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1994) 2019년 전격 Z급 영화




1994년에 박헌수 감독이 만든 호러 영화.

내용은 999년 묵은 구미호 하라를 잡기 위해 저승에서 염라대왕의 명을 받고 저승사자 한 명이 파견되는데, 저승 행정요원의 착오가 생겨서 어설픈 저승사자 69호가 현세로 올라가고.. 그 와중에 하라는 혁을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현세에 남은 유일한 구미호이자 999년을 살아와서 1000년이 되기 전에 사랑하는 인간의 정기를 흡수해야 인간이 되는 여우 요괴가 인간과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진다는 게 주된 내용으로 한국의 고전 설화 구미호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인기 배우 정우성의 데뷔작으로 본인 스스로는 극중에 나오는 자신의 발연기를 볼 때마다 자책하고 식은땀이 흘러 당시 히로인 하라 역을 맡은 고소영에게 미안하고 스태프 쫑파티 때 스태프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까지 했을 정도의 흑역사다.

사실 이 작품은 정우성의 발연기만 탓할 수는 없다. 정우성만 연기를 못한 게 아니라 고소영 역시 연기를 못한 건 마찬가지다. 둘다 선남선녀지만 미모와 연기력은 반비례했다. 그리고 이기영, 권해효, 이근희, 방은희 등등 모처럼 연기를 잘하는 조연들이 많은데 다들 단역이라서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다.

남녀 주인공 배우들의 연기력이 바닥을 기는 정도가 아니라 저 어비스의 심연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수준이라서 정말 이쯤 되면 고문에 가까운데, 그런 최악 최흉의 연기력에 안 좋은 의미로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킨 건 바로 각본이다.

이 작품의 각본은 아무리 본작이 영화고 픽션이라고 해도 좀 말도 안 되는, 혹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진행과 대사가 넘치듯 흐른다.

우선 주인공 혁이 불행한 남자라는 설정을 가진 걸 알겠는데 첫 등장 때 길가다 깡패들과 어깨를 부딪치고는 무슨 허세인지 셋 샐 동안 안 꺼지면 디진다. 이러고 깡패들은 ‘나와 어깨를 부딪치면 두 가지 선택이 있지. 그냥 지나가는 것과 내 구두에 짓이겨지는 것.’, ‘명을 재촉하지 말아라’ 이렇게 주고받다가 별안간 일대 다수의 싸움이 벌어져 주인공이란 게 무색하게 신나게 처발리고 칼침까지 맞고 도망치던 중 히로인 하라가 운전하는 차에 치어 쓰러졌다 코피만 흘린 채로 벌떡 일어나.. 대뜸 하라 차 타고 도망치는데 성공한 뒤 '고마워요‘이러고 나가다 픽 쓰러진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남녀 주인공의 첫만남이었다)

그 뒤에 택시 운전을 하면서 사는데 난데없이 강도를 만나고는, 강도들이 자기네가 이렇게 사는 건 너희 같은 무능력한 놈들 때문이다! 라고 설득력 없는 대사를 날리며 택시까지 강탈한다.

보통, 부유한 사람을 대상으로 강도짓하며 우리가 못 사는 이유는 다 너희 때문이다! 라고 하면 모를까.. 무능력한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못 산다 이러면서 욕을 해대는데 그 시점에서 설득력이 마이너스를 찍었다.

강도가 강도질하는 게 사회적 약자들, 무능력자들 때문이고 그 사람들이 약하고 무능한 게 죄다! 라고 주장하고 있으니 아무리 영화라지만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당시로선 미녀 배우 고소영의 파격적인 배드씬!이 화제가 됐지만 사실 본작은 그렇게까지 선정적이지는 않다. 애초에 설정 자체가 구미호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과 붕가붕가를 하지 않고 특정한 날까지 순결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의 완성이 붕가붕가라는 허리하학적인 설정이 본작의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어서 이것으로 인해 위기가 찾아온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애네들 진짜 붕가붕가하면 사망 플레그 켜고 바로 게임오버라서.. 오히려 붕가붕가 경보 모드로 들어가면 긴장감 넘치는 BGM이 흘러나온다 이 소리다.

붕가붕가도 안 하면서 붕가붕가 할 듯 말 듯한 전개로 관객을 농락하는데 쓸데 없는 노출이라곤 해도 하우두유두가 딱 한 번 나올 뿐 그 뒤로는 올누드는커녕 세미 누드, 반라조차 안 나와서 사실 생각 이상으로 노출씬도 적다.

후반부에서 혁이 수라의 정체를 의심하는 부분은 작위적인 설정의 정점에 달한다. 그 부분이 나오기 전까지 한 번도 의심하는 장면이 없고 또 의심할 생각도 하지 못한 친구가 창문틀에 남아 있는 여우털을 보고 갑자기 뭔가를 깨닫고 의심하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말 각본을 발로 쓴 것 같다.

특수 효과도 본작이 나올 당시에는 화제가 됐을지 몰라도 지금 현대의 관점에서 보면 유치하고 조잡하다.

구미호가 경공을 펼치며 나무와 나무 사이를 밟고 올라가 우왕, 꺄왕! 괴성을 지르고 손바닥에서 기탄을 만들어 던지거나, 푸른빛의 은장도를 만들어 휘두르는 등등 어쩐지 만화적 연출이 잔뜩 나오는데.. 그걸 실사 영화로 보니 여간 어색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특수 효과가 화제가 된 이유는, 그 당시 한국 과학 기술원 시스템 공학 연구소가 제작에 참여해 국내 최초로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제작되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모핑 기법으로 물체의 모습이 서서히 바뀌는 것인데 본작에서는 인간 모습에서 구미호로 한순간에 변하는 연출로 쓰였다. 1991년에 마이클 잭슨의 ‘블랙 오어 화이트’ 뮤직 비디오에서 처음 쓰여서 화제가 되었던 CG 기술이다.

하지만 조금 안습인 건 모핑 기법이 핫 이슈가 됐던 건 블랙 오어 화이트 뮤직 비디오가 나온 91년인데 이 작품은 그로부터 3년 후인 1994년에 나왔다. 이미 그 시점에서 모핑 기법은 외국 영화에서 쓰일 만큼 다 썼다.

때가 낮은 CG 기술 도입인데 설상가상으로 개봉 당시 신문에서 라이벌 영화라고 지목했던 게 같은 시기에 개봉한 잭 니콜슨 감독의 ‘울프’였다.

거기다 다른 건 다 떠나서 작중에 그 모핑 기법이 나오는 건 극히 짧은 한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그 장면을 제외한 나머지 장면에서는 아예 인간 모습과 요괴 모습이 각각 따로 나오니 CG 기술을 많이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 때문에 이 작품의 국산 최초 CG 도입!이란 타이틀만 보고 ‘어디서 나오지?’하고 무슨 윌리를 찾아라 마냥 CG 들어간 곳 찾다 보면 어느새 영화가 다 끝나있을 것이다.

모빙 기법 최초 도입 한국 영화라는 타이틀은 그럴 듯 해보이지만 실상은 빛좋은 개살구라는 말이다.

또 한 가지, 고난도 트래블링 매트 기법이 들어갔다 어쨌다 하는데 이게 어떤 부분이냐면 작중 구미호가 본래 정체를 드러내고 야밤에 경공술 펼치듯 하늘을 향해 수직 상승하고 그 뒤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할 때 쓰는 건데.. 본래 이 기술은 전경과 배경을 따로 찍어 합성하는 기술로 1960년대부터 쓰인 기법이라서 모핑 기법과 정반대다.

어쨌든 그래도 나오는 분량이 적어서 그렇지 제작비를 많이 들인 만큼 그렇게 촬영 기술은 나름대로 신경을 많이 썼지만 음향 효과 쪽은 정말 최악이다.

안 그래도 발연기 때문에 보는 내내 손발이 오그라드는데 음향 효과까지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작중 하라가 혁이 싸대기 때릴 때의 툭 치는 연출과 달리 혁이 하라를 후려칠 때는 주먹, 발차기 날리며 싸우는 격투씬의 붕붕 퍽퍽 소리가 난다.

그나마 볼만한 게 있다면 구미호 사냥 임무를 잘못 맡은 어설픈 저승사자 69호의 울지도, 웃지도 못할 현대 기행기다. 독고 영재가 배역을 맡았는데 남녀 주인공보다 훨씬 연기를 잘해서 본작의 숨은 주인공이다.

세상물정 전혀 모르고 능력도 별 볼일 없는데 999년 묵은 구미호 잡겠다고 발악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이 신내림을 내려 준 신령인 줄 알고 오해해서 엉겨 붙은 무당 미미와의 짧은 로맨스도 애틋해서 가만 보면 주인공 커플의 이야기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그리고 저승에 철도가 다녀서 죽은 자의 영혼을 싣고 와 실시간으로 혀를 뽑는 형벌을 내리며 현대식 지옥 풍경을 묘사하고, 구미호를 잡으러 현세에 올라온 저승사자 69호라는 설화의 현대식 각색 등 배경 설정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근데 이때 저승에서 사람들 혀 뽑고 괴롭히는 귀졸들이 입은 갑옷 디자인 보면 리전 오브 둠의 빨간 갑옷이 있다)

결말은 결국 비극적으로 끝나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내용이었으나, 그래도 남주인공이 모든 걸 알면서도 끝까지 여주인공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려 했다는 점에 있어 구미호 설화를 각색한 건 좋게 보고 싶다.

다만, 마지막까지 떡치는 건 나오지 않아서 오로지 떡 하나 보고 이 작품을 본 사람은 허탈한 심정을 느낄 것이다.

결론은 미묘. 완성도가 떨어지는 각본에 작위적인 행동, 설정, 대사, 배우들의 발연기까지 더해진 졸작으로 결국 호러도, 로맨스도 되지 못했다. 배우의 연기력은 생각하지 않고 얼굴만 뽑으면 어떤 결말이 나오는지 잘 알려주는 교훈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영화중에 최초로 모핑 기법을 도입해서 한국 영화사의 영상 기술 발전에 공헌했다는 것 자체는 좋게 볼 수도 있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을 제작한 신철은 제 5회 춘사영화예술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덧붙여 이 작품은 제작비가 16억이 들었고 당시 흥행 성적은 전국 관객 수 약 18만 명을 동원했다.



덧글

  • 블랙 2013/08/20 10:38 # 답글

    '국산 최초 CG 도입!'....만 화제였었죠.
  • 잠뿌리 2013/08/20 19:47 # 답글

    블랙/ 네. 단 몇 분도 채 안 나오지만 국산 최초의 CG 도입이란 것만이 한국 영화사의 한 페이지에 남았지요.
  • 어벙 2013/08/24 15:21 # 답글

    흠.왠지 쿠소의 느낌이 나는군요.
  • 잠뿌리 2013/08/27 18:26 # 답글

    어벙/ 쌈마이 영화지요.
  • 01263 2016/11/29 09:07 # 삭제 답글

    요즘에는 한번이라도 무조건 가슴이 나오면 청불인데 옜날에는 가슴이나와도 15세였음 저거 15세영환데
    여자가슴이나옴 고소영이 정우성 깔고 앉을때 옆으로 보여줬지만 고소영가슴노출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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