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S] 운명의 길 (1996) 2020년 가정용 컴퓨터 486 게임











1996년에 드래곤 플라이에서 DOS용으로 만든 롤플레잉 게임. 영제는 더 투어 오브 듀티.

내용은 타스마니아 대륙 북쪽의 주술사 카이한이 레오스마인 산에서 흑마술의 경전을 손에 넣고 마왕이 되어 물, 불, 흙, 공기의 정령을 지배하고 어둠 속에 갇혀 있던 몬스터를 부활시켜 세상을 어지럽히는 가운데, 대륙 남서쪽에서 홀리 다이버교의 마법사 가드니스가 자신의 목숨을 신에게 바치고 종족 연합군을 결성하여 카이한이 이끄는 어둠의 군단과 맞서 싸워 승리한 뒤 천년의 세월이 지나.. 대륙에 마왕 부활의 소문이 떠돌면서 레이스마인 산 근처의 용사 부족 크린족이 어둠의 생명체에게 전멸당하고 아크리안 족장의 아들 마로만이 홀로 살아남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일단 줄거리는 거창하지만 본편 스토리는 굉장히 단순하다. 작중 인물이 파티에 합류하는 것 자체가 운명 같은 만남이나 어떤 이끌림 때문에 그런 게 아니고, 그냥 길가다가 우연히 만나 의기투합한 수준으로 나온다.

이 작품의 스토리에서 유일하게 인상적인 부분이 있다면 바로 뗴몰살 루트에 있다.

본작의 주인공 일행은 마로, 레아, 라프, 휠더린, 클라우스, 해머, 라이나, 샤이닝 등 총 8명인데 이중 7명이 스토리상 죽어 나간다.

최후에 살아남은 그 한 명도 어떻게 보면 현세를 떠나게 됐으니 사실상 전멸이다.

운명의 길이란 타이틀이 정해진 죽음의 운명에서 빗겨갈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듯 무자비함 덕분에 한국 롤플레잉 게임 사상 역대급의 사망전대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엔딩만 슬프지, 거기까지 가는 과정의 이야기는 좀 급조된 느낌이 강해서 와 닿지 않는다. 8명 중에 1명만 스토리 중간에 모종의 이유로 사망하고, 나머지 7명 중 6명은 막판에 가서 무슨 사이오닉 스톰에 지져 죽는 저글링처럼 몰살당하기 때문에 그렇다.

사실 진짜 문제는 게임 인터페이스가 매우 불편하다는 점이다. 아무리 이게 데뷔작이라고는 하지만, 뭔가 미완성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엉망이다.

우선 소비형 아이템이 최소한의 그림도 갖추지 않고 기호처럼 나열되어 있고, 장비 수도 몇 개 안 되는데 장착 제한이 너무 크다. 거기다 장비를 착용한 거나 착용하지 않은 거나 큰 차이가 없을 정도로 능력치 상승 폭이 좁다.

레벨 한계치는 18인데 이후로는 ‘그로우어’라는 소비형 아이템을 사용해 레벨을 올려줘야 한다.

레벨이 오르면서 능력치가 동시에 상승하는 게 아니라 HP/SP만 오르는데 이게 18레벨 수준까지만 올라서 한계치가 있고, 기본 공격력, 방어력은 직접 표시되지는 않는데 보이지 않는 능력치로서 레벨과 함께 올라가니 아이템 사용은 필수다.

근데 아이템을 사용해 레벨을 너무 많이 올리면 한계치까지 성장했던 HP/SP가 초기화된다. 초기화를 피하려면 레벨을 20까지만 올려야 한다.

필드에서는 2D로 움직이지만 마을 안에 들어가거나 전투에 돌입하면 쿼터뷰 시점으로 변한다.

파이날판타지 시리즈와 같은 ATB(액티브 타임 배틀) 시스템을 쓰고 있는데 그보다 빠른 템포인 데다가, 클릭과 취소의 여유가 없어도 너무 없다.

아무리 레벨이 높고 민첩성을 올린다고 해도 조금이라도 조작을 늦게 하면 적이 먼저 움직인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첫 전투에서 게임 오버 당하는 일이 자주 생길 정도다.

특이하게 전투시 전멸했을 때 메롱 메시지가 뜨는데 아무래도 그것도 유저의 분노 게이지를 상승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전투 커맨드는 화면 오른쪽 위에 보이는 캐릭터 초상을 마우스 커서로 클릭해 공격, 스킬, 아이템 사용, 이동 등의 커맨드를 고를 수 있다.

적이 됐든, 아군이 됐든 자신의 턴이 돌아올 때를 알려주는 표시도 없고 그냥 녹색 체력 게이지 옆에 빨간 행동 게이지가 차오르는 것만 보고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한 번 클릭해 커맨드창을 열었다가 행동 게이지가 꽉 차지 않아 아무 것도 선택할 수 없어서 ESC를 눌러 취소하면 그 사이 적이 또 움직인다.

키 하나로 바로 커맨드 창을 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꼭 마우스 커서를 움직여 클릭해야 하기 때문에, 마우스 커서 움직이는 사이에도 적이 움직이는 경우가 많다.

설상가상으로 이동을 할 때는 이동칸 표시가 뜨지만, 공격을 하거나 스킬을 쓸 때는 그런 게 전혀 안 뜬다. 거리를 계산해서 싸우는 게 아니라 대충 때려 맞춰야 한다. 공격 거리가 안 되는데 커맨드 창을 열었다가 닫으면 또 적이 먼저 움직여 순서를 빼앗기니 총체적 난국이다.

거기다 전투 도중에 퇴각할 수도 없으니 정말 하드하다.

좋게 보면 리얼 타임 배틀로 스릴 넘친다!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인간적으로 조작 환경이 너무 나빠서 전투가 재미있기는커녕 짜증이 날 정도라 게임의 몰입감을 방해한다.

쿼터뷰 시점의 자유 이동 전투와 ATB 시스템의 조합은 그야말로 최악이란 걸 본작에서 직접 보여주고 있지만, 사실 이게 반대로 잘 만들면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걸 게임아츠의 그란디아가 알려 주고 있다.

마을 안에서의 쿼터뷰 시점도 시점 변경을 지원하지 않은데다가, 이동 속도는 쓸데없이 빨라서 마을 NPC한테 다가가 대화를 거는 것도 좀 어려울 정도다.

기본 키 입력 시스템 자체가 좀 엉망인 게 마우스 오른쪽 버튼을 누르면 스테이터스창, 아이템 창, 도스로 나가기 메뉴가 뜨는데 정작 세이브/로드는 키보드 F5를 눌러야 한다.

키보드 방향키로 이동을 하는 것 이외에 마우스 커서로 이동을 지원하는데, 마우스 이동 같은 경우 클릭을 해서 커서가 가르키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게 아니라.. 커서와 함께 캐릭터가 움직이기 때문에 도대체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음악도 좋은 편이 아니고 선곡 자체가 이상한 경우가 많으며, 미려한 게 아니라 소음 수준인 일이 생겨서 차라리 음소거로 소리를 끄고 플레이하는 게 더 나을 지경이다.

캐릭터 일러스트는 애니메이션 기법을 쓴 오프닝에서는 그럴 듯하게 나와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정작 게임 본편에 쓰인 일러스트는 오프닝과는 전혀 달라서 괴리감이 느껴진다.

특히 주인공 마로 일러스트가 그렇다. 오프닝에서는 적당히 잘생긴 청년으로 나오는데 게임 속에서는 뭔가 코난스러운 야만용사 느낌 난다. (애초에 마로 백 스토리가 먼 선조가 위대한 용사인 전사 부족의 마지막 생존자라는 것부터가 바바리안 필이다)

결론은 평작. 오프닝 애니메이션이 좋고 메인 스토리가 좀 단순하긴 해도 뗴몰살 루트로 인한 비극의 절정에 달하는 엔딩이 깊은 여운을 안겨줘서 어떤 의미로 보면 참 타이틀에 어울리는데, 오프닝과 게임 본편의 일러스트 갭이 너무 크고 음악도 나쁜데다가, 게임 인터페이스는 최악이라서 제대로 플레이하기가 어려운 게임이다.

여담이지만 이 게임은 후속작이 나왔다. 운명의 길 2 ~벨피기어스 나이트~로 황미나 작가가 일러스트를 맡았다.



덧글

  • 작두도령 2014/03/27 09:54 # 답글

    운명의 길을 비롯해 이후에 나온 카르마(RPG)로 오로지 RPG 게임 위주로만
    드래곤플라이를 기억하고 있는 저로썬 요즘은 국내 FPS게임계에 한 획을 그은 회사로
    대중에게 기억되고 있는 모습은 참 낯설긴 합니다. 되려 예전 RPG작 이야기가 나오면
    낯설지 않을 법도 한데 이젠 괜히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하네요...ㅎㅎ;;
  • 눈물의여뫙 2014/03/27 12:24 #

    카르마도 카르마온라인부터 FPS라서...(RPG 카르마라는 것도 같은 회사에서 제목만 같은 게임인건가.)

    카르마랑 스페셜포스 등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리그베다위키에서만 봐도 드래곤플라이사 설명이 FPS 위주로 되어 있는 걸 보면.
  • 작두도령 2014/03/27 17:20 #

    네, 드래곤플라이에서 만든 1997년작 카르마는 RPG였습니다.
    지금의 FPS 게임 '카르마 온라인'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파판 스타일의 턴제 RPG 게임이지요.
    (이 게임도 나름 대한민국 무슨 게임 수상 같은 걸 했던 것 같은데 오래 전 기억이라 가물가물...)
    아마도 인터넷 시대를 탄 뒤의 대중적인 흥행작이 2개의 FPS 게임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들이는게
    이젠 당연한 것 아닐런지 모르겠습니다. 찾아보니 최근에 MMORPG를 만들긴 했었군요.
    반 온라인, 쎈 온라인이라고...;;
  • 블랙하트 2014/03/30 06:37 #

    FPS 게임 '카르마 온라인'은 원래 1997년작 '카르마'의 후속작 격인 RPG로 기획되었던 건데 나중에 기획이 바뀌면서 온라인 FPS 게임이 된거죠.
  • 먹통XKim 2014/03/27 22:27 # 답글

    운명의 길 2 ~벨피기어스 나이트는 정말 최악이죠.. 차라리 이게 수작일 정도입니다.
  • Lloyd 2014/03/28 01:03 # 답글

    어째 어스토니시아 스토리였나? 하도 오래되니 기억이...
    느낌이 그거랑 비슷해보이네요. 배경은 훨씬 밝은 듯 한데
  • 잠뿌리 2014/03/30 09:32 # 답글

    작두도령/ 드래곤 플라이는 20세기와 21세기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20세기 패키지 게임 시절에는 RPG를 주로 만들고 21세기로 넘어와서는 FPS 온라인 게임을 주로 만드니 여기서 어떤 걸 먼저 접했냐에 따라 세대 차이가 느껴지지요.

    먹통XKim/ 운명의 길2는 아직 해보지 않았는데 이보다 더 나쁘면 답이 안 나오네요.

    Lloyd/ 디자인적으로 어스토니시아 스토리 느낌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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