동원 측 입장 기사까지 떴는데, 요즘 나왔다면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에 한국의 통조림 참치가? 미국에 부는 한류 열풍!’ 이런 제목으로 기사가 쏟아져 나왔을 것 같다. (근데 솔직히 완제품도 아니고, 먹는 장면도 아니고 어선의 잔해 속에서 발견한 깡통 통조림 하나 약 3초 정도 나온 게 홍보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론은 비추천. 원작 파괴 영화의 랭킹을 매기면 분명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흉작. 굳이 원작 파괴가 아니더라도 재난물로서의 완성도가 너무 낮고 재미가 없는데 쓸데없이 러닝 타임만 엄청 길어서 존재 자체가 재난인 영화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고질라는 시리즈의 흑역사로 자리 잡았는데 일본에서 고질라 시리즈를 제작해 배급하던 토호에서 빡쳐서 2004년에 만든 ‘고질라 파이널워즈’에 1998년작 고질라를 ‘질라’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등장시킨 후 광속 리타이어시켰다.

덧붙여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이 작품이 나온 해부터 2000년까지 2년 동안 방영해 총 40화로 완결된 고질라 TV 애니메이션의 일부 에피소드에서 총 제작 지휘를 맡았다.



덧글

  • 황씨 2014/05/16 16:28 # 답글

    에머리히 막장설정은 인디펜던스데이에서부터 이미 잘 보여주고 있죠.
    외계인의 함선을 지구인의 컴퓨터로 해킹한다는 괴랄한 설정에 헛웃음만 나왔으니까요
  • 에우리드改 2014/05/16 17:46 # 답글

    웃기는게 속편인 애니메이션 시리즈는 꽤 괜찮다는거였죠(...)
    영화 마지막에 나온 하나 남은 새끼 고질라가 인간들 편으로 방사능 화염도 뿜으면서 세계 각지의 괴수들과 맞짱을 뜨는 기묘한 전개...
  • FREEBird 2014/05/16 18:09 # 답글

    뭐 그러니 일부 사람들은 아예 '고지라의 이름만 빌린 심해에서 온 괴물의 리메이크'란 소리를 하는 거겠지요. 뭐 고지라 자체도 심해에서 온 괴물에 꽤 영향을 받았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이니 돌고돌아... 라고 보려는 거겠지만, 그만큼 고지라와는 거리가 먼 작품인 건 사실이니...
  • 먹통XKim 2014/05/17 01:04 # 답글

    영화보면 고지라가 밟고 가는 차량에 현대 차량도 있답니다 ㅡ ㅡ

    그래서 현대에서 좋아라 이걸 광고로 썼죠.영화장면을 물론 돈주고 산 다음에
    백인 할머니가 차타고가는데 고지라가 밟고가는 그 장면이 나오고 그 할머니가 멀쩡히 나와서
    화내는 듯이 바라보고 나레이션으로

    고지라 덤벼라!~

    국내 광고로도 나왔죠
  • 듀얼콜렉터 2014/05/17 02:14 # 답글

    그당시에 영화관에서 보고 허탈한 마음으로 나왔던게 아직도 생생하네요, 정말 괴작이었죠...
  • 잠뿌리 2014/05/17 13:15 # 답글

    황씨/ 그런 설정이 좀 문제긴 하지만 작품 자체는 재미있었습니다. 에머리히 감독의 작품 중에 가장 흥행할만 했지요.

    에우리드改/ 뭔가 초전개 엔딩이네요.

    FREEBird/ 고질라란 이름과 설정을 가져다 쓴 게 에러인 것 같습니다. 물론 별개의 독립된 작품이라고 봐도 퀄리티는 떨어지지만요 ㅎㅎ

    먹통XKim/ 그 광고 기억나네요. 한국에서는 참치도 그렇고 자동차도. 헐리웃 영화에 나왔다고 그렇게 광고를 때리다니 뭔가 참 원시적인 느낌입니다.

    듀얼콜렉터/ 괴작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한 괴작이지효 ㅎㅎ
  • 블랙하트 2014/05/17 15:06 # 답글

    「인디펜던스 데이」의 프로덕션 디자이너, 「Godzilla」의 생물 특수효과, 그리고 「쥬만지」, 「라스트 액션 히어로」등에서 각종 디자인을 맡았던 패트릭 타토풀로스(Patrick Tatopoulos)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를 통해,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특촬물이 미국 영화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도록 하자.

    "「고지라(ゴジラ)」는 어린 시절 양친이 보여주었던 영화 중 거의 최초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때부터 팬이 되었죠."

    패트릭 타토풀로스는 이렇게 「고지라」에 대한 자신의 특별한 감정을 말했다.

    " 자신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은 오히려 건드리기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과거의 존재는 전혀 건드리지 말고 새로운 방향으로 가자고 컨셉트를 정했습니다. 그 편이 존경의 마음을 더욱 나타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토호의 고지라 디자인을 바꾸지 않는 편이 낫다. 차라리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고지라가 있어도 좋지 않을까 했던 겁니다."

    특히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가 '스토리 라인은 54년도 제 1작과 같이, 하지만 고지라 자체는 새로운 디자인으로'라고 주장하여, 빠르게 달리는 고지라의 이미지를 그에게 요구했다고 한다. 그에 따라 중량감 있는 일본의 고지라 디자인과는 달리, 실제 공룡에 가까운 현재의 디자인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또한 타토풀로스가 이 Godzilla를 디자인했을 당시에, 에머리히 감독은 물론 토호 측의 담당자들에게도 디자인을 보이고 충분한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일본 측에서도 대답은 "확실히 이건 고지라다. 고지라의 정신을 갖고 있다." 였다. 타토풀로스 자신도 "역시 고지라는 전통적인 것으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는 절대 변화하지 않는 존재이다. 내 디자인도 결코 지금까지의 고지라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결국 「Godzilla」는「고지라」와 다른 것이 아니고, '「고지라」를 보면서 자란 미국인들이 그들 나름대로 만들어낸 또 하나의 고지라'라고 보면 간단하다는 이야기. 어떤 「건담」시리즈도 각각 나름대로 만들어낸 건담 월드인 것처럼, 작품의 세계관을 넓히고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이런 시도들은 필자가 개인적으로 매우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애초에 인기없는 작품이라면 새로운 시도가 행해질 리도 없지 않겠는가. 간혹 '그렇게 완전히 다른 내용으로 만들려면 애초부터 아예 새로운 작품을 따로 만들면 되지 않는가'라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렇다면 그건 그저 또 하나의 새 작품이 나오는 것일 뿐 별 다른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고정 관념으로 자리잡은 하나의 틀을 깨는 것이니까 「Godzilla」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

    출처 : 게임라이프 1998년 10월호

    디자이너를 욕할게 아니라 에머리히 감독과 토호 측 담당자들이 원흉이네요. 더군다나 토호는 디자인 허락해준건 자기들이면서 파이널 워즈에서 그런 취급을...

    해당 게시물에도 썼던거지만 그뒤 패트릭 타토풀로스는 '언더월드 : 라이칸의 반란'의 감독이 됩니다.
  • FREEBird 2014/05/20 14:48 #

    음... 근데 일본쪽 언급에 의하면(주로 위키페디아 등이지만..) 처음 웨슬리 디자인을 보고나선 "뭥미 이거???"라며 다들 황당해 했지만 "그래도 헐리웃 기술력으로 만든 고지라는 꼭 한번 보고 싶은데..."라는 고민 끝에 허락을 해 준걸로 되어 있더군요.

    어느쪽이 맞는말인진 모르겠습니다만 뭐, 최소한 토호측에서도 무조건 좋다고 허락한 건 아니었을 거라는 예상은 될 것 같네요.
  • 블랙하트 2014/05/20 16:36 #

    디자인한 장본인이 자기가 디자인한거 말하는거니 나쁜소리 나올리는 없고 부정적인 이야기는 빼서 왜곡해 말했을것 같네요.
  • 블랙하트 2014/05/17 15:09 # 답글

    영화를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만든 작품들이 대게 그렇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캐릭터들 묘사가 바뀌어서 영화판 히로인은 다시 출세욕에 눈이먼 인물로 나왔고 주인공과 러브 라인도 없어졌는데 오히려 영화판에서는 아무 사이도 아니던 여 과학자가 히로인이 되었죠.
  • 놀이왕 2014/05/18 20:58 # 답글

    흠 먹통XKim님이 언급하신건 대우자동차 마티즈 광고네요. 고질라가 노란차를 밟았지만 멀쩡했고 그 차에서 졸고있던 할머니가 고질라가 지나간후 막 욕하면서 차에 흠집 안났나 살펴보기도 했죠. 즉 현대차가 아니라 대우차 광고입니다.
  • 먹통XKim 2014/05/20 02:02 #

    앗! 그랬군요ㅣ;
  • 잠뿌리 2014/05/28 11:48 # 답글

    블랙하트/ 애니판의 여주인공은 영화판 여주인공보다 더 지독할 것 같네요. 출세욕에 눈이 멀었는데 러브라인마저 없으면 갱생의 여지가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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