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Cyborg.1989) SF 영화




1989년에 알버트 퓬 감독이 장 클로드 반담을 기용해 만든 SF 액션 영화.

내용은 먼 미래 시대 전쟁으로 인한 대량학살과 기아로 무정부 상태가 되어 사회가 큰 혼란에 빠졌는데 그것도 모자라 전염병까지 퍼져 인류 전체가 고통 받고 있을 때 사이보그 펄이 백신 데이터 얻기 위해 뉴욕에 왔다가 아틀란타로 떠나려 하는 와중에 ‘파이어릿치’ 갱단을 통솔하던 팬더가 백신 생산 독점권을 얻으려고 위해 펄을 노리는 가운데, 4년 전 팬더 일당에게 소중한 가족을 잃고 홀로 살아남은 무술의 고수 깁슨이 우연히 펄과 만나 그녀를 도와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매드맥스 시리즈의 아류작으로 재난에 의해 문명이 붕괴된 원시 미래물로 SF 액션 영화를 표방하고 있지만 저예산 영화다 보니 SF 요소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이 작품에 SF 태그가 들어가고 SF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요소이자 타이틀인 ‘사이보그’가 의미하는 것은 작중에 나오는 펄의 존재인데, 그녀가 가발을 벗으면 대머리에 뒷머리 전체가 살이 아닌 기계로 되어 있으며 기계의 시각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사실 그런 펄의 외형적인 특성과 후반부의 과거 회상에 잠깐 나온 사이보그 개조 수술을 제외하면 SF라고 할 만한 요소가 전무하다.

언뜻 보면 로보캅의 머피 여자 버전이 생각나게 하지만 그보다 펄은 좀 더 외형이 혐오스럽다. 뒷머리가 기계인 것도 그렇지만 사이보그 개조 수술 때 짧은 분량이나마나 그 과정이 적나라게 나와서 고어 영화를 방불케 한다.

인물 관계가 복잡한 것에 비해 관계 구성이 허술한 느낌을 준다.

펄은 본래 인간이었지만 인류의 희망인 백신을 갖고 여행하기 위해 사이보그로 개조되었고, 본래 줄거리대로라면 메인 히로인이어야 하는데 중간에 팬더한테 납치당한 이후로 한참 뒤에나 다시 나온다.

주인공 깁슨에게는 4년 전 잃은 연인과 그녀의 가족이 있는데 중간에 아무 예정 없이 불쑥 나타난 여인 나디에게서 4년 전 잃은 연인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친구 이상 연인 미만 파트너가 되고, 팬더의 곁에서 총애를 받는 헬리가 실은 깁슨이 4년 전 잃은 연인의 동생이란 설정이라서 쓸데없이 복잡하게 얽히고 있다.

본래 펄이 만나려고 한 대상은 깁슨이 아니라 슬레빈져였고, 나디는 깁슨이 적인 줄 알고 공격했다가 제압당한 후 파트너가 되었을 만큼 본래 아무 연관도 없는 캐릭터인데 결국 마지막에 깁슨과 함께 떠나는 건 헬리다.

아무 연관이 없던 캐릭터가 갑자기 엮이는 급조된 설정이라 개연성이 너무 없어서 스토리의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진다.

최소한 말이 되는 이야기를 보고 싶다는 희망은 버리는 게 좋다.

장 클로드 반담이 나와서 상체 근육질 알몸을 자랑하며 전매특허인 화려한 스핀킥을 선보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다.

다른 장 클로드 반담표 액션 영화와 비교하면 액션 자체의 밀도가 낮은 편이다. 장 클로드 반담 특유의 무쌍 전개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갱단에게 공구리 당해 십자가에 못 박혀 사경을 헤매는 등 갖은 고생을 다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격투 영화에서 순수하게 육체로만 승부하던 장 클로드 반담이 본작에서는 나이프를 사용하고 신발 끝에 칼침을 달아서 쓰거나, 총기를 쓰는 것 등이 눈에 좀 띌 뿐이다.

사실 본작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장 클로드 반담의 스핀킥도, 라스트 배틀도 아니고 극 중반부에 하수구로 도피하던 도중, 뒤쫓아 온 칼잡이 적을 기습하는 씬이다.

하수구 통로 위에서 특유의 다리 찢기 자세로 통로 벽을 딛고 공중에 선 채로 악당이 접근하길 기다렸다가 나이프로 퍽 찍는 씬이다.

스토리는 뭔가 있어 보이는 척 하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별거 없는 허세로 가득하고 쓸데없는 부분에서 필름을 낭비하는 일이 잦다.

일단 대량학살, 기아, 전염병 등의 재난을 당해 아포칼립스 이후의 황폐화된 세계에서, 사이보그 펄이 주인공 깁슨보고 ‘저 사람은 언젠가 세상을 구할 구세주로 보여요.’ 한다는 것부터 시작해.. 작중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뻔하기도 하고 우물에 떨어져 죽은 줄 알았는데 혼자 살아서 올라오는 등 죽음에서의 부활 이미지가 구세주를 상징하고 있다. 이건 무슨 장 끌로드 반담 버전 북두신권 세기말 전설이다.

필름 낭비는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자주 발생하는데 양쪽 다 골고루 카메라에 담고 있다는 게 문제다. 예를 들면 작중 깁슨이 적 1에게 쫓기는 장면이 깁슨, 적의 모습을 한 차례 카메라에 담고 적 2가 쫓아오고, 적 3이 쫓아오는 걸 계속 단독샷으로 보여준다.

그것도 그 추격씬부터 전투씬까지 죄다 슬로우 모션으로 촬영하기 때문에 템포가 늘어진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하수구 뚜껑을 연다 < 빠져 나온다 < 뛴다 < 쫓아간다 < 넘어진다 < 또 다른 놈이 하수구 뚜껑 밖으로 나온다 < 쫓아간다 < 따라잡혀서 싸운다’ 이 수준이다.

작중 깁슨은 4년 전 팬더 일당에게 소중한 이를 잃은 불우한 과거를 가지고 있어서 그 과거 회상에 너무 분량을 할애하고 있어서 액션이나 스토리 진행의 맥이 뚝뚝 끊긴다. 걸핏하면 과거 회상 모드로 들어가서 그렇다.

악당 보스인 팬더 역할을 맡은 빈센트 크린은 뉴질랜드 태생의 배우로 하와이안으로 이 작품이 데뷔작이다. 키가 크고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어서 확실히 강력한 인상을 가지고 있으며, 작중 항상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다가 선글라스를 벗으면 짐승 같은 눈을 번뜩이며 깁슨을 시종일관 압도하는 모습이 카리스마가 있지만.. 문제는 각본상의 대사다.

처음에는 이 혼돈의 시대를 유지하는 게 바람이라고 오프닝 단독 나레이션까지 하고 있는데 깁슨과 얽혀서 싸울 때면 ‘으르르르,’ ‘크아아아’ 라는 괴성만 잔뜩 지르고 말 들어간 대사는 ‘죽여’, ‘덤벼’ 이런 것투성이라서 무슨 수컷 고릴라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아무리 격투물이라고 해도 좀 이해가 안 가는 장면도 나오는데 작중 깁슨이 총 멀쩡히 들고 다니다가 칼잡이 적을 만나니 갑자기 총을 안 쓰고 칼을 뽑아들어 싸우러 간다거나, 팬더는 체인 셔츠 입고 다니면서 마지막 싸움에 임박했을 때는 뜬금없이 웃통 벗고 깁슨과 싸우기도 한다. (미스릴 셔츠는 잘도 벗어던지는데 끝까지 맨손으로만 싸운 게 아니라 칼 뽑아서 잘만 썼다)

또 이 작품 커버 타이틀 보면 총 든 깁슨 모습이 대문짝만하게 나오지만 실제 본편에 깁슨이 총 쏘는 장면인 몇 개 안 나오고 총이 그리 비중이 큰 것도 아니다.

원시 미래 배경이다 보니 총기 자체가 드물어서 깁슨이 소지한 총이 팬더가 쓰는 것과 같은 모델로 단 두 정 뿐인 특수한 총기로 생긴 건 캐들링 건 같지만 연사형이 아니라 단발로 잔탄이 달랑 4발 장전되어 있어 리볼버처럼 쏘는 형식이다.

결론은 비추천. 주인공의 쓸데없는 과거 회상과 고뇌, 구세주의 상징화 등의 허세와 개연성 떨어지는 설정, 늘어지는 스토리 등으로 작품 완성도를 여기저기서 깎아먹으며 SF, 격투. 어느 쪽으로든 집중하지 못한 어정쩡한 저예산 영화로 장끌로드 반담 필모그래피에 흑역사로 남을 만한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을 제작한 캐논 필름은 본래 1987년에 히맨(마스터 오브 유니버스)와 스파이더맨 실사판을 만들려고 했는데 재정적인 문제로 계획이 취소된 상태에서.. 히맨, 스파이더맨에 쓰기 위해 이미 만들어 놓은 의상과 세트 비용 2백만 달러를 회수하려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게 이 작품이다.

본래 편 감독은 이 작품의 주연으로 척 노리스를 기용하려 했지만 공동 제작자인 메나햄 골란이 장 클로드 반담을 캐스팅했다고 한다.

덧붙여 이 작품은 50만달러의 제작비로 총 24일 촬영을 해서 완성했는데, 촬영 도중 팬더의 갱단 부하로 나왔던 단역 배우 잭슨 ‘락’ 핀크니가 장 클로드 반담의 실수로 소품인 칼로 눈을 공격당해 실명을 하는 바람에 노스캐롤라이나 법원에서 장 클로드 반담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48만5천달러를 받아냈다.

추가로 1993년에 후속편 ‘사이보그 2’가 나왔는데 거기선 장끌로드 반담이 나오지 않지만 대신 안젤리나 졸리가 나온다. 무려 안젤리나 졸리의 첫 주연작이다.

1995년에 나온 사이보그 3까지 시리즈가 총 3편이나 나왔다. 그런데 2편, 3편은 1편과 전혀 연관이 없으며 나올 때마다 욕을 먹어 괴작에서 망작, 졸작으로 차츰 역진화했다.



덧글

  • 포스21 2014/02/16 19:49 # 답글

    그런 영화가 어떻게 3편까지 나온건지 , 오히려 이쯤 되면 궁금해집니다. ^^
  • 잠뿌리 2014/02/17 09:11 # 답글

    포스21/ 후속작이 나왔는데 1탄과 다 관계가 없어서 사이보그란 제목만 가져다 쓴 것 같습니다 ㅎㅎ
  • 뷰너맨 2014/03/25 12:03 # 답글

    ..어라? 이 포스터. 어쩐지 베르세르크의 주인공 "가츠"의 조금 더 젋었던 시절(눈과 손이 멀쩡했던) 이 웬지 떠오르는 군요. 머리 모양부터 웬지(....)
  • 잠뿌리 2014/03/30 09:25 # 답글

    뷰너맨/ 실제로 본편에서는 좀 다릅니다. 사실 저 스타일은 장끌로드 반담 기본형이라 어느 영화에 나오던 거의 바뀌지 않지요.
  • 마음만소년 2018/02/07 23:39 # 삭제 답글

    반담껀 못봤지만 졸리가 나온 2편은 봤습니다.
    졸리 무명시절이라서 호기심에 봤는데 괜찮더군요.
    거의 사이보그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느낌..
    남자는 늙어죽어가는데 사이보그인 졸리는 예전 그대로의 외모지만 곁을 떠나지 않고 사는...
    주요 소재는 다르지만 컨셉은 유사한 영화들이 많네요.ㅎㅎ
  • 잠뿌리 2018/02/09 00:13 #

    무명 시절 영화였다면 흑역사일 수도 있겠지만 그 나름의 재미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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