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2014) 2014년 개봉 영화




2014년에 장형윤 감독이 만든 판타지 애니메이션. 한국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지금이 아니면 안 돼’의 장편 데뷔작으로 제작 기년이 5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내용은 우리별 일호가 대학로의 무명 가수 경천의 노래를 듣고 지구로 추락해 소녀의 모습으로 재탄생했는데, 실연을 당해 사람의 마음을 버리고 얼룩소가 되어 버린 경천이 소각자와 오사장한테 쫓기는 와중에 일호와 두루마리 휴지의 모습을 한 마법사 멀린의 도움을 받아 그들과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일단 이 작품의 문제는 스토리가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은 점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스토리에 두서가 없다는 말이다.

본작의 세계관에서는 사람이 마음을 버리면 동물이 되고 소각자가 동물이 된 사람을 잡아다가 불에 태워서 힘을 얻는다.

오사장이란 악당은 근거리 특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화장실 변기 뚫이로 동물로 된 사람의 간을 뽑아다가 변사장에게 판매한다.

얼룩소가 된 경천은 그런 소각자, 오사장에게 쫓기면서 일호의 도움을 받는 건데.. 일호와 사랑에 빠지는데 전자와 후자의 이야기가 완전히 겉돌고 있다.

줄거리대로라면 경천과 일호, 멀린이 힘을 합쳐 동물이 된 사람을 태워 죽이는 소각자의 검은 마법에 맞서 싸우는 건데, 소각자는 사실 처음과 끝에 한 번씩만 등장하고 오사장이 그나마 서너번 습격을 해오지만 그것도 단발적인 습격 이벤트에 불과하며, 세계를 구하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멀린 뿐인데 실제 본편 내용은 경천과 일호의 연애물로 애네들은 세상을 구할 생각이 전혀 없는 걸로 나와서 연애, 액션 파트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

경천과 일호의 사랑 이야기도 다소 뜬금없이 진행되는데 사랑의 감정이 차츰 쌓여 발전하는 게 아니라, 갑자기 확 치고 올라가서 그렇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일호에게 츤츤거리던 경천이, 몇 분 뒤에는 갑자기 데레데레하게 변해서 일호 없이 못 살겠다는 듯이 나오니 너무 감정 변화가 빠르다.

경천은 주인공이지만 사실 얼룩소란 설정을 가지고 한 건 우유 짜서 팔기 개그 밖에 없다. 작중에 멀린이 만들어준 인간 옷을 입고 인간 행세를 하는 모습이 더 많이 나오기 때문에 왜 굳이 얼룩소를 미는지 모르겠다.

거기다 주인공으로서의 활약을 거의 하지 못하고 경천 중심의 스토리가 진행될 때마다 그의 소심하고 나약한 근성이나 짜증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극이 생기를 잃는다.

그나마 나은 점이 있다면 일호가 개성적이란 것이다.

본격 인공위성 모에 캐릭터라서 인공위성 리액션이 깨알 같은 웃음을 준다는 것 정도다. (인공위성 모에화라니 이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발상이다!)

경천에 대한 감정이 호기심에서 시작해 애정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감정 이입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적어도 경천을 대하는 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 같은 점에 있어서는 여주인공다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얼룩소가 된 경천부터 시작해 두루마리 휴지의 모습을 한 멀린도 그렇고 멧돼지 모습을 한 북쪽 마녀의 디자인도 호감이 가지 않는데 일호만큼은 아이디어도, 디자인도 다 괜찮았다.

작중에 던진 떡밥은 거의 회수되지 않았고 필요한 설명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마법이다!’로 다 떼우는 경향이 있어서 설정이 허술한 부분이 많다.

스토리의 짜임새가 부족하고 밑도 끝도 없이 감성에 호소하면서 충분한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죄다 스킵하고 넘어가서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다.

특히 오사장의 허무한 리타이어와 VS 소각자전 결말 부분을 스킵한 것은, 소드마스터 야마토식 전개조차 되지 못했다.

대상 연령층도 좀 애매하다. 스토리가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서 아이들이 보기에는 공감이 안 가고, 휴지 마법사, 이능력자 뚫어뻥 사장, 인공위성 소녀, 말하는 얼룩소 등의 캐릭터는 어른이 보기에는 다소 유치해서 스토리와 캐릭터의 균형이 안 맞다. 때문에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미화할 수도 없다.

어른과 아이, 두 세대의 관객을 어우르려는 시도를 했는데 로맨스도, 판타지도 다 어정쩡하게 나와서 실패한 것뿐이다.

전문 성우를 기용하지 않아서 전체 더빙 퀼리티가 그렇게 높지는 않지만 유아인, 정유미가 맡은 남녀 주인공 성우가 어색한 것에 비해 멀린 역의 이돈용, 북쪽 마녀 역의 황석정은 괜찮았다.

북쪽 마녀의 복장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온 황무지 마녀의 복장과 유사해서 좀 눈에 걸렸지만 찰진 사투리를 쓰는 게 귀에 짝짝 달라붙었다. (사투리 쓰는 마녀라니 신선하다!)

결론은 평작. 인공위성이 모에화된 일호는 나름대로 개성적이고 매력적이지만, 그 이외의 캐릭터는 존재감이 없으며, 스토리가 전혀 정리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오로지 감성에만 호소하고 있어서 작품 자체의 재미가 좀 떨어지는 편이다.

개성적인 캐릭터, 좋은 아이디어, 뛰어난 상상력은 탄탄한 스토리가 뒷받침을 해줘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거지, 그 모든 것의 기반이 되어 주는 스토리가 부실하면 아무 것도 안 된다.

세상을 구하고 싶은 건지, 연애를 하고 싶은 건지. 본편 스토리의 방향성을 확실히 잡았어야 했는데 두 개 다 하려니까 안 된 것 같다.

여담이지만 어째서 마법사 멀린이 두루마리 휴지로 나오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이 많을 텐데, 본작의 설정은 마법사 멀린이 나무에 잠들어 있다가 골프장 건설로 나무가 잘리고 그 목재가 두루마리 휴지가 되어 그런 모습을 갖게 된 것이다. (이 설정은 기발하긴 한데 캐릭터 디자인이 정감이 가지는 않는다)



덧글

  • Let It Be 2014/04/12 01:27 # 답글

    기발함만으로는 아무것도안된다는걸 보여주는예시네요
  • 잠뿌리 2014/04/13 09:23 # 답글

    Let It Be/ 기발한 상상력과 번뜩이는 재치는 누구나 한번쯤 낼 수 있지만 그걸 유지하고 완성하는 건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웹툰으로 치면 패션왕 같은 게 그런 케이스지요.
  • 먹통XKim 2014/04/19 02:13 # 답글

    그래도 김치 전사인지 쓰레기보단 이게 훨씬 명작입니다. ㅡ ㅡ++
  • 잠뿌리 2014/04/22 09:44 # 답글

    먹통XKim/ 김치 전사보다 더 나쁜 한국 애니메이션은 본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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