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담(2007) 한국 공포 영화




2007년에 정식, 정범식(정 브라더스) 감독이 만든 호러 영화. 정 브라더스의 스크린 데뷔작이다.

내용은 1942년 경성에 있는 안생병원에 근무하는 의대 실습생 박정남, 젊은 의사 이동규, 교수 김동원 등 3명이 각각 기괴한 일을 경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작중에는 딱히 챕터별로 나누지 않았지만 박정남, 이동규, 김동원 등 3명의 이야기가 옴니버스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같은 배경과 세계관을 공유하면서 각각 다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걸 모르고 본다면 스토리가 뒤죽박죽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옴니버스인 걸 알고 자세히 보면 작중에 던진 떡밥을 착실하게 회수하면서 각각의 이야기가 공유해서 꽤 디테일하게 만들어졌다.

스토리의 기본은 미스테리로 시작해서 복선을 마구 던지고 그게 나중에 가서 밝혀지는 과정에서 진실이 드러난다. 3가지 스토리 전부 다 반전이 나오기 때문에, 반전에 의존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지만 그래도 그 과정이 비교적 착실하게 나온다. 즉, 진행이 부드럽게 연결이 되고 내용 이해가 쉽다는 것이다.

다만, 반전이 드러나는 순간의 연출 중 일부는 좀 지나치게 요란하게 묘사해서 오히려 이해가 안 되는 부분도 좀 있다. (예를 들면 이동규가 주역으로 나오는 두 번째 이야기의 결말 부분 말이다. 마지막에 나온 대사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포돌이가 다가와 ‘잡았다 요놈!’ 철컹철컹할 것이다)

주요 소재는 영혼결혼식, 사고 휴유증, 다중인격 등인데 내용 자체는 그렇게 신선한 건 아니지만 화면과 연출은 인상적이다.

40년대 경성의 병원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배경, 소품, 복장부터 꼼꼼하게 체크해 구현한 느낌이 나고 화면과 음악을 종합해 보면 확실히 아름답고 우아한 분위기도 풍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연출은 사실 정통 호러물과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실제로 본작의 스토리도 기이한 이야기는 될 수 있어도 무서운 이야기는 되지 못했다. 거기다 대부분 새드 엔딩으로 이어져서 감성을 자극해서 무서운 것과는 더욱 거리가 멀어진다.

이 작품에서 무서운 장면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근데 그 손에 꼽히는 적은 장면의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한국 호러 영화보다 더 무섭다.

그중 최고라고 할 만한 건 두 번째 이야기에서 나오는 아사코의 엄마 귀신이다. 아사코란 어린 소녀가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를 당해 부모님을 잃고 혼자 살아남았는데, 꿈속에서 엄마 귀신을 보는 씬인데 이 부분만 따로 잘라서 엄마 귀신 짤방으로 나돌아다닌 적도 있다.

병원 침대에 누운 아사코 옆에 우두커니 서서 충혈된 눈으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중얼거리는 장면인데 정말 오싹하다.

허나, 그게 불과 몇 초 밖에 안 나오고 그 뒤에 드러난 반전은 전혀 다른 진실로 이어지니.. 그 장면만 보고 이 작품이 정통 호러 영화인 줄 알고 본 사람이라면 뒤통수 맞은 심정을 느낄 것 같다.

사실 이 작품 포스터에 나오는 홍보 문구인 ‘사랑에 홀린 자, 여기 모이다..’ 이것만 봐도 호러와 담 쌓은 거다. 호러 영화에 사랑이 나오면 그 시점에서 정통 호러에서 벗어난다. 그건 멜로물에 호러 요소를 도입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애초에 미스테리로 시작해서 호러로 진행되다가 멜로로 끝나는 시점에서 이 작품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냉정하게 호러 영화로 보자면 슬픈 정서로 포장해도 무섭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엄마 귀신 같이 전체 중에 극히 일부분만 무서운 것을 가지고 이 작품이 전체적으로 무서운 영화란 인식을 하게 만드는 건 고도의 낚시다.

결론은 미묘. 미장센이 돋보이고 스토리는 짜임새가 있으며 배우들의 연기는 무난해서 영화 자체는 잘 만들었지만 기이한 이야기로서의 기담이라면 추천할 만한데, 호러 영화로서는 별로 무섭지가 않아서 적극적으로 권하기가 어렵다.

한국 호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이라고 보기에는 호러의 냄새가 옅어서 오히려 미장센에 집착하는 안 좋은 사례를 남길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정가 형제 감독의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싶다.

이 형제 감독이 정말 각 잡고 정통 호러 영화를 만들면 잘 만들 것 같다. ...라고 생각했지만 이후에 나온 무서운 이야기 1(해와 달 오누이), 2(탈출)편 중에 특히 후자를 생각하면 어쩐지 주화입마에 걸려서 잘못된 쪽으로 발전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탈출편 자체는 개인적으로 무서운 이야기 2에 수록된 에피소드 중 그나마 제일 볼만했지만 병맛 개그가 너무 심해서 보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관대함의 내공이 필요했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은 개봉한 시기에 하필 디워가 나와서 스크린 확보를 못해서 관객들이 서명 운동까지 했었다. 디워에 묻히기에는 아까운 영화인 건 맞다.

덧붙여 이 작품은 제 28회 청룡 영화상에서 미술상, 촬영상을 수상했다.



덧글

  • 한이연 2013/10/05 01:41 # 답글

    이 영화는 소문으로 듣고 보게되었는데... 사람 놀래키는 영화였었죠.. 혼자서는 못볼 영화였달까... ;; 하지만 에피소드가 나눠지는 부분에서는 보면서 루즈해지는 기분도 들고 해서 잠뿌리님 말씀처럼 좀 미묘했었어요.. 작정하고 무섭게 만들었으며 한국영화 역대급이였을텐데...
  • 역사관심 2013/10/05 01:55 # 답글

    분위기는 만점. 스토리와 연출은 2% 아쉬웠던 작품. 그래서 보고나면 기억에 안남았던...
  • 큰별아씨 2013/10/05 02:47 # 답글

    이거 보면서 무서운 장면에서는 번번이 눈을 가려서 중요한 건 기억이 안 나는데
    미처 가리지 못하고 봤던 엄마 귀신 장면은 진짜ㅠㅠ
    으악 밤에 이 글 봐서 오늘 잠 못 이루겠어요ㅠㅠ
  • 쥰느 2013/10/05 11:22 # 답글

    전이거 유일하게 보다끈영화....나중에 캡쳐화면으로만봤는데도 무서워요 으이 ㅜㅠ
  • 夢影 2013/10/06 20:22 # 답글

    그러고보니 디워 대신 기담을 봤군요. 뭔가 미묘... 하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 잠뿌리 2013/10/11 02:19 # 답글

    한이연/ 미장센에 집착해서 호러의 본질에서 좀 벗어나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욱 아쉽지요.

    역사관심/ 저는 엄마 귀신 한 장면만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나머지는 금세 잊혀질 것 같아요 ㅎㅎ

    큰별아씨/ 엄마 귀신 장면은 정말 섬뜩하지요.

    쥰느/ 짤방만 봐도 오싹합니다 ㅎㅎ

    夢影/ 정말 미묘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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